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 루터의 깨달음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마르틴 루터의 고민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근본적인 죄의 문제였습니다.
지금까지 범한 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결하게 충성하려는 그에게 끊임없이 찾아와 그의 정결을 깨뜨리며 주님께 충성하기보다는 썩어질 정욕을 만족시키고 싶어하는 끊임없는 죄의 도전이었습니다.
과연 이렇게 본질적으로 썩어버린 인간에게도 소망이 있을까? 이러한 인간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을까?
마르틴 루터는 죄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서 기도도 많이 했으며 말씀 묵상 연구도 많이 했으며 저 유명한 28계단 성당의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것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샘솟는 죄의 정욕은 결코 이러한 루터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를 연구하다가 드디어 이러한 죄인에게 비추는 하나님의 빛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정욕의 사람, 죄악의 사람, 더러운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그들의 죄를 예수님의 몸에 담당시켰습니다.
불꽃 같은 눈으로 인간을 살피시고 인간의 죄악을 미워하며 불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차라리 그 모든 심판을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께 내리시고 그 대신 심판받아 멸망 받았어야할 인간도 용서하시고, 받아들여 자녀로 삼으시려는 놀라운 결단을 내리시고 그 일을 행하셨음을 몸으로 깨달아 알았을 때에 루터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죄는 인간의 공로나 힘, 능력으로 어쩔 수 없습니다.
교황청이 죄의 용서를 빙자해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면죄부를 판매한다는 것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루터는 드디어 1517년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설교회의 정문 앞에 걸어 놓았으며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삶을 통하여 얻은 몸의 진리요 말씀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이 진리를 취소하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때 루터는 담대히 외쳤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 왔소. 이외에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소.
하나님께서 나를 도울 것이요. 루터는 힘있게 거절을 하고 종교개혁을 위해서 생명을 다하여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였습니다.  


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7 And the LORD said, I have surely seen the affliction of my people which [are] in Egypt, and have heard their cry by reason of their taskmasters; for I know their sorrows;
and have heard their cry because of their taskmasters; I know their sufferings,
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8 And I am come down to deliver them out of the hand of the Egyptians, and to bring them up out of that land unto a good land and a large, unto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unto the place of the Canaanites, and the Hittites, and the Amorites, and the Perizzites, and the Hivites, and the Jebusites.


블로그 이미지

chojien

,

[설교 예화] 믿음으로 사는 인생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믿음이 없으면 가족과의 관계도 유지할 수 없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간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관계가 존속되는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먹을 수도 잠잘 수도 없다.

내가 먹으려는 음식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먹는다. 잠자는 동안 집이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편히 잘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 자동차를 탈 수도 없다. 외출도 할수 없다.
 
은행에 돈을 맡길 수도 없다. 의사에게 몸을 맡길 수도 없다.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길 수도 없다.

직장생활을 할 수도 없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믿음에 의하여 유지된다.

믿음이 없는 가정이나 사회는 불안과 초조와 갈등과 상처뿐이요, 결국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

하나님과 사람사이도 동일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때 하나님과 나 사이는 유지된다.

그리고 하나님과 나 사이가 믿음으로 유지될 때 우리는 가장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블로그 이미지

chojien

,


노숙인이 된 목사
 

 

 

'예레미야 스티펙'이란 목사는 예배가 있는

일요일 오전, 자신이 담임 목사로 부임하게

되는 한 교회 근처에 노숙자로 변신해

주변을 어슬렁거렸습니다.

교인 중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온

사람은 단 세 명에 불과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좀 더 적극적으로 교회로

향하는 교인들에게 '배가 고파 음식을

사려하니 잔돈 좀 달라'고 구걸하기

시작했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교회에 들어간

스티펙 목사. 그는 맨 앞자리에 앉았지만,

​예배 위원들의 저지와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자리에 겨우 참석하게 됐습니다.

​이윽고 새로운 목사가 부임했다는 광고

시간. 맨 뒷자리의 스티펙 목사는 노숙인

차림 그대로 강단에 올랐고 교인들은

경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장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40절 까지 읽어 내려갔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과 염소'

비유로 누가 양인지 염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스티펙 목사가 말씀을 마치자 회중은

심하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교인들 중엔 흐느껴 우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스타펙 목사는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며"오늘 아침 교인들이 모이는 것을

봤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다. 세상에는 교인들이 많다.

​하지만 예수제자는 부족하다.

​여러분들은 언제 예수의 제자가 될

것입니까?" 라는 말을 남기고 예배를

마쳤다고 합니다.

