가정예배를 통해 바벨탑의 영적인 의미를 기억합니다.

 

 

 
 
찬송 : ‘목마른 내 영혼’ 309장(통 40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창세기 11장 1∼9절

말씀 : 오늘은 바벨탑 사건이 가지는 영적인 의미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흩어지지 않겠다는 인간의 결심과 이들을 흩어지게 해 번성케 하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죄성(罪性)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 이 이야기에 나오는 노아의 자식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의 뜻을 더 따랐습니다. 내 생각과 내 입맛에 맞는 것, 사람들이 좋다는 걸 더 따르는 일은 때로 하나님 앞에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좋아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입니다.

우리 역시 사람들의 반응과 인기를 얻기 위해 하나님 뜻보다 사람 뜻을 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들과 즐기느라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향한 인간들의 연합된 반역이었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큰 홍수의 심판을 경험하고 난 직후 일어났습니다. 이들이 왜 그렇게 높은 탑을 쌓으려 했을까요. 그들의 교만함은 인간이 스스로 똘똘 뭉쳐서 하나님을 이겨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홍수로도 잠길 수 없는 더 높고 견고한 탑을 쌓아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지 땅에 떨치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단합했던 겁니다.

하나님은 홍수 이후 무지개를 통해 다시는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그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언약을 확인하셨음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 뒤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대신 내가 직접 얻어내겠다는 탐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셋째 인간 자신의 의를 하나님보다 더 위에 두었습니다. 그들은 바벨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해서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외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았지만 내 뜻이 더 중요하고 옳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거스르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알지만 귀찮고, 알지만 지금 상황에선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아 하나님 뜻을 어기거나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이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인간이 반응하기를 기대하고, 좋은 것을 주시려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 사랑은 인간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고 먼저 약속하고 다독이십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 약속을 잘 믿으려 하지 않고 의심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두려움과 불안함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불신과 교만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풍성하신 계획과 은혜 안에 안겨 평안함과 축복을 누리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두려움과 불안함, 고집스러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약속하심을 온전히 믿지 못함임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나의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맡기고 순종하며 따르는 한 사람 한 사람 되게 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민정 목사(좋은목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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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 - 승리하는 신앙인

 

 

 

 

찬송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14장(통 511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14장 17∼24절

말씀 : 아브람이 4대 연합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살렘왕 멜기세덱을 만났습니다. 여기서 살렘은 현재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지역입니다. 당시 살렘이란 뜻은 ‘평화, 화평’이고, 멜기세덱은 ‘의의 왕, 평강의 왕’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 또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멜기세덱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아브람 때의 실존인물입니다(시 110:4, 히 6:20). 이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어떻게 축복했고, 아브람이 이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멜기세덱은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람을 영접하며 크게 축복했습니다. 그는 아브람을 향해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 14:19∼20)라고 말합니다. 모든 복된 것이 아브람에게 있기를 원한다는 기도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을 가지고 말씀에 절대순종하면서 신앙우선주의로 살았기에 이런 축복기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멜기세덱의 이 찬양과 감사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하나님 능력으로 이겼음을 나타내는 아브람의 겸손한 신앙을 대변해줍니다.

이런 멜기세덱의 축복에 아브람은 신앙적으로 화답했습니다. 먼저 아브람은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람의 승리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자 아브람은 전쟁에서의 얻은 노획물이 전부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아브람은 나머지 십 분의 구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소돔왕이 전쟁의 패배에서 벗어난 것에 대하여 고마움의 표시로 아브람이 되찾아온 재물들을 모두 취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아브람은 동맹한 사람들의 분깃과 소년들이 전쟁 중에서 먹은 것을 제하고 모두 소돔왕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는 일한 사람들의 정당한 대가를 인정하여 정사를 지혜롭게 처리한 것입니다. 또 소돔왕의 제안을 거절하고 재물을 소돔왕에게 돌려주었는데, 이는 거부가 된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소돔왕 때문에 된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인의 불행으로 물질을 축적하지 않겠다는 신앙적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소돔왕에게 재물들을 돌려준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4대 연합국의 왕들을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만나 복을 빌어주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을 축복하시는 분임을 알려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람이 4대 연합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멜기세덱의 축복기도를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평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대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아브람처럼 멜기세덱의 축복기도를 받을 수 있는 승리하는 믿음을 갖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멜기세덱의 축복기도를 받을 수 있는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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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보아스의 열심, 하나님의 열심

 

 

 


 
 
찬송 : ‘나의 믿음 약할 때’ 374장(통 423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룻기 4장 1∼12절

말씀 : 오늘 하루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들을 나누면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는 신앙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룻기를 통해 소망 없는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은혜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소망 없이 남겨진 두 과부를 보아스를 통해 돌보시듯,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보아스는 룻의 무모한 행동마저 격려합니다. 이어 자신보다 먼저 기업 무를 책임을 지닌 친족이 있으니 그가 기업을 무르지 않는다면 자신이 기업을 무르겠다고 약속합니다. 기업을 무르는 일은 하나님께 받은 기업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가까운 친족만이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업을 무르는 데도 서열이 있었습니다.(레 25:47)

보아스는 성문으로 올라가 기업 무를 친족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증인이 될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해 앉게 합니다. 이어 기업 무를 친족에게 나오미의 기업을 무를 것인지 묻습니다.

