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설날 가정예배 순서

사회 ; 가족중에서

묵상기도 ;   ---- 시편 23편을 읽고 기도 한다.- 인도자

찬      송 ;   - ---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대표기도 ;  ---------- -------------------   가족중

성경봉독 ;  -----   창세기 13 ; 14~18   --- 인도자와 가족

설     교 ;   ----   아브라함 이 받은 복   ----- -  인도자

찬       송 ;  - ---- 430장(주와 같이 길 가는것) -- 다 같이

회       상 ;    -----------------------------   인도자

-선조들의 유언이나 업적, 살아계실때의 교훈되는 모습을 이야기 합니다.

가정의 가풍이나 전통, 후손들이 기억해야 할 일 들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가족의 기도 ; ----------------------------     다 같이

-한 해의 가족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서로 기도합니다.

함께 또는 돌아가면서 기도하고 마무리도 가장이 자녀를 축복합니다-

폐        회 ;  ---------- 주기도문 -------------  다같이

제 목 ; 아브람함이 받은 복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가문에 주신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을 받는 가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어떤 가정을 이루면 하나님의 복이 대대로 흐를 수 있게 될까요?

1. 하나님을 만나고 바른 신앙의 결단을 할 때 축복하십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며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좋은 만남은 인생을 유익하게 변화시키지만,

잘못된 만남은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길로 향하게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것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이방신을 섬기던 자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남으로 믿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정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하나님을 만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아브라함은 죄의 장소를 떠나는 결단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결단은 쉬운 결단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이런 결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정도 하나님을 만나 악을 떠나는 결단을 함으로 큰 복을 받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갈 때 축복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큰 민족의 복, 약속의 땅의 성취,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순종할 때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시험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해서 이 시험을 통과 했고,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정도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상황이 올지라도 절대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믿음의 순종이 우리 가정에 뿌려진 씨앗이 되고,

훗날 거대한 나무가 되어 천대 만대에 빛나는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2018년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예비해 주신 복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이삭으로 계승되고,

또 야곱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진 것처럼 우리 가정에도

복의 계승이 충만하게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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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신년감사예배 Happy-New-Year Service in 2019

 

 

 

 

제목 : 승리하는 새해

말씀 : 롬8:31~39

1.언제나 희망은 있습니다.

할렐루야! 또다시 새해가 시작되어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2019년도 새롭게 밝아온 이 새해에는 더욱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충만한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승리와 평안과 기쁨이 충만한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도 새해의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어둡고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고 복된 말은 될수록 많으면 좋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말하는 사람 하기 좋아 좋고, 듣는 사람 기분 좋아 좋고, 또 자꾸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고 복된 말을 하면 마음이 그렇게 변화되어 그러한 삶이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주의 은혜가 가득한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는데도 먹고 살기 힘들다. 취업난이 심각하다, 정치가 실종되었다, 농촌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고 하고 또 서로 시기하고 비난하고 헐뜯는 등 너무 부정적이 어두운 말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암만 어려워도 옛날 전쟁 통에도 살았고, 독재정권아래서도 살았고, 배를 쫄쫄 곯을 때도 살았는데 지금이 그 때만 하겠습니까? 그때도 견디고 살았는데 이까짓 것 못 견디겠습니까?

더군다나 여러분, 아무리 상황이 힘들고 어렵고, 교회가 도전을 받고, 농촌의 실정이 점점 더 열악해져 간다해도 하나님 안에서는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주실 모든 은혜를 가지고 계시고 언제든지 은혜를 베풀어 주실 모든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모든 자에게 결국은 승리를 안겨다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언제나 희망과 소망가운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슥4:7절 말씀을 보십시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무리 큰 산 즉 장애물과 방해꾼과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앞에서는 산산이 무너져 평지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얼마든지 밝고 일어서서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면 모든 어둠과 절망적인 것들과 근심걱정과 두려움과 추함과 약함과 마귀 사탄과 죽음의 권세도 다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과 환경도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믿고 주님과 동행하면 세상의 모든 어둠의 세력을 이기고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막9:23절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다시 밝아온 이 새해에는 더욱 희망을 가지고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구원과 반석과 요새와 빛이 되시는 주님을 믿고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세상의 모든 약함과 어둠과 추함과 악함과 유혹과 도전과 상황을 이기고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밝고 아름답고 복된 새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밖에 없습니까?

