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가정예배문

 

 

 

◎ 예배알림 -------------------------------------------------------------- 사회자
마음과 뜻을 같이하여 조상들의 은덕을 기리며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추석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 기원기도 ------------------------- 시편 23편 ------------------------ 사회자
◎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함께
◎ 찬 송 ---------------------------- 309장 --------------------------- 다같이
◎ 교 독 -------------------------------------------------------------- 다함께
사회 : 사랑의 하나님, 우리 백성의 땀흘려 농사 지은 정성을 굽어보사 풍년으로 축복 하여 주신 것 감사 합니다
가족 :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합니다
사회 : 추석달이 밝아 오는 이 가을에 우리 가족과 우리 조상과 우리 이웃을 생각 합니다
가족 : 우리에게 주신 축복,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찬송 합니다
사회 : 우리 집의 묘지를 돌보면서 북한에 버려진 묘지들을 생각하며 갈라진 우리땅을 기억 합니다
가족 : 한나라 한당에 하나의 달을 쳐다보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옵소서
사회 : 우리 집안에 우리 이웃에 축복의 환한달을 비춰 주시옵소서
가족 : 사랑의 하나님 축복의 환한달을 비추어 주시옵소서
◎ 기 도 ------------------------------------------------------------- 사회자
사랑의 하나님, 금년에도 때를 따라서 단비와 햇빛을 내려 주셔서 추수의 계절을 맞이할수 있도록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사의 대상을 알게 하여 주시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생활과 직장에서도 감사의 결실을 많이 맺을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며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복되고 행복한 가정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금년에도 지금까지 온 가족을 지켜 주셔서 모두가 자기의 할 일을 잘 할 수 있게 하여 주심도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들이 좋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혜를 주옵시고 실패의 순간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새롭게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기 원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들의 생활의 인도자가 되시며 우리들은 그의 도구임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 가족들이 항상 주님만을 사랑하며 주님만을 섬기는 가정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아 멘>


◎ 성 경 봉 독 ------------------- 호세아 14 : 1 - 3 ----------------- 사 회 자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 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찌니라


◎ 설 교 ------------------- 입술로 드리는 제사 ------------------ 가 족 중
가을은 결실을 위해 병충해와 장마와 태풍과 무더위를 견뎌온 식물들이 열매맺는 계절입니다. 이 때를 위해 다소곳이 준비하며 더욱 풍성한 열매로 보답하기 위해 애씀과 겸손이 스며있는 식물들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자연의 순응과 겸손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왜 우리 인간들은 자연의 순수함과 정직함과 겸손을 배울 수 없을까? 심는 대로 거두는 자연의 섭리를 보면서도 왜 좋은 씨를 심으려 하지 않는가?
정확한 계절의 순환을 보면서도 창조주가 계시다는 것을 왜 부인하는 것인가요? 그 분만이 참 신이시며 주인이라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그분 앞에서 자꾸만 바벨탑을 쌓아 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볼 때에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택하셔서 믿음으로 살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본문 말씀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시면서,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타민족에 비해 소유한 가장 큰 축복은 제사장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과는 교제하실 수 없습니다.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때의 제물이 수송아지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를 받으시고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수송아지를 제물로 해서 드리는 제사도 점점 형식화 되어가고 타락되어져서 지구상의 제물이 모자랄 정도로 인간들의 죄가 아주 성행하였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는 불문율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기에 범죄한 모든 사람(롬3:23)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들의 죽음을 그대로 놔두실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오 우리를 지으신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죄가 성행하고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심판과 저주가 목적이 아니라 회개와 회복을 바라시는 하나님은 인간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세상을 사랑하셨기에 다른 제물, 번거롭게 매번 드리지 않고 한번만 드려도 되는 완전하고 아름다운 제물을 택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대제사장이기도 합니다.
입술로 드리는 제사는 회개하는 마음의 기도입니다. 더 이상 수송아지는 필요치 않습니다. 입술로 드리는 제사는 사죄의 은총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제사요,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고백의 제사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서 29장 13절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는 말씀처럼 진실하고 솔직한 마음으로부터의 회개와 고백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입술의 제사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오늘은 우리 나라 대부분의 가정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가 아니라 조상에게 드린다는 빌미로 우상에게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하고 있습니다.
3절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에 강대국 앗수르와 그 나라의 군사력을 더 의지하였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앗수르나 애굽 같은 강대국의 도움을 전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젖혀 두고 강한 나라의 힘을 빌려오지 않으면 망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인간들이 자신의 힘이나 계책을 믿고 하나님 없이도 안전하고 능히 해나갈 수 있다고 착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서 등을 돌리십니다.
오늘 앞서가신 아버님을 생각할 때마다 슬픈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인생이 누구나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히 9:27). 우리도 아버님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지만 그날까지 참 회개의 입술의 제사를 잘 드리며,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환경이 어렵고 여의치 않아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 기 도 ------------------------------------------------------- 설 교 자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오곡백과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을 주시고 이 풍성한 계절에 추석 명절을 허락하셔서 부모님을 추모하면서 우리 가족이 함께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자연도 땀흘리며 가꾼 주인에게 겸손히 열매로 보답하는데 부족한 저희들은 어떠한 열매를 맺어 주님께 보답해야 할는지요? 오늘 이 시간 부모님을 회상 하오며 자손 된 저희들이 그분의 가르침과 교훈대로 살게 하시고 그 분들이 못다 이룬 일들을 저희들이 성취하게 하옵소서, 온 집안이 주님께 온전히 충성하며 몸된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데 부족함 없는 은총을 허락 하시옵소서. 온 형제와 친척들이 사랑과 화합으로 굳게 뭉쳐 하나님을 잘 섬기는 축복된 가문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의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 찬 송 ----------------------- 305 장 ---------------------- 다 같 이
◎ 폐 회 ---------------------주 기 도 문 --------------------- 다 같 이
(예배후에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감사의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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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신앙인의 추도 예배문

