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

1. 3의(성의, 열의, 호의)를 가지고 말할 것.

2.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상냥하게 말할 것.

3. 때, 장소, 상황에 맞게 말할 것.

4. 아이컨텍(eye contact)을 하며 말할 것.

   (어른인 경우 - 미간, 인중부분에 골고루 시선 분배)

5. 칭찬할 것.

6. 1분 말하고, 2분 듣고, 3분 맞장구 침.

7. 아는체 하며 말하지 말 것.

8. 상대의 입장을 존중할 것.

9. 침착하게 말할 것.

10. 올바른 존대어와 품위 있는 말 사용.
 
* 맞장구
 
1. 타이밍을 맞쳐서 상대방이 말하는 것이 흥이 나도록 할 것.

2. 짧게 감정을 실어서 말할 것.

   '그렇습니까?' ' 아,하~'  '그렇군요' '아~네' '정말이요?' '역시..'

3. 맞장구를 멈출 때를 아는 것이 중요

   - 상대가 한창 열을 올리며 말을 하고 있을 때는 잠시 말을 멈출 것.

4. 맞장구를 교묘하게..

    긍정의 말에만 맞장구를 치도록 함.

 

* 하면 할수록 좋은 말들
 

- 마음을 넓고 깊게 해주는 말

             '미안해'

- 겸손한 인격의 탑을 쌓는 말

             '고마워'

-날마다 새롭고 감미로운 말

             '사랑해'

 

- 사람을 사람답게 자리잡아 주는 말

              '잘했어'

-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말

              '내가 잘못했어'

- 모든 것을 덮어 하나 되게 해주는 말

               '우리는'

-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보배로운 말

                '친구야'

- 봄비처럼 사람을 쑥쑥 키워주는 말

                 '네 생각은 어때?'

-언제든지 모든 날들을 새로워지게 하는 말

    '첫마음으로 살아가자'

 
* 해서는 안될 말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말


"그래도 당신이 남자예요?"

  "쓸데 없는 녀석같으니라구"

  "네 주제에.."

  "넌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 자율성을 해치는 말

 "아무 말 말고 시키는 일이나 해"

  "엄마 말이 맞아 이 녀석아 ,

  "네가 뭘 안다고.."

  "그 옷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

  "더 먹으라니까, 한번만 더 반찬투정을 하면 다신 밥 안 줄 거야"

  "오늘 만이다"

 

- 자신감을 없애는 말

"넌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이 바보야 그것도 몰라"

"넌, 이것밖에 못하니?"

"넌, 누굴 닮아 이 모양이니?"

"네가 한두살 먹은 어린애냐?"

 

-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말

"오빠는 남자잖아"

"어디서 말대꾸야"

"그깟 심부름도 못해?"

 
 
- 불안에 빠지게 하는 말

"꼭 아들 낳아야 해"

"실패하면 절대로 안돼"

"너 같은 애는 엄마 자식이 아니야"

"놔두고 가버릴 거야"

"말 안들으면 없어져 버려"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

 

- 의욕을 상실케 하는 말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네가 왠일이니 공부를 다하게"

"맨날 그렇지. 뭐, 네가"

 

- 창조성을 없애는 말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그런 건 크면 알게 돼"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해"

"공부도 못하면서..."
 

- 좋은 응대, 나쁜 응대

안녕하십니까 오늘 상당히추운 날씨로군요

 겨울이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달이 밝지요?

 보름달이니까

이번모임에 연설을 해달라고 하는데...

 할 수 있으면 하구....

나 시험에 합격했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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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성공하는 화법 -  말할때 기억해야 할 것

 


 
 

* 말할 때 기억해야 할 10가지

 

1. 3의(성의, 열의, 호의)를 가지고 말할 것.

2.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상냥하게 말할 것.

3. 때, 장소, 상황에 맞게 말할 것.

4. 아이컨텍(eye contact)을 하며 말할 것.

   (어른인 경우 - 미간, 인중부분에 골고루 시선 분배)

5. 칭찬할 것.

6. 1분 말하고, 2분 듣고, 3분 맞장구 침.

7. 아는체 하며 말하지 말 것.

8. 상대의 입장을 존중할 것.

9. 침착하게 말할 것.

10. 올바른 존대어와 품위 있는 말 사용.

 

 

* 맞장구

 

1. 타이밍을 맞쳐서 상대방이 말하는 것이 흥이 나도록 할 것.

2. 짧게 감정을 실어서 말할 것.

   '그렇습니까?' ' 아,하~'  '그렇군요' '아~네' '정말이요?' '역시..'

3. 맞장구를 멈출 때를 아는 것이 중요

   - 상대가 한창 열을 올리며 말을 하고 있을 때는 잠시 말을 멈출 것.

4. 맞장구를 교묘하게..

    긍정의 말에만 맞장구를 치도록 함.

 

* 하면 할수록 좋은 말들

 

- 마음을 넓고 깊게 해주는 말

             '미안해'

- 겸손한 인격의 탑을 쌓는 말

             '고마워'

-날마다 새롭고 감미로운 말

             '사랑해'

 

- 사람을 사람답게 자리잡아 주는 말

              '잘했어'

-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말

              '내가 잘못했어'

- 모든 것을 덮어 하나 되게 해주는 말

               '우리는'

-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보배로운 말

                '친구야'

- 봄비처럼 사람을 쑥쑥 키워주는 말

                 '네 생각은 어때?'

-언제든지 모든 날들을 새로워지게 하는 말

                  '첫마음으로 살아가자'

 

* 해서는 안될 말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말


"그래도 당신이 남자예요?"

  "쓸데 없는 녀석같으니라구"

  "네 주제에.."

  "넌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 자율성을 해치는 말

 "아무 말 말고 시키는 일이나 해"

  "엄마 말이 맞아 이 녀석아 ,

  "네가 뭘 안다고.."

  "그 옷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

  "더 먹으라니까, 한번만 더 반찬투정을 하면 다신 밥 안 줄 거야"

  "오늘 만이다"

 

- 자신감을 없애는 말

"넌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이 바보야 그것도 몰라"

"넌, 이것밖에 못하니?"

"넌, 누굴 닮아 이 모양이니?"

"네가 한두살 먹은 어린애냐?"

 

-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말

"오빠는 남자잖아"

"어디서 말대꾸야"

"그깟 심부름도 못해?"

 

 

 

- 불안에 빠지게 하는 말

"꼭 아들 낳아야 해"

"실패하면 절대로 안돼"

"너 같은 애는 엄마 자식이 아니야"

"놔두고 가버릴 거야"

"말 안들으면 없어져 버려"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

 

 

- 의욕을 상실케 하는 말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네가 왠일이니 공부를 다하게"

"맨날 그렇지. 뭐, 네가"

 

- 창조성을 없애는 말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그런 건 크면 알게 돼"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해"

"공부도 못하면서..."

 

 

- 좋은 응대, 나쁜 응대

안녕하십니까 오늘 상당히추운 날씨로군요

 겨울이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달이 밝지요?

 보름달이니까

이번모임에 연설을 해달라고 하는데...

 할 수 있으면 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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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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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성목사 칼럼 -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을 때

 

 


예수동행 세미나에 참석하신 목사님 한 분이 제게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이렇게 기븐 일인지 몰랐습니다. 지금 너무나 행복합니다"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목회 현장이 매우 어려운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세미나에서 자신도 기쁘고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전에는 이런 세미나에 오면 '강사는 어떤지, 장소는 어떤지, 식사는 어떤지,
진행은 어떤지,를 보면서 그 세미나가 좋다 나쁘다 평가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세미니나는 달리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함께 하시는 주님을 계속 의식하고, 말씀과 기도 찬양을 통하여 주님을 더욱
바라보게 되니, 그런 것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겨진다고 했습니다.

 

매번 목회자 세미나를 진행해 보면 처 시간과 마지막 시간의 영적 분위기가
너무나 큰 차이가 났습니다.
2박3일의 짧은 시간에 이런 변화가 생기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강의 시간마다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모든 강의와 찬양과 기도가 오직 주 예수님께만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이 하셨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예수동행 세미나 때는 첫 시간부터 놀라운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였습니다.
마지막 기도 시간에는 불이 임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 들 강사를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입니다.
마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우리가 모든 예배나 집회에서 은혜받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 차이가 말씀을 전하는 강사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강사를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항상 은혜를 받지 못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은헤는 주님이 주시는 것인데 강사만 바라보고 있었으니 은혜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예배드리든 항상 은혜를 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어느 예배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참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설교자가 누군지, 예배당 건물이 어떤지, 찬양팀의
수준이나, 에어컨이나 음향 시설이 어떤지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문제는 예배드릴 때, 예수님으로 모이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 이름으로, 설교자의 이름으로, 행사의 이름으로, 부모나 친구,
교인의 이름으로 모이니 은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예배나 기도회, 집회든지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런면 항상 주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번 예수동행 세미나를 통하여 한국 교회 목회자들 안에 주님에 대한
갈망과 사모함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관심은 오직
주님 뿐입니다.
밥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자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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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추석 인사말 모음

 

 

 

 

금년 2018년 9월 추석은 23일 24일 25일 26일 그리고 주말까지

참으로 많은 휴식을 가질 수 있는 날입니다. 추석을 맏이 하면서

여러사람들에게 추석인사말을 해야하는데 망설여 지신다면 오늘 
포스팅을 참고해 보세요


그동안 잊고 지냈던

고마운 분들에게 간다하게 마나

추석 인사 드려야겠지요?

그래서 센스쟁이가 될 수 있는

추석 인사말 준비해봤는데요!

추석 인사말 때문에 고민되시는 분들은

요거 보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길 바래요!

 

♧ 복 처럼 다가올 내 님은 어디에

 

'보름달이 두둥실 뜬 추석 입니다

마음 속에 소원 하나 빌며

다가올 날을 기원 합니다'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한가위가 찾아왔습니다

고향길 안전하고 편안하게 다녀오시고

사랑하는 가족과 뜻 깊은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를 맞아 인사드립니다

고향의 풍경과 정을 한껏 담아오시고

가족친지들과 소중하고 귀한 시간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 내 미래배우자 얼굴 미리 보고오기!