3.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승리 할 수 있는 분명한 하나의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인 이상 우리는 결코 패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이면 하나님께 지키시고 인도하시는데 패배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사43:1절 보겠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남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상실하였었는데 우리를 끝내 버리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그의 보혈로 구속하심으로 주님의 자녀된 지위를 회복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므로 승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 아닙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인데 어찌 승리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부족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그리스도인입니다. 한번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 38,39절 보세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세상의 무슨 능력이나 권세나 무기나 협박이나 어떤 것도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 한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감히 누가 주님의 손안에 있는 것을 빼앗겠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확실하게 주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주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세상의 모든 약함과 어려움과 부족함과 죄와 유혹과 상황과 환경을 이기고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는 주님의 자녀라는 것, 그래서 주님의 소유라는 것을 기억하며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와 근심과 걱정 다 버리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손잡고 나아갈 때에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하나님이 우리 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시고 우리를 위해 주시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31절 말씀 보세요.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감히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솔직히 대통령이 내 편이 되고, 억만장자가 내편이 되고, 힘이 센 장수가 내편이 되어도 힘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든든한 백 하나 얻으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뇌물을 갖다 바치고 온갖 편의를 제공하며 어떻게든지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까? 또 높은 사람 하나 알고 있다는 것을 얼마나 자랑으로 여깁니까? 하물며 하나님이 내편이시면 어떻겠습니까? 높은 사람 하나 알고 있는 것도 영광으로 여기고 자랑거리로 여긴다면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영광이고 자랑이고 든든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성공한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시118:6절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이것도 다윗의 시편인데 여러분, 놀라운 고백 아닙니까? 다윗은 하나님이 내 편이시므로 누구도 나를 쓰러뜨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인생길이 아무 어렵고 힘든 일 없이 그저 만사형통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윗에게도 많은 고난도 있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살아남기 위하여 침을 질질 흘리며 벽에다 되지도 않는 아무 말이나 끄적이며 미친 사람 행세를 하는 굴욕적인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위대한 점은 언제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시고 도우셔서 마침내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물론 힘든 순간도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주저앉고 싶을 때로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끝내 주저앉힐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든지 그런 것들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37절도 보세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모든 일이 뭡니까? 앞의 35절에 나오는 말씀이죠.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즉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도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칼의 위험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런 것들이 결코 우리를 이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셔서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말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힘주시고 은혜주시고 능력주시는데 이기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빌4:13절을 보세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보십시오.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과 환경과 상황에 얽매어 희망도 기쁨도 없는 것처럼 살지 말고 의욕적으로 긍정적으로 힘 있게 사시기 바랍니다. 좀 힘들다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기나 한 것처럼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오직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의 능력과 은혜를 덧입어 힘차게 당당하게 생기 있게 살아가며 승리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가 승리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하면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하고 허물 많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심지어 죄 가운데 빠질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뭐냐? 바로 주님의 놀라운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의 그러한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된 모습을 인정하고 그래서 오직 주님만이 나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으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덧입어야 우리 죄를 가림 받고 그래서 주님 앞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주님과 동행하면 그 작은 믿음 하나 보시고 우리를 끝까지 주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놀라운 사랑 때문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고, 그래서 천국백성의 지위를 유지하며 승리하며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35절, 3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또 37절도 보세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즉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우리를 그 어떤 것도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도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고,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도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주님을 믿으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니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겠으며 감히 누가 우리를 빼앗아 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실수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한탄하고 원망하고 심지어는 죄 가운데 빠질 때가 있을지라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주저 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계속해서 그 길로 가면서도 그게 마치 정상으로 착각하고 무감각하게 그 가운데 살면 안 되지요. 분명히 죄를 미워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향하여 힘써 나아가야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온전할 수 없기 때문에 때때로 실수도 하고, 허물된 모습도 보이고, 심지어 죄 가운데 빠질 때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럴 때 낙심하고 절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천국에나 가겠나, 이래 가지고 무슨 주님의 일을 한다고, 나도 똑바로 못하는 주제에 봉사는 무슨 봉사, 전도는 무슨 전도하면서 의기소침해지고, 무기력해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못한다고 여러분의 자녀가 아닙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맨 날 속만 썩이고 다닌다고 버릴 수 있습니까? 잘 나도 내 새끼, 못나도 내 새끼, 잘해도 내 새끼, 잘못해도 내 새끼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의 근거를 여러분 자신에게 찾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또 끝까지 자녀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내가 똑똑하고 잘나고 깨끗하고 의롭고 아름다워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그 은혜가 감사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영광스러워서, 주님의 은혜에 백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 싶어서 하는 것 뿐이지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감사와 기쁨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하고 부족하고 허물이 많고 심지어 죄악가운데 빠질 때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주님의 사랑으로 녹여 버려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놀라운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도 놀라운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전능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하나님이 내 편이 되셨고, 지금도 여전히 놀라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든든한 백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과 어둠과 약함과 죄와 유혹과 도전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라도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주님은 결코 실패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에 세상의 안목으로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도리어 십자가를 통하여 위대한 승리를 이루신 것처럼 우리도 혹시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라도 그것은 단지 승리를 향한 하나의 작은 과정일 뿐 주님 안에는 승리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새롭게 밝아온 219년 한해도 아니 저 영원한 천국에 도착하는 그날까지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의 유일한 구원과 소망과 능력과 반석이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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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송구영신예배 -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본 문 : 여호수아 3:14 - 17

제 목 :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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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2018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습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2005년도 뒤돌아보면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은 한해였는지 모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랬고, 정치적으로도 그랬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밝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했지만 그러나 늘 들려오는 소리는 거짓과 사기와 부정과 부패와 폭력과 강도라는 달갑지 않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정말 책임있고 깨끗한,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한 그런 정치다운 정치를 기대해봤지만 정치인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권모술수와 싸움과 욕설과 권력욕에만 급급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새로 찾아온 이 한해도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면서 회의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자화상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간의 부정적인 자화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은 오늘도 은혜를 베풀려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인간 스스로는 희망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과 위로하심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금 밝아온 이 새해에는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희망을 찾고 거기서 은혜와 기쁨과 생명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는 부족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미련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충만하십니다. 그 능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그분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며 그분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이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기쁨 가운데 이 새롭게 밝아온 한해를 살아가는 비결이겠습니까?

1.말씀을 앞세우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그렇게도 손꼽아 기다려왔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제 이 요단강만 건너면 그들이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려고 할 때는 하필이면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우기였습니다. 그래서 요단강물은 홍수로 인하여 금방이라도 둑을 넘을 기세로 넘실거리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낙심도 되었고, 좌절과 실의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염려하지 말아라. 다만 내가 시키는대로 하여라 하면서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무조건 요단강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넘칠 듯이 흐르던 요단강이 멈추어 설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정말 어이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적 논리로는 당치도 않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백성의 앞장을 서게 됩니다. 그리고는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집어 삼킬 듯이 넘실대던 요단강물이 신기하게 멈추어 서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댐을 쌓은 것처럼 물이 멈추어 위쪽으로 쌓이고 그들이 서있는 곳은 마른땅 같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차례로 물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놀라움과 감격과 기쁨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가나안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들이 삼키려고 넘실대던 요단강이, 가나안땅에 들어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중의 하나였던 요단강이 도리어 그들에게 감격과 기쁨을 주며 이스라엘의 가나안으로의 행진을 축하해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언약궤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상징하는 상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먼저 강에 들어가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건너라는 것이었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강중앙에 서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것을 의지하며 걱정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강을 건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어떤 세력이라해도 너를 삼키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어떤 것도 가나안 복지를 향해 달려가는 너의 길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 언약궤를 바라보며,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며 그것을 바라보며 강을 건넜고, 그럴 때 가나안을 건너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요단강물도 결코 그들의 발목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달려가는 순례객들입니다. 여러분의 그 순례길의 막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막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세상의 물결이 여러분을 삼키려하고 있습니까? 무엇이 가나안 복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여러분을 실망케 하고, 좌절케하고,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러나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망이나 불평일랑 더더욱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다만 그것을 좇아가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의지하며,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제거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놓여있는 모든 장애물들은 물러갈 것입니다. 말씀앞에서 모든 대적자들은 쫓겨 갈 것입니다. 아무쪼록 새롭게 다가온 이 새해에는 오직 말씀을 바라보며 신뢰하며 의지하며 말씀안에서 달려갈때에 여러분의 발목을 잡고, 여러분을 힘들고 지치고 낙심케 했던 모든 어두운 것들에서 온전히 해방되어 진정한 가나안복지의 은혜를 누리며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도전 세력과의 전쟁에 동참해야 합니다.

