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설날 가정예배 순서

사회 ; 가족중에서

묵상기도 ;   ---- 시편 23편을 읽고 기도 한다.- 인도자

찬      송 ;   - ---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대표기도 ;  ---------- -------------------   가족중

성경봉독 ;  -----   창세기 13 ; 14~18   --- 인도자와 가족

설     교 ;   ----   아브라함 이 받은 복   ----- -  인도자

찬       송 ;  - ---- 430장(주와 같이 길 가는것) -- 다 같이

회       상 ;    -----------------------------   인도자

-선조들의 유언이나 업적, 살아계실때의 교훈되는 모습을 이야기 합니다.

가정의 가풍이나 전통, 후손들이 기억해야 할 일 들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가족의 기도 ; ----------------------------     다 같이

-한 해의 가족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서로 기도합니다.

함께 또는 돌아가면서 기도하고 마무리도 가장이 자녀를 축복합니다-

폐        회 ;  ---------- 주기도문 -------------  다같이

제 목 ; 아브람함이 받은 복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가문에 주신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을 받는 가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어떤 가정을 이루면 하나님의 복이 대대로 흐를 수 있게 될까요?

1. 하나님을 만나고 바른 신앙의 결단을 할 때 축복하십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며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좋은 만남은 인생을 유익하게 변화시키지만,

잘못된 만남은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길로 향하게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것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이방신을 섬기던 자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남으로 믿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정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하나님을 만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아브라함은 죄의 장소를 떠나는 결단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결단은 쉬운 결단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이런 결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정도 하나님을 만나 악을 떠나는 결단을 함으로 큰 복을 받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갈 때 축복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큰 민족의 복, 약속의 땅의 성취,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순종할 때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시험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해서 이 시험을 통과 했고,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정도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상황이 올지라도 절대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믿음의 순종이 우리 가정에 뿌려진 씨앗이 되고,

훗날 거대한 나무가 되어 천대 만대에 빛나는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2018년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예비해 주신 복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이삭으로 계승되고,

또 야곱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진 것처럼 우리 가정에도

복의 계승이 충만하게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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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신년감사예배 Happy-New-Year Service in 2019

 

 

 

 

제목 : 승리하는 새해

말씀 : 롬8:31~39

1.언제나 희망은 있습니다.

할렐루야! 또다시 새해가 시작되어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2019년도 새롭게 밝아온 이 새해에는 더욱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충만한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승리와 평안과 기쁨이 충만한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도 새해의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어둡고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고 복된 말은 될수록 많으면 좋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말하는 사람 하기 좋아 좋고, 듣는 사람 기분 좋아 좋고, 또 자꾸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고 복된 말을 하면 마음이 그렇게 변화되어 그러한 삶이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주의 은혜가 가득한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는데도 먹고 살기 힘들다. 취업난이 심각하다, 정치가 실종되었다, 농촌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고 하고 또 서로 시기하고 비난하고 헐뜯는 등 너무 부정적이 어두운 말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암만 어려워도 옛날 전쟁 통에도 살았고, 독재정권아래서도 살았고, 배를 쫄쫄 곯을 때도 살았는데 지금이 그 때만 하겠습니까? 그때도 견디고 살았는데 이까짓 것 못 견디겠습니까?

더군다나 여러분, 아무리 상황이 힘들고 어렵고, 교회가 도전을 받고, 농촌의 실정이 점점 더 열악해져 간다해도 하나님 안에서는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주실 모든 은혜를 가지고 계시고 언제든지 은혜를 베풀어 주실 모든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모든 자에게 결국은 승리를 안겨다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언제나 희망과 소망가운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슥4:7절 말씀을 보십시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무리 큰 산 즉 장애물과 방해꾼과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앞에서는 산산이 무너져 평지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얼마든지 밝고 일어서서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면 모든 어둠과 절망적인 것들과 근심걱정과 두려움과 추함과 약함과 마귀 사탄과 죽음의 권세도 다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과 환경도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믿고 주님과 동행하면 세상의 모든 어둠의 세력을 이기고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막9:23절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다시 밝아온 이 새해에는 더욱 희망을 가지고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구원과 반석과 요새와 빛이 되시는 주님을 믿고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세상의 모든 약함과 어둠과 추함과 악함과 유혹과 도전과 상황을 이기고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밝고 아름답고 복된 새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밖에 없습니까?