우선권을 가진 친족이 처음엔 나오미의 기업을 무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그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합니다. 기업을 무를 경우,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나오미만 있는 게 아니라 룻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혹시라도 룻이 후사를 얻게 되면 결국 손해가 될 것을 우려한 친족은 기업 무를 권리를 포기합니다.

그러자 보아스는 자신이 기업을 무르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합니다. 나오미와 룻의 기업을 잇게 하려고 보아스는 온 힘을 기울여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처럼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어떤 손실과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보아스의 자세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의 희생과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업을 무르시기 위한 ‘고엘’이 되시고자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하늘 영광 보좌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처절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처절한 고통과 부끄러움마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보아스의 ‘열심’은 곧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입니다.(사 9:7) 보아스의 열심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까지 내어놓으시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우리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열심이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시다.

기도 :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입니다. 보아스의 열심을 통해 하나님의 열심을 보게 하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낌없이 십자가에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열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 은혜에 감사드리며 구원의 감격을 맛보며 살아가는 우리 가족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강정웅 목사(부산 대연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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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가정]  은혜의 가정예배 / worship service at home

 

 

 

 

목-감사하는 자가 되라
본문: 골 3:15-17
찬송가: 135장(구 133장)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다.
 
첫째,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둘째, 감사는 알되 갚으려 하지 않는 사람. 셋째, 조건을 따져 감사하는 사람. 넷째, 범사에 감사할 줄 알고 그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성도는 네 번째 사람이 되어야 한다(살전5:16-18). 성경(시100:4) 말씀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했다. 감사대신 불평, 원망하면 마귀들이 춤을 추게 된다. 그래서 기도가 올라가지 않게 되고 응답도 없다. 그러나 감사하면 성령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기도하기만 하면 상달되어 응답을 받게 된다.
 
감사하면 성도의 삶에 유익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곳에 능력이 나타난다. 일생동안 온 마음과 정성과 물질을 다하여서,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에 대해 감사드리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시기를 바란다. 지난날에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미련을 갖지 말자. 지금,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감사하며 살아도 모자랄 것이다. 감사는 택함을 받은 성도의 마땅한 도리이며,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주님 오시는 날까지 평생 동안 감사만 하고 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될 것이다.
 
첫째도 감사, 둘째도 감사, 셋째도 감사로 일평생 자나 깨나 감사하다가 주님 앞에 설 때에 큰 상급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 불평했던 모든 말과 시간을 회개합니다. 주님 이제부터 주님 뜻대로 평안해도, 힘들어도 항상 감사하게 하옵소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 향 희 목사
든든한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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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 세상을 살다보면

 

 

 

찬송 :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272장(통330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욥기 3장 20∼26절

말씀 : 세상을 살다보면 원치 않는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사업이 망해 빚더미에 앉아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욥을 보십시오. 행복했던 인생에 환란 풍파가 거세게 불어 닥쳤습니다. 10남매가 한자리에서 몰살당하고 재산은 원수들에게 약탈당하거나 벼락 맞아 다 타버렸습니다. 자신의 육체는 병들어 고통 가운데 신음했고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욥 1장). 그가 자신의 생일 때 한 말입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욥 3:11) 그러나 욥은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욥의 인생을 통해 생각해 볼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내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욥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이도 여호와시오니….”(욥 1:21)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27장 16절에는 “여호와는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시고 사명을 주셔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창 1:26∼28).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까지 영혼과 육체를 잘 보존하여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나 한 사람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고 했습니다. 사람은 어차피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 세상을 포기 하고 떠난다면 당신의 죽음으로 부모와 가족, 친구와 이웃들이 한평생 고통과 슬픔을 안고 눈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정말 두려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 너머 또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이겨 내야 합니다.

셋째, 고통이 지난 후 받게 될 복을 생각해 보십시오. 욥기 42장 12절에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 아픔과 고난도 언젠가 끝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고통 후에 더 큰 복을 주십니다.

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시고 누구에겐가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하십시오. 살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다”(요 14:6)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인간은 당신을 버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십니다.

이런 가스펠송이 있습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기도 :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 인생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를 주시고 고난의 현장에서 주의 능력으로 일어서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모상련 목사(목포주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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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기도문

 

 

 

역사를 주관하시는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저희의 감사와 찬송과 기도를 드립니다.