가나안 복지의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 또 한가지 생각한다면 그것은 가나안 복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며 요단강을 건넘으로 그들이 할 일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며 요단강을 건너긴 했지만 아직도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나안 족속들을 물리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가까스로 가나안땅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러나 그 땅은 비어 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블레셋 족속을 비롯한 가나안 일곱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견고한 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싸워서 이겨야만 그땅을 차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난관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었던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이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무너뜨려야만 했습니다. 만약 그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그들은 가나안복지의 은혜를 누릴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또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작전에 참여합니다. 어쩌면 정말 무모한 싸움이었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을 앞세우고 온 백성이 그 뒤를 따르며 그 성을 일주일 동안이나 돌았습니다. 그 견고한 성 주위를 그저 돌고 또 도는 것이었습니다. 위에는 여리고성의 군인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성위에서 대대적인 공세를 취한다면 그들은 여지없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무모한 방법에 회의가 따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그저 묵묵히 돌고 또 돌았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그 행렬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외치라고 했을 때 일제히 함성을 질렀고 그러자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물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은 그냥 거저로 가만히 앉아서 들어가야 할 땅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이 이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함께 동참하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행렬에 같이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땅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세력들을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가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나안 복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길을 막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마귀 사탄은 우리를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별의 별 짓을 다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무지를 동원합니다. 때로는 완고함을, 때로는 문화를, 때로는 과학을, 때로는 돈을, 때로는 향락을, 때로는 무사안일함을, 때로는 권력을, 때로는 지식을, 때로는 환난과 시험을, 심지어는 가족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닫고 그것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쩌면 내 힘만으로는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내 힘만으로는 확실히 안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는 길을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도우셔서 우리로 하여금 능히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새로운 2019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힘든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어둡게 찾아온 새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그 어떤 것보다도 세상의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권력보다도 더 든든한 빽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분을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다만 그 분을 믿고 신뢰하며 따르기만 하면 그것들은 모두가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새롭게 찾아온 이 새해에는 더욱 주님을 바라보는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능력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서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시기 바랍니다. 모든 방해꾼들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가나안복지를 향할 발걸음을 방해하는 것이 환경이든 상황이든 사람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아니면 나 자신이든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이 새해가 되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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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성탄절설교] 마리아의 성탄

 


 


제목 : 마리아의 성탄

말씀 : 눅1:26-38

메리 크리스마스! 옆에 분과 성탄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이 뜻깊은 성탄을 맞이하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위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께서 오신 이 날에 우리 모든 성도님들과 이 땅 만민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사랑과 평화가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탄절은 주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은혜와 평화와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낮고 천한 땅에 오신 날입니다. 그래서 이 날은 세상의 그 어떤 날보다도, 그 어떤 축제일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기쁜 날이고 가장 감격적인 날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 주신 이 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자유와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일보다 더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준들 이보다 기쁘겠으며, 세상 모든 권세를 주신들 이보다 기쁘겠습니까? 그럴 수 없지요. 주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의 은총에 비하며 그까짓 세상적인 복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도 안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성탄절에 진정 우리 가운데 생명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성탄절을 맞아 이 말씀을 나눌 때에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성탄의 의미

주님안에 있는 생명과 자유와 기쁨과 평화를 바르게 누리려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이걸 모르면 아무리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해도 마치 실컷 울고 나서 누가 죽었느냐고 묻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성탄을 기리고 즐거워해도 주님의 생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구세주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눅2:11절 말씀 보세요.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주님의 탄생을 구세주 탄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인류의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그냥 단순히 성인군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선생이나 지혜자나 능력자가 아니라 구주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의 권세에서 구해 주실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1:21절에서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무어라고요?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선생, 선한 분, 지혜자, 권세자가 아닌 죄에서 건져주실 그래서 지옥의 권세에서 건져주실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2)신인(神人) 사이의 화해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오신 사건의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의미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는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눅2:14절 말씀을 보세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하나님께는 영광이 돌려지는 사건이요, 인류에게는 평화가 임하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평화란 우선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심으로써 죄의 담으로 막혀있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벽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2:2절에서는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 않는다면 단순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하나님과 나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물론 그럴 수도 없지만 설령 아무리 세상에서 평화를 누리고 자유를 누린다해도 나는 여전히 죄와 어둠과 사탄과 지옥의 권세 아래 있게 되는데 그래서 결국 영원한 형벌가운데 처하게 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걸 위해서 오신 거예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죄의 담을 헐어버리고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려고 그래서 죄와 사망과 마귀와 지옥의 권세를 멸해 버리고 진정한 생명과 기쁨과 화목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3)지상 최대의 기쁜 소식입니다.

눅2:10에 보세요.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주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이 지상 최대의 빅뉴스입니다 요즘 경제가 대불황이라고 하는데 경제가 회복된다는 소식도 빅뉴스입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나도 빅뉴스입니다. 전쟁이 종료되고 평화가 온다는 것도 빅뉴스입니다. 자식이 출세하고 돈덩어리가 들어와도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그런 건 별거 아닙니다. 얼마 못갑니다. 온 인류에게 미치는 소식도 아닙니다. 영원전부터 영원후까지 미치는 소식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 오신 소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원전부터 영원후까지 그야말로 영원토록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완벽한 부족함이 없는 기쁜 소식입니다.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성탄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물론 세상적으로도 건강하게 돈많이 벌고 출세하고 잘먹고 잘사시기 바랍니다. 그런 세상적인 것들 때문에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 주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진정하고도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화를 주신 것으로 인하여 더욱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주님을 온전히 영접하여 진정한 생명의 은총을 더욱 풍족하게 누리는 이 성탄절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성탄을 맞는 자세

여러분, 주님의 탄생은 이토록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만 그러나 내가 그분을 영접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이런 놀라운 소식을 갖고 찾아오신 주님을 내 안으로 모셔 들여야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래야 새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질까요?

1)겸손하게 엎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속에서 마리아는 겸손으로 주님을 맞이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38절 말씀보세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주의 계집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계집종이란 종이 여럿이 있을 때에 그 종들간에도 서열이 있는데 그 중에서고 가장 낮은 서열의 계집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제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봐야 별거 아닙니다. 아는 게 있으면 얼마나 있겠으며, 잘나면 얼마나 잘났겠습니까? 주님의 그 능력과 지혜와 사랑과 거룩과 의 앞에서 모든 인생은 하찮은 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가 주인인줄 착각합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양 착각합니다. 모두가 자기 것인양 착각합니다. 어림없는 소립니다. 웃기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그저 종입니다. 내 생명도 내 시간도 내 물질도 내 아름다움도 내 지식도 내일이라도 거두어가면 그만입니다. 끝장입니다.