 


'상쾌한 가을 바람이 설레는 요즘 입니다.

민족 대명절 한가위를 맞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안전한 귀성길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성원과 사랑에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늘 고마운 마음 항상 가득합니다

건강한 행복이 가득한 추석이 되길 기원하며

가족들과 풍성한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올해는 그 소원들이 모두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넉넉하고 풍요로운 한가위 되세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들판의 아름다운 오곡백과처럼

풍요로운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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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중의 기도, 주기도문을 말하다 / 팀 켈러

 

 

 

기도 중의 기도,

주기도문을 말하다

주기도문, 익숙한 데서 벗어나라

 


어거스틴과 루터, 칼뱅처럼 기도를 가르친 위대한 스승들은 그 누구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기도의 논리를 전개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산상수훈의 골간을 이루는 주기도문(마 6:9-13)을 최고의 본보기로 삼아 거기서 무얼 믿고 훈련할지 뽑아냈다. 루터의 고전적인 편지들도 그렇지만 칼뱅의 [기독교 강요] 역시 예수님이 본보기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한 줄 한 줄 연구하고 분석하는 데 관련된 지면(제20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성경적인 주석과 해석학적인 저작들뿐 아니라, 목회적이고 신학적인 글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적어도 한 군데씩은 적잖은 분량을 배정해 주기도문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부터 이 위대한 스승들의 사상을 통해 주기도문을 살피면서 기도라는 주제에 관한 그들의 지혜를 온전히 끌어내고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깊이를 더듬어 보려고 한다.

 


주기도문 속에 길이 있다


인류 역사상 주기도문만큼 자주 되풀이되며 입에 오르는 성경 구절이 또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는 풍요로운 기도의 곳간을 여는 열쇠로 이 주기도문을 주셨다. 그런데 그 엄청난 자원이 방치되다시피 하는 데는 지극히 익숙하다는 사실도 한몫하는 듯하다.

 


당신이 난생처음 철길 옆에 사는 지인을 찾아갔다고 생각해 보자. 한가하게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데 갑자기 기차가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달려온다. 앉은 자리를 고작 몇 미터 상관으로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에 기겁을 하고 일어나며 소리친다. "저게 도대체 뭐지?" 하지만 주인인 친구는 되묻는다. "뭐가 뭐야?" 다급하게 대꾸한다. "저 소리 말일세! 난 뭐가 벽을 뚫고 둘어오는 줄 알았어!" 친구는 그제야 태평스럽게 설명한다. "아, 저거? 그냥 기차야. 난 이제 익숙해져서 가는지 오는지 신경도 안 써." 상대는 말문이 막힌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주기도문도 마찬가지다. 온 세상은 신령한 체험을 갈구한다. 예수님은 몇 마디 말을 주셔서 그 도구를 삼게 하신다. 이를테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셈이다. "온 우주를 다스리는 하늘 아버지와 날마다 마주 앉아 그분 앞에 마음을 다 쏟아 놓고 그분이 귀 기울여 듣고 사랑해 주시는 경험을 하고 싶은가?" 우리로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환영이다. "예!" 예수님은 대답하신다. "주기도문 속에 모두 들어 있단다." 우리는 듣도 보도 못한 소리라는 듯 반문한다. "어디 ... 들어 있다고요?" 너무나 익숙해서 거기엔 신경도 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스천에게 필요한 게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문 안에 다 있다. 어떻게 하면 '익숙함'이라는 치명적인 위험을 피할 수 있을까? 오랜 세월 성찰하고 훈련하면서 주기도문의 깊이를 가늠해 왔던 이 위대한 세 스승의 말을 유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어떻게 드려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했을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는 부르는 말이고, 사실상 간구는 아니다. 칼뱅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행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자녀로 입양되지 않는 한, 누가 감히 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루터도 이 구절은 곧장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려는 의도가 아니라 기도로 진행하기 전에 우선 스스로의 처지를 되새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갖게 된 위치를 자각하려는 부름말이라고 보았다. "하나님은 엄중한 심판을 받아 마땅한 우리에게 ... 그분을 아버지로 여기고 또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평안해 하는 믿음을 마음에 심어 주시길" 구하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칼뱅 역시 "주님은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모든 불신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말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현대인들로서는 첫 번째 간구를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거룩히 여김을 받다'라는 동사가 요즘 흔히 쓰이는 말이 아니며 세속화된 사회에서 '거룩'이란 개념 자체가 낯설기 때문이다. 루터가 지적했듯 논리적인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구한다는 건 도대체 무얼 기도한다는 얘긴가? 주님의 이름이야 이미 거룩하지 않은가?" 루터는 곧바로 그분의 이름이 거룩하다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분의 이름을 사용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항상 거룩한 건 아니다"라는 답을 달았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지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존귀한 이름을 품은 존재로서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표하므로, 부름을 받은 그 호칭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선하고 거룩해질 힘을 주시도록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열방 가운데서 영화롭게 되시기를" 소원하는 어거스틴 기도에 깊이 공감하면서 루터는 또 다른 의미로 바라보았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온 세상 방방곡곡에 두루 퍼지며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를 닮은, 한마디로 거룩한 삶을 살아서 주님을 드높여 드리고 더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게 되길 요청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칼뱅은 전반적인 기조를 같이하면서 내면 깊숙이 새기고 있던 생각 하나를 덧붙였다. "은혜를 짓밟는 행위로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다면, 그만큼 가당찮은 짓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시 말해서 주께 배은망덕하고 냉담한 태도를 가지면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그저 착하게 사는 차원을 넘어 늘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더 나아가 그 아름다움에 경이감을 품는다는 뜻이다. "주님을 바라보며 탄복하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는 한," 그분의 이름을 드높이며 경배할 리가 없다.

 


"나라가 임하오시며"


어거스틴은 한사코 눈을 뜨지 않으려는 이에게는 사방이 암흑 천지인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세상을 통치하시지만 그분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모든 인간고(人間苦)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인간은 창조주를 섬기도록 지음을 받았으므로 마땅이 주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다른 것들을 두고 섬기면 영적, 심리적, 문화적, 심지어 물질적인 문제들이 줄을 잇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가 '임해야' 한다.

 


칼뱅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데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정욕을 바로잡아 주시는 성령님"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생각들을 빚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주권'과 관련한 간구다. 왕이신 하나님이 감정과 욕구, 사상과 헌신을 비롯한 삶의 모든 영역에 왕권을 펼쳐 주시길 구하는 것이다. 이는 토머스 크랜머(Thomas Cranmer)의 기도를 떠올리게 한다. "주님이 약속하신 것을 얻게 하시고, 명령하신 것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온전히 다스려 주셔서 온 마음을 다해 기쁨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생각이 가득하길 구하는 것이다.

 


루터는 여기에 외면적이고 미래적인 관점을 덧댔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통치가 부분적으로 드러날 뿐이지만, 장차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서는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하게 실현될 것이다. 온갖 고통과 상처, 가난과 죽음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는 "정의와 평화가 흘러넘치는 미래의 삶을 갈망하는" 간구다. "앞으로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이 우리 가운데서 시작하신 나라의 완결과 완성"을 구하는 것이다.

 


"뜻이 이루어지이다"


루터는 세 번째 간구의 의미를 더없이 생생하고 솔직하게 설명한다. 그는 이 구절을 이렇게 풀이했다.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셔서 온갖 질병과 가난, 수치와 고통, 역경을 기꺼이 견디며 주님의 거룩한 뜻이 그 가운데서 우리의 뜻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음을 알게 해 주소서." 이처럼 담대하게 말하기엔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주기도문 첫 구절이 갖는 중요성만큼은 또렷이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가슴 깊이 확신하지 않는다면, 감히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할 수 없다. 어린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속을 알 수 없는 존재이기 십상이다. 네 살배기 아이는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해선 안 된다는 아버지의 갖가지 금지 명령을 납득하지 못한다. 그저 믿고 따를 뿐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고 의지할 때만 인내하고 감사하며 어려움을 견딜 은혜를 구할 수 있다.

 


더러 하나님이 정말 믿을 만한 분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예수님 자신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상 누구도 마주한 적이 없는 지독히 참담한 처지에 몰렸을 때 주기도문의 이 부분을 고백하셨다는 사실이 답이 될 수 있겠다. 주님은 스스로의 욕구를 좇는 대신 아버지의 뜻에 따랐고 결국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것이 그분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다. 예수님은 그가 해 주신 일보다 더 힘든 일을 하라고 물어보시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고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말이다.

 


어거스틴의 뒤를 이은 루터는 이런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꿰차고 앉아서 자신에게 해를 입힌 상대에게 복수하려 들게 된다고 했다. 주님께 자신을 드리는 법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인신공격과 중상모략, 뒤에서 몰래 하는 험담 ... 다른 이들에게 퍼붓는 저주 따위를 피할 수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서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지 못한다면 한줌의 평화조차도 느낄 수 없다. 인간을 지배하고, 환경을 조작하며,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일을 몰아가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삶을 통제하는 건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어서 결국 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기에 칼뱅은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한다는 건 어떤 환경이 닥치든 낙담하거나, 쓰라린 아픔에 시달리거나, 냉담하지 않도록 제 의지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주기도문 앞쪽 세 구절에 담긴 간구를 살펴보았다. 어거스틴과 루터, 칼뱅은 하나같이 위치, 즉 이 세 가지 기원이 초반에 배치된 사실이 갖는 중요성에 주목했다. 기도의 도입부는 모두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스로의 필요나 문젯거리가 기도를 지배하게 두면 안 된다.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며, 주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고 그분의 영광이 온 천지에 드러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길 갈망하며, 온전히 사랑하며 순종하기를 염원하는 걸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는 이러한 진리를 함축해서 아름답게 표현했다.