 

 


 
묵상기도 --------------- 시편23/사도신경------ 다같이
찬 송 -------543, 544장------------------- 다같이
기 도 --------------------------- 사회자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셔서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고 000님을 주의 나라로 불러 가신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였으니 저희를 긍휼히 여기사 주님의 위로와 평강으로 채워 주시기를 간구 하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연약한 저희들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부족했던 모든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이 하나님 앞에서 뿐 아니라 육신의 부모님에게도 잘못한 것이 많이 있었던 것을 통회하오니 저희들을 사하여 주시고 더욱 굳센 신앙으로 채워 주옵소서 자손 만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로 하여금 땅만 내려다보고 슬퍼하지 않게 하시고 심령의 눈을 떠서 하늘의 영광을 능히 쳐다보고 영원한 소망을 가지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의 모든 절차를 주님께서 친히 맡아 인도하사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시고 저희들에게 새로운 은혜와 축복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말씀 - 디모데후서 1장 3-5절
설 교 - 자녀에게 남겨야 할 신앙 유산
1. 거짓이 없는 믿음
훌륭했던 신앙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항상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신앙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선다고 하면서 실상은 자신을 감추고 거짓으로 서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져야만 하나님과의 진정한 인격적 교제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2. 끊임없는 기도 생활
또한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한 유산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신앙입니다. 기도는 연약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힘을 얻게 합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기도하는 신앙을 자녀들에게 심어 주면 많은 권력과 재산을 물려준 것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이 어려움이 닥칠 때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끊임없이 꾸준히 기도하는 경건의 훈련을 쌓는 사람만이 기도가 필요할 때 하나님 앞에 거리낌없이 엎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성결한 삶
훌륭한 목회자였던 디모데가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듯이 우리들도 역시 예수를 믿은 후로는 청결한 양심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청결한 양심을 따라 죄악을 멀리하는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와 어둠이 가득한 이 시대에 의의 사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결한 삶이야말로 성도가 자자손손 물려주어야 할 신앙 유산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을 물려주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신앙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유산보다 훨씬 강력한 유산이 됩니다. 오늘 이러한 신앙 유산을 우리에게 물려준 고인을 추모하면서 다시 한 번 더 우리 자신들 역시 자녀들에게 참다운 신앙 유산을 남겨줄 것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찬 송 - 305/376장---다같이
추모기도-----1분정도 공동기도를 한 후----다같이
 
전능하신 하나님!
이 시간 영광과 찬송을 홀로 받으시길 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모여 예배를 드렸사오니 주께서 이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이 시간 인생 속에 허락하시고 나타내 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시사 날마다 믿음의 생활 속에 성령의 충만함으로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여기 모인 이들에게 헤어짐의 섭섭함과 그리움을 위로하시고 주 안에서 다시 만날 날을 소망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
주기도문--------- 다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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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결혼식 설교


 


  
예식 설교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3:4-13   행복한 가정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서론

1. 먼저 이렇게 혼인 예배를 들릴 수 있게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무엇보다도 귀한 가정 대사에 제가 주례를 맞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그간 이 결혼 예식이 있기 까지 여러 모양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특별히 양가의 부모님의 사랑의 수고에 감사와 찬앙을 드립니다.