여러분, 주님 앞에서 낮추시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낮추는 자, 낮추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자 그가 결국 주의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승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약4:10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아무쪼록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주앞에서 낮추심으로 주의 은총을 충만히 누리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믿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겸손하게 엎드리며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38절 말씀 다시 보세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마리아는 네가 잉태하여 아기를 낳을 것인데 그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마리아도 깜짝 놀랐습니다. 주님, 저는 요셉과 약혼은 했지만 아직 결혼은 안했습니다. 그리고 맹세코 남녀간의 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아기를 낳는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천사가 말합니다. 걱정 말아라. 너는 성령으로 인하여 잉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나실 자는 사람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그러자 마리아는 즉시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시니 말씀대로 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면 하시겠지요. 예, 믿습니다. 말씀대로 될 것입니다라고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그 믿음으로 메시야의 어머니가 되는 영광도 얻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습니다. 반드시 이룹니다. 그래서 마5:1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주님은 오셨고, 말씀대로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말씀대로 우리는 부활할 것이고, 말씀대로 심판을 받게 되고, 말씀대로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대로 주님을 믿는 자들은 죄사함의 은총을 덧입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여러분의 그 알량한 이성이나 논리나 경험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유일한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아멘으로 받아들여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3)순종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여러분, 38절에 다시 보십시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어다” 이 말씀은 믿음의 고백임과 동시에 순종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주여, 믿습니다. 믿음으로 그대로 하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거 절대로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희생을 각오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처녀가 잉태를 하게 되면 결국 간음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요셉에게 버림 당하는 것은 물론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마리아가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과연 누가 얼마나 믿어 줄까요? 결혼도 하지 않은 마리아가 임신할 것을 알고 사람들이 마리아를 비난하고 욕하고 돌로 치려고 할 때 내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노라고 변명을 한다면 과연 누가 얼마나 믿어줄까요?

아무도 안 믿어 줄 것입니다. 어쩌면 요셉에게 파혼당할 수도 있습니다. 동네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으로 잉태될 것이라는 말씀은 마리아로서는 너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믿었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자기 몸을 드렸습니다. 모든 오해를 무릎쓰고,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기 몸을 내어 드렸습니다.

여러분, 믿으면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순종은 입술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로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생명일지라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놓을 수 있는 것, 그게 믿음이고 순종이고 헌신이고 그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소식은 지상 최대의 빅 뉴스입니다. 가장 큰 기쁨의 날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진정한 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주시려고 우리를 찾아오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놀라운 은총을 주시려고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온전히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앞에 겸손히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귀한 것을 드려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여러분과 주님 사이의 온전한 만남이 이루어짐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그 생명과 자유와 평화와 기쁨과 은혜가 더욱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주님이 주신 생명의 충성한 은총을 이웃과도 함께 나눔으로써 이 땅위에 주님의 생명의 은혜가 더욱 풍성해 지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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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주일 예배 설교 (대강절 예배 설교 )

 

 


제목 :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의미

서    론
부모님들은 자녀를 낳으면, 자기들의 희망을 담아 이름을 지어주곤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름 중 거의 의미가 없는 이름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이스라엘도 우리나라와 문화가 비슷하여 자녀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줄 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신앙과 관련을 지어 이름을 지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사람이 이름을 지어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지어주시고 천사를 통하여 알리셨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명과 직명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예수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으로서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가 예수님께서 마리아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었을 때 요셉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름의 의미대로 구원자로 오셔서 구원자로 사시면서 구원의 사역을 잘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1)예수 그리스도는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 죄인입니다.

롬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예수님은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려고 제물이 되어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히9: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9:14“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9:28“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었고”
히10:10“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사”

2)예수 그리스도는 각 가지 환란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마8:23-27에 보면,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호수를 항해하다가 큰 풍랑을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셔서 잔잔케 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여기서 풍랑은 영적으로 인생의 환란을 의미합니다.


3)예수 그리스도는 질병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마4:23-25에 보면 예수님께서 백성 중에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 소문을 듣고 사방에서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다 고쳐주셨습니다.
4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쳐주신 사건이 너무 많으므로 일일이 소개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치료자로 이미 예언이 되었고 치료목회를 통하여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사29:18“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사35:5-6“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는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사53: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이상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셔서 병든 자를 치료하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4)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롬6:2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엡2:1“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5)예수 그리스도는 저주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갈3: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6)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다 지킬 수 없는 율법을 다 지키시고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마5:17“내가 온 것은 선지자나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롬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2.임마누엘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약7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으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알려주셨습니다.
사7:14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임은 함께, 마누는 우리와 , 엘은 하나님 입니다.
또 천사가 요셉에게 태어나실 예수님의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마1:23-24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시청각적으로 보여 주시기 위해서 육을 입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마28:20에 보면, 예수님께서 전도자에게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엄청난 축복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복을 받고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나 요셉이 큰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3.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이름이 아니라 직명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서 구약시대에는 제사장, 선지자, 왕이 취임을 할 때 선지자가 기름을 부어 취임을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시는 것은 3직을 다 감당하러 오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1)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평강의 왕이십니다.
왕은 나라를 다스리고 세우고 백성을 보호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망하지 않는 하늘나라를 세우시고 세상 모든 백성을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려고 오셔서 그 일을 지금까지 하시고 계십니다.

2)선지자이십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인데 예수님은 한 생애를 사시면서 이일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멈추시는 곳마다 그곳에서 열심히 하늘의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마4: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마7:28-29“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3)제사장이십니다.
구약시대 제사장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 백성들의 죄를 제사를 통하여 해결하여 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대 제사장으로 오셨고, 제물로 오셔서 우리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마20:28"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히3:1“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 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7:26“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히7:27“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히9: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결 론
1.하나님께서 이름을 지어주시고 천사가 알려준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와 죽음과 불행에서 구원하시는 메시야이십니다.
2.왕과 제사장과 선지자 3직을 감당하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하실 메시야입니다.
3.과거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메시야 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공으로 모시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분을 힘있게 알리고 전하는 명절로 보내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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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장례식 설교 (입관 예배 설교 )성도가 얻을 안식

 

 

 

말씀 시편 7 : 13-17)

 

성도가 이 땅 위의 삶을 살 때 믿음을 지키고

충성된 삶을 살므로써 받는 복락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 가지 이겠지만. 본문에서는 안식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1,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

하나님의 장막 속에 있는 성도는 펀안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이는 마치 뜨거운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가

시원한 오아시스를 만나 그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다.

성도는 현생에서 얼마나 많은 고난 가운대서 방황했던가!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안식의 장악을 두르심으로서 위로와 안식을 공급해 주신다.

여기에서 성도는 영원한 안7과 위로를 얻게 된다.

 

2, 그들의 목자장이 되신다.