 


내 마음의 소원이

주님의 뜻을 향해 굽어지니,

완전히 들어맞게 되기를

열망합니다.

 


찬양과 감사(하나님 중심)가 우선이다. 시선이 자신을 향하여 시야를 왜곡하는 자기중심적인 마음가짐을 치유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기도는 절반을 넘긴 셈이고 시각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바라보는 쪽으로 바로잡히고 명쾌해졌으니, 이제 우리와 세상의 필요를 향해 흐름을 바꿔도 좋겠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어거스틴이 여기서 말하는 '일용할 양식'은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예수님은 초반에 하나님을 참다운 양식이요, 재산이요, 행복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세 가지 간구를 드렸다. 이제 필요를 채워 주시길 구하는 '기도 제목'을 새로 짜인 마음의 틀에 맞춰 정리하신다.

 


이미 얘기한 것처럼  어거스틴은 온전한 기도란 너무 가난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도 말고, 너무 부유해서 주님을 잊어버리지도 않게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라는 잠언 30장 8절처럼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뱅은 일용할 양식에 관해 언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는 게 아니라 ...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방편이 되는 것들을 구하라"고 강조하며 어거스틴과 같은 입장을 취했다. 크리스천들은 긍정적인 응답을 기대하며 필요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만, 먼저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그분만을 신뢰하는 마음가짐이 전제되어야 한다.

 


루터는 이 기도에 사회적이 차원을 더했다. 누구나 빠짐없이 일용할 양식을 얻으려면 경제가 활성화되어야 하고, 취업률이 높아져야 하며, 정의로운 사회가 구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는 사업과 거래, 노동 시장에서 '가난한 이들을 짓밟고 하루하루 끼닛거리를 앗아 가는 악의적인 착취'에 대적하는 기도다. 루터는 불의한 짓을 하는 이들을 향해 여기에 내재된 능력을 역설하며 음울한 경고를 보낸다. "교회가 중보하고 있음을 똑똑히 알려 주고 ... 주기도문의 이 기도에서 배제당하지 않도록 조심시켜야 한다." 루터에게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가 번영과 공정한 사회 질서를 갈구하는 간구였던 것이다.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다섯 번째 간구는 하나님,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모두 아우른다. 오랜 세월에 걸쳐 개인적으로 죄와 용서의 문제를 두고 치열한 씨름을 벌인 루터는 날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누구든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고 남들을 멸시하는 이가 있으면 ... 이 간구와 마주서서 자신을 살피게 하라. 자신이 남보다 나을 게 없으며, 누구라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고 겸손이라는 높이 낮은 문을 지나 용서의 기쁨 가운데로 들어가야 함을 깨달을 것이다.

 


아울러 루터는 이 간구를 교만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실상에 대한 검증으로 규정했다. 회개나 고백하는 것이 하찮게 여겨진다면, "마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지 않으며 ... 복음에서 확신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꼬박꼬박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는데도 삶 가운데 확신과 기쁨이 점점 커지지 않는다면,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 직결시켜 판단하신다. 이는 두 방향으로 작용한다. 스스로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상대를 용서하거나 편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쓰라린 상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신호다. 뿐만 아니라, 원한을 그대로 품고 있다면 스스로는 용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죄만큼은 하나님께 용서받기를 구하는 위선과 마주칠 따름이다. 칼뱅은 그런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마음에 미워하는 감정을 계속 붙들고 있다면, 앙갚음할 궁리를 하거나 어떻게든 해코지할 기회를 골똘히 찾고 있다면, 더 나아가 원수처럼 여기는 상대가 보여 준 호의에 보답해서 거기에 어울리는 온갖 배려를 하려 애쓰지 않는다면, 이 기도를 드려 봐야 하나님께 우리 죄를 용서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꼴이 될 따름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옵고"

어거스틴은 이 간구를 두고 중요한 구분을 지었다. "이는 시험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시험에 끌려들어가선 안 된다는 기도다." 실험하고 검증한다는 의미의 시험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성경은 고난과 환난을 심령의 숱한 불순물들을 '태워 없애서' 더 건강한 자기 인식과 겸손, 참을성과 믿음, 사랑을 갖게 하는 도가니로 풀이한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시험에 들지 않게"(마 26:41)는 죄에 굴복할 가능성이란 개념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칼뱅은 '오른편'과 '왼편', 두 범주로 나누어 시험을 열거한다. 오른편에서 오는 시험은 '부, 권력, 명예' 따위로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죄에 빠지게 몰아가는 유혹이다. 왼편에서 오는 시험은 '가난, 수치, 멸시, 고통'처럼 절망하게 하고, 소망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하고, 분노에 차서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드는 시험이다. 번영과 역경이 모두 쓰라린 시함이 될 수 있으며 제각기 주님을 향한 신뢰를 버리고 자기 자신이나 다른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과도한 욕구'에 집중하며 살도록 유혹하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칼뱅은 이 구절을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옵고"와 한데 묶어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간구로 취급했다. 그러나 어거스틴과 루터는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로도 번역할 수 있다. 루터는 이를 두고 "악한 나라에서 뿜어 나오는 구체적인 폐해 ... 가난, 수치, 죽음 ... 한마디로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에 맞서는 기도"라고 썼다. 어거스틴은 내면에 잔존하는 악에서 구해 주시길 간청하는 게 여섯 번째 간구라면, 일곱 째는 외부의 악, 곧 세상의 사악한 세력, 특히 호시탐탐 해칠 기회를 노리는 적들로부터 보호해 주시길 구하는 기도라고 해석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마지막으로 마무리 찬양에 해당하는 구절이 남았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어거스틴은 이 부분을 언급조차 않는다. 초기 성경 문서나 라틴어로 번역된 불가타성경에선 찾아볼 수 없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고 지나간다. 반면에 칼뱅은 "라틴어 판에 없는" 문절임을 알면서도 "여기에 두는 게 지극히 타당하므로 제외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다. 크리스천은 결핍과 역경, 한계 따위에 깊이 들어갔었지만 마침내 하나님이 온전히 채워 주신다는 진리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세상의 그 무엇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의 손에서 낚아챌 수 없음을 기억하고 '평온한 안식'으로 수렴하게 되는 것이다.

 


"베풀어 주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소서, 우리를!"

칼뱅이 주기도문 해설을 마무리하며 결론은 참으로 유익하다. 루터가 [단순한 기도방법(A Simple Way to Prayer)]에서 그랬던 것처럼, 칼뱅 역시 주기도문을 대하는 크리스천은 어구의 특정한 형식에 매일 것이 아니라 내용과 기본적인 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가만 하더라도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판박이처럼 똑같은 단어를 동원해 기록하지 않았다. 주기도문은 기도의 강조점과 주제, 목적과 정신을 규정하는 본질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요약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기도에 사용되는 "용어는 전혀 다를지라도 뜻이 변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기도를 드리든 끝없이 갈고 다듬어 그 안에 주기도문을 새겨 넣어야 한다. 자유롭게 간구하는 기도로 가기 전에, 루터가 했던 것처럼 하루에 두 번씩, 주기도문을 자기 식으로 바꿔 기도하는 연습은 더없이 유용한 도구다.

 


주님이 이 기도문을 복수형으로 주셨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다. 크리스천들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며, 될 수 있는 대로 "공개적이어서 ... 같은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 사이의 교제가 깊어지게 해야 한다." 미국의 신학자 마이클 호튼(Michael S. Horton)은 "공적인 사역이 개인의 경건을 빚어 갈 뿐,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칼뱅의 지적을 부각시킨다. 칼뱅은 기독교회의 공동 예배가 개인적으로 드리는 기도의 틀을 단단히 잡아 주길 바랐으므로 공중기도와 성례전을 규정하는 데 무척 공을 들였다.

 


그러므로 기도는 오롯이 개인적인 일이 아니다. 함께 모여 예배든 비공식적인 자리든, 힘닿는 데까지 다른 이들과 더불어 기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어째서 그런가? 하나님이 시작하신 대화를 이어가는 데 기도의 본질이 있고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게 그 목적이라면 공동체 안에서 여럿이 어울려 간구하는 형태가 가장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C. S. 루이스는 개인을 알기 위해서는 다수가 모여 이룬 공동체를 통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스스로의 교우 관계를 되짚어 보면, 한 친구가 가진 인성의 일부 면모는 다른 벗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만 드러나더라는 것이다. 두 번째 친구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렇지 않았더라면 잘 알 수 있었을 첫 번째 친구의 일면을 놓쳐 버린다. "혼자 힘으로 한 인간을 총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그의 전모를 드러내려면 나 외에 또 다른 빛들이 필요하다." 평범한 한 인간을 알아 가는 데도 공동체가 필요하다면, 수많은 이웃들은 물론 예수님을 알아 가는 데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동료들과 더불어 기도하면, 예전엔 알지 못했던 예수님의 다양한 풍모를 보고 들을 수 있다.

 


루이스는 이사야 6장에서 천사들이 서로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라고 외쳤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고 본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제각기 한 면씩 목격하고 동료들과 공유했다는 것이다. 주님을 아는 게 집단적이고 누적 가중되는 일이라면, 기도와 찬양 역시 공동 작업이 되어야 한다. "하늘의 양식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온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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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행복한 삶을 위해 알아야 할 것들

 

 

 

노년에 지겨야 할 계명 
 
노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러기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늘은 나이가 들수록 지켜야할 것들에 관해서 알아봅시다.
 
1. 나이가 든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로운것이다.

 
 
나이가 들면 잘 안 보이는 것은 큰 것만 보고 멀리만 보라는 것이고,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지요.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지요. 
 
 
이가 시린 것은 연하고 다뜻한 음식만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함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원행을 삼가라는 것이지요.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가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랍니다.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고

지나온 세월을 다 기억하면 아마도 머리가 터져 돌아버릴 거래요.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2. 장수하려면
 

아래것을 지켜야 한다.
 