2. 특별히 여기 신분00는 00 선생님과 00 여사님의 삼녀로써 어릴 때부터 정숙함으로 일등 신부감으로 잘 키워주셨습니다.  넘 예쁘고 축복이 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3. 또한 여기 신랑 000 군은 000 선생님과 000 여사님의 차남으로써 최고의 엄하면서 합리적인 사람으로 키위주시고 더구나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자라난 참신한 일등 신랑감입니다. 

 

4. 이런 가문과 가정에서 제가 더 할말이 없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는 비결 몇 말씀드리고져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잘 믿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오늘 성경 고린도전서에는  바울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다메셋이라는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 받고 자신이 기도가운데 개척한 고린도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곳에 담긴 메시지는 사랑이라는 제목이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두 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먼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두분은 그런 신앙을 고백한 그리스도인 입니다.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잘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몸된 교회를 잘 섬기는 것입니다. 요즘 결혼을 하고 2,3년지난면 몇 번의 고비가 있습니다. 그때 신앙 곧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은 해결책이 있습니다. 문제의 정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가정은 수숩이 어럽습니다.

더불어 위로 하나님을 믿는 것 처럼 서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깨지면 모든 것이 깨집니다. 저사람이 콩으로 메주를 쑷대도 나는 믿는다는 확신을 가질때 좀 늦어도 바쁜가보다 하지... 믿음이 없으면 별 생각을 다하는 것입니다. 두분은 이런 행복한 가정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립니다.

 

둘째는, 소망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사도 바울과 고린도 성도들에게 좀 힘들일이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희망 소망 을 가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두분이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좀 어려워도 내일의 희망있고 비젼을 있다는 것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자녀에 대한 소망 사업에 대한 비젼 헌신에 대한 포부를 가지시고 위를 바라보는 두분이 될 때 행복의 파랑새는 이집에 계속 머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은 하면 관계가 더 넓어 집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닙니다. 결혼 전에는 혼자의 관계가 이제는 두 셋 넷으로 복잡해 집니다.  특별히 양가의 부모님를 잘 섬기는 부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낳으신 수고 기르신 수고 아무것도 입지 않았을 때 수치를 가려주신 분이 부모님입니다. 양가의 부모님의 관계 어르신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 지는 것이 행복입니다.  부모하고 원수가 되고  부모님 않보는 사람 모든 것 다 가졌으나 행복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리고 친구 친척 동료 교우 이웃에게 진정한 장미의 향기가 풍기는 두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세번째로,  사랑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여기 사도바울이 세우신 고린도교회와 성도의 관계에서 최고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누구나 머물고싶고 함께 하고 싶으나 미움이 있는 곳에는 다 피라고 싶어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가 부부관계입니다. 그 속에 결혼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부모를 떠나는 독립선언입니다. 그런 뜻에는 의무가 있는가 하면 책임도 있습니다.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마음도 하나 몸도 하나 주머니도 하나 집도하나 침대도 하나입니다.

 그 하나됨을 이루어 가는 진한 에너지가 있는데  바로 사랑입니다.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함 같이하라입니다. 먼저 사랑하는 남편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와 허물을 덮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해 합니다. 또 신부는 사랑만 받는 관계가 아니라 복종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복종은 내 의견이 다르드리도 따르는 것입니다. 순종은 내 의견이 같을 때 따르는 것이라면 복종은 내 의견이 다르드라고 하나님이 세우신 남편이기에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말씀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입니다. 자기 생명까지 내어 주신 피의 사랑입니다. 아내를 위해서 목이라도 내어 놓는 아가폐적 사랑입니다. 이유가 어떠하든  논리적으로 맞던 틀리던 무조건 두분이 이런 복종과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행복합니다. 여자를 힘으로 지배하라고 하지 말고 사랑으로 하고.. 남자를 말로 이기려고 하지말고 순복으로 이기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되어서 행복이 뚝뚝 떨어지는 가정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사랑이니라  아멘

 

끝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르는데 저와 오신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주례를 맡아 달라고 찾아오는 젊이들에게 반드시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 약속을 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실이 분명하지를 묻습니다. 아니면 믿게 하고 예수를 않믿는다고하면 노합니다.  또 하나는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죽음이외엔 갈라서는 일이 없다고 약속한다고 하면 주례를 응답합니다.