주님은 자신을 믿는 성도들의 대 목자장이 되선서,

그들을 영원한 생명 강가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공급하신다.

이 EKd 위에 있는 지도자는 한결같이 흠이 많고 불완전하지만

주님만은 의로우시고 완전하셔서 결단코 실패하지 않으신다.

그는 또한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시기에 고통의 눈물을 씻어 주시고

위로와 안위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그분 안에 참 평화와 기쁨이 있다.

 

현생의 삶을 사는 성도는 언제나

찬바람이 휘몰아 치고 흔들리는 불안한 세상 가운데 처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 속떼서도 고인은 믿음을 지키고

천국의 빛나는 소망을 바라보면서 충성, 헌신된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고인이 누릴 천국의 영광과 안위는 지극히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 흙 속에 잠들 무렵 (하관-1) (고전 10 : 1-4) ***


 

하나님은 인간의 시조 아담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빛어 만드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일생동안을 흙과 더붙어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다시 흙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

 

1, 슬픔의 시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고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인간은 때가 되면 흙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믿음의 눈으로 이를 지켜보는 자들은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다.

 

2, 부활을 기약함.

주를 믿는 신자으 죽음이 복된 이유는 부활의 새 아침을 기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의'죽는다'는 표현은 '잠잔다'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야 온당하다.

불신자들은 육체의 죽음으로 영원한 죽음을 당하고야 말지만,

신자는 육신의 죽음으로 그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오히려 새로운 삶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3, 영원한 생명세계로의 전이

신자의 죽음은 삶의 종지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로 들어가는 첫 단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생명을 청산할 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간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 갑니다"라고 찬송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천국은 이땅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슬픈 일이지만 다시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을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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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장례예식설교 (임종,입관,발인,하관,위로 예배 설교)

 

 


 

장례예배란

장례예식을 잘 치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부활 신앙의 표현이기도 하다. 죽음은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정의 중대한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 국가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일들이 뒤따르는 인간사의 중대한 장면이다.

성도의 시신은 매우 소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그 이유는 생명의 부활로 나올 몸이기 때문이다. 영혼이 담겨있던 육신을 정중히 다루는 것이 유가족에 대한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혼이 떠난 육신을 지나치게 소중히 여겨 우상시할 필요는 없다.

장례의 의의는 무엇보다 유족들을 위로하면서 복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과 이것을 계기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크게 도모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항상 마음에 두고 봉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장례예식을 통해 부활의 소망을 다시 한 번 확신하는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다.

장례식에는 임종예배, 입관식, 발인(출관)식, 하관식, 위로예배의 다섯 가지 예식이 있다. 이 가운데 입관식, 발인(출관)식, 하관식은 매우 중요한 예식이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장례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발인(출관)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장례예배 실제

 

1) 임종예배 설교
사람의 호흡이 끊어져 인생의 종말을 고하며, 천국에 들어가는 때가 곧 임종이다. 세상에서 오래 살았다 하더라도 구원의 확신이 없이 임종하였다면 그 사람에게는 개인적으로 다시없는 비극이다.

* 어떻게 운명이 임박한 것을 알 수 있는가? 심장이 거의 멎어가는 사람은 그의 눈동자를 보면 안다.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멎어 있으면 곧 떠날 때가 된 것이다. 그때에 손발을 살펴보아서 손톱과 발톱이 새까매지면 운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운명하려 할 때 집례자가 기억할 것은 예수님만 의지하도록 권면하고, 마지막 임종 기도를 드리며, 찬송을 계속 부르는 것이 좋다. 또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임종시에 신앙고백을 듣고 유족들에게 “예수님을 잘 믿어라”는 한 마디의 유언을 남길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 운명한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운명한 다음 중요한 것은 입관식, 발인(출관)식, 하관식이다. 그러므로 임종예배가 끝나면 교회는 즉시 상가와 장례절차를 결정하고 최후의 행사에 대하여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상을 당한 식구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고와 행정상 법적 절차를 밟는 일에 협력하도록 한다. 우선 의사의 사망진단서를 받아야 한다. 사망진단서를 가지고 동사무소에 가면 매장 허가서를 뗄 수 있다. 다 준비되어 있으면 매장허가서를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예배 후에 장례 일정을 논의하는 것이 좋다. 이때 교회법을 따르도록 다짐을 받아야 하고 시신 앞에서 배례나 곡을 하지 않아야 하며, 조객들은 묵도로 예의를 갖추도록 미리 알려두면 좋다.

 

2) 입관예배설교
입관예배는 고인의 시신을 씻은 후 옷을 입혀서 관에 모시고 드린다. 관에 뚜껑을 덮고 결관하여 관보를 씌우고 드리기도 하고, 관에 뚜껑을 덮지 않고 옆에 두고 드리기도 한다. 입관은 원칙적으로 임종 후 24시간이 지난 후에 한다.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다시 소생할까 해서 24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 앓던 분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별세 후 24시간이 경과되지 않았더라도 유족들의 요구에 따라 서두를 수도 있고 잠시 연장할 수도 있다.

묵도를 마치면 찬송을 부르고 성경봉독을 하고 설교를 하고 기도로 끝낸다. 입관예배를 마치고 나면 발인예배 시간과 장소를 자세히 알리고 폐회한다. 예배 후에 몇 가지 확인할 사항이 있다. 유족이 상을 당해 보지 않았거나 전혀 장지에 관한 일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준비물과 과정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 상주는 입관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상복을 입어야 한다.
* 매장허가서를 받아 놓았는지 확인을 한다.
* 영구차는 준비되었는지 확인을 한다.
* 장지까지 따라갈 교인의 인원을 참고로 알려준다.
* 장지에 갈 음식 장만을 확인한다.

 

3) 발인(출관)예배
불신자들은 발인식을 영결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합당치 않다. 그 말의 의미가 영원히 보지 못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이별이 없음을 생각할 때, 영결식이란 말 대신에 장례식 혹은 발인식, 출관식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발인예배의 집례자는 축도를 마치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구차를 떠나보내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예배 후 모든 조객들을 좌우로 질서 있게 세우고 집례자가 사진 든 사람의 왼쪽에 서서 팔을 잡고 앞으로 출발한다. 그 뒤에 꽃이 따라고, 상주가 따르고, 유족들이 따르고, 조객들이 따라 나와 영구차에까지 오면 사진은 집례한 목사님이 탈 선두차 앞에 실어 놓는다. 운구한 다음에 집례자는 영구차의 관을 넣는 쪽에 서고 그 옆에 상주와 유족들을 쭉 서게 하고 장지에 함께 갈 조객들은 먼저 차에 타도록 하고 산에 가지 못할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킨다. 집례자는 인사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아야 한다. 인사가 끝나면 상주들을 지시하여 차에 태운다.