 

가장 어려운 선행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실천하는

것 같습니다.

보이는 곳에서 한다 해서
선행의 의미가 퇴색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하여 외면하는

것에 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행을 실천하는

분들이 늘어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밝아지지 않을까요?


올해는 그런 분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블로그 이미지

chojien

,

아벨의 신앙의 대적은 형 가인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창 4:9-11) 라고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창 4:12-15).

 

여기 가인의 인격이 그 제물과 함께 하나님의 열납하신 바 되지 않았다는데 대하여, 우리는 주목할만 하다.

그의 인격이 열납되지 않았으니, 그의 제물이 열납 될 리가 없었다.

그의 인격은 하나님을 신종하지 않는 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제물도 하나님의 제정에 부합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은, 무엇보다도 속죄 제물(피와 양과 그 기름)이었다.

가인은 자기의 제물이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았을 때에 마땅히 회개해야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도리어 하나님 앞에서 분하여 안색이 변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이와 같은 회개하지 않음을 꾸짖으시는 의미에서,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라고 하셨다(박윤선 목사 주석 창 p.116).

 

죄인 아담을 찾으신 하나님은 순교자 아벨도 찾으신다.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이니까?

가인의 무책임한 담대한 대답을 보라. 부소 부지의 하나님을 무지한 인간처럼 생각하였다.

히브리 기자는 말하기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말한다고 하였다(히 11:4).

가인은 동생 아벨만 죽이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줄 알았으나 피의 호소를 알지 못하였다.

인간의 범죄로 땅이 저주를 받고 땅의 저주는 곧 인간의 저주가 되었다.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났고 가인은 땅에서 쫓겨나서 유리 방황하게 되어 궁핍과 불안의 생활을 하였다.

가인은 죄에 대한 회개는 고사하고 벌이 과중함을 호소하였다. 죄의 중량을 모르는 파렴치한 인간이다.

 

저는 동생을 죽이고도 제가 죽을까 두려워함은 비굴한 생의 욕망이다.

이때에 가인 외에 무슨 사람이 있었느냐하는 문제는 아담은 많은 자녀를 낳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인 동시에 연쇄적 살인행위를 방지하시는 엄명이다(김응조 목사 주석 창 p.29).

 

(1) 아벨의 제사가 상달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창 4:3-4)

한 것을 보면 타락 후는 하나님께 제사가 상달로 영적인 축복이 회복되었다.

(2)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창 4:8).

가인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은 고사하고 심히 분하고 안색이 변하더니

결국 아벨을 죽인 후에 여호와께 거짓말까지 했다.

이는 거짓 영에 속했다.

블로그 이미지

chojien

,

[예화] 쓸모없는 사람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사나운 산돼지로 인해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숙련된 사냥꾼을 동원해 산돼지를 잡으려고 했지만 번번이 끝났습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산돼지를 잡으러 간다고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달 후 노인은 산돼지를 잡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서 어떻게 잡았느냐고 묻자
노인은 "산돼지가 음식을 구하는 곳을 찾아서 곡식을 계속 뿌렸더니
산돼지들은 별 노력없이 공짜로 곡식을 먹게 된 것을 알고
날마다 그곳으로 모이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 옆에 함정을 파 놓아 잡았습니다."

쓸모없는 사람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공짜 심리를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심는대로 거둔다는 말씀이 있듯이 땀과 노력없이 세상을 살면
그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됩니다.

자기의 육체의 쾌락과 즐거움만을 심으면 종국에 가서는
영혼과 육체가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일을 위하여 심는 자는 비록 이 일이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후에는 참 기쁨과 평안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멧돼지처럼 우리도 인생의 쾌락과 안락으로 인하여
육체의 즐거움만을 추구하고 심는다면 종국에는 영원한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불행을 초래할 것임을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말씀의 징검다리 / 정장복. 주승중 엮음

 

                   

블로그 이미지

chojien

,

 

[기독예화] 시간이 없다 불평하지 말라

 


♥ 시간이 없다 불평하지 말라

 
당신은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계십니까?
늘 입버릇처럼 시간이 없다고 불평을 하고 계신 건 아닌지요?

만약 그렇다면 오늘로써 불평을 그치고 자신이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은 뒷전에 둔 채
자신의 정욕대로 일을 추진하면서 수많은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가치 있고도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인지
파악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기도: 주님, 저희로 주님의 뜻을 알게 하사
귀한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한태완 목사 <예화포커스> 중에서

 

블로그 이미지

choji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