 

  제와 여기 계신분들이 바로 지금까지 이 두사람 곁에서 여러모양으로 함께 하셨던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결혼했기에 끝이 아니라 더욱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책망해 주시기고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증인석에 앉아 계셨던 분들이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대 일조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신분의 가정에서 딸을 보낸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좋은 사위 아들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시고 신랑의 가정에서는 새 사람이 들어 왔으니 어떻게 하나 보자하고 감시 카메라 달라 놓치 말고 내 딸이라고 이제는 내 식구다 생각하시고 예쁘게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이 두 사람의  행복한 가정이루고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다같이 힘찬 응원에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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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가정예배 (2018년)

 

 


추석가정예배(18년)  
◑ 사 회 (가족 중-지금부터 추석 명절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 찬 송 - 597장(통378)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 기 도 - 맡은이(아래 기도문 참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우리가정을 여기까지 지켜 주신 에벤에셀 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추석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모여 예배드리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예배드리는 우리 가정에 화목과 축복과 사랑 행복이 넘치는 가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추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복된 가정 이루게 하옵소서 ”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 성경 ? 마태복음 5;1-10 (다같이 찾아서)
◑ 말씀 ? 행복으로 초대
인간은 행복하기를 원하고 행복을 찾아 갑니다. 그런데 진정한 행복이 무엇입니까? 물으면 정확한 대답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1.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8가지 소위 8복이라고 하는데 복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마가리오스]인데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진정한 복은 내가 무엇을 많이 소유했는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입니다. 이번 추석에 우리가정에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았고 한 해동안 모든 잘 되지 않았지만 성경에 말씀하는 행복으로 초대 되는 가정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 행복은 환경에 있지 않고 태도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8가지 복에 대한 말씀 중에 어느 하나 환경이 좋으면 행복하다 . 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오막살이 살아도 행복이 있는가 하면 백악관에 살아도 불행할 수 있습니다. 미 백악관에 살았던 트루먼대통령은 [백악관을 호화로운 감옥 ] 이라고 했고, 포드대통령 부인 베티 여사는 [금붕어 항아리 ] 라고 불렸습니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라고 하면서 워싱톤 시내에 나가 살기도 했습니다. 환경에 의존하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행복은 소유나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정 어떤 태도로 사는가 (?) 더 중요합니다 .


이번 추석을 맞이하여 우리가정 행복을 선택합니다. 원망할 것이냐? 감사할 것이냐? 짜증을 부릴 것이냐? 찬송할 것이냐? 나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불행하다 하면 불행합니다. 우리는 행복하다 하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행복한 가정으로 초대는 소유나 환경이 아니라 사람이 되고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살고 행복을 선택하고 가면 행복으로 초대가 됩니다. 우리가정 행복합니다. 라고 크게 외쳐봅시다. 아멘
  
◑ 찬송 ? 410장(통468)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 폐회 ? 맡은이나 주기도(다같이)
  
<기도하고 서로 칭찬과 격려 덕담의 시간을 가지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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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여러 가지 시험

 

 

 

야고보서 1장 2절


  
양을 키우는 목자는 염소를 함께 집어넣습니다. 양은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두면 병에 자주 걸립니다. 이런 양들 가운데 염소가 있으면 양들 사이를 헤집고 다닙니다. 이때 양들은 뿔 달린 염소를 피해 도망 다니며 저절로 운동을 해 건강해집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을 강한 믿음으로 키우기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우리에게 시시각각 찾아오는 여러 시험이 바로 우리 삶 가운데 염소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 시험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쓰다 보면 어느새 우리 믿음이 자라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욥은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 그 고난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믿음을 연단하는 은혜의 손길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10)

사도 야고보도 같은 권면을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야고보서 1:2)

