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잡는 유머 - 남편 따라 저승에 가보니

 


           

  세상에 믿을 남자 없다는 말이...

 

  

어느 금실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부인은 늘 자기만 사랑하고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한 번 안주는

그런 신랑을 무척 자랑스러워 했다

 

그런데 그런 신랑이 어느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은 게 아닌가?

 

 

 

"아이고 나더러 어찌 살라고 혼자만 가는 거요""

난 못살아 나도 따라 갈 껴여"

 

며칠을 슬퍼하며 생각하다가

신랑 따라 가기로 마음먹고

저승으로 신랑을 찾아 나섰는데

 

거긴 방이 세개가 있어

결혼 후 단 한번도 바람 안 피우고

오로지 부인과 가정을 위해

살아온 사람은 장미방!!

 

 

 

바람은 가끔 피우지만

별 사고는 안치는 사람은 백합방!!

 

부인 몰래 바람 무지 많이 피우고

여자들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은 안개방!!

 

부인은 당연히 장미방에 있겠지 하고

문을 열었는데

 

"어라 여긴 한명도 없네"

이상하다 그럼 백합방에?

 

그런데 그 방엔 딱 세명 있네

하지만 신랑은 안 보이는 게 아닌가!

 

 

 

"우째 된 겨 혹시 안 죽은 거 아녀?

 

"마지막으로

살며시 안개방을 빼꼼히 열어 보았다

 

그랬더니

남자들이 버글버글 천지삐까리 있는데

 

한 가운데 신랑이 보이는데 글쎄?

 

군기반장이라는 완장까지 차고 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 믿을 남자 이래도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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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유머 -  죽고 싶은 분에게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는 분 계시면 아래 글을 보여 드리세요.


일단 살기 싫다 라는 생각이 들면 우선 몇 일이라도 굶어보세요.

 

아마 배고파 죽을 겁니다.

  

혹시나 죽지 않았다면 몇 일 동안 못 먹었던 음식을 쌓아놓고 왕창 먹어 보세요.

 

분명 배터져 죽겠지요.

 

이것도 안되면 하루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말아 보세요.

 

심심해 죽습니다. 

 

그래도 안 죽으면 길거리에 나가셔서 담배 빌려달라는 어린 녀석을 보세요.

 

기가 차서 죽습니다.

 

아직도 살았나요? 1,000 원만 투자해서 즉석복권을 사서 긁지 말아 보세요.

 

궁금해 죽습니다. 

 

그래도 살았다면 힘차게 긁어 보세요. 반드시 꽝일 것입니다.

 

그러면 열 받아 죽습니다. 

 

이도저도 안되면 훌렁 벗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로 뛰쳐나가 보세요.

 

분명 쪽 팔려 죽습니다.

 

그래도 아직 살아있다면, 마지막으로 이렇게 힘껏 외쳐 보세요. “인생은 아름답다~!” 

  

그러면 환희와 기쁨에 넘쳐 죽습니다. 

 

이렇게 했는데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그건 분명히 과거에 죽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축하 드립니다.
 

오늘부터는 새로운 인생입니다.

 

그때 잘해볼걸 하고 후회한 과거가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이제는 그런 후회 없이 새로 얻은 목숨으로 잘 살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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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 밥사

예화 2018. 10. 3. 17:49

 

 유머 ♣   밥사 

 

 

 


밥 사 ?
석사.박사보다
더 높은 학위는 "밥사" 랍니다.

까칠한 세상 내가 먼저 따뜻한 밥 한 끼를 사는 마음이
석사.박사보다 더 높다고 하네요.

밥사보다 더 높은 것은 "술사" 라고 하네요.
친구가 술이 고플 때 오뎅 국물에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친구라네요.

술사보다 더 높은 것은 "감사" 라고 하네요.
항상 감사하고 사는 마음은
박사.밥사.술사 보다 더 높다고 합니다.

감사보다 더 높은 것은
"봉사" 라고 합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재능과 재물 등의 기부로 나눔을 베풀면서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어 가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맛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자.맹자.순자.노자.장자보다 더 훌륭한 스승은
"웃자" 라고 합니다.
웃으세요. 웃음이 최고의 스승이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웃자 보다
더 좋은 스승은
함께 먹자!!
함께 살자!!
라고 하네요.