 
(1) 소언(少言): 말 수를 적게 하라.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젊은이들이 못 마땅해 해도 참고 지내라.
 

 
(2) 약언(弱言): 음성을 낮추어라.
청각이 둔하여 말을 크게 하거나 젊은이에게 크게 말하려고 하지 말라

(노인들의 모임은 목소리가 크서 씨끄럽기 짝이 없다 누가 좋아하랴)
 

 
(3) 시혜(施惠): 무어든지 베풀어라.
수입이 없으니 물질적 도움보다 칭찬, 격려, 상담, 발품 등으로 하라. 
 

 
(4) 친교(親交): 미운사람을 없애라.

내 마음 속에 미운 사람을 두고 있으면 스트레스만 쌓이고 병이 난다.

 
(5) 근면(勤勉): 운동을 생활화 하라.
몸이 둔하여 움직이기 싫지만 운동을 하여 유연성을 키워라.

특히 걷는 운동은 으뜸이랄수 있다. 
 

 
(6) 청결(淸潔): 목욕을 자주하라.

피하에 노폐물이 축적되면 악취가 나게 되니 항상 깨끗이하고

속옷도 매일 갈아 입어야한다. 구취가 나지 않도록  
 식사후에는 반드시 이를 닦는 습관을 들이자.

 
 
(7) 공복(空腹): 식사량을 줄여라.
양을 줄이고 맛있는 것은 젊은이에게 양보하라.

 
 
(8) 소욕(少慾): 욕심을 버려라.
공수래 공수거이니 벌기보다 있는 것 유용하게

잘 쓰는 것이 더 현명하다..

그리고 앨범사진, 기념패, 책들 쓰던 물건들을
 미리미리 정리하자.  
 
 
(9) 고종명(考終命):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제거하라.

죽음도 엄연한 생의 일부이니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유언도 미리 준비하는것이 필요하다.
 

 
(10) 치매(癡寐): 두뇌활동을 많이 하라.
필요한 기념일 등을 잘 기억하고, 독서, 바둑, 퍼즐, 컴퓨터

걷기 등을 많이 하라.  
 
 

 

 
3.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 하브라 소재 건강관리증진연구소
 
이곳에서 최근 노인 500명과 인터뷰해 알아본 
 노년 건강관리에서
저지르기 쉬운 잘못들을 소개했다.

 
다음은 월 스트리트 저널 인터넷 판이 소개한

노인들이 흔히 저지르는 10가지 건강 관리상의 잘못들이다.
 

 
(1)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운전을 계속하는 것
언제 운전을 그만둘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만으로 운전을 할 수 있는 건강상태를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반드시 주치의와 상의해야 한다.

 
(2) 노화 증세에 저항하는 것
보청기, 틀니, 돋보기나 보행 보조기구 이용을 거부하는 것은

당신이 받을 수 있는 도움을 거부하는 것이다.

 
 
(3) 의사들에게 문제를 말하기를 꺼리는 것
당신은 생식기 또는 비뇨기 관련 문제를 털어놓고 싶지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런 문제들과 위경련이나

턱의 통증 등 다른 문제들은 추가 검진이 필요한

더 큰 질환의 증세일 수도 있다. 
 
 
(4) 의사가 말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노인들의 공통적인 불평 중에는 “의사가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의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등이 있다.

의사에게 되풀이해서 말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꺼리거나

이해를 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을 꺼리면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5) 낙상(落傷)의 위험성을 간과하는 것
낙상은 종종 다 나을 때까지 몇개월이 걸리는 골절상이나 다른

부상을 낳는다. 낙상을 예방하려면 집안 곳곳의 깔개들을 치우고,

실내 조명을 밝게 하고, 튼튼하면서 발에 잘 맞는 신발을 신어야 한다.

또 인도에서는 비탈길과 갈라진 틈을 주의해야 한다.

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 운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6) 투약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것
하루 일과표나 약 먹는 시간을 알려주는 약통, 기록표 등을 이용하면

이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의료진은 당신이 먹는 모든 약의 종류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당신은 모든 처방전과 복용약의 리스트를 복용분량,

복용 이유 등과 함께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7) 당신의 치료를 감독하는 1차 주치의가 한명도 없는 것
당신이 여러 명의 의사로 부터 진단을 받거나 치료를 받을 때 건강상의

문제가 간과될 수가 있으며 다양한 치료방법들이 서로 충돌할 수가 있다.

이 모든 치료 프로그램들을 총괄 감독할 주치의가 있으면

과잉치료나 불충분한 치료를 막을 수 있다.   

 
(8) 초기에 이상 조짐이 발견됐는데도 의사를 찾지 않는 것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증상을 부인하는 것은 금전적인 이유 또는

나이에서 오는 자신에 대한 폄하 때문이다. 연구소가 접촉한 노인들 중

상당수는 “나는 너무 늙어서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치료를 늦추면 증세가 심해지거나 예후가 나빠진다. 
 
(9) 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 것
건강을 유지하려면 독감이나 폐렴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또 정기적으로 유방암 검사, 전립선 검사 등 신체검진을 받아야한다. 

 
(10)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
많은 노인들이 계속 독립적이기를 원하거나 약간의 치매 끼가 있어서

남에게도움을 요청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건강상의 적신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4. 우리가 걸어온 여정....

 
고대 인도인들이 생각한 인생의 4단계를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현실적인 인생행로를 그려보면.......
 

 

 

 


제1단계: 학습기(學習期)
이 시기는 스승으로부터 삶의 경험과 지혜를 전수받는 기간이다.

이 기간은 문명이 발달 할수록 길어진다. 즐거워해야 하는 시기이지만

현실은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럽다.

 

 
제2단계: 가주기(家住期)
가정을 꾸미고 사회활동을 하는 시기로서 인생의 절정을 이룬다.

자기 나라와 부모에 대하여 충성하고 효도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며,

자식을 낳아 잘 훈육함으로서 미래 발전의 기반을 닦는 기간이다.

이 기간이 길수록 사회발전에 기여도가 높아지는데 점점 더 이 중요한

시기는 짧아지고 있고, 한숨으로 허송세월하면서 후손들에게

애꿎은 빚만 남기고 뒤로 물러나려 한다. 안타까운일이다. 
 

 
제3단계: 임서기(林棲期) 
 
사회적인 의무를 마친 다음 자신의 하고싶은 일를 위하여
투자하는 기간이다.

사회생활로부터 벗어나 한적한 숲속에 들어가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자아를 실천하는 기간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를 붙잡고 세상일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제4단계: 유랑기(流浪期)
세속적 집착을 완전히 버리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다.

이때는 살아가면서 품위있는 죽음을 생각할 때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질수록 이 시기는 길어지고

삶의 의욕이 자연스롭게 떨어진다. 
 

 
5. 평등의 원리... 우리는 모두 동등하다. 
 

40대 : 지식의 평등

40대가 되면 대학을 나왔건 안 나왔건 다 똑같아 집니다.

옛날에 배운 것 다 소용없고 써먹을 것 하나도 없대요.

세상사 경험한 것 모두 같은

시절이어서 다 똑같아진다니 일리 있네요


 
50대 : 외모의 평등
50대가 되면 다 둥글넓적해져서 미운 것도 예쁜 것도 없어진대요.

한국사람 다 감자 같이 생겨서 거기서 거기, 모두 똑 같아진대요.

외모로 고생하시는 분들 50대가 되면 다 해결될 것이래요. 
 
 
60대 : 남녀의 평등 
 
60대가 되면 남녀가 서로 섞여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된대요
한 마디로 주책이 없어져서 하는 짓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모른데요

젊어서는 남자가 큰소리치지만 늙어서는 여자가 큰소리치게 된다지요. 
 

70대 : 건강의 평등

아픈 사람이나 안 아픈 사람이나 다 거기서 거기래요.

누구나 다 한두 곳 골병이 들어 병원을 드나들지요.

건강한 사람 찾기 힘들고, 속병이 들어서 일종의 종합병원이지요.

 
80대 : 재물의 평등
돈이 많으면 무엇 합니까 쓸데가 없는데요.

먹을 것을 제대로 먹을 수가 있습니까, 화려하게 옷 차려 입고

외출할곳이 있습니까, 집이 좋으면 무엇하고 온갖 것

다가지고 살면 무엇 합니까? 
 
 
90대 : 생사의 평등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 있어도 죽은 것이 아니지요.
살았으나, 죽었으나 다 마찬가지의 경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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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부합한 사람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1. 무엇이 참되고 실천적인 거룩인지,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거룩하다고 할까요?

 

1)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생각을 마음에 품는 습성이 거룩이다.

하나님의 판단과 합치하는- 그분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고,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는 - 습관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의 잣대로 판단하는 성향이다 하나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부합한 사람이 가장 거룩한 사람이다.

 

2) 거룩한 사람은 죄로 드러난 모든 것을 피하고, 알려진 모든 계명을 지키려고 애쓴다.

그는 하나님을 향해 분명히 돌아선 사람이고, 온 마음으로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하며, 세상을 실망시키는 것보다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그분의 모든 길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말한 바울과 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이다(롬7:22). “내가 범사에 모든 주의 법도들을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한다고 말한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시119:128).

 

3) 거룩한 사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고자 분투한다.

날마다 그분을 믿어 평강과 능력을 받아 누릴 뿐 아니라, 그분의 마음을 품고 “그분의 형상을 본받고”자 애쓰는 사람이다(롬8:29).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며 살려고 한다. 그는 그리스도가 자기를 비워 스스로 낮아지신 것처럼, 마음을 낮은 곳에 두고 겸손하려고 한다. 그리스도가 항상 진리의 신실한 증인으로 사셨던 것을 기억한다.

 

성부의 뜻을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음료와 양식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말도 안되는 거짓 고소 앞에서도 그분은 온유하고 오래 참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리스도가 죄인을 향한 긍휼과 사랑이 충만하셨다는 것을 기억한다. 타협하지 않고 담대하게 죄를 거부하셨다는 것을 기억한다. 세속적인 사람과 구별되셨음을 기억한다.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억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가로막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억한다.

