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주시는 말씀  

 

지나간 2018년은 정말 다사다난 그 자체였습니다.
대통령 탄핵 사태로 인하여, 온 나라에는 선동과 대립, 분노의 영이 뒤덮고 있어 암울하기만 한 해였습니다.
촛불 집회 덕에 새로 집권한 정부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정부의 잘못을 찾아 법정에 세우는 데 열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작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긍정의 언어로 국민을 안심시키는 본업에 무관심한 듯 보이는 모습에 많은 분들이 적지 않게 실망하고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룬다고 합니다.
이제 2018년은 지나갔으니 작년 같은 어둠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소원하며 2018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송구영신 예배, 2019년 첫 시간을 예배하며 맞이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첫 시간 나에게 주신 말씀은 잠언 12장 14절 말씀입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새번역: 사람은 열매 맺는 말을 하여 좋은 것을 넉넉하게 얻으며, 자기가 손수 일한 만큼 되돌려 받는다).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복록에 족하다.”란 말은 “좋은 것으로 가득 차 만족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좋은 말을 하면 복이 넘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말에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에 말씀으로 병자들을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우리 인간의 말에도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은 씨가 되어 언젠가 그 말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좋은 말을 하면 대개 그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민14:28).”
무심코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때로는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용헤원 목사님은 “언어는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움직인다. 생각이 밭이라면 언어는 씨앗이다. 좋은 생각에 좋은 말을 심으면 좋은 인생을 거둔다” 했습니다.
우리의 입술은 축복의 통로가 될 수가 있고, 저주의 통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 축복도 들어오고 저주도 들어옵니다.
그러기에 나의 입술에는 저주의 말이나 부정적인 말 대신에 긍정의 언어, 축복의 언어, 칭찬의 언어가 넘쳐나는 언어 사용을 생활화 하여야겠습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
잠언 12장 14절 하반 절에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는 말씀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손이 심은 대로 거두며 손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에 손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손이 선을 행하는 데  쓰여질 수 있도록 겸손히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여야 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손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시며 그 일을 가지고 축복도, 저주도 하십니다.
의인은 그 입의 진실한 말로 인하여 큰 만족을 얻지만 악인들은 불의한 이를 탐하고 말의 실수로 인하여  자신이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의인은 어떠한 환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도우셔서 승리케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것입니다.
언제나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언제나 좋은 것으로 심고 좋은 열매를 거두는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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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드개의 기도

 

 

 

이스라엘 민족이 아하수에로 왕 때 포로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왕의 궁궐 문지기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큰 일이 발생 했습니다.

아하수에로가 자기 왕위를 자랑코자 잔치를 베풀었을 때 왕후 와스디가 왕명에 불응하였습니다.

이에 왕은 무렴을 당하여 왕후를 다시 뽑기로 하였습니다.

 

모르드개는 이 사실을 알고 삼촌의 딸 에스더를 추천하여 나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에스더를 왕후로 뽑아 이스라엘 민족을 죽음에서 구원하는 사람으로 써달라고...'

 

그 기도가 응답되어 에스더는 왕후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궁에 이상한 사람이 지나는 것을 모르드개가 발견하고 이를 극비로 에스더에게 알렸습니다.

조사하여 잡아보니 왕을 암살하려던 자였습니다.

그래서 이를 잡아 처단 했습니다.

 

모르드개는 날마다 기도함으로 이같이 위험한 상황을 지혜롭게 판단하여 해결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표적을 낳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기도하는 모르드개와 에스더에게 지헤를 주셨듯이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지혜와 총명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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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온유한 자의 복
 
 

 


본문 말씀::마 5:5

"복이 있는 사람, 복받은 사람, 복받을 자",이러한 말은 우리가 자주 쓰고 또

 듣기를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축복의 능력도 권한도 없는 우리이지만

 덕담으로 여기고 칭찬과 축복으로 잘 쓰고 있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복의 기준과 성도가 바라고 추구하는 복의 기준이 다르다.

성도가 바라고 기뻐하는 복, 천국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영원한 축복 영원한 복이 천국을 소유한 자 천국의 시민권을 이미 받은 자입니다

죄를 깨닫는 것이 복이요 하나님을 소유함이 복이요 빛이신 주님 안에 거함이 복이다.