3.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승리 할 수 있는 분명한 하나의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인 이상 우리는 결코 패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이면 하나님께 지키시고 인도하시는데 패배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사43:1절 보겠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남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상실하였었는데 우리를 끝내 버리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그의 보혈로 구속하심으로 주님의 자녀된 지위를 회복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므로 승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 아닙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인데 어찌 승리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부족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그리스도인입니다. 한번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 38,39절 보세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세상의 무슨 능력이나 권세나 무기나 협박이나 어떤 것도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 한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감히 누가 주님의 손안에 있는 것을 빼앗겠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확실하게 주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주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세상의 모든 약함과 어려움과 부족함과 죄와 유혹과 상황과 환경을 이기고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는 주님의 자녀라는 것, 그래서 주님의 소유라는 것을 기억하며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와 근심과 걱정 다 버리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손잡고 나아갈 때에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하나님이 우리 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시고 우리를 위해 주시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31절 말씀 보세요.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감히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솔직히 대통령이 내 편이 되고, 억만장자가 내편이 되고, 힘이 센 장수가 내편이 되어도 힘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든든한 백 하나 얻으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뇌물을 갖다 바치고 온갖 편의를 제공하며 어떻게든지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까? 또 높은 사람 하나 알고 있다는 것을 얼마나 자랑으로 여깁니까? 하물며 하나님이 내편이시면 어떻겠습니까? 높은 사람 하나 알고 있는 것도 영광으로 여기고 자랑거리로 여긴다면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영광이고 자랑이고 든든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성공한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시118:6절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이것도 다윗의 시편인데 여러분, 놀라운 고백 아닙니까? 다윗은 하나님이 내 편이시므로 누구도 나를 쓰러뜨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인생길이 아무 어렵고 힘든 일 없이 그저 만사형통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윗에게도 많은 고난도 있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살아남기 위하여 침을 질질 흘리며 벽에다 되지도 않는 아무 말이나 끄적이며 미친 사람 행세를 하는 굴욕적인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위대한 점은 언제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시고 도우셔서 마침내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물론 힘든 순간도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주저앉고 싶을 때로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끝내 주저앉힐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든지 그런 것들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37절도 보세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모든 일이 뭡니까? 앞의 35절에 나오는 말씀이죠.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즉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도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칼의 위험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런 것들이 결코 우리를 이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셔서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말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힘주시고 은혜주시고 능력주시는데 이기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빌4:13절을 보세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보십시오.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과 환경과 상황에 얽매어 희망도 기쁨도 없는 것처럼 살지 말고 의욕적으로 긍정적으로 힘 있게 사시기 바랍니다. 좀 힘들다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기나 한 것처럼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오직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의 능력과 은혜를 덧입어 힘차게 당당하게 생기 있게 살아가며 승리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가 승리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하면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하고 허물 많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심지어 죄 가운데 빠질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뭐냐? 바로 주님의 놀라운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의 그러한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된 모습을 인정하고 그래서 오직 주님만이 나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으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덧입어야 우리 죄를 가림 받고 그래서 주님 앞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주님과 동행하면 그 작은 믿음 하나 보시고 우리를 끝까지 주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놀라운 사랑 때문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고, 그래서 천국백성의 지위를 유지하며 승리하며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35절, 3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또 37절도 보세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즉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우리를 그 어떤 것도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도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고,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도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주님을 믿으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니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겠으며 감히 누가 우리를 빼앗아 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실수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한탄하고 원망하고 심지어는 죄 가운데 빠질 때가 있을지라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주저 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계속해서 그 길로 가면서도 그게 마치 정상으로 착각하고 무감각하게 그 가운데 살면 안 되지요. 분명히 죄를 미워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향하여 힘써 나아가야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온전할 수 없기 때문에 때때로 실수도 하고, 허물된 모습도 보이고, 심지어 죄 가운데 빠질 때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럴 때 낙심하고 절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천국에나 가겠나, 이래 가지고 무슨 주님의 일을 한다고, 나도 똑바로 못하는 주제에 봉사는 무슨 봉사, 전도는 무슨 전도하면서 의기소침해지고, 무기력해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못한다고 여러분의 자녀가 아닙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맨 날 속만 썩이고 다닌다고 버릴 수 있습니까? 잘 나도 내 새끼, 못나도 내 새끼, 잘해도 내 새끼, 잘못해도 내 새끼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의 근거를 여러분 자신에게 찾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또 끝까지 자녀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내가 똑똑하고 잘나고 깨끗하고 의롭고 아름다워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그 은혜가 감사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영광스러워서, 주님의 은혜에 백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 싶어서 하는 것 뿐이지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감사와 기쁨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하고 부족하고 허물이 많고 심지어 죄악가운데 빠질 때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주님의 사랑으로 녹여 버려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놀라운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도 놀라운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전능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하나님이 내 편이 되셨고, 지금도 여전히 놀라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든든한 백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과 어둠과 약함과 죄와 유혹과 도전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라도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주님은 결코 실패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에 세상의 안목으로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도리어 십자가를 통하여 위대한 승리를 이루신 것처럼 우리도 혹시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라도 그것은 단지 승리를 향한 하나의 작은 과정일 뿐 주님 안에는 승리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새롭게 밝아온 219년 한해도 아니 저 영원한 천국에 도착하는 그날까지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의 유일한 구원과 소망과 능력과 반석이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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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송구영신예배 -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본 문 : 여호수아 3:14 - 17

제 목 :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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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2018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습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2005년도 뒤돌아보면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은 한해였는지 모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랬고, 정치적으로도 그랬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밝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했지만 그러나 늘 들려오는 소리는 거짓과 사기와 부정과 부패와 폭력과 강도라는 달갑지 않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정말 책임있고 깨끗한,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한 그런 정치다운 정치를 기대해봤지만 정치인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권모술수와 싸움과 욕설과 권력욕에만 급급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새로 찾아온 이 한해도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면서 회의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자화상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간의 부정적인 자화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은 오늘도 은혜를 베풀려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인간 스스로는 희망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과 위로하심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금 밝아온 이 새해에는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희망을 찾고 거기서 은혜와 기쁨과 생명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는 부족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미련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충만하십니다. 그 능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그분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며 그분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이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기쁨 가운데 이 새롭게 밝아온 한해를 살아가는 비결이겠습니까?

1.말씀을 앞세우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그렇게도 손꼽아 기다려왔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제 이 요단강만 건너면 그들이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려고 할 때는 하필이면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우기였습니다. 그래서 요단강물은 홍수로 인하여 금방이라도 둑을 넘을 기세로 넘실거리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낙심도 되었고, 좌절과 실의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염려하지 말아라. 다만 내가 시키는대로 하여라 하면서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무조건 요단강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넘칠 듯이 흐르던 요단강이 멈추어 설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정말 어이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적 논리로는 당치도 않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백성의 앞장을 서게 됩니다. 그리고는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집어 삼킬 듯이 넘실대던 요단강물이 신기하게 멈추어 서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댐을 쌓은 것처럼 물이 멈추어 위쪽으로 쌓이고 그들이 서있는 곳은 마른땅 같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차례로 물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놀라움과 감격과 기쁨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가나안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들이 삼키려고 넘실대던 요단강이, 가나안땅에 들어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중의 하나였던 요단강이 도리어 그들에게 감격과 기쁨을 주며 이스라엘의 가나안으로의 행진을 축하해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언약궤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상징하는 상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먼저 강에 들어가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건너라는 것이었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강중앙에 서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것을 의지하며 걱정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강을 건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어떤 세력이라해도 너를 삼키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어떤 것도 가나안 복지를 향해 달려가는 너의 길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 언약궤를 바라보며,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며 그것을 바라보며 강을 건넜고, 그럴 때 가나안을 건너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요단강물도 결코 그들의 발목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달려가는 순례객들입니다. 여러분의 그 순례길의 막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막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세상의 물결이 여러분을 삼키려하고 있습니까? 무엇이 가나안 복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여러분을 실망케 하고, 좌절케하고,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러나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망이나 불평일랑 더더욱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다만 그것을 좇아가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의지하며,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제거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놓여있는 모든 장애물들은 물러갈 것입니다. 말씀앞에서 모든 대적자들은 쫓겨 갈 것입니다. 아무쪼록 새롭게 다가온 이 새해에는 오직 말씀을 바라보며 신뢰하며 의지하며 말씀안에서 달려갈때에 여러분의 발목을 잡고, 여러분을 힘들고 지치고 낙심케 했던 모든 어두운 것들에서 온전히 해방되어 진정한 가나안복지의 은혜를 누리며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도전 세력과의 전쟁에 동참해야 합니다.