집례자가 상주들이 탄 차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고 내려와서 선두차에 타고 출발하면 그 뒤에 영구차와 조객들의 차가 따르게 된다.

 

4) 하관예배
영구차가 산에 도착하면 발인식의 행렬과 같은 요령으로 묘지까지 운구한다. 이때 성가대가 있으면 찬송가 543장을 부르는 것이 좋다. 하관예배를 드릴 때에도 집례자는 관머리쪽에 서서 지휘를 하며 관을 내리게 한다. 관이 안장된 다음에 관보, 명정, 횡대를 다 덮고 다시 세 번째 횡대를 열어서 두 번째 횡대 위에 놓고 나서 상주는 집례자의 오른쪽에 서고 조객들은 집례자의 왼쪽에 서게 한다.

찬송은 291장같이 천국을 사모하는 것을 부르고 설교도 부활에 대한 것이 좋다. 특히 하관예배는 흙으로 된 몸을 흙으로 돌려보내고 산 사람끼리 돌아와야 하는 슬픔의 절정을 이루기 때문에 새로운 결심과 부활의 소망을 주는 말씀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모든 슬픔은 흙속에 묻어 버리고 다시 무덤을 찾아올 때는 기쁜 소식들을 가지고 올 수 있도록 축복기도를 하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축도를 하고 하관예배가 마쳐지면 복토(覆土)를 한다. 집례자는 복토 순서를 말해야 한다. “복토 순서는 집례자, 상배자(미망인), 유족, 친척, 교역자, 장로님, 친구의 순서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제일 먼저 집례자가 복토를 한다. 복토를 하는 동안 성도들로 하여금 찬송을 부르도록 하는 것이 좋다. 복토가 끝나면 집례자는 폐회선언을 한다.

 

5) 위로예배
산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상주들을 다 모아 놓고 위로예배를 드림으로써 모든 장례절차는 끝나게 된다. 위로예배는 상주들이 가장 허전해 하는 때이므로 더욱 정성으로 인도해야 한다. 이때 교역자는 다른 급한 심방이 있어도 내색하지 말아야 하며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 끝마쳐야 한다. 이때 상주에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좋다.

장례 때의 가장 많은 질문들

1. 임종시 곡을 합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별세했을 때 슬픔은 당연한 것입니다. 자연스런 감정이 북받쳐 우는 것은 괜찮습니다. 다만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계속 곡하는 것과 옛날 유교식 장례에서 ‘아이고 아이고!’하면서 곡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2. 상을 당했다고 알리는 등을 다는 것과 촛불 켜는 것, 향을 사용해도 됩니까?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상가임을 알리고 등을 다는 것은 문상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말하듯 귀신을 불러오는 것은 아닙니다. 촛불은 어두음을 쫓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향을 피우는 것은 상가의 상징행위로 혹은 분위기나 냄새 제거의 목적으로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3. 위패를 모시거나 지방을 써서 붙여도 됩니까?
이것은 기독교인으로 거부합니다. 유교식 장례법으로 사당이 없는 가정에서 화선지에 ‘누구누구씨 신위’라고 위패를 써서 예식을 가졌었습니다. 지방을 써서 모시는 것도 돌아가신 혼령이 그 자리에 임재한다는 빙의의 신앙 표현입니다. 믿는 이들은 조상의 넋을 종이에 써서 붙여 모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모셔야 합니다. 추모식 때 중심의 상징이 필요한 경우 위패나 지방 대신 아무개 성도의 제 몇 주기 추모제라고 써서 붙이는 것은 괜찮습니다. 

4. 상례시 음식물을 상위에 진설해도 됩니까?
고인의 영정 앞에 음식을 차리는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인이 평소에 잘 드시던 음식을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하여 차려놓는 것을 말릴 필요는 없습니다. 죽은 자는 음식을 차려 놓아도 먹을 수 없습니다. 불필요하게 유가족들을 괴롭히는 일입니다.

5. 운명한 후 고인의 옷가지를 지붕으로 던지거나 사잣밥을 준비하는 것은?
귀신들이 황천까지 안내한다는 의식의 표현입니다. 믿는 이들의 영혼은 천사들에게 받들려 하늘에 올라가지 귀신이나 사자들이 안내하는 것이 아니기에 필요 없습니다.

6. 수의와 유가족들의 복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는 이들 가운데도 고급 수의를 고집하는 경우를 봅니다. 몇 백만원, 혹은 유명한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몇 천만원까지 한다니 할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수의를 미리 마련하면 장수한다는 속설도 믿을 필요 없습니다. 간소한 수의를 마련하는 것은 좋습니다. 꼭 삼베로 만든 수의가 아니어도 평소에 잘 입던 양복 등을 입혀도 됩니다. 유가족들의 경우 집안의 풍습대로 하되 삼체로 만든 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자는 흰색, 혹은 검은 색 치마 저고리를 입거나 깨끗한 검은 양장을 입어도 될 것이며, 남자는 검정색 양복에 삼베 상장을 팔에 끼는 것도 무방합니다.

7. 임종시 돌아가는 분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이건 조심해야 합니다. 금방 돌아가실 듯 보여도 나중에 가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환자 앞에서는 장례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강압적으로 고백을 받아내려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예수님 믿으세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평안하세요” 정도로 말씀드려도 다들 알아듣습니다. 운명시간이 가까워 오면 오히려 가족들보다 환자 분이 마음이 차분하답니다.

8. 비기독교인의 상가에 가서 음식을 먹는 것은 괜찮습니까?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사도의 조언처럼 믿음이 연약한 자를 실족케 할 경우를 위해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 종교적인 이유로 거리낌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두어 가지 이유에서 상가에서 음식을 잘 먹지 않습니다. 하나는 유가족을 생각해서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분주하고 슬퍼하는 가족들 앞에서 떠들며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고, 봉사하는 이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며, 또 다른 이유는 음식을 여러 사람들이 먹다보니 위생적으로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멀리 간 경우, 혹은 가족들과 대화가 필요한 경우에 간단하게 떡이나 차를 마시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9. 문상을 가서 어떤 말을 상주에게 해야 합니까?
정중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로 받으세요. 천국 가셨습니다. 힘내세요. 주안에서 큰 위로 있으시기 바랍니다.” 등으로 말씀드리면 됩니다. 저는 특히 큰 며느님이나 둘째 혹은 셋째나 고인을 모시고 살았던 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 동안 고생 많으셨노라고 혹은 “고인에게 제가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면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10. 문상객이 뜸할 때 상주는 휴식을 취해도 됩니까?
본래 예로는 어긋나겠지만 기계가 아닌 이상 상주도 쉬어야 합니다. 사람의 체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끼리 순번을 정해 쉬고, 혹시 조문하러 갔을 때 내가 아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조용히 물러 나와야 합니다. 어쩌다 쉬러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와서 불러내면 어찌 쉬겠습니까? 나중에 연락을 드려 그때 갔었는데 뵙지 못했노라고 하면 더욱 감사할 것입니다.