좋은 말은 하는 대로
이루어 진다고 합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고 웃으니까 행복해진다고 하지요.

나이 먹을수록 생기는 나쁜 인상은 피부가 처져서가 아니고
웃음을 잃고 찡그린 표정을 많이 지어서 그렇답니다.

웃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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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풍금 수리공이 전해준 예수

 

 


나오는 사람 - 부르크, 모르 신부, 그리버, 솔리스트

1818년, 무대는 두 곳으로 나누어 설정한다.
왼 쪽은 어떤 교회의 솔리스트가 크리스마스 성가곡을 발표하는 장소이고,
오른 쪽은 어느 작은 시골 언덕, 또한 마을, 그리고 또 다른 교회로 사용된다.
왼 쪽에서 솔리스트가 크리스마스 성가곡을 부르고 노래가 끝나면 관객을 향해 인사를 한다.

솔리스트 : 감사합니다. 이번에 들려 드릴 성가곡은 처음으로 발표하는 곡입니다.
이제까지 저는 많은 크리스마스 성가곡을 불러보고 들어 보았지만 이 곡만큼 아름답고 거룩한 크리스마스 성가곡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좋은 곡을 저에게 전해주신 분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부르크씨입니다.

부르크 : 안녕하십니까? 저는 음악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작곡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좋은 곡을 들으면 감동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악기를 뛰어나게 연주할 수는 없지만, 고장난 악기만큼은 잘 고칠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제 직업이 풍금 수리공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소개한 이 곡은 어느 작은 마을 교회에서 처음으로 불려졌던 곡입니다. 그리고 이 곡은 바로 그 교회의 신부님으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른 쪽 무대로 모르 신부가 등장한다.

모르 신부 : (감탄하며) 아, 참 아름다운 연극이었어. (다시 왼 쪽 무대에서 부르크 대사)

부르크 : 지난해. 크리스마스가 오기 바로 일주일 전에 모르 신부님은 자신의 교회에서 한편의 연극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연극이었죠. 그런데 그 연극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그 날 저녁 모르 신부님은 설레는 가슴을 안고 마을 언덕 위로 올라가 어둠에 쌓인 시골 언덕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모르 신부 : 참 조용하군.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밤도 이렇게 평화롭고 조용했을까? 저 별들은 그 때, 아기 예수님께서 나셨던 그 밤을 기억하고 있겠지? 맞아. 그토록 거룩한 날을 잊을 리가 없겠지. (웃으면서) 후! 오늘은 내가 마치 시인이라도 된 것 같군. 그래! 이번 크리스마스 때에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수도 있겠는데.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는 그리버 형제에게도... (신부는 펜을 들고 노트에 무엇인가를 써 내려간다)

부르크 : 한번도 시를 써 본 적이 없는 모르 신부님은 그 날 밤에 한편의 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반주자인 그리버 형제에게 그 시를 주었습니다.
그리버 : (오른 쪽 무대로 등장하며) 신부님, 저를 찾으셨어요?
모르 신부 : 그래! 자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려고 찾았었네.

그리버 : 예? 저, 저에게 요?
모르 신부 : (시를 쓴 노트를 건네며) 자! 받아보게.
그리버 : 이게 뭐죠?
모르 신부 : (웃으며) 시를 썼네. 그 대신 제발 비웃지는 말게. 나의 정성이 담긴 첫 작품이니까! 어떤가? 이번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까지 자네가 이 시에 곡을 붙여줄 수 있겠나?

그리버 : (잠시 읽고 감동하며) 신부님, 참 아름다운 시군요. 제가 이 아름다운 시에 제대로 곡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모르 신부 : 자네 같은 음악인이라면 충분해. 오히려 내가 영광인 걸.
그리버 : 음악인이라니요? 전 그냥 옷감이나 짜는 촌놈인데요. 뭘.
모르 신부 : 그리버! 지금이야 자네 아버지 고집이 완고해서 자네가 옷감을 짜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네 아버지도 자네의 그 음악성을 인정해 주실 날이 올걸세. 그리버! 자네는 내가 알고 있는 음악인 중에서 최고라는 것을 꼭 기억해주게!