가나안 복지의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 또 한가지 생각한다면 그것은 가나안 복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며 요단강을 건넘으로 그들이 할 일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며 요단강을 건너긴 했지만 아직도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나안 족속들을 물리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가까스로 가나안땅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러나 그 땅은 비어 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블레셋 족속을 비롯한 가나안 일곱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견고한 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싸워서 이겨야만 그땅을 차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난관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었던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이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무너뜨려야만 했습니다. 만약 그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그들은 가나안복지의 은혜를 누릴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또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작전에 참여합니다. 어쩌면 정말 무모한 싸움이었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을 앞세우고 온 백성이 그 뒤를 따르며 그 성을 일주일 동안이나 돌았습니다. 그 견고한 성 주위를 그저 돌고 또 도는 것이었습니다. 위에는 여리고성의 군인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성위에서 대대적인 공세를 취한다면 그들은 여지없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무모한 방법에 회의가 따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그저 묵묵히 돌고 또 돌았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그 행렬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외치라고 했을 때 일제히 함성을 질렀고 그러자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물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은 그냥 거저로 가만히 앉아서 들어가야 할 땅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이 이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함께 동참하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행렬에 같이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땅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세력들을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가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나안 복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길을 막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마귀 사탄은 우리를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별의 별 짓을 다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무지를 동원합니다. 때로는 완고함을, 때로는 문화를, 때로는 과학을, 때로는 돈을, 때로는 향락을, 때로는 무사안일함을, 때로는 권력을, 때로는 지식을, 때로는 환난과 시험을, 심지어는 가족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닫고 그것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쩌면 내 힘만으로는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내 힘만으로는 확실히 안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는 길을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도우셔서 우리로 하여금 능히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새로운 2019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힘든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어둡게 찾아온 새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그 어떤 것보다도 세상의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권력보다도 더 든든한 빽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분을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다만 그 분을 믿고 신뢰하며 따르기만 하면 그것들은 모두가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새롭게 찾아온 이 새해에는 더욱 주님을 바라보는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능력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서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시기 바랍니다. 모든 방해꾼들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가나안복지를 향할 발걸음을 방해하는 것이 환경이든 상황이든 사람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아니면 나 자신이든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이 새해가 되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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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성탄절설교] 마리아의 성탄

 


 


제목 : 마리아의 성탄

말씀 : 눅1:26-38

메리 크리스마스! 옆에 분과 성탄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이 뜻깊은 성탄을 맞이하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위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께서 오신 이 날에 우리 모든 성도님들과 이 땅 만민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사랑과 평화가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탄절은 주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은혜와 평화와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낮고 천한 땅에 오신 날입니다. 그래서 이 날은 세상의 그 어떤 날보다도, 그 어떤 축제일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기쁜 날이고 가장 감격적인 날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 주신 이 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자유와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일보다 더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준들 이보다 기쁘겠으며, 세상 모든 권세를 주신들 이보다 기쁘겠습니까? 그럴 수 없지요. 주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의 은총에 비하며 그까짓 세상적인 복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도 안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성탄절에 진정 우리 가운데 생명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성탄절을 맞아 이 말씀을 나눌 때에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성탄의 의미

주님안에 있는 생명과 자유와 기쁨과 평화를 바르게 누리려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이걸 모르면 아무리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해도 마치 실컷 울고 나서 누가 죽었느냐고 묻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성탄을 기리고 즐거워해도 주님의 생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구세주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눅2:11절 말씀 보세요.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주님의 탄생을 구세주 탄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인류의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그냥 단순히 성인군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선생이나 지혜자나 능력자가 아니라 구주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의 권세에서 구해 주실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1:21절에서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무어라고요?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선생, 선한 분, 지혜자, 권세자가 아닌 죄에서 건져주실 그래서 지옥의 권세에서 건져주실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2)신인(神人) 사이의 화해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오신 사건의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의미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는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눅2:14절 말씀을 보세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하나님께는 영광이 돌려지는 사건이요, 인류에게는 평화가 임하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평화란 우선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심으로써 죄의 담으로 막혀있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벽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2:2절에서는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 않는다면 단순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하나님과 나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물론 그럴 수도 없지만 설령 아무리 세상에서 평화를 누리고 자유를 누린다해도 나는 여전히 죄와 어둠과 사탄과 지옥의 권세 아래 있게 되는데 그래서 결국 영원한 형벌가운데 처하게 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걸 위해서 오신 거예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죄의 담을 헐어버리고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려고 그래서 죄와 사망과 마귀와 지옥의 권세를 멸해 버리고 진정한 생명과 기쁨과 화목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3)지상 최대의 기쁜 소식입니다.

눅2:10에 보세요.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주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이 지상 최대의 빅뉴스입니다 요즘 경제가 대불황이라고 하는데 경제가 회복된다는 소식도 빅뉴스입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나도 빅뉴스입니다. 전쟁이 종료되고 평화가 온다는 것도 빅뉴스입니다. 자식이 출세하고 돈덩어리가 들어와도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그런 건 별거 아닙니다. 얼마 못갑니다. 온 인류에게 미치는 소식도 아닙니다. 영원전부터 영원후까지 미치는 소식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 오신 소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원전부터 영원후까지 그야말로 영원토록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완벽한 부족함이 없는 기쁜 소식입니다.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성탄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물론 세상적으로도 건강하게 돈많이 벌고 출세하고 잘먹고 잘사시기 바랍니다. 그런 세상적인 것들 때문에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 주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진정하고도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화를 주신 것으로 인하여 더욱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주님을 온전히 영접하여 진정한 생명의 은총을 더욱 풍족하게 누리는 이 성탄절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성탄을 맞는 자세

여러분, 주님의 탄생은 이토록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만 그러나 내가 그분을 영접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이런 놀라운 소식을 갖고 찾아오신 주님을 내 안으로 모셔 들여야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래야 새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질까요?