11. 문상 시에 기독교인이 영정 앞에 절을 해도 됩니까?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제사드릴 때와 문상 때는 다릅니다. 제사의 죽은 자를 위해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조상을 귀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가는 길에 예를 표하는 방법으로 절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아까 적은 음식문제처럼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절하기보다 고인을 추모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나아보입니다.

12. 상주와는 어떻게 예를 표해야 하나요? 절을 합니까? 일어서서 인사합니까?
입식인 경우, 가정에서 장례를 치를 때 절을 합니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도 무방합니다. 저는 절하기보다 허리를 굽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조문객이 적은 가정은 문제가 아니지만 수천 명, 혹은 수백 명이 찾아오는데 절을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 상주들이 힘들어 견딜 수 없습니다. 상주가 엎드리면 나도 엎드리고 그렇지 않은 경우 서서 절을 해도 무례가 아닙니다.

13. 입관 때 반함을 하거나 고인의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잘라 넣어도 됩니까?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배격합니다.

14. 추모예배는 장자의 집에서만 드리나요?
옛날 농경사회에서 제사를 드릴 때 장자가 무언가 있어야 제삿밥이라도 먹는다 생각해서 장자에게 유산을 물려주어 제사도 장자가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법이 바뀌어 딸들도 유산을 상속하게 됩니다. 추모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고인을 추모하고, 가족끼리 화목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둘째나 셋째, 혹은 따님의 가정에서 추모예배를 드려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15. 화장을 해도 됩니까?
아직도 몇몇 교회에서는 매장만을 고집하고 가르칩니다만 현재 우리나라 국토는 좁은데 매장만 고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못되어 육신은 먼지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먼저 화장의 풍습을 권장해야 합니다. 화장 후 유골을 부수어 강가에 뿌리거나 산기슭에 뿌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자여보호에 맞지 않고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보다는 평소에 잘 가는 기도원이나 교회 앞마당에 뿌리는 것이 의미 있고, 요즘엔 납골당이 잘 되어 있어서 화장을 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습니다.

16. 이장을 할 경우 몇 년째에 합니까?
보통 20년이 지난 후 합니다. 그래야 완전히 육탈되어 백골만 남아 이장하기 좋습니다. 만약 부득한 경우에 이장할 때는 마음이 약한 이나 여성들은 피하고, 대표가 산 일 하는 사람들과 협력하여 이장하는 것이 좋습니다.

17. 매장 시 지방에 따라 시신만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괜찮을까요?
지방에 따라 매장할 때 관에서 유해를 꺼내 따로 매장하는 탈골 방법도 있습니다. 그것은 지방의 풍습에 따르면 되고, 그 때문에 논란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 대신 간소하게 목관을 사서 써야 경제적입니다.

18. 고인이 사용하던 성경을 관에 넣어도 됩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 이장할 때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시신 손가락 유골이 성경책을 파고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히려 성경 등은 후손이 잘 보존하면서 신앙 유산으로 남기면 좋습니다. 믿음으로 천국 가는 것이며, 천국에서 하나님을 직접 만나 예배하므로 성경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19. 묘 앞에 세우는 비석에는 무슨 말을 적어 넣을까요?
아무개 성도, 아무개 집사, 권사, 장로 등으로 쓰되 비석은 간단하고 검소하게 합니다. 가정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세우면 됩니다. 크다고 자랑할 일도 부러워할 것도 아니고 적다고 부끄럽게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비석에 아들 이름만 새기거나 아들, 딸, 사위, 후손의 이름을 새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인이 살아 생전의 가족들의 이름은 손자들까지 놓으면 나중에 아이들과 고인과의 연결고리가 되므로 좋습니다. 고인의 이름 생년월일, 간단한 성구들을 넣으실 수 있으면 그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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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에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지나간 2018년은 정말 다사다난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2018년은 지나갔으니 작년 같은 어둠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소원하며 2018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송구영신 예배, 2019년 첫 시간을 예배하며 맞이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첫 시간 나에게 주신 말씀은 잠언 12장 14절 말씀입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새번역: 사람은 열매 맺는 말을 하여 좋은 것을 넉넉하게 얻으며, 자기가 손수 일한 만큼 되돌려 받는다).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복록에 족하다.”란 말은 “좋은 것으로 가득 차 만족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좋은 말을 하면 복이 넘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말에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에 말씀으로 병자들을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우리 인간의 말에도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은 씨가 되어 언젠가 그 말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좋은 말을 하면 대개 그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민14:28).”
무심코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때로는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서윤석 목사님은 “언어는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움직인다. 생각이 밭이라면 언어는 씨앗이다. 좋은 생각에 좋은 말을 심으면 좋은 인생을 거둔다” 했습니다.
우리의 입술은 축복의 통로가 될 수가 있고, 저주의 통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 축복도 들어오고 저주도 들어옵니다.
그러기에 나의 입술에는 저주의 말이나 부정적인 말 대신에 긍정의 언어, 축복의 언어, 칭찬의 언어가 넘쳐나는 언어 사용을 생활화 하여야겠습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
잠언 12장 14절 하반 절에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는 말씀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손이 심은 대로 거두며 손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에 손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손이 선을 행하는 데  쓰여질 수 있도록 겸손히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여야 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손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시며 그 일을 가지고 축복도, 저주도 하십니다.
의인은 그 입의 진실한 말로 인하여 큰 만족을 얻지만 악인들은 불의한 이를 탐하고 말의 실수로 인하여  자신이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의인은 어떠한 환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도우셔서 승리케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것입니다.
언제나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언제나 좋은 것으로 심고 좋은 열매를 거두는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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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결혼예배 설교 ( 기독교 예식 설교 )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3:4-13   행복한 가정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서론

1. 먼저 이렇게 혼인 예배를 들릴 수 있게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무엇보다도 귀한 가정 대사에 제가 주례를 맞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그간 이 결혼 예식이 있기 까지 여러 모양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특별히 양가의 부모님의 사랑의 수고에 감사와 찬앙을 드립니다.