 

거룩한 사람은 이런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2:6)고 한 사도 요한의 말과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는 사도 베드로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긴다. 우리의 구원과 본이 되신 그리스도를 자신의 “모든 것으로” 삼은 사람은 복이 있다! 사람이 만약 “그리스도가 나와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어떻게 말씀하시고,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하고 더 자주 물으면, 더 많은 세월을 아끼고, 더 많은 죄를 막게 될 것이다.

 

4) 거룩한 사람은 온유함과 오래 참음과 양선과 인내와 친절한 성품을 추구하고 혀를 다스리려고 애쓴다. 시므이가 저주를 퍼부을 때 다윗이 보여주었던 태도가 좋은 예이다. 아론과 미리암의 비난 앞에 섰던 모세 역시 좋은 모범이다.

 

5) 거룩한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절제한다. 육신의 정욕을 죽이고, 애착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색욕을 억제하고, 정욕을 제한하기를 힘써서 언제든 그것들이 제멋대로 나대지 못하게 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얼마나 적절한가?(눅21:34)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는 사도 바울의 말은 또 어떤가!(고전9:27)

 

6) 거룩한 사람은 사랑과 형제 우애에 애쓴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말했으면 하는 대로 말하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황금률을 따라 살려고 노력한다. 형제 사랑에 힘쓴다. 곧 형제의 몸과 성품과 감정과 영혼과 그의 모든 소유를 소중히 여긴다. 사도 바울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말한다(롬13:8). 거룩한 사람은 모든 외적인 행실과 품위로 자기 신앙을 더 빛나게 하고, 주변 모든 사람이 보기에 더욱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변해 간다.

 

7) 거룩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자비와 박애의 정신으로 대하려고 애쓴다.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빈둥거리거나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고, 선을 베풀려고 한다. 할 수 있는 한 자기 세대에 유익한 사람이 되고, 주변의 영적 궁핍함과 비참함을 덜어 주려고 애쓴다. 이런 사람을 도르가처럼 행한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9:36).

 

8) 거룩한 사람은 순전한 마음을 추구한다. 자신의 마음은 조그만 불똥이 튀어도 금방 타오르는 부싯깃과 같음을 잘 알기 때문에, 유혹의 불꽃이 마음에 튀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한다.

 

9)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한다. 그것은 노예근성에서 비롯된 두려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아버지 목전에 있는 것처럼 행하는 아들로서의 두려움을 말한다. 이에 대한 좋은 모범으로는 느혜미야가 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느5:15).

 

10) 거룩한 사람은 겸손하다. 마음을 낮은 데 두고 항상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더 낫게 여긴다. 다른 사람의 마음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더 많은 악을 발견한다. 인자함으로 유명했던 그림쇼가 만년에 죽음의 침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은 “무익한 종은 이제 떠납니다”라는 것이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했던 바울의 마음에 공감한다.

 

11) 거룩한 사람은 삶의 모든 의무와 관계에 있어서 신실함을 추구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골3:23).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는 바울의 말을 잊어서는 안된다. 거룩한 사람은 모든 일을 잘해야 한다. 그들은 좋은 남편과 좋은 아내, 좋은 부모와 좋은 자녀, 좋은 상사와 좋은 부하, 선한 이웃, 좋은 친구, 착한 국민, 그리고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하고,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거룩이라면, 이는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이다.

 

12) 거룩한 사람은 영적 사고방식을 갖기 위해 힘쓴다. 위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고, 이 땅의 것은 느슨하게 붙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일들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마음과 생각의 우선순위를 장차 오는 삶에 둔다. 하늘에 보화를 둔 사람처럼 살려고 하고, 본향을 향해 길을 나선 나그네와 이방인처럼 이 세상을 살아간다. 기도와 성경과 하늘 백성의 모임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힘쓴다. 무슨 일이든, 어디에서든, 누구와 있든, 자신을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끄는 것일수록 더욱더 소중히 여긴다.

 

이상이 거룩의 특징들이다. “거룩하다” 일컫는 사람이 추구하는 성품이다. 그러나 이 거룩에 대한 설명 때문에 낙담하는 여린 양심이 없기를 바란다. 어떤 신자 앞에도 걸림돌을 놓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거룩한 삶을 산다 해도, 남아 있는 죄의 가능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결코 아니다. 거룩한 사람이 가장 비참하게 여기는 것은, 항상 “사망의 몸”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다(롬7:24). 선한 일을 할 때도 그에게 “악이 함께 있”다(롬7:21). 옛 사람이 사사건건 그를 방해한다. 하지만 그는 남아 있는 죄와 타협하지 않는다. 이것이 거룩한 사람이 갖는 탁월함이다. 오히려 이 죄를 미워하고, 슬퍼하고, 벗어 버리려고 한다. 거룩한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성화의 사역은 예루살렘 성벽과 같다. “곤란한 동안에”도 성은 계속해서 중건되었듯이 말이다(단9:25).

 

저는 거룩이 무르익어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화는 점진적인 사역이다. 가장 밝게 빛나는 태양일지라도 표면에는 흑점이 있다. 가장 거룩한 사람도 성령의 저울에 달아 보면 많은 흠과 결점이 드러난다. 그들의 삶은 죄와 세상과 마귀와의 끊임없는 전쟁이다. 때로는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정복당할 때도 있다. 육체는 항상 성령을 대적하고, 성령은 육체를 대적한다(갈5:17). 우리는 모두 실수가 많다(약3:2).

 

그러나 부족하게나마 거룩의 특징을 갖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중심으로 바라는 바요, 간절한 기도 제목이다. 비록 다다르지 못한다 해도, 그들은 계속 전진한다. 얻지 못한다 해도, 그들은 항상 추구한다.

 

저는 참된 거룩이야말로 위대한 실재라고 담대하고 확신있게 말할 수 있다. 거룩은 빛이다. 만약 거룩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기를 드러낼 것이다. 거룩은 소금이다. 만약 거룩이 있다면, 그 맛이 느껴질 것이다. 거룩은 값비싼 향유이다. 만약 거룩이 있다면, 그 향기를 피해 숨을 수 없다.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도 때로는 뒤로 미끄러지고, 죽은 자와 같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불순물이 섞였다고 해서 금이 아닐 수는 없다. 희미하고 어둡다 해도 빛은 빛이다. 아직 어리고 연약한 은혜라고 해서 그것이 은혜가 아닐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고의로 자신을 죄에 방임하면서 겸비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룩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웬은 말한다. “죄를 가장 무거운 짐, 슬픔,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참된 신자일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2. 실천적 거룩이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이유

 

거룩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탁월한 성도라 해도 전혀 “무익한 종”일 뿐이다. 우리가 가장 순전한 일을 해도 하나님의 거룩한 법의 빛 아래 놓이면 누더기와 같이 드러날 뿐이다. 예수께서 입혀 주신 세마포와 믿음만이 우리의 유일한 의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의 유일한 자랑이다. 우리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 때문에 우리는 천국에 간다.

 

우리가 거룩하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죄인일 수밖에 없다. 율법의 행위로는 그 어떤 아담의 후손도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1)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분명히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5-16). 알렉산더 레이턴은 “이점에서 복음과 율법이 일치한다”고 했다.

 

2)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위대한 한 가지 이유와 목적이 거룩이기 때문이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5:15). 그는 에베소 교회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자는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택함받은 자가 된다(벧전1:2). 신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심을 받았다(롬8:29). 신자가 택함을 받은 것은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이다.(엡1:4). 신자의 부르심 또한 “거룩한 부르심”이다(딤후1:9).

 

신자가 고난을 받는 이유도 “거룩하게 참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히12:10). 예수님은 완전한 구주이시다. 그분은 단순히 신자의 죄책만을 제하시는 것이 아니다. 죄의 권세를 피하는 일도 하셨다.

 

3)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의 믿음을 가졌다는 유일하게 바른 증거가 거룩이기 때문이다. 성공회 종교강령 제12조는 말한다. “선행이 우리 죄를 없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맹렬함을 견디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행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실 만한 일이고, 참되고 생명력 있는 믿음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이다. 열매로 나무를 알듯이, 선행을 통해 믿음이 살아 있다는 것이 분명히 증거된다.” 야고보 사도는 죽은 믿음- 입술의 고백만 있고, 성품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을 경고한다(약2:17).

 

참된 믿음은 항상 그 열매를 통해 드러난다. 참된 믿음은 거룩하게 한다. 사랑으로 역사하고, 세상을 이긴다. 마음을 청결하게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유일하고도 안전한 증거는 거룩한 삶이다. 일반적으로 주님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죽을 때도 주님 안에서 숨을 거둔다. “자신의 마음과 삶을 정결하게 할 만한 영광스러운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의 상태는 허망하고, 그의 믿음은 건전하지 못하다”(로버트 트레일).

 

4)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사랑하는 유일한 증거가 거룩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21). 예수님의 머리를 찌른 가시면류관은 우리 죄로 만든 것이다. 우리 주님의 손과 발과 옆구리를 찌른 것도 죄이다. 그분을 겟세마네와 갈보리 십자가로 데려가 무덤으로 이끌어 내린 것도 우리의 죄이다. 오른손을 잘라 버리고 오른 눈을 빼내어 버리기까지 죄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또 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은 싸늘하게 식은 무정한 마음임에 틀림없다.

 

5)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된 유일하고 건전한 증거가 거룩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그 부모를 닮는다. 하늘 아버지를 닮지 않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 말해 봐야 헛된 것이다. 삶으로 자신이 어느 가문 사람인지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거룩한 삶으로 당신의 혈통을 증거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이며 당신에게 왕족의 피가 흐른다고 말하지 말라”(윌리엄 거널).