1)겸손하게 엎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속에서 마리아는 겸손으로 주님을 맞이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38절 말씀보세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주의 계집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계집종이란 종이 여럿이 있을 때에 그 종들간에도 서열이 있는데 그 중에서고 가장 낮은 서열의 계집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제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봐야 별거 아닙니다. 아는 게 있으면 얼마나 있겠으며, 잘나면 얼마나 잘났겠습니까? 주님의 그 능력과 지혜와 사랑과 거룩과 의 앞에서 모든 인생은 하찮은 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가 주인인줄 착각합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양 착각합니다. 모두가 자기 것인양 착각합니다. 어림없는 소립니다. 웃기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그저 종입니다. 내 생명도 내 시간도 내 물질도 내 아름다움도 내 지식도 내일이라도 거두어가면 그만입니다. 끝장입니다.

여러분, 주님 앞에서 낮추시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낮추는 자, 낮추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자 그가 결국 주의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승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약4:10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아무쪼록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주앞에서 낮추심으로 주의 은총을 충만히 누리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믿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겸손하게 엎드리며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38절 말씀 다시 보세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마리아는 네가 잉태하여 아기를 낳을 것인데 그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마리아도 깜짝 놀랐습니다. 주님, 저는 요셉과 약혼은 했지만 아직 결혼은 안했습니다. 그리고 맹세코 남녀간의 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아기를 낳는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천사가 말합니다. 걱정 말아라. 너는 성령으로 인하여 잉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나실 자는 사람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그러자 마리아는 즉시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시니 말씀대로 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면 하시겠지요. 예, 믿습니다. 말씀대로 될 것입니다라고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그 믿음으로 메시야의 어머니가 되는 영광도 얻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습니다. 반드시 이룹니다. 그래서 마5:1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주님은 오셨고, 말씀대로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말씀대로 우리는 부활할 것이고, 말씀대로 심판을 받게 되고, 말씀대로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대로 주님을 믿는 자들은 죄사함의 은총을 덧입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여러분의 그 알량한 이성이나 논리나 경험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유일한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아멘으로 받아들여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3)순종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여러분, 38절에 다시 보십시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어다” 이 말씀은 믿음의 고백임과 동시에 순종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주여, 믿습니다. 믿음으로 그대로 하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거 절대로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희생을 각오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처녀가 잉태를 하게 되면 결국 간음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요셉에게 버림 당하는 것은 물론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마리아가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과연 누가 얼마나 믿어 줄까요? 결혼도 하지 않은 마리아가 임신할 것을 알고 사람들이 마리아를 비난하고 욕하고 돌로 치려고 할 때 내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노라고 변명을 한다면 과연 누가 얼마나 믿어줄까요?

아무도 안 믿어 줄 것입니다. 어쩌면 요셉에게 파혼당할 수도 있습니다. 동네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으로 잉태될 것이라는 말씀은 마리아로서는 너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믿었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자기 몸을 드렸습니다. 모든 오해를 무릎쓰고,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기 몸을 내어 드렸습니다.

여러분, 믿으면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순종은 입술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로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생명일지라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놓을 수 있는 것, 그게 믿음이고 순종이고 헌신이고 그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소식은 지상 최대의 빅 뉴스입니다. 가장 큰 기쁨의 날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진정한 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주시려고 우리를 찾아오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놀라운 은총을 주시려고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온전히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앞에 겸손히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귀한 것을 드려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여러분과 주님 사이의 온전한 만남이 이루어짐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그 생명과 자유와 평화와 기쁨과 은혜가 더욱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주님이 주신 생명의 충성한 은총을 이웃과도 함께 나눔으로써 이 땅위에 주님의 생명의 은혜가 더욱 풍성해 지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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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추모예배 기도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슬픔과 절망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도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고 김형철 장로님을 하나님의 나라로 불러 가신 그 날이어서 유족들과 관계된 모든 이들이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용서의 하나님!

우리가 고인을 통한 아버지의 큰 뜻을 헤아릴 수 없어 그 뜻을 펴지 못한 우리의 부족을 고백하옵니다.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고인에게 다하지 못한 정(효도, 우정, 신의 등)을 생각하며 우리의 부족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옵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여기의 우리들, 죽은 이나 산 이들 모두에게 하늘의 영원한 복락을 허락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고인의 삶을 영원히 이어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널리 펴는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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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삶] 성령안에서 살아가는 방법
 

1. 삼위일체 하나님께 집중한다.

   세상에 많은 주제들이 있고 마음을 끌고 유혹하는 것들이 많을지라도 다 다루지도 말고 마음이 끌리지도 말려면 먼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제 일이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한다.

 

2.  말씀과 기도를 하루에 아침에 한 시간 이상 한다.

  말씀은 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령의 임재가 있도록 하는 것을 목 표로 한다. 하나님앞에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성경연구와 간구의 시간은 따로 연장하여 갖도록 한다.

 

3.  말씀충만은 성령충만이다.
말씀을 묵상하고 늘 말씀에 순종하는 의로운 삶을 살아간다. 의로운 삶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인데 이 삶이 성령충만을 유지하고 다시 받는 최적의 조건이다.

고넬료의 성령받은 사건을 생각할 것. 예수님을 전할 때에 의인이었던 고넬료는 설교를 듣는 중에 성령을 받는다.

 

4. 날마다 말씀을 양식으로 먹으라.

먹지 않고 지내는 날이 없도록 하라.

 

5.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회개하고 이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으며 우리는  정결하여지고 그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선물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의 대가이다. 선물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6. 언제나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성령의 역사속으로 들어간다.

성령의 다스리심안으로 들어간다. 나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고 열매맺게 된다.

 

이때에 성령의 주시는 방언을 하게 되는데 계속 방언을 한다.

이는 중보기도로서 마땅히 제사장이 해야하는 기도인 것이다.

사무엘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하였다. 이는 제사장으로서는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는 죄가 되는 것이다.