그리버 : 감사합니다. 신부님! 제가 열심히 곡을 만들어서 크리스마스 날,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꼭 들려주겠습니다.
모르 신부 : 그래, 그러면 고장난 풍금도 빨리 고쳐야겠군. 하하하! (그리버와 모르 신부, 두 사람 퇴장)
부르크 : 제가 그 아름다운 곡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고장난 풍금 때문이었습니다. 풍금을 수리하기 위해 갔던 교회에서 저는 그리버 형제를 만나게 되었고 풍금을 수리한 직후, 그리버 형제는 자신이 만든 이 곡을 직접 연주하면서 불렀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교회 크리스마스 예배에 초청되어 갔었지요. 참으로 감동적인 크리스마스 예배였습니다.

그리버 : (오른 쪽 무대로 다시 등장하며) 하나님과 여러분 앞에 들려드릴 이 곡의 가사는 우리 교회 모르 신부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모르 신부님을 모셔서 이 곡을 같이 불렀으면 합니다. 모르 신부님! 앞으로 나오시죠.
모르 신부 : 이건 예정에 없었던 일인데요. 어쨌든 여러분께서도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우리 그리버 형제가 참으로 아름다운 곡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곡을 우리 위해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과 모든 성도님들께 드립니다.

크리스마스 성가곡,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그리버와 모르 신부가 함께 부른다. 1절을 부른 후, 음향과 조명이 서서히 꺼진다.

부르크 : 제가 가 본 교회 중에서 그 시골 교회만큼 따뜻하고 정겨운 교회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들어본 크리스마스 성가 중에서 그토록 평화롭고 아름다운 성가는 없었습니다. 그 노래가 끝나자마자 저는 모르 신부님께 부탁해서 악보를 하나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을 이 교회와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솔리스트 :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하나님의 천사가 목동들에게 전해 주었듯이, 여기 부르크씨는 우리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성가곡을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 성가곡이 이 곳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가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기쁜 소식을 전해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럼 성가곡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여러분께 들려 드리겠습니다.

오른 쪽 무대의 불이 다시 켜지면서 그리버와 모르 신부가 보이고, 그 반대편, 왼 쪽 무대에서는 부르크와 솔리스트 있다. 그 두 무대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며 온 성도들이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 성가곡 찬양 예배로 이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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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모음  남은 것에 감사하자

 

 


복음전파 돕는 6가지 영적무기

 

전도의 주권은 하나님이 갖고 계시지만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인간(전도자)이 있어야 비로소 전도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전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또 하나님께서는 전도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시며 전도자를 축복하신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그런데 전도자가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는 어둠의 세력과 만만치 않은 저항과 방해가 있다는 사실이다. 전도는 빛과 어두운 세력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도자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영적 무기를 소유해야 된다.

 

 

전도자가 복음전파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믿음의 무기를 생각해보면

첫째)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주님의 보혈’이다.

 

 

둘째) 예수님의 인격 사역 권세 능력을 나타내는 ‘예수의 이름’이다.

 

 

셋째) ‘예수님의 사랑’이다.

남녀간의 육적인 사랑인 에로스, 친구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필리아사랑과 혈육간의 사랑인 스토르게 역시 인간적인 사랑으로서 소중하지만 그것만 가지고서는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간을 위해 돌아가신 절대적이고 무조건적 사랑인 아가페를 알고 체험할 때 전도가 가능하다. 이것이 전도인의 무기가 된다.

실제 전도에서는 예수님의 아가페적 사랑을 소유할 때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전도인의 무기는 ‘복음적인 교회’이다.

전도는 개인이 하지만 그 완성은 예수님을 구주로 신앙고백이 이루어진 공동체인 교회를 근거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해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말씀하셨다.

교회가 무기가 되는 이유는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해 그가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다고 해서 전도가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영혼에 복음의 씨가 떨어진 것뿐이다. 그들을 양육시켜서 믿음을 성장시킬 토양은 교회다. 교회의 복음적 측면이 약하면 실제 전도에서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세 교회사 속에서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는 시프리안이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은 전도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 전도자의 무기는 ‘은혜받은 말씀’이다.