 


팔복 중에 온유 한자의 받을 복을 말씀합니다.

온유한 자: 천국이 저희 것이라 화평과 평화가 그를 즐겁게 할 것이라

그들의 열매는 풍성하고 아름답다 하나님의 위로와 긍휼을 받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온유할 수 있을까?

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믿는 믿음이다,

2) 하나님 손에 나를 내어 드리고 맡기고 의탁하는 순종의 믿음이다.

3), 성령 충만 함으로 온유와 순종의 사람이 된다(후 천적 변화)

4), 훈련을 통하여 (고난이 교사요 가난이 교사다) 온유함과 겸손을 배운다.

시편 37:11, 그르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시편 37: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보다 낫도다.

 


5), 인내하며 내면에 있는 혈기를 진정시킬 수 있는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6), 자기 본능을 재어하며 절재하며 자기를 내어주고 받아주는 흙 의 삶이다.

잠 16:32절,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25:28,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다.

온유함은, 나를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나를 대신하여 일하실 하나님을 100‰ 믿고 100‰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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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예화 :: 혼자 있는 시간에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시선 처리입니다. 혼밥할 때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주변 시선을 의식해 스마트폰을 봅니다. 어느새 스마트폰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강력한 도구가 됐습니다.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지켜보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큼 신실하고 정직한지 알게 됩니다. 혼자 있을 때 사탄의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다윗왕이 그랬습니다. 그는 홀로 한적한 시간에 은밀히 간음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홀로 있을 때는 영적인 깊이를 더해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낯선 곳에서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이것이 진짜 나 자신의 모습일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기도와 묵상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주변의 시선보다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실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을 다듬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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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진정한 행복

 

 

 

 

빌 3:12-14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러시아의 단편소설 『외투』의 이야기입니다.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당신의 평생 소원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매번 “아주 고급 외투를 갖는 것이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노인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평생 열심히 일하며 저축을 했고,

드디어 그는 꿈에 그리던 그 외투를 샀습니다.

그날은 성공한 날이자 목적을 이룬 날이었기에 큰 기대감과 흥분된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외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강도를 만나서 비싼 고급 외투를 강탈당했습니다.

그 노인은 절망했습니다.

단순히 고급 외투를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 성공과 함께 행복을 강탈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그 노인은 좌절의 늪에 빠졌고 너무 속상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유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계속 속고 삽니다.

한 사람도 행복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비참한 최후를 마쳤거나 허무주의로 살고 있습니다.

 


동양 최대의 성자이고 인도인의 태양이었던 간디도 죽기 전에

자신은 괴로운 사람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부지런히 뛰어 보았지만 그것은 궁극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

 


러나 예수를 만난 사람은 창녀가 되었든지 세리가 되었든지 구두닦이가 되었든지 간에

자기의 길을 또박또박 걸어갈 줄 압니다.

푯대가 있고 초점이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는 목표가 있는, 인생의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소유한 것보다도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기도

달려갈 길이 향방 없는 자처럼 내 달음질과 수고가 헛되지 않게 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성과 판단이 흐려져 어리석게 살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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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과부의 두렙 돈

 

 


 41절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절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절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성전에서 이름 없는 한 과부의 행동이 예수님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과부는 생활이 지극히 어려운 가운데서도 '모든'소유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과부가 낸 헌금은 기껏해야 두 렙돈으로, 그리 큰 액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의 헌금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이었기에 예수님께 감동을 준 것입니다. 이 과부는 재산에 집착하여 예수님의 말씀에 끝내 순종하지 못했던 부자 청년[막 10:17-22]과 대조됩니다.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생활비 전부'라는 말의 헬라어는 '그녀의 삶 전체'[her whole life]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부가 두 렙돈을 낸 것을 그녀의 삶 전체를 바친 것으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전적인 헌신'만이 예수님을 감동시킵니다.


내 자신에게는 너무 후하고 하나님에게는 너무 인색한 자들이 많습니다.

또 다 쓰고 남은 찌꺼기를 드리는 자들도 있습니다.

과부의 두 렙돈을 보면서 내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내 삶을 드린다는 마음으로

첫 것으로 귀한 것을 구별해서 드린다면 이것이 정성이고 헌신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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