6.1 몸이 아픈 곳에, 무거운 곳에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치유안에 거하라. 우리는 몸과 영과 혼이 다 거룩하게 보존되어야 한다.


7. 타인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라.

기도할 때에 타인이 생각나거든 그를 위하여 충분히 기도한다. 마음속에 되었다 할 때까지 기도한다.

 

8. 죄의 종이 되어서는 안된다.

죄의 종이 되면 즉시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나를 헌신한다. 재헌신하는 것이다. 이는 죄를 지으면서 나를 죄의 종으로 내가 주었기 때문이다.

 

9. 평안과 기쁨을 확인하라.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내가 임하여 있다는 증거이다.

 

평안은 어떤 상태에서든지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이며 기쁨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를 행함으로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 증거이다. 이때에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잘 될 것이다.

 

 

10. 시대를 분별하라.

유혹케 하는 것과 귀신의 가르침이 횡행하는 시대이다. 교회의 부정적 운명론에 빠지지 말라. 그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고 잘못된 것이다.

 

10.1  이제는 전도를 하는 시대가 아닌 닫힌 문의 시대라고 하는 자들도 있다. 개척교회가 너무 어렵기만 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 아는 것이다. 환란 때에 교회가 고통을 당한다고만 주장하는 이들은 너무 부정적이다. 교회는 승리한다. 성령충만한 사람을 하나님은 보호하시고 승리하게 하신다.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10.2  교회의 통합을 말하면서 혼합주의 정책을 쓰는 것은 사단의 전술이다. 1년 전인가 2005년 세계일보에 “내 것 고집버려야 종교갈등 치유“라는 기사의 글이 실렸는데 어떤 신부가 종교혼합정책을 쓰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성당에 봉축 연등을 내걸고 108배 행사를 갖는 등 대거 고산성당 정 홍규 (51세) 신부의 종교간 벽 허물기 노력이 보도된적이 있다. 그는 대구 지하철 참사희생자를 위하여 장승굿을 치르기 위하여 승려와도 만났다고 하는 신부이다.  이것은 귀신들린 행위밖에는 안된다.

 

성경은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상숭배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십계명에 나온다. “그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안에서나 하는 이야기지 그런 구태의연한 소리 하지 마쇼“라고 세상은 말한다. 그렇다. 세상은 우상숭배라고 하지 않고 타종교라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임이 분명하지 않는가? 당신이 거듭난 기독교인이라면 이러한 구분은 당연히 되어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엄청 잘못 가는 것이다.

게다가 이 신부는 굿까지 하자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상숭배뒤에 사단과 귀신의 세력이 주장하고 있음을 안다. 그런데 굿을 하자고 찾아다니는 것은 끌려다니는 것이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는 못하고 오히려 이미 첩자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은 내 것을 가지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외쳐야 하며 그것으로 세상에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말씀의 정확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러면 목숨을 걸어도 되지만 말씀의 정확한 해석이 없다면 목숨을 걸라고 해도 걸 확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개신교 안에서도 이러한 구분이 없고 유야 무야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속고 있는 것이다. 최근 2005년 8월 옥 한흠 목사님이 승려를 만났다고 한다.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성경해석이 부족하여 잘못 말한 것이 있다고 하자.(휴거의 시기에 대하여도 말한 바가 있다가 취소함.) 그러나 성경을 가르치고 올바르게 가르친다는 소문이 난 옥한흠 목사님이 대화를 하기 위하여 승려를 초빙하였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가 구원을 얻지 못하였다면  옥 목사님은 당연히 구원의 문제부터 짚고 나가야 한다. 사회의 정화나 이런 문제를 같이 논의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혼합주의는 배타주의의 반대말이 아니라 정결한 삶의 반대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성령충만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신 신앙과 헌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신앙의 어떤 노력이나 방식으로 취득하지 않는다.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고 올바로 할 때에 나를 헌신할 때에 종으로 드릴 때에 목숨을 바칠 때에 성령충만을 주신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성령충만을 주신다.

 

11.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라.

오늘날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주제들이 있다. 배울 것, 볼 것, 구경할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 집중하여 그분과의 교제를 가장 중요시하고 실제적으로 교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맛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단순하고 맹목적이라고 사람들이 말할지 몰라도 최소한 맹목적인 것은 아니다. 눈감은 장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한 것은 좋은 것이다. 성령 안에서만 거하라. 그것이 답이다.

 

말씀대로 믿어라. 사단은 이제 세부적으로 이래 저래 말씀을 안 믿고 부정하고 의심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정확히 해석하고 그대로 믿어야 한다.

 

12. 교회와 사역자는 신앙안에서도 잘못된 것들은 다 구별하고 정결함을 유지해야 한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부흥을 말씀하시는데 해골조차 살리신다.  이때에 하나님은 에스겔 44장에서 제사장들을 다시 세워주시고 교육하시는데 그중에 부과된 것이 다음이다.

 

에스겔

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1) 거룩과 속된 것을 구별하라.  : 거룩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속된 것은 피조물의 세계이다.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며 그분을 거룩히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되는 대로 가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면 전부라는 생각을 떠나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기는 것을 가르치고 훈련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위임명령에 포함된 것이다.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교회가 그렇게 하지 않으니 세상이 갈 길을 몰라 죄악속에서 헤미이는 것이다.

 

2)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부정하게 사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부정은 정결하지 않은 곧 더러운 것이다. 예수님의 피로 씻고나서 그는 정결하게 되어 성령의 임하심을 체험하고 그렇게 하여 그는 성령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모든 부정한 생각을 버리고, 부정한 영(귀신)을 쫓아내고 부정한 영상들을 버리고 부정한 행위와 습관들을 버리고 의롭고 정결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13. 거짓이 없고 흠이 없는 삶을 유지하라.

계시록 14장의 144000의 기준이다. 거짓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도 되는데 또한 진리가 아닌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진리만을 말하는 것이다.  카톨릭은 기독교가 아니고 우상숭배의 하나이다. 이것이 참이라면 이 말을 해야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 안에서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진리를 듣게 된다.

다 같이 한 사회, 행복한 나라를 위하여 사는데....... 라는 것이 기독교의 목표가 아니다. 기독교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싸우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회개할 사람들이 회개하라는 것이다.