불신자에게 말씀을 전할 때의 말씀은 기록된 말씀 즉, 관적 말씀인 ‘로고스’가 아니다. 전도자의 속에서 은혜된 말씀인 ‘레마’인 것이다. 그래서 전도자는 성경을 보거나 설교를 들을 때 항상 그 말씀이 내 속에 와서 은혜된 말씀이 되도록 기록하고 준비해야 한다.

 

 

여섯째) 전도자의 무기는 ‘끊임없는 기도’다.

전도자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전도에서 다가오는 모든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동력을 공급해 주므로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된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고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은 전도의 큰 지표가 된다.

출처 : 국민일보 / 민경설 목사의 그리스도인과 전도

   

 

※ 내가 아니라 당신이요

 

 

한 젊은 남녀가 결혼을 했는데 신혼 초에는 늘 밖에 나갈 때 부인이 얼마나 남편 가까이 앉는지 밖에서 다른 사람이 보면 마치 머리가 두 개 달린 한 사람이 운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후 수년이 지난 다음에 그 부인은 늘 남편이 운전하는 운전석에서 먼 창 쪽에 앉았다.

하루는 부인이 남편을 보며 “여보! 우리가 처음에 결혼했던 신혼시절에는 너무 가까이 앉아서 마치 머리가 두 개인 사람이 운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멀리 앉게 되었군요.” 라고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에 남편이 “여보! 내 운전석에서 점점 멀어진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요.”라고 말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도 이와 같다

우리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진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인 것이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다고 생각되면 이는 멀어진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 사과

 

 

교회에 올 때마다 속옷이 아슬아슬하게 보일락 말락 하는 야한 복장으로 오는 자매가 있었다. 그 자매를 보신 목사님 말씀이 “자매님, 여기 이 사과를 드시지요.”

“목사님, 사과는 왜요?”

그러자 목사님이 하신 말씀: “그 실과를 먹은 즉, 눈이 밝아져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게 되었더라.”

 

 

 

 

※ 시 간

당신의 일생은 무한한 시간의 아주 짧고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조심해서 그 짧은 인생에 전력을 기울여 자기 자신에게 가능한 모든 일을 하라(사이드 벤 하메드)

 
 

 

※ 머나먼 어머니의 뱃길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40년도 더 되는 1962년 2월 10일, 여수 남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졸업식장에서 회색 스웨터에 까만 낡은 바지를 입은 중년부인이 노력상을 받았습니다. 그 부인이 단상에 올라가 상장을 받자 장내는 박수소리로 떠나갈 듯했고 졸업하는 그 부인의 딸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노력상을 받은 어머니와 딸은 세 채밖에 집이 없는 외딴 섬에 살았습니다.

주민이라고는 겨우 20명뿐인 이 섬에서는 제일 가까운 여수에 볼 일이 있어도 섬사람들이 직접 만든 배를 타고 갈 수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여덟 살이 되자 남편에게 딸을 육지에서 공부시키자는 말을 어렵게 꺼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20리나 되는 뱃길을 어떻게 다닐 수가 있겠느냐”며 반대했습니다. 당시 그 섬에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그 섬이 무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믿음을 굽히지 않고 딸을 남편 몰래 육지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로부터 6년, 어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20리나 되는 험한 물결을 가로지르며 손수 노를 저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섬으로 돌아와 밭일을 하다가 저녁이면 다시 배를 타고 딸을 데려와야 했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딸도 울고 그 어머니도 울었습니다. 딸은 어머니가 자신을 육지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두려워 울었고 어머니는 딸을 데리러 가는 길이 늦어 딸이 애처로워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저으며 울었습니다. 시계도 없는 섬에서 매일 시간을 맞춰 딸을 학교에 보내고 데려오는 일에 한 번도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6년을 하루같이 오간 뱃길이 무려 3만 3천리나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졸업생과 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의 감격스러운 울음으로 졸업식장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참 다운 행복과 축복은 내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없는 것을 짜증내지 말고 - 있는 것에 감사하자.

안된 것을 불평하지 말고 - 된 일들에 감사하자.

잃은 것을 원망하지 말고 - 남은 것에 감사하자

실패한 일에 한탄하지 말고 - 성공한 일에 감사합시다.

부족한 것에 투덜대지 말고 - 넉넉한 것도 있음을 감사합시다.”

 

※ 매일 아침마다 7가지 행복 선언문을 외치라

 

1. 나는 하나님의 꿈을 품은 엄마다!