 

6)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에게 해를 주거나 유익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의 설교이다. 신자의 거룩한 삶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나라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로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실재가 거룩한 삶에 있다. 거룩한 삶에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무게와 영향력이 있다. 거룩한 삶은 신앙을 아름답게 한다. 심판 날에는 “말로 말미암지 않고” 거룩한 행실로 인해 구원을 얻은 사람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벧전3:1). 칭의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도 사랑은 이해할 수 있다.

 

거룩하지도 못하고 신실하지도 못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해악을 끼친다. 그런 사람들은 사탄의 가장 좋은 동역자이다. 이들은 목사가 입술로 쌓아 올린 건물을 삶으로 무너뜨린다.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이름이 너무 자주 욕을 먹는다. 규모 없고 나태한 생활로 영혼들을 죽이지 않도록 우리를 구원하소서! 거룩해야 할 다른 명분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거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7)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 누리는 위로가 거룩에 많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와 슬픔, 거룩과 행복, 성화와 위로 사이가 얼마나 긴밀한지 자주 잊어버린다. 선한 일에 무관심하고 거룩한 삶을 살려고 힘쓰지 않으면서, 자신의 칭의를 아주 생생하게 느끼고 부르심에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질없는 소리이다. (요일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일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8)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땅에서 거룩하지 않으면 천국을 준비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룩해지지 않고 죽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천국에서 편하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죽음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각자가 숨을 거둘 때의 그 성품으로 다시 일어나게 된다. 지금 여기서 거룩에 대해 외인이라면, 우리가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다.

 

아마 지금 여러분은 경망스럽고, 부주의하고, 세상에만 집착하고, 탐욕스럽고, 방탕하고, 쾌락만 추구하고, 불경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천국에는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리스도를 죽게 한 죄와 짝하고, 그리스도의 원수들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친구들을 멸시한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만나 뵐 수 있을까? 거룩하지 못한 사람에게 천국은 가장 불행한 장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영광의 거룩한 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은혜의 학교에서 받는 훈련을 통과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삶을 통해서 천국에 합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천국의 미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가오는 삶을 천국에서 누리지 못할 것이다.

 

적용이다.

 

1) 여러분은 거룩한가? 아니면 거룩하지 않은가?

 

이렇게 강하게 묻는 이유는, 성경이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히12:14)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우리 마음을 살피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한다. 지옥에 있는 저 가련한 영혼도 생각하는 정도는 다 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탁월한 성도나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분명히 말한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그렇게 까지 거룩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고, 이 땅에서는 우리의 의무를 다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 말에 저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은 잘못 알고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면 못할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왔다. 다윗, 오바댜, 다니엘, 그리고 네로의 집에서 종으로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리스도의 참된 종들은 항상 주변의 세상과는 다른 사람, 곧 거룩한 나라요, 구별된 백성이었다. 당신도 구원받으려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구원받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주 예수께서는 1,800년전에 이미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4). 구원받는 자가 적을 것이다. 구원을 얻기 위해 수고하는 자가 적기 때문이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벧전1:4)을 등질지언정, 사람들은 잠시 동안도 죄의 즐거움과 자신의 길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주의 말씀이다.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5:40). 다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앙에 있어서도 ”고통이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주님을 보기 원한다면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룩하지 못하다면, 우리에게 있는 신앙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단순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의 성품 또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천국에서 성도로 발견되고자 한다면, 이 땅에서도 성도여야 한다. 하나님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실 것이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교황의 달력은 이미 죽은 자들만을 성인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성도가 될 것을 요구한다”고 윌리엄 젠킨은 말한다.

 

오웬의 말이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 성화는 그리스도의 행위를 힘입어 구원에 이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다. 주님은 친히 이 땅에서 성화한 사람만을 천국으로 데려가신다. 살아 계신 머리께서는 죽은 지체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성경에서 주님이 “너희가 다시 태어냐야 한다”고 하실 때 의아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많은 사람에게 완전한 변화- 새 마음과 새 본성- 가 필요하다. 구원받고 싶다면 말이다. 옛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거룩함이 없이는”, 그가 누구든지 간에,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

 

2) “거룩의 중요성에 대해 과연 얼마만큼 느끼고 있는가?”

 

이 주제를 대하는 이 시대의 성향이 염려된다. 주님의 백성이 이 주제에 걸맞는 생각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은혜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는 교리를 간과한다.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거룩을 또 다른 우상으로 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리스도를 그 보좌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거룩을 앉히고 싶지 않다. 그러나 성화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으로 이 시대가 더 많이 생각해야 할 주제라고 확신한다. 하나님께서 칭의와 성화를 하나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모두 성화되고, 성화된 모든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다.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 여러분에게 성화의 표지가 없다면 여러분의 칭의에 대해 말하지 말라. 여러분 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를 보여줄 수 없다면, 그리스도의 사역이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 자랑하지 말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서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러더퍼드의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성화를 깎아 내리는 것은 은혜의 방편이 아니다. 믿음과 행함은 피로 맺어진 친구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설교하셨고, 에베소서는 네 장이 아니라 여섯 장으로 된 편지이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많은 신자들이 더 신령하고, 더 거룩하고, 더 단호하고, 하늘에 더 마음을 두고, 더 온전한 마음이 되기를 소원한다. 신자가 순례자의 마음을 더 많이 가져 단호하게 세상과 구별되고, 더 분명한 천국의 삶을 살아내고,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게 되기를 원한다.

 

오늘날 더 높은 표준의 개인적 거룩이 필요하지 않은가? 인내와 열정은 다 어디 갔는가?

사랑과 믿음의 역사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지난 시대에 도드라졌던 신앙의 능력은 어디 있는가? 그 옛날 세상을 뒤흔들고, 성도들을 세상과 구별하게 했던 분명한 품격은 어디로 갔는가? 확실히 우리가 가진 은은 찌꺼기가 되었다. 우리의 포도주는 물 탄 포도주가 되었다. 우리의 소금은 짠맛을 거의 잃었다. 모두가 반쯤 잠들어 몽롱하다.

 

밤이 다 가고, 여명이 가까워 온다. 잠들지 말고 모두 깨어 있자. 눈을 더 크게 뜨고,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자(히12:1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

 

오웬은 말한다. “그리스도가 죽으셨는데 어찌 죄가 살아 있을 수 있으며, 그분이 이 세상에서 못 박히셨는데, 어찌 우리가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상에 대해 못 박히고, 세상은 그에 대해 못 박힌 사람의 영혼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3) 거룩해지기를 열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몇 가지 권면을 드린다.

 

거룩하고 싶은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싶은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시작하라. 자기 죄와 연약함을 절감하고 그리스도께 피하기까지 여러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런 진보도 이룰 수 없다. 주님은 모든 거룩의 뿌리이다. 시작이다. 거룩해지는 유일한 길은 믿음으로 그분께 나와 그분과 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에게 지혜와 의로움이 되실 뿐 아니라, 성화도 되신다. 그 누구라도 바울이 놓은 “거룩”의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15:5).

 

트레일은 말한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지혜는 정죄받을 어리석음이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의로움은 죄책과 정죄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성화는 죄와 더러움이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구속은 속박과 예속일 뿐이다.”

 

지체하지도 말라. 다 준비된 후에 가려고 하지 말라. 가서 그분께 이 아름다운 찬송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대신하라. “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 주소서”.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기 전까지는 우리의 성화 사역에 벽돌 한 장, 돌 하나도 놓이지 않을 것이다.

 

거룩은 믿는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거룩은 백성들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신 그리스도께서 그 성령을 통해 마음에 행하시는 역사이다. 거룩은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그분과 이루는 생명의 연합의 결과이다. 참 포도나무에 접붙여진 가지에서 맺힌 열매이다. “주님, 나의 죄과로부터 저를 구하실 뿐 아니라,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사 죄의 권세에서도 구원해 주십시오”.

 

앞으로도 계속 거룩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요15:4-5). 그리스도를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다. 그리스도에게 있는 충만은 성도의 모든 필요를 채우고도 남는다.

 

그분은 위대한 의사이다. 한결같이 온전하기를 바란다면, 날마다 한결같이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그분은 여러분이 매일 먹을 만나이다. 여러분이 매일 마셔야 할 샘물이 나는 반석이다. 광야같은 이 세상을 이기고 다 지나가기 위해 날마다 붙들고 기대야 할 강한 팔이다. 그분께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할 뿐 아니라, 그분을 기초로 지어져야 한다.

 

바울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 거룩한 사람,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이었다. 비결이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그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었다(엡1:23). 항상 “예수를 바라” 보았다(히12:2).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했다(빌4:13).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갈2:20).

 

여러분이 바울이 고백한 이런 일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체득하여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우리가 느꼈던 것보다 더 절실하게 거룩의 중요성을 절감하기 바란다! 우리의 남은 해가 우리의 영혼과 더불어 거룩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행복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우리 모두가 흠과 점이 없는 평화 가운데 발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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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을 준비는 마음 가짐 (유종의 미)

 

 

 


천천히 읽고 생각하는 30분 ~
 전혀 시간이 아깝지 않아요~!!
 차분히 하나하나
 읽고 생각해 보세요 ~~^*

 
인생의 후반은
마무리의 시간들이다 ♧♧

정리하고 즐기며,
마무리 해야 한다는
마음 가짐이 중요할 것이다.

아는 것도 모르는 척,
보았어도 못 본 척 넘어 가고,
 

 
내 주장 내세우며
누굴 가르치려 하지 말자..

너무 오래 살았다느니,
이제 이 나이에
무엇을 하겠느냐는 등등~
스스로를 죽음으로 불러들이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말자.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生의 환희 아니던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더라도
살아있는 人生은 즐거운 것이다.

가족이나 타인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더라도
그 책임은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노인의 절약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있는 돈을 즐거운 마음으로
쓸 줄 알아야
따르는 사람이 많은 법...

 
축구에서
전/후반 전을 훌륭히 마치고
연장전에 돌입한 당신의 능력을
이미 관중들은 충분히 알고있다..