 

 

14. 나의 약점을 보강하고 약점 때문에 넘어지지 않게 하라.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 자기가 죄를 짓지 귀신이 원인이 아니다. 귀신과 사단은 유혹을 하지만 사실상 죄를 짓는 존재는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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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찬양예배설교]기쁨으로 찬양

제목 : 기쁨으로 찬양합시다.

말씀 : 시47:1-9

1.찬양의 은혜

어떤 목사님이 중국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다. 물론 중국에는 공식적인 선교사로 파송될 수는 없지만 비공식적으로 지하교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많이 있다.

이 선교사가 중국 지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준비찬송을 드리는데 놀랍게도 복음성가가 100절까지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로 중국 지하교회에는 2단정도의 짧은 찬송으로 몇십절까지 있는 것도 있고 100절까지 있는 것도 있다고 한다. 2단으로 100절이면 총200단이므로 우리 복음송 같으면 약12곡쯤 되는 분량이다.

이 찬송을 부르는데 1절부터 시작해서 10절, 20절, 30절, 50절, 60절, 70절해가면서 모조리 다 부르더란다. 선교사님은 솔직히 자신과 잘 맞지도 않고 너무 길어서 좀 지루했지만 목사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지루하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해서 내색은 못하고 끝까지 다 따라 불렀다. 그렇게 100절까지 부르니까 약35분 정도가 걸렸다.

이렇게 한곡이 끝나자 찬양인도자가 멘트를 시작하는데 약10분정도를 하더란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인도하심 등등에 대하여 약10분정도 멘트를 하더니만 하는 말이 더 걸작이다. ?우리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좀전에 불렀던 찬송을 다시한번 뜨겁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정말 다시 100절까지를 부르더란다. 그렇게 2시간동안 찬양을 하더니 겨우 예배를 시작하더란다.

선교사님은 처음에는 지루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들과 함께 뜨겁게 다시 100절까지 부르는 동안 점차 그의 심령이 뜨거워지면서 드디어 위로부터 내려오는 뜨거운 성령의 임재하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다. 사실 찬송 부를 때 내 심령속에 은혜가 충만하지 않으면 지루할 수도 있다. 또 때로는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찬양도 있을 수 있다. 때로는 내 기분이 좀 가라앉아 있어서 은혜를 잘 못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앞에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성령의 뜨거운 은총을 간구하며 더욱 뜨겁게 찬양해야 한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갈급한 심령으로 구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은혜를 주신다. 은혜를 받으면 말씀이 꿀맛처럼 달아지고 찬양하는 시간이 세상의 어떤 시간보다 즐겁고 기쁘다.

시107:9절을 보라.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그러므로 더욱 열심히 그리고 뜨겁게 기도하며 찬양하며 말씀 묵상하며 살아갈때에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은혜의 충만함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아가자.

2.찬양의 이유

물론 찬양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아니 우리는 무조건 찬양해야 한다. 찬양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43:21절을 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무조건 찬양해야 한다. 찬양을 목적으로 지으셨기 때문에 찬양해야 한다. 따라서 열심히 찬양하는 자는 은혜를 받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으신 목적에 충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2,4절에서는 계속해서 우리가 찬양해야 할 마땅한 이유를 말씀하고 있다. 먼저 2절을 보면 “지존하신 여호와는 엄위하시고 온 땅에 큰 임군이 되심이로다.”고 말씀하고 있다. 온땅의 큰 임군이란 곧 왕중의 왕이라는 말이다. 왕중의 왕으로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절대적인 주권으로 운행하시는 지존하시고 엄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전능의 하나님, 그 신비한 능력으로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 어찌 찬양 안하랴! 그 능력과 지혜앞에 어찌 찬양 안하겠는가!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아는 자의 마땅한 태도이다. 그 능력과 지혜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있는 피조물을 올바른 응답인 것이다.

4절에서는 우리가 찬양해야 할 다른 이유를 말씀하고 있다.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즉 우리를 택하시어 당신의 기업으로 삼아 주셔서 야곱의 영화 곧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누려야 할 영화를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찬양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하나님의 그 권능과 지혜앞에 찬양해야함과 동시에 우리는 우리를 택하시어서 당신의 기업으로 삼으신 그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남들보다 더 잘 난 것도, 똑똑한 것도, 더 잘하는 것도 없는 우리를 하나님의 그 절대적인 주권과 그 한량없는 사랑하심과 은혜로 우리를 부르시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려야 할 그 영화에 참여케 해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우리 하나님께 찬양해야 한다. 생각해 보라. 누가 나를 위하여 죽어줄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릴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설령 누군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다 한들 누가 나의 죄를 대속할 수 있겠는가? 누가 끊임없이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부랑아를 받아 주겠는가? 그것도 자기의 목숨까지 내어 놓으면서......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해주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런 인생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온 몸이 찢기신 것이다. 왜?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그것이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영화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그러니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정녕 정상적인 감정과 이성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기억할때에 어찌 감격과 기쁨과 감사속에서 찬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3.찬양의 방법

오늘 말씀 1절에서는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며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치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우리의 온 몸을 동원해서 찬양하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손바닥을 치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것은 단순히 손뼉만을 치라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손뼉을 치며, 때로는 춤을 추며, 때로는 정말 애통해하며, 때로는 통곡을 하며 자기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찬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150:4절에서는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7절에서는 지혜의 시로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지혜란 무엇인가? 지혜란 물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의 시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거룩하심과 은혜와 사랑을 알고 거기에 합당한 영광을 찬양을 통해서 돌리라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하나님의 그 권능과 자비와 긍휼과 사랑하심과 은혜를 안다면 찬양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이 정말 우리의 심령속에 사무치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정말 때로는 어린아이가 가장 갖고 싶어하던 것을 얻었을 때와 같은 기쁨으로 손뼉을 치며 찬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마땅한 도리다. 그것이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자의 마땅한 태도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의 마땅한 의무요, 동시에 특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자. 정말 온몸으로 찬양해보자. 춤을 추어 찬양하고, 손뼉치며 찬양하고, 기뻐하며 찬양하고, 때로는 애통하며, 때로는 정말 통곡을 하며 하나님께 찬양하자. 이러한 찬양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욱 큰 영광을 돌려 드리자.