2.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엄마다!

3. 나는 믿음으로 말하고 생각하는 엄마다!

4. 나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엄마다!

5. 나는 약할 때 강한 엄마다!

6. 나는 사랑으로 베푸는 엄마다!

7. 나는 행복을 선택하는 엄마다!

 

 

* 1년 365일이 특별한 날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 찬송가 유머

 

 

소방서에서 싫어하는 찬송 - ‘산마다 불이 탄다’(311장)

해양경비대 주제가 -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 (258장)

서예가들의 주제가 -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404장)

목욕탕 주인들이 좋아하는 찬송 - ‘곧 씻어서 정결케 하옵소서’(215장)

학생들이 불러야 할 찬송 - ‘아무 것도 모르니 나를 가르치소서’(421장)

 

 

몽유병 환자들이 좋아하는 찬송 - ‘나 어느날 꿈 속을 헤매며’(84장)

변비로 고생하는 분들의 눈물의 고백찬송 - ‘힘써도 못하네’(343장)

컨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찬송 - ‘너 시험을 당해 범죄치 말고’(395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애송찬송 -‘시험이 닥쳐와도 나 염려 없겠네’(476장)

돼지꿈 자주 꾸고 로또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찬송 - ‘주여 지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542장)

산악회원들의 애송찬송 -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502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543장)

아내들에게 사족을 못 쓰는 공처가 남편들의 애환찬송 -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511장)

도둑들이 귀 기울인 찬송 - ‘동방박사 세 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116장)

며느리들이 좋아하는 찬송은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시어미) 오나 겁없네’(359장)

조명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 - ‘온 세상이 어두워 캄캄하나’(9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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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 할 길   예 화   

 

 

 

요즘 부쩍 제게 길을 묻는 이들이 많습니다. ‘인생길은 어떻게 가야 하는가.’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제게 이것저것 묻는 것이지요.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합니다. 큰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대체 우리는 어떻게 인생길을 가야 할까.

 

인생은 독행도(獨行道)입니다. 홀로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이 독립심입니다. 인생은 동행도(同行道)입니다. 함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불어 사는 협동심을 익혀야 합니다. 인생은 고행도(苦行道)입니다. 고생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이길 강건함을 길러야 합니다. 인생은 소명도(召命道)입니다. 부르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만의 소명을 깨닫고 그것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인생은 신행도(神行道)입니다. 내 힘만으론 도저히 독행도 동행도 고행도 소명도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할 때에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혹 지금 당신이 인생의 길을 잃었거나 그 걸음이 더뎌 답답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신행도, 곧 하나님과 함께 그 길을 걷는다면 그곳이 어디든 길은 열릴 것입니다.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시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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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십일조 생활   헌금십일조예물  

 

 

 

 


정직한 십일조 생활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물질은 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물질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지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자녀 된 성도들은 물질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쁘게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별된 자녀인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드리고 받는 법을 정해주셨습니다. 날은 칠분의 일입니다. 재물은 십분의 일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십일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것은 정말 미련한 것입니다. 성경은 십일조를 “땅의 십분의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고 말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음식임으로 우리가 먹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모든 사람들은 십일조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요.

첫째,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수입의 십일조를 정확히 구별해야 합니다. 둘째, 십일조는 하나님의 집에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는 반드시 본인이 섬기는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셋째, 겸손한 마음과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김성태 목사(삼척 큰빛교회)

 

 

▣ 십일조의 축복

 

시골에 살던 열 여섯 살 된 어떤 소년이 가슴에 큰 꿈을 안고 뉴욕 도시로 올라왔습니다. 그는 뉴욕의 바닷가를 거닐다가 한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소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의미 있게 삶을 사는 방법까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너는 무슨 재주가 있니?”

“저는 시골에서 아버지와 함께 비누나 양초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어요.”

“그러면 비누 만드는 공장에 취직하면 좋겠구나.

그리고 일해서 돈을 벌게 되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복을 주시는 대로 십일조를 드리거라. 만일 하나님이 너에게 계속 더 큰복을 주시거든 십일조만 드리지 말고 십의 이조, 십의 삼조, 십의 사조, 그 이상까지 드려서 하나님을 위해 멋있는 삶을 살아보렴.”