해 아래 새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로서 늘 창조적인 새날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복된 자녀임을 깨닫도록 새해도 주시고 민족 명절인 설날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이처럼 뜻 깊은 고마운 설을 맞이하여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처럼 함께 모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오늘의 화목한 가정이 있도록 애쓰신 어른들께 감사하는 아름답고 즐거운 명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양력으로 맞이하는 새해 아침은 사람들이 바로 살아야겠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맞이하는데 음력으로 맞이하는 설날은 웬일인지 조금은 흐트러진 마음으로 맞이하는 분위기입니다.

 

오, 주님, 좋은 명절인 설날을 보내면서 세속의 문화와 인습에 물들거나 우상숭배의 결과가 되지 않도록 저희의 마음을 굳건한 믿음과 절제의 미덕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그 옛날 믿음의 사람 욥이 그랬듯이. 명절과 축제의 시간을 맞이할 때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간절하게 하시고 명절을 보낸 뒤에 오히려 후회함이 없도록 저희의 영적 상태를 순간순간 점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국가 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혼란스럽고 가정마다 실직자가 속출하는 우울한 현실 속에서 경제적 씀씀이를 절제하여 모범을 보이게 하소서. 부부간에도 사랑의 보람이 더욱 풍성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사랑과 존경이 넉넉한 설날이 되게 하옵소서.

 

설을 맞이하여 오히려 외롭고 쓸쓸한 우리의 이웃들에게 위로로 다가가게 하옵소서.

모처럼 온 가족과 일가친척이 만나 밝고 명랑하되 들뜨거나 방종하지 않게 하시고 위로와 격려를 나누며 내일의 비전을 바라보게 하소서. 존경과 사랑으로 섬김의 가정과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옵소서.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가깝게는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과 멀게는 저 북녘 땅의 고통 받는 동족들과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죽어가는 땅 끝의 인류에게까지 새해의 새 소망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으로 전파되게 하여 주옵소서.

온 가족이 주님 모신 한 상에 둘러앉아 감사와 찬송과 기도로 열어가는 설날, 새로운 결단과 비전 속 에 맞이하는 설날 아침이 되게 하소서.

시간을 주관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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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  축복 받는 비결  

 

 

 

 
찬송 : ‘어머니의 넓은 사랑’ 579장(통 30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출애굽기 20장 12절

말씀 :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첫째로 부모님에 대한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삶의 규율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십계명 중에서 1계명부터 4계명까지가 하나님과 관계된 계명이고, 5계명부터 10계명까지가 인간과 관계된 계명입니다. 그런데 인간과 관계된 계명에서 첫 번째가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에 대한 공경은 최고의 윤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낳으시고 키우시며 가르치기 위해 많은 고생과 수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둘째로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의 권위는 이 세상이나 그 어떤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모님을 창조하시고 세워주셨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자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그분들을 존경하고 순종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늘 기쁘고 평안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부모님의 영혼이 구원받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부모님이 계신다면 반드시 예수 믿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필요를 채워드려야 합니다. 그분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한 모든 부분의 필요를 꼼꼼히 챙겨서 불편하지 않도록 잘 채워드려야 합니다. 그분들은 이 세상에서 사실 날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봉양해야 합니다.

셋째로 부모님을 공경한 자들에 대한 보상이 있습니다. 먼저 범사가 잘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부모님께 효도하는 자들을 사랑하시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하시며 범사가 잘되는 복을 누리도록 하십니다. 또한 땅에서 장수하게 합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효도하는 자식을 얻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들은 그들이 커서도 그 부모에게서 본 그대로 자기 부모님을 귀하게 여기고 공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께도 영광이요, 우리 자신들의 장래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기도 :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도록 명령하시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장수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함으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복을 받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요셉 목사(선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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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 사랑이 제일 가치 있는 이유

 

 

 

찬송 : ‘하나님 사랑은’ 299장(통 418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전서 13장 8~13절

말씀 : 사는 날 동안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 수 있다면 그는 참으로 복된 사람일 것입니다. 성경은 이 가치 있는 것을 사랑이라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사람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시며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사랑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꼭 간직해야 할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이렇게 가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사랑만이 온전하기 때문입니다(8∼10절). 사랑이 없는 것은 부분적이고, 지극히 작으며, 결국 얼마 되지 않아 폐하게 됩니다. 영원히 남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사는 날 동안 아무리 많은 헌신, 예언, 방언을 했어도, 평생을 말씀을 전하며 살았다 해도 사랑을 뺀다면 제로 상태입니다. 기독교의 뿌리는 부활과 십자가인데 이것은 결국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사랑은 곧 예수님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 모든 것은 온전해지며,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이 됩니다.