그러면 진정 생명의 은혜가 넘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다. 성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위로와 평강과 소망이 넘칠 것이다.

그까짓 노래방가서 노래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보약 열재 먹는 것보다도 낫다. 스트레스도 확 달아난다. 마귀도 달아난다. 근심걱정도 달아난다. 속에 맺혀 있던 것도 달아난다.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물리치고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게 된다.

오늘 가족찬양대회를 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통해서 기쁨을 누리고, 찬양을 통해서 은혜받고, 찬양을 통해서 사랑을 나누고, 찬양을 통해서 힘을 얻고...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힘찬 찬양생활로 더욱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은혜를 충만히 누리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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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낙타와 바늘구멍 / Camel and needle hole)

 

 

 

낙타는 긴 목과 다리 글고 두개의 혹을 지닌 짐승으로
뜨겁고 건조한 모래땅을 잘 걸어다닐 수 있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오랜 시간 물 없이도 견딜 수 있으며 발바닥의 접지 면적이 넓기 때문에
모래당을 걸어다니기에 적합하다 합니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걸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말보다도
빠른 속도를 자랑하기도 하지요.


낙타가 풀을 먹는 모습을 보면 먹는 것에 초연해 버린 성자처럼

도무지 욕심을 찾아 볼 수 없답니다.

긴 사막의 여정 속에서 낙타는 되새김질과 지방으로

이루어진 혹에 비축한 영양 만으로도 사나흘을 버티니까요.
매우 온화하고 온순하며, 무릎을 굻고 앉는 습관으로 인하여
기독교에서 낙타 무릎이라 비유하기도 합니다!  

 

마태 19장 23 ~ 24절 말씀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런데 그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는 것보다 쉽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런 자랑을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이 말은 부자만 꼬집어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돈뿐만이 아니라 권력, 명예, 지식 등 가진것을 모두 내려 놓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비유인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낙타의 비유는 부자는 천국에 갈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욕심껏 많이 가진 사람들 곧 부자에 대한 비유입니다.
짐을 많이 진 낙타라도 천국문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부자에 비유된 낙타들 처럼 우리도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채
삶이라는 황량한 사막에서 무언가를 기다리지요.
여튼 우리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현세의 것들을 찾아 등에 지기
바빠서 하나님을 바라 보지 못합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내게와 쉬라는 말이 바로

그 낙타의 비유가 아닐런지요.

우리는 이제 내려 놓는 연습을 더 많이 많이 해야할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는 {19 : 24} 라는 이름의 근사한 클럽이 있답니다.

바로 마태복음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어차피 부자는 천국에 이르지 못하니

이 땅에서 마음껏 즐기자는 뜻이라나 뭐라나...!

어릴적 부터 기도와 말씀으로 성장하는 그네들이었음에도 점점 혼돈

속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 입니다..ㅠㅠ

 

일설에서는 이 성경구절은 잘못 번역한 것이라 하기도 합니다.
번역자가 아랍어의 원어 gamta(밧줄)를 gamla(낙타)와 혼동하였기

때문에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라고 해야 맞는다고요.

물론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게 훨씬 더 어렵겠지만

같은 맥락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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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명절 설날 가정예배 (2019년 2월 4일 / 음력 설날 1월 1일 )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 은혜 베푸시기를 간구하는 마음으로

찬송가 263, 265, 302, 314장 중 2-3곡을 찬송한다.

 

 

■ 예배로 부르심 ················································································· 사회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설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 신앙고백 ·································사도신경··································· 다같이

■ 말씀낭독 ··································시 1편······································ 다같이

■ 찬 송 ···································559장······································ 다같이

■ 대표기도 ······················································································ 맡은이

■ 성경봉독 ··································학 1:2-8·································· 다같이

■ 설 교 ······················································································ 맡은이

■ 찬 송 ·····································384장····································· 다같이

■ 주기도문 ······················································································ 다같이

 

 

먼저 하나님을 찾으라

 

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8년은 그 어느 때보다 혼돈으로 뒤엉켰던 해였습니다.

그러나 낙엽이 져야 새 잎이 돋아나듯이, 2016년의 아픔은 새롭고 희망이 넘치는 2017년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나눌 말씀인 학개 1장 2-8절에는 포로 귀환 이후에도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유다 백성들의 상황과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인 새해 첫날,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첫째, 삶의 어려움을 겪는 유다 백성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귀환한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며,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의 귀환 생활은 이들의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먼저 안으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흉작을 거듭하고, 삶은 더 피폐해졌습니다.

그리고 밖으로는 대적들의 훼방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는 것을 시기한 주변 사람들이 유다 백성들을 모함하고, 바사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 재건을 중단시키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어려움이 반복되는 삶 가운데 있던 유다 백성들은 ‘일단 성전 건축을 후일로 미루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라는 선택을 합니다(학 1:2).

 

그래서 그들은 먼저 생존을 위해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더 많은 농작물을 수확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즉, 그들은 삶의 필요를 채우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던 것입니다.

 

둘째,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

 유다 백성들은 안팎에서 밀려오는 삶의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안타깝게도 그것들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에 학개 1장 6절은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이어지자 유다 백성들은 낙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야훼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야훼가 말하였느니라”(학 1:7-8)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스스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내려놓고, 우선은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삶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성전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힘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셋째, 오늘날 우리의 삶의 자세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참담’하단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어렵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 어느 곳에서도 희망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유다 백성들처럼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저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까요? 가족을 지키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예배하기를 사모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한 이때에 우리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삶의 자세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본분이자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찾을 때 세상은 참된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삶의 모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2019년의 첫날,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힘쓰기로 다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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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천국복음 크리스천의 전정한 본향은 천국

 

 

 

본문 : 누가복음 17:20-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부탄’은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민총생산금액이 전 세계 112위인 가난한 나라이지만 녹지 유지, 적은 빈부격차, 무상 복지, 무상 의료 등 생산이 아닌 행복을 위한 방향을 추구하는 지상 낙원이라며 여러 강연과 컨퍼런스, 그리고 연구 자료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환경보호와 국민들의 여유를 위해 관광객도 1년에 딱 1만 명까지만 받고, 반드시 현지인 가이드와 운전자를 동행하며 여행세까지 내야 합니다. 이처럼 모든 정책이 삶의 질에만 맞춰져 있어 약 10년 전에는 세계에서 국민들이 가장 행복한 나라에 뽑히기도 했고 그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사람들이 부탄의 정책과 부탄국민들의 삶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소식을 들어보면 부탄이 자랑하던 국민들의 행복도는 60위권으로 떨어졌고, 많은 청년들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큰 불만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살률도 크게 늘어 사회적 문제가 생길 정도이지만 여전히 저 멀리 있는 작은 나라 부탄을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고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고 성경이 약속한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소망할 때 우리가 머무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발전시킬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신 천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한계를 인정하되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십시오. 아멘!!