연장전 에서
결승점 뽑을 욕심은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멋진 마무리속에 
박수칠때 떠날 수 있도록
멋진 '유종의 미'를
꿈꾸며 살아가자~!

 

 

 

 

그러기 위해서,

 
1.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라.

재산을 모으거나
지위를 얻는 것이
경쟁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황혼의 人生은 이제 그런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2. 권위를 먼저 버려라.

노력해서
나이 먹은 것이 아니라면,
나이 먹은 것을 내 세울 것이 없다.

나이 듦이
당신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권위도 지위도 아니다.
조그만 동정일 뿐이다~!


 
3. 용서하고 잊어야한다.

살면서 쌓아온
미움과 서운한 감정을
털어 버려야한다.

4. 항상 청결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추한 꼴 안 보이려는 것이
인간이 버려서는 안 되는
자존심이다!

 
5. 감수해야 한다.

돈이 부족한 데서 오는
약간의 불편,

지위의 상실에서 오는
자존심의 상처,

가정이나 사회로부터의
소외감도 감수해야 한다.


 
6. 신변을 정리해야 한다.

나 죽은 다음에
자식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는 사고방식은
무책임한 것이다.

7. 자식으로 부터 독립해야 한다.

금전적인 독립은 물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얽매인
부모자식 관계를 떨쳐 버려라.

자식도 남이다.
그저 제일 좋은 남일 뿐이다!

 
8. 시간을 아껴야 한다.

노인의 시간은 금 쪽 같이 귀하다.
'시간은 금이다'라고 했지만
노인의 시간은 돈보다 귀하다!

9. 감사하고 봉사해야 한다.

삶의 마지막은
누군가에 의지해야 한다.
더구나 효성스런 자식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세상에 고마움을 표하고
살아 움직일 수 있을 때
타인을 위해서도
미리 갚아 두어야 한다.

살아온 이 지구의 환경과
우리 사회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어야
성숙한 노년의 삶이다.

 
10. 참여 하라.

사회나 단체 활동,
혹은 이웃 간의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하라.
친구와 어울리고
취미활동에 가입하라.

11.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기를 것.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노인이 되고 세월이 흐르면
친구들은 한 사람 두 사람 줄어든다.

설혹 살아 있더라도 건강이 나빠
함께 지낼 수 없는 친구들이
늘어난다.

아무도 없어도
낮선 동네를
혼자서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독에 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12. 노인은 매사에
감사할 줄을 알아야 한다.

 
감사의 표현이 있는 곳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신기하게 밝은 빛이 비치게
마련이다.

축복받은 노후를 위해,
오직 한 가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택할 것이다.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는 한,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으며,
몸도 잘 움직일 수 없어,
대소변도 못 가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는 엄연한 인간이며,
아름답고 참다운 노년과
죽음을 체험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3. 새로운 기계 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익히도록 해야한다.

새로운 기계의 사용 방법을
익히기가 어렵다.
몇 번씩 설명을 듣고,
여러 차례 설명서를 읽어보아도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그런  새 기계
사용을 포기하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노력해서
익숙해지도록 노력해라.

 
약간 불편하더라도
지금 상태가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런 징후는
젊은 사람에게도 있으나,
심리적 노화와
상당히 비례하는 것 같다.

14. 교통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에는 이동하지 말 자.

 
노인이 러시아워의 혼잡한 시간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야할 경우는
흔치 않다.

교통이 혼잡한 시간대에는
외출을 삼가하여
출퇴근 하는 젊은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15. 짐을 들고 다니지 말 아라.
들어야 한다면 최소로 줄여라.

외출이나 여행을 할 때
노인은 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동행자가 없으면
자신이 피곤해지고,
동행자가 있으면 동행자에게 폐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16. 입 냄새, 몸 냄새에
 신경을 쓸 것.

노인이 되면
노인 특유의 냄새가 난다.
따라서 항상 향수를 휴대하여,
극히 소량씩이라도
사용하는 것이 좋다.

17. 나이가 들면 불결한 것에
태연한 사람들이 꽤 있다.

 
자주 씻을 것.
청결하게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동시에 주위사람들에 대한
예의 이기도하다.

그러므로
내의는 매일매일,
혹은 이틀에 한번씩, 자주 갈아 입고,
침구나 잠옷 등은 날을 정해서
더럽게 보이던 보이지않던
세탁하여야 한다.

 
18. 화장실을 사용 할 때에는
문을 꼭 잠그고~,
무릎은 가지런히 하고
변기에 앉을 것.

나이가 들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무릎을 벌리고 변기에 앉거나,
문을 꼭 잠그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늙었다는 징조다.

 
이는 정신 상태의 해이와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의 결여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19. 죽기 전에 자신의 물건들을
모두 줄여 나가도록 해라.

어렵지만 일기나 사진 등,
자식들이 꼭 남겨 달라고
하지 않은 것들은

 
노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즈음부터는,
조금씩 처분하는 마음 자세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재산도 마찬가지다.
아무 생각 없이 남긴 재산은
종종 유족들을 번거롭고 힘들게 한다.

더이상 나의 판단력이 흐려지기 전에,
확실하게 정리해 두자.

  
구심점 없어지는 그날,
혈육간의 분쟁이 발생치 않도록 하는
현명한 조치이기도 하다.

20. 친구가 먼저 죽더라도 태연할 것.

친구가 먼저 세상을 뜨는 일은,
(남편이나 아내가 먼저 떠나는 것도 같다.)
늘~ 사전에 마음속으로
예상하고 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막상 닥친 운명에 대해
마음의 각오가 서게 된다.
‘드디어 헤어지게 되는 구나.’라고
한탄하기보다...

‘몇 십 년 동안 즐겁게 지내주어
고마웠어’라고
감사해 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곧 내 차례가 올 것이니까...

 
21. 허둥대거나 서두르지 않고
뛰지 않는다.

노인의 갖가지 심신의 사고는
서두르는데서 일어난다.

이만큼 살아왔는데,
여기서 무얼 더 서두를게 있겠는가?


 
노인이란
한 걸음 한걸음 걸어 나가면서,
인생을 음미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나이가 들면
누구나 '예술가'다.

노인이 되어
시를 쓰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그런 연유 때문이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무엇이든 느긋하게 하고,
느릴수록 좋다.

 22. 매일 적당한 운동을
 일과로 할 것.

나이가 들면
신체의 각 부위가 퇴화되는 현상이,
노년의 서글픔이다.

 
신체의 퇴화를 저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항상 몸을 단련하는 것이다.

평소에 가구나 구두, 기계류를
닦고 조이며
손질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처럼,,,.

하루 세 번 식사를 하듯,
매일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알맞은 운동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무리한 운동은
절대 금물이다.

자고로,
세월을 이기는 천하장사는 없다

23. 여행은 많이 할수록 좋다.

여행지에서 죽어도 좋다.
여행만큼
생활에 활력을 주는 것도 없다.

  
낮선 땅에서 낮선 사람들을 만나고,
낮선 음식을 먹는 것은
언제나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노년의 건조한 생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여행은
많이 할수록 좋다. 

외국에서 여행을 하다 죽더라도,
자필의 화장 승낙서를
휴대하고 다니면,
어느 나라에서 이건
화장하여 유골로 만들어주고..

  
항공회사가 저렴한 가격으로
고국으로 운송해 준다.
여행지에서 죽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

24. 관혼상제, 병문안 등의 외출은
일정시기 부터는 결례(缺禮)할 것~!
절대 흠이 되는일이 아니다.

관혼상제, 병 문안 삼가해라.
필요하면 편지로 봉투로 전해라.

 

 


 
어느덧 누워서 절받을
군번이 아니던가~

평소에는 하지 않던
정장차림의 외출은 절제해라.
정장은 노인에게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을 주게 되고,
그로인해 자칫 병을 얻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죽은 사람,
결혼하는 사람, 병든 사람을 위해
마음으로 기원하는 것이다.

  
가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과는
어디에 있던지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법이다.

25.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 좋다.

젊은이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활동할 시간이 많겠지만,

노인에게는 일찍 자고
지나치게 일찍 일어나는 것은
좋지 않다.

  
서두를 일 없는 하루를,
공연히 길게 느껴지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얼굴은 영혼의 반영이며,
마음의 초상화다.

기쁜 마음을 가지면
얼굴 표정이 저절로 밝아지고,
어두운 마음을 가지면 얼굴 표정이
저절로 어두워진다.

 
행복한 마음은
아름다운 얼굴을 만들고,
추잡한 마음은
더러운 얼굴을 만든다.

인간의 표정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미소짓는 표정이다.

미소는
얼굴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다.


 
죽는 그날까지
미소 짓는 습관을 배워
익히도록 합니다.

 

 


~~생각하며~~~~~~~~~~~~~~~~~~~


 
노인이,
노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꼭 부모가 어린아이를 걱정하듯
말합니다.

이렇게 살면 노년이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러나  노년은 죽음 이후를
생각해야 할
아주 귀중한 시간입니다.

  
죽음은 반드시 닥칠 것이고
그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낡은 옷을 벗듯 육체를 벗고나면
내 영혼의 빛깔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육체를 입고 사는 날이
하룻밤 꿈처럼 지나고나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
 만들어진 빛깔대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육체를 벗은 이후에는
영혼을 아름답게 더이상
가꿀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존재할
내 영혼을 생각하면

  
노년의 하루 하루는
너무 소중한 시간입니다.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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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찡한 어느 할머니의 글

 

 

 

"이글은 스코틀랜드 시골 양로원에서 외롭게 살다 세상을 떠난 어느 할머니의 유품에서
남겨신 시입니다. [조금 긴 글의 시 지만 꼭 읽어보세요ㅠㅠ] "


당신들 눈에는 누가 보이나요...
간호원 아가씨들~
제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묻고 있답니다.

당신들은 저를 보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나요...
저는 그다지 현명하지도 않고...
성질 머리도 괴팍하고...
눈초리 마저도 흐리멍텅한 할망구 일테지요!!!