2. 특별히 여기 신분00는 00 선생님과 00 여사님의 삼녀로써 어릴 때부터 정숙함으로 일등 신부감으로 잘 키워주셨습니다.  넘 예쁘고 축복이 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3. 또한 여기 신랑 000 군은 000 선생님과 000 여사님의 차남으로써 최고의 엄하면서 합리적인 사람으로 키위주시고 더구나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자라난 참신한 일등 신랑감입니다. 

 


4. 이런 가문과 가정에서 제가 더 할말이 없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는 비결 몇 말씀드리고져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잘 믿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오늘 성경 고린도전서에는  바울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다메셋이라는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 받고 자신이 기도가운데 개척한 고린도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곳에 담긴 메시지는 사랑이라는 제목이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두 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먼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두분은 그런 신앙을 고백한 그리스도인 입니다.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잘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몸된 교회를 잘 섬기는 것입니다. 요즘 결혼을 하고 2,3년지난면 몇 번의 고비가 있습니다. 그때 신앙 곧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은 해결책이 있습니다. 문제의 정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가정은 수숩이 어럽습니다.

더불어 위로 하나님을 믿는 것 처럼 서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깨지면 모든 것이 깨집니다. 저사람이 콩으로 메주를 쑷대도 나는 믿는다는 확신을 가질때 좀 늦어도 바쁜가보다 하지... 믿음이 없으면 별 생각을 다하는 것입니다. 두분은 이런 행복한 가정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립니다.


둘째는, 소망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사도 바울과 고린도 성도들에게 좀 힘들일이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희망 소망 을 가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두분이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좀 어려워도 내일의 희망있고 비젼을 있다는 것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자녀에 대한 소망 사업에 대한 비젼 헌신에 대한 포부를 가지시고 위를 바라보는 두분이 될 때 행복의 파랑새는 이집에 계속 머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은 하면 관계가 더 넓어 집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닙니다. 결혼 전에는 혼자의 관계가 이제는 두 셋 넷으로 복잡해 집니다.  특별히 양가의 부모님를 잘 섬기는 부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낳으신 수고 기르신 수고 아무것도 입지 않았을 때 수치를 가려주신 분이 부모님입니다. 양가의 부모님의 관계 어르신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 지는 것이 행복입니다.  부모하고 원수가 되고  부모님 않보는 사람 모든 것 다 가졌으나 행복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리고 친구 친척 동료 교우 이웃에게 진정한 장미의 향기가 풍기는 두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세번째로,  사랑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여기 사도바울이 세우신 고린도교회와 성도의 관계에서 최고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누구나 머물고싶고 함께 하고 싶으나 미움이 있는 곳에는 다 피라고 싶어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가 부부관계입니다. 그 속에 결혼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부모를 떠나는 독립선언입니다. 그런 뜻에는 의무가 있는가 하면 책임도 있습니다.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마음도 하나 몸도 하나 주머니도 하나 집도하나 침대도 하나입니다.

 그 하나됨을 이루어 가는 진한 에너지가 있는데  바로 사랑입니다.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함 같이하라입니다. 먼저 사랑하는 남편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와 허물을 덮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해 합니다. 또 신부는 사랑만 받는 관계가 아니라 복종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복종은 내 의견이 다르드리도 따르는 것입니다. 순종은 내 의견이 같을 때 따르는 것이라면 복종은 내 의견이 다르드라고 하나님이 세우신 남편이기에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말씀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입니다. 자기 생명까지 내어 주신 피의 사랑입니다. 아내를 위해서 목이라도 내어 놓는 아가폐적 사랑입니다. 이유가 어떠하든  논리적으로 맞던 틀리던 무조건 두분이 이런 복종과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행복합니다. 여자를 힘으로 지배하라고 하지 말고 사랑으로 하고.. 남자를 말로 이기려고 하지말고 순복으로 이기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되어서 행복이 뚝뚝 떨어지는 가정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사랑이니라  아멘


끝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르는데 저와 오신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주례를 맡아 달라고 찾아오는 젊이들에게 반드시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 약속을 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실이 분명하지를 묻습니다. 아니면 믿게 하고 예수를 않믿는다고하면 노합니다.  또 하나는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죽음이외엔 갈라서는 일이 없다고 약속한다고 하면 주례를 응답합니다.

 

  제와 여기 계신분들이 바로 지금까지 이 두사람 곁에서 여러모양으로 함께 하셨던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결혼했기에 끝이 아니라 더욱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책망해 주시기고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증인석에 앉아 계셨던 분들이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대 일조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신분의 가정에서 딸을 보낸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좋은 사위 아들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시고 신랑의 가정에서는 새 사람이 들어 왔으니 어떻게 하나 보자하고 감시 카메라 달라 놓치 말고 내 딸이라고 이제는 내 식구다 생각하시고 예쁘게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이 두 사람의  행복한 가정이루고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다같이 힘찬 응원에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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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장례식 - 추도예배 순서지 
 
 


■ 묵도
"다 같이 묵도하심으로 추도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을 사랑하셔서 오늘까지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화목한 가정되게 해주시옵소서.  이 시간 우리 예배를 받아 주시고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신앙고백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재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 - 28장(복의 근원 강림하사)
1절.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신 측량 알기를 없도다
천사들의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구속하신 그 사랑을 항상 찬성합니다

2절. 주의 크신 도움받아 이때까지 왔으니 이와 같이 천국에도 이르기를 바라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에 빠진 우리를 예수 구원하시려고 보혈 흘려 주셨네

3절. 주의 귀한 은혜받고 빚진 자 되네 주의 은혜 사슬 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하여 범죄 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아멘

■ 기도 - 가족 중에

 

■ 성경봉독 - 시편 25:12~1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그에게 보이 시리로다,"

■ 말씀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자."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3가지 복이 나옵니다.
우리 가족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이 모든 복을 다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택할 길을 아는 복을 주십니다(12절)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선택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결과도 달라지기 때문에 선택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택한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을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잠 16장 25)' 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의 인생의 도상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복중에 복입니다. 우리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영혼이 평안을 누리는 복을 허락하십니다(13절)
영혼이 평안을 누리는 복은 물질적 부요로 오는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 많이 누리는 평안입니다. 세상은 부요나 형통이 우리에게 잠깐의 편리함을 줄 수 있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잠시 잠깐의 평안이 아닙니다. 우리 처한 환경이 바뀌어도 변함없는 평안함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누리는 평안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언약을 보여 주시는 복입니다(14절)
하나님의 언약은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수많은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킬 것을 다짐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천국을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은 신실에서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리를 위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행하셨는가를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의 방향을 분명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 세 가지 복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찬송 - 301장(지금까지 지내온 것)
1절.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절.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서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절.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 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지 않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 집에 돌아가 아버지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 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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