둘째, 사랑할 때 비로소 어른이 되기 때문에 사랑은 가치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직분을 가졌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을 때는 말하는 것도, 깨닫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어린아이와 같지만 사랑할 때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고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라고 해서, 교회의 중직이라고 해서 교회의 어른이 아닙니다(11절).

사랑의 사람이어야만 어른입니다. 링컨, 손양원, 간디, 테레사 등 그들 모두 사랑의 사람이었기에 이 시대의 어른으로 추앙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 어른의 표상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도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어른 된 교회가 아닙니다. 세계 열방을 향해 사랑하는 교회가 될 때 진정 이 시대의 어른 된 교회입니다.

셋째, 사랑만이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12절). 사랑이 없을 때는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지만 사랑이 있을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처럼 분명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해도 지식에만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사랑할 때 하나님의 얼굴을, 그리스도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처럼 확실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형제자매에 대해서도 편견의 거울을 통하지 않고 사랑의 거울을 통해서 볼 때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함으로 온전해지고, 사랑을 통해 어른이 되며,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희미하게 알던 하나님을 확실하게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큰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말씀을 통해 사랑이 최고의 가치임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가치를 추구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임석순 목사(한국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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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하나님의 일꾼

 

 

 

찬송 :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441장(통 49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출애굽기 35:30∼36:1

성막건축의 명령을 받고 모세는 드디어 성막을 건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흙으로 벽돌을 만드는 일에는 전문가들이지만 성전 건축에 필요한 정교한 기술들을 배운 일이 없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일을 맡기고 싶어도 적임자를 찾지 못할 때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어떤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특별히 지명하여 부르십니다. 브살렐은 수석공인으로, 오홀리압은 브살렐의 협력자로 세웁니다. 모세가 비록 탁월한 인물이고 아론으로 그를 돕도록 붙여주셨지만 성막을 건축하는 일에 하나님은 따로 두 사람을 부르시고 모세의 지도를 받게 합니다. 좋은 지도자는 모든 일을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일꾼들을 세우고 격려하고 합심하여 함께 일을 잘 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적재적소에 일꾼들을 배치하고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리더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재능과 은사를 주셨고 그것을 최대한도로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지도자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둘째로 두 사람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충만은 그들을 지혜롭게 하였고 성소를 짓는 모든 일들을 할 줄 알게 하였습니다(36:1). “할 줄 알게 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외부에서 전문가를 불러오시는 것이 아니고 백성들 가운데 일할 사람을 먼저 뽑고 그들로 하여금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능력보다 부르심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자를 불러서 일을 맡기시기보다 부르신 자들에게 능력을 추가해주셔서 그 일을 하도록 만드십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기술과 재능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선물 곧 은사입니다.

셋째로 오홀리압을 협력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힘 있는 유다지파의 명문가문에서 브살렐을 세우고 타 지파에 비해 비교적 약한 단 지파의 오홀리압을 부지도자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아래 또한 많은 지혜로운 자들을 세워서 다양한 일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회 일은 이처럼 모든 성도들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일이 부족함이 없고 넉넉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중생으로의 부르심이고 또 하나는 일꾼으로의 부르심입니다. 교회가 일꾼이 없어 할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꾼을 부르시고 능력과 지혜로 충만케 하심으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인간적 계획과 능력으로 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 일할 때 지치지 않고 선한 열매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성막을 세우는 일에 부름 받은 가정이요 교회로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충성된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하늘로부터 오는 각양 은사로 무장하여 부르심에 합당한 일꾼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수환 목사(서울 람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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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우리의 하나님

 

 

 

 

 
 90장 (통 98장) 찬송듣기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미 7:18)

성경 미가 7:18~7:20 성경감추기 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20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내용  
많은 신앙인들에게서 발견되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제각기 자신의 신앙대로 하나님에 대한 나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며 가르침을 주시는 '좋은 훈장님'으로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무엇이든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제공하시는 '요술램프'쯤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죄와 관련해 항상 잘못을 지적하고 심판하시며 옳은 길로 인도해주시는 '엄한 판사' 같은 분으로 하나님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경외심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분, 자비와 사랑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 이미지는, 사람들의 죄와 허물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으시지만 죄로 인하여 인생 전체를 망치거나 죄에 얽매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머물러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그려집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 은혜 가운데 인간을 머물게 하시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유력한 자들에게서 보이는 탐심과 권력남용, 그리고 우상숭배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면서도, 하나님의 '사유와 인애'를 동시에 선포합니다. 그분 앞에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온전히 회개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는 심판을 부르는 매서운 회초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하는 '자리'로 작용합니다. 인간의 결점과 허물, 죄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되어줍니다.

기도  
주님, 죄에 얽매이지 않게 하소서. 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깊이 체험하고 변화된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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