먹을때 칠칠치 못하게 음식을 흘리기나 하고
당신들이 나에게 큰소리로
"한번 노력이라도 해봐욧..."하고 소리질러도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노인네...

당신들의 보살핌에 감사 할 줄도 모르는것 같고
늘 양말 한짝과 신발 한 쪽을 잃어버리기만 하는 답답한 노인네...

그게 바로 당신들이 생각하는 ' 나 ' 인가요??
그게 당신들 눈에 비춰지는 ' 나 ' 인가요??

그렇다면 눈을 떠 보세요.
그리고 제발....
나를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바라봐 주세요...
이렇게 여기 가만히 앉아서
분부대로 고분고분 음식을 씹어 삼키는 제가
과연 누구인가를 말해 줄게요...

저는 열살 짜리 소녀랍니다.
사랑스런 엄마와 아빠...그리고 오빠와 언니, 동생들도 있지요...

저는 스무살의 꽃다운 신부 랍니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콩닥콩닥 가슴 뛰고 있는아름다운 신부랍니다.

그러던 제가 어느새 스물다섯이 되어 아이를 품에 안고
포근한 안식처와 보살핌을 주는 엄마가 되어있답니다.

어느새 서른이 되고 보니 아이들은 훌쩍 커 버리고
제 품에만 안겨 있지 않답니다.

마흔 살이 되니 아이들이 다 자라 집을 떠났어요.
하지만 남편이 곁에 있어
아이들의 그리움으로 눈물로만 지새우지는 않는답니다.

쉰 살이 되자, 다시금 제 무릎 위에 아가들이 앉아있네요.
사랑스런 손주들과 나....행복한 할머니 입니다.

암울한 날이 다가 오고 있어요.
남편이 죽었거든요...
홀로 살아갈 미래가 저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네요.
제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들이 없답니다.
젊은 시절 내 자식들에게 퍼부었던 그 사랑을 난 또렷이 기억하지요.

어느새 노파가 되어버렸네요...
세월은 참으로 잔인하네요.
노인을 바보로 만드니까요..

몸은 쇠약해져가고...
우아했던 기품과 정열은 나를 떠나버렸네요.
한때 힘차게 박동하던 내 심장 자리에
이젠 돌덩이가 자리 잡았네요...

하지만 아세요??...
제 늙어버린 몸뚱이 안에 아직도 16세 처녀가 살고 있음을...
그리고 이따금씩은 쪼그라든 제 심장이 쿵쿵 대기도 한다는 것을...

젊은 날들의 기쁨을 기억해요.
젊은 날들의 아픔도 기억해요.
그리고......
이젠 사랑도 삶도 다시 즐겨 보고 싶어요.

지난 세월을 다시 되돌아 보니...너무나도 짧았고
너무나도 빨리 가 버렸네요...
내가 꿈꾸며 맹세했던 영원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진리를
이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모두들 눈을 크게 떠 보세요.
그리고 날 바라봐 주세요.
제가 괴팍한 할망구라뇨.

제발....
제대로 한번만 바라봐주세요.
' 나 ' 의 참모습을 말이예요.

 -아름다운 글 옮겨왔답니다.-

한번쯤은 좋은글에 실렸을거란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다시한번 읽어 보는것도 괜찮을 듯 싶네요...
우리 부모의 인생... 혹은 앞으로의 우리네 삶 일수도 있어요.
다시 읽어도 가슴이 찡~하고 마음이 아픈 글입니다.
오늘 떨어져 계신 부모님께 안부전화 한통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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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방법 그리고 노인 생활수칙

 


 

 
어느날 아내와 석촌호수 산책길에서
외롭게 밴취에 앉아 있는
 77세의 노인 곁에서 잠시 쉬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대구에서 살다가 올봄에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 대구 재산을 정리하고
서울에 사는 아들집에 와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하시는 말씀이 요즘 세상 늙은 사람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효도한다는 말 자체가
젊은 사람들에게 "금기어"가 된
세상인데 대구에서 혼자 사는게
마음이 편할 것인데 잘못 올라왔다고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집에서 일주일 살기가
일년을 사는것 같다고합니다.
늙은 사람 생활방식하고 젊은 사람의
사는 방식이 너무 다르고
서울에는 친구들도 없어 어울릴
사람도 없어서 혼자 석촌호수에서
보내는 것이 일상 생활의
전부라고 합니다.
 
자식의 좋은 금슬이 자기 때문에
깨질까 봐 말과 행동이
조심스럽기만 하답니다.

아들 출근하고 나면 며느리와
좁은 아파트 공간에 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 이곳에 나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재산은
아들 아파트 사는데 다 주고 돈이 없는데
 아들이 용돈을 주지않아
점심도 사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모습이 몇년후의 내 모습을
 보는것 같아 마음이 씁쓸 했습니다.
 
오래 살려고 매일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노후에 자식에게
얹혀서 저 노인과 같이 사는 삶이라면
오래 산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조금가다 보니까 이번에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며느리가
손잡고 걷고 있었습니다. 

매우 보기가 좋아 뒤떨어져 가는
손녀에게 할머니냐고 아내가 물었더니
그 손녀가 하는 말이
 "자기집도 있는데 우리집에 와서
 매일 엄마를 저렇게 괴롭힌다네요?"

어린 손녀는 할머니집을
 자기집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손녀는 할머니를 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때 아내가 하는 말이
"여보! 우리가 더 늙더라도 절대
아들집에 얹혀 살 생각은 하지 말아요"

"부모가 늙으면 다 짐이라고
생각하나 봐요?
우리 자식들도
저 사람들과 똑같을 수도 있어요.
내가 죽더라도 당신 혼자 살아야 해요.
자식들의 짐이 되지는 마세요." 

 

오늘 부터라도
혼자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 같다.

 

 

 

 
 노인 생활수칙!!

 

01.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라.
      그래야 여한없이 살게된다.

02. 좋은 친구와 만나라.
      외로움은 암보다 무섭다.
 
03. 자서전을 써라.
      인생의 정리가 저절로 이루어진다.

04. 덕을 쌓으며 살아라.
       좋은 사람이 모여들고
하루하루가 값지게 된다.

05. 좋은 말을 써라.
      말은 자신의 인격이다.
  
06. 좋은 글을 읽어라.
      몸은 늙어도 영혼은 늙지 않는다

07. 내 고집만 부리지 말라.
      노망으로 오인 받는다.

08. 받으려하지 말고 주려고 하라.
      박한 끝은 없어도 후한 끝은 있다.
 
09. 모든 것을 수용하라.
      배타하면 제명대로 살지 못한다.

10. 마음을 곱게 써라.
       그래야 곱게 늙는다

11. 병과 친해져라.
      병도 친구는 해치지 않는다.
 
12. 나이에 자신을 맞추어라.
      몸부림쳐도 가는 세월 막지 못한다.

13. 틈만 있으면 걸어라.
      걷는 것 이상 좋은 운동이 없다.

14.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려라.
      고집 센 사람 모두가 싫어한다. 
 
15. 자녀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말라.
      그러다가 의만 상한다.

16. 물을 많이 마셔라.
      물처럼 좋은 보약도 없다.

17. 골고루 먹어라.
      편식은 건강의 적이다. 

 
18. 콩과 멸치, 마늘을 많이 먹어라.
      최고의 건강식품이다

19. 과식단명 소식장수라는 말이 있다.
      음식 욕심은 명 재촉의 지름길 이다.

20. 아침에 일어나 온몸을 마찰하라.
      순환만 잘되면 100세는 거뜬하다.
 
21. 낙천가가 되라.
      하루가 즐거우면 열흘이 편안하다.

22. 노후는 인생의 마지막 황금기이다.
      값지게 보내라.

23. 술과 담배는 멀리하라.
      백해무익의 원수이다.  
 
24. 많이 웃어라.
      웃음은 젊음과 활력의 묘약이다.

25. 어제를 잊고 내일을 설계하라.
      어제는 이미 흘러갔다.

26. 충분히 잠을 자라.
      수면에 비례해서 수명도 늘어난다.

27. 매일 맨손 체조를 하라.
       돈 안 들이는 최고의 건강법이다.  
 
28. 쉬지 말고 움직여라.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29. 욕심을 버려라.
      남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30. 주어진 날들을 즐겁게 지내라.
      세상은 즐기기 위해 나온 것이다.

31. 적극적인 자세를 잃지 말라.
      무엇을 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32. 사람을 믿어라.
      내가 믿으면 그도 나를 믿는다.

33. 사랑의 눈으로 만물을 보라.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 펼쳐진다.

34. 나이 듦은 죄가 아니다.
      언제나 당당하라.

35. 쉬지 말고 배워라.
      배움에는 정년이 없다.

  
36. 비상금을 가지고 있어라. 
      무일푼이면 서러움을 당한다.

37. 종교를 가져라.
      삶의 내용이 달라진다.

38. 시간을 쪼개어 예술을 감상하라.
      그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39. 미움과 섭섭함을 잊어버려라.
      그래야 평화가 온다.

40. 말을 적게 하라.
      말이 많으면 모두가 싫어한다
 
41. 날마다 샤워를 하라.
      몸이 깨끗해야 손자들이 좋아한다.

42. 취미를 살려라.
      취미는 삶의 활력소이다.

  
43. 여행을 즐겨라.
       하루하루가 즐거움의 연속이다.

44.작은 배려에도 감사의 표현을 하라.
     그래야만 존경 받는다.

45. 컴퓨터와 친구가 되라.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된다.
  
46.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라.
      돈이 아니라 사람이 자산이다.

47. 부부금슬을 극대화 시켜라.
      행복의 날도 길지 않다.

48. 평생 현역으로 살아라.
      좋은 일, 궂은 일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49. 세상을 아름답게 보아라.
      보는 것만 내 몫이다.

50. 시간 관리를 잘하라.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이 세상과도 작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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