“아저씨, 고맙습니다. 그렇게 해볼게요.”

그 그리스도인은 소년에게 축복 기도를 해 주고 떠났습니다. 그 후 소년은 비누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인의 말대로 꼬박꼬박 하나님께 정성껏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조금씩 잘 풀려나가게 되어 조그만 비누공장을 인수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계속적인 축복으로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업은 비누 공장뿐 아니라 양초와 치약까지 만드는 공장으로까지 확장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콜게이트 치약’을 만든 윌리암 콜게이트(William Colgate)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10)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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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미국의 한 대형교회 앞의 노숙자

 

 


미국의 대형 교회 근처에서 한 노숙자가
초라한 행색으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인 중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온 사람은 세 명에 불과했고
초췌하고 남루한 차림의
노숙자는 교회로 향하는 교인들에게
‘음식을 사려고 하니 잔돈 좀 달라’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노숙자는
성전 맨 앞자리에 앉으려 하였으나
예배 위원들에게
끌려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는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자석에 겨우 눈치를 보며 앉았고
광고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새로 우리 교회에 부임하신
스티펙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앞으로 나와 주시죠”
교인들은 모두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새로 부임한 목사를 찾아 일제히
고개를 뒤로 돌리는 순간
 모든 성도들은 경악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노숙자가 강단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가 바로 이 교회에 새로 부임한
스티펙 목사(노숙자)였습니다
그는 노숙인 차림 그대로
강단에 올라갔고...
 
곧장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40절까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과 염소’ 비유로
누가 양과 염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티펙 목사가 말씀을 마치자
회중은 무언가에 심하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인들 중엔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구는
교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이날 오전 조용한 목소리로
“오늘 아침 교인들이 모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교인들은 많으나
제자는 부족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라는 말을 남겼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믿는 것 이상으로
그것은 이웃과 함께
그리고 옆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교인수 1만 명의 미국 대형교회에서
예례미야 스티펙이라는 목사가
노숙인이 된 이야기가 페이스북 등
 인터넷 사이트를 강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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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잉인의 삶 회개와눈물 /하나님은 우리 죄를 다 잊으셨는데....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덜컥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니까 형들이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이 보복하려고 했다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우리를 죽이면 아버지가 슬퍼할까봐 참았는데, 이제 아버지가 죽었으니 우리에게 보복할지 몰라. 큰일났다!'                        

그것은 자기들의 생각입니다.           

물어봅시다. 요셉의 마음에 형들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이 손톱만큼이라도 있었습니까? 요셉의 마음에서는 형들의 잘못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잊혀지고 지워졌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있는 많은 양식을 같이 누리며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요셉은 원했습니다. 그런데 형들은 그 요셉의 마음을 받지 않고 자기 생각을 따라서 '요셉이 보복할지몰라. 우리를 죽일지 몰라' 하는 생각 속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을 한 곳 보겠습니다. 창세기 50장 15절부터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하고, 요셉에세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창세기50:15~17)

​요셉이 너무 슬펐습니다.         

'내가 형님들을 용서한다고 그랬는데 형님들이 아직까지 내 말을 받지 못하셨구나!형님들은 아직까지 나를 두려워했구나! 나를 못 믿었구나! 내가 그렇게 간곡하게 이야기했는데 내 말을 안 들었구나!'               

"형님, 왜 내 말을 안 믿습니까? 형님!!"     

요셉이 울었습니다.               

"형님들,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형님들이 나를 판 것은 그냥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총리로 만드신 것이라고,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내가 절대고 형님들에게 보복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형님들과 형님들의 자녀들을 다 기를 테니까 제발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이 말씀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말씀을 기록하셨을까?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이 말씀을 들려주길 원하실까?'        

요셉은 형들의 죄를 다 용서했는데, 형들은 요셉의 말을 믿지 않으니까 자기들의 죄가 남아 있는 겁니다. 오늘 이 땅에 사는 인간들의 마음을 그대로 그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므낫세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므낫세! 잊어버림! 우리 인간들이 저지른 그 모든 죄와 그 모든 악과 그 모든 잘못이 하나님의 마음에서 다 지워졌고 잊어버렸고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요셉은 마음에서 형들의 죄를 다 용서하고 그 죄를 기억지도 않는다고 했는데, 형들은 요셉의 마음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으로 생각하니까 '요셉이 우리에게 보복할 거야. 아버지가 살아 계실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보복하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우리를 죽일지 몰라.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하고 늘 두려움 속에, 죄의 가책 속에 살았습니다. 요셉이 너무 섭섭했습니다.               