* 기도: 주님, 우리의 최종 목적지를 생각하며 세상에서도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 묵상: 지금 환경에 불만족하기 보다는 말씀의 원리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천국의 섬

   

오늘 이 땅 한국은 전도가 후퇴하는 계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이 땅에서 최고의 복음화 율을 자랑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 라는 곳입니다. 증도는 90%의 복음화 율을 자랑하는 섬입니다. 이 섬은 섬 특유의 미신도, 투전판도, 놀음도 없고 사찰도, 굿당도, 점집도 하나도 존재하지 않고 주말이면 모든 식당이 문을 닫는 곳입니다. 섬 인구 2,200명 거의 전부가 주일에 교회 갈 준비를 하기 때문입니다. 11개의 교회들은 모두 성결교회로 서로를 도와가며 천국의 섬으로 가꾸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느 기자 분이 섬 할머니를 붙들고 물었습니다.

“할머니, 이 작은 섬에 왜 이렇게 교회가 많지요?”

할머니는 주저 없이 대답합니다.

“아, 그거야 다 문준경 전도사님 덕분이제”

이 섬의 복음화는 목사님도, 선교사님도 아닌 예수 안에 행복했던 한 여인의 헌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1891년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도에서 태어난 문준경 전도사님은 나이 17세에 증도로 시집을 오게 됩니다. 그러나 신랑 얼굴 한번 못보고 혼례를 치른 첫날밤부터 소박을 맞습니다. 이후 20년간 남편에게 버림받은 생과부가 되어 모진 시집살이를 하던 그녀는 우연히 집을 찾아온 전도 부인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후 유명한 이성봉 목사님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 나라에 헌신합니다. 그녀는 우리교단 신학교인 경성 성서학원에 입학하여 전도 부인이 된 후 다시 고향 신안에 내려와 섬들을 나룻배를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 주민들의 부탁으로 짐꾼, 우체부, 약사, 의사 노릇을 하며 전도를 합니다. 섬마다 개척 교회들이 세워지고,

이 분의 영향을 받은 청소년들 가운데 이만신 목사, 김준곤 목사, 정태기 목사, 신복윤 목사, 이봉성 목사 등 30여명의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생겨납니다. 그녀의 나이 59세 되던 해 6.25전쟁 중 공산당원이 그녀를 체포합니다. 그리곤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아, 죽어라"고 소리치며

몽둥이를 내리쳤다고 합니다. 문준경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기도하며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원의 증언처럼 그녀는 수많은 영혼의 생명을 낳은 거룩한 씨암탉으로 주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 이 섬은 민족의 성지 일만큼 90%이상이 예수를 믿는 천국의 섬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누가 이 비전을 실현하는 주인공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하겠습니까?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하겠습니까? 여기서부터 안 한다면 어디에서 하시겠습니까?

/공수길 목사

   

▣ 천국을 믿지 않는 자들의 삶

 

무신론자들은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사는 동안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하여 머리 좋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만들어 놓은 판타지와 같은 허상이 천국이라고 주장한다. 그저 인간은 죽으면 한 줌 흙먼지로 돌아가는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지 사후세계는 있을 수가 없다고 확신한다. 모든 현상들을 화학이나 물리적 혹은 검증된 과학적인 사고의 틀에서 이해하고 설명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천국을 믿는 사람들은 선한 양심과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선한 믿음으로 살아간다. 천국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에 이끌려 한 줌 흙먼지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양심을 보리고 수많은 죄들과 그로인한 영육간의 고통 속에서 물에 빠진 나방처럼 허우적거리며 날마다 괴로운 삶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학규
  
▣ 우리는 천국과 지옥, 그 어느 쪽에 가까운가
 


당신은 사랑하는 쪽이 편안합니까, 미워하는 쪽이 편합니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쉽습니까? 서운함을 고백하는 것이 쉽습니까? 용서하는 쪽이 쉽습니까, 분노를 간직하는 쪽이 쉽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천국에 가까운지 지옥에 가까운지를 보여줍니다. 사랑이 어색하고 사랑의 표현이 어색하다면 당신은 천국과 멀리 있습니다. 남의 잘못이 보기 싫고 판단이 되며 쏘아붙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면 당신은 지옥과 가까이 있습니다. 천국에 익숙해지십시오. 천국의 삶을 훈련하십시오. 지옥이 불편하고 어색해지게 하십시오. 미워하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어지게 훈련하십시오. 우리는 영원히 천국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정원 목사

  

▣ 천국에 관한 성경 말씀

 

0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마3:2)]

0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10)

0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5:19)

0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

0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마13: 24)

0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13:44)

0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마13:45)

0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마13: 47)

0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16:19)

0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0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는 큰 자니라(마18:4)

0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마19:23)

0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마20:1)

0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22:2)

0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마25:1, 2)

 
▣ 천국에 관한 금언

 

0 천국은 영원한 기쁨의 보고이다.(위리엄 세익스피어)

0 어디든지 그리스도가 계시고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천국이다.

0 우리를 천국으로 이끄는 것은 말에 있지 않고 행함에 있다.(매튜 헨리)

0 절뚝거리며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온전한 발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윌리엄 빌리 선데이)

0 천국의 가치를 잘 알려면 15분 정도 지옥에 있어보는 것이 좋다.(킬튼)

0 모든 곳은 천국에서 똑같은 거리에 있다.(리챠드 버튼)

0 바보의 찬국은 현명한 사람의 지옥이다.(토마스 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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