"형님들, 내가 그렇게 간곡하게 말씀드렸는데, 왜 형님들은 나를 못 믿고 내가 보복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너무 섭섭합니다. 섭섭합니다!"     

요셉이 울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우리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주님을 슬프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죄를 지은 것은 우리 각오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죄의 속성이 우리 속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서 우리 죄를 다 사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 죄를 다 사했노라. 정결케 했노라. 너희 죄를 이제 기억지 않노라. 잊어버렸노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자기 생각대로 '내가 이렇게 죄가 많은데 어떻게 죄가 없나? 죄인 입니다. 주여!'하는 겁니다.                  

한번은 제가 대구 주암산 기도원에 갔습니다. 그날이 4월 5일 휴일이어서 많은 분들이 기도하러 왔습니다.그런데 산골짜기에 사람들이 "주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울부짖는데, 소름이 쫙쫙 끼쳤습니다.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진실한 마음으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과 똑같이 이 이야기를 하실 것입니다.                      

"내가 용서했다고 말했쟎아, 기억지 않는다고 말했쟎아. 왜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성경을 읽으면,성경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자기 생각에 죄가 있다고 여져지면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생각지도 않고 죄가 있다고 하여 하나님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그 죽음을 헛되이 돌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까지는 그랬다손 치더라도 이제는 여러분 생각을 버리십시오. 내 생각이 어떠하든지 간에, 이제는 내 마음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애굽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곳에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든지 간에,                 

"동생, 그렇게 됐는가? 동생 마음에 진짜 우리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단 말이지. 동생 고맙네. 고마워!"                 

하고 형들이 요셉과 화목된 마음으로 살았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한 집에 살면서도, 같이 애굽 땅에 살면서도 형들이 늘 '요셉이 우리에게 보복할지 몰라. 요셉이 우리를 죽일지 몰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요셉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여러분, 이 성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요셉의 형들이 가진 그 어리석은 마음을 오늘 한국 교회의 교인들이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 마음을 돌이킵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게 생각을 바꿉시다! 요셉의 형들이 보기에는 요셉이 보복할 것 같아도 그 마음을  믿지 말고 요셉의 말을 받아 들여야 하듯이, 내 죄가 있는 것 같고 내 죄가 사해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더라고 이제는 내 생각을 좀 무시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뭐라고 하시는지 그것을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 생각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삽시다. 내가 아무리 죄가 있는 것 같아도 말씀에 없다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악하다 해도 하나님이 내 악을 기억지 않는 다고 하시면 기억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나를 믿지 않고 내생각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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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맛

 

필자가 있는 이곳 러시아에서 긴 겨울 추위를 이기는 데는 홍차가 매우 큰 역할을 한다.
홍차를 마시면 따뜻한 기운이 올라와 몸을 녹여 주고 추위를 몰아내기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은 홍차를 즐겨 마신다.
하지만 필자는 오랫동안 커피 맛에 익숙해져 있어 아직도 홍차보다는
커피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한번은 식사 후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부엌에 가서 커피를 탔다.
커피와 설탕, 우유를 넣고 저어서 마셨는데 맛이 너무 이상했다.
설탕과 소금 둘 다 하얀색이어서 소금을 설탕으로
착각한 것이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소금을 넣은 커피는 마실 수가 없었다.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그 맛이 전혀 달라지듯이 우리 마음의 세계도 그러하다.
마음에 소망을 담을 수도 있고 절망을 담을 수도 있는데
그 마음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삶이 전혀 달라진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마음에 소망을 담은 사람은
행복과 기쁨을 얻고, 반대로 절망을 담은 사람은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
설탕은 단 맛을 내고 소금은 짠 맛을 내듯이 소망은 소망의 맛을 낸다.
마음에 소망을 담은 사람은 그 소망의 맛이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한 삶을 만들어 주게 된다.
김봉철 선교사/ 러시아 쌍트페테르부르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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