하나님의 모든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훈련을 위한 시험입니다. 첫째, 이런 시험이 오면 기쁘게 참고 감당해야 합니다. 믿음의 유익을 위한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고난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도움 받을 사람도 만나게 하십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상 주실 것을 기대하며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른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야고보서 1:12)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다른 종류의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의 유혹(야고보 1:13)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속지 말고 즉시 물리쳐야 합니다. 이런 유혹이 찾아올 때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악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야고보서 4:7)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를 타락시키기 위해 사탄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사탄은 그 사람에게 커다란 금덩이를 보여줬습니다. 그가 눈도 깜빡하지 않자 다음에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냈습니다. 역시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방법으로 그의 질투심을 자극했습니다. “당신의 경쟁자가 방금 자네보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네.” 그는 이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리고 화를 내면서 자기 믿음의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성장시켜 결국에는 큰 상을 주시기 위해 인생길에서 여러 가지 염소를 만나게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굳센 믿음으로 나아가는 은혜로운 기회로 삼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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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 설교 ] 승리하는 삶  (0) 20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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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밤 찬양 예배] 기쁨으로 찬양합시다 (Let's praise with joy)

 

 


제목 : 기쁨으로 찬양합시다.

말씀 : 시47:1-9

1.찬양의 은혜

어떤 목사님이 중국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다. 물론 중국에는 공식적인 선교사로 파송될 수는 없지만 비공식적으로 지하교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많이 있다.

이 선교사가 중국 지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준비찬송을 드리는데 놀랍게도 복음성가가 100절까지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로 중국 지하교회에는 2단정도의 짧은 찬송으로 몇십절까지 있는 것도 있고 100절까지 있는 것도 있다고 한다. 2단으로 100절이면 총200단이므로 우리 복음송 같으면 약12곡쯤 되는 분량이다.

이 찬송을 부르는데 1절부터 시작해서 10절, 20절, 30절, 50절, 60절, 70절해가면서 모조리 다 부르더란다. 선교사님은 솔직히 자신과 잘 맞지도 않고 너무 길어서 좀 지루했지만 목사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지루하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해서 내색은 못하고 끝까지 다 따라 불렀다. 그렇게 100절까지 부르니까 약35분 정도가 걸렸다.

이렇게 한곡이 끝나자 찬양인도자가 멘트를 시작하는데 약10분정도를 하더란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인도하심 등등에 대하여 약10분정도 멘트를 하더니만 하는 말이 더 걸작이다. ?우리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좀전에 불렀던 찬송을 다시한번 뜨겁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정말 다시 100절까지를 부르더란다. 그렇게 2시간동안 찬양을 하더니 겨우 예배를 시작하더란다.

선교사님은 처음에는 지루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들과 함께 뜨겁게 다시 100절까지 부르는 동안 점차 그의 심령이 뜨거워지면서 드디어 위로부터 내려오는 뜨거운 성령의 임재하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다. 사실 찬송 부를 때 내 심령속에 은혜가 충만하지 않으면 지루할 수도 있다. 또 때로는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찬양도 있을 수 있다. 때로는 내 기분이 좀 가라앉아 있어서 은혜를 잘 못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앞에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성령의 뜨거운 은총을 간구하며 더욱 뜨겁게 찬양해야 한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갈급한 심령으로 구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은혜를 주신다. 은혜를 받으면 말씀이 꿀맛처럼 달아지고 찬양하는 시간이 세상의 어떤 시간보다 즐겁고 기쁘다.

시107:9절을 보라.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그러므로 더욱 열심히 그리고 뜨겁게 기도하며 찬양하며 말씀 묵상하며 살아갈때에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은혜의 충만함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아가자.

2.찬양의 이유

물론 찬양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아니 우리는 무조건 찬양해야 한다. 찬양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43:21절을 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무조건 찬양해야 한다. 찬양을 목적으로 지으셨기 때문에 찬양해야 한다. 따라서 열심히 찬양하는 자는 은혜를 받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으신 목적에 충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2,4절에서는 계속해서 우리가 찬양해야 할 마땅한 이유를 말씀하고 있다. 먼저 2절을 보면 “지존하신 여호와는 엄위하시고 온 땅에 큰 임군이 되심이로다.”고 말씀하고 있다. 온땅의 큰 임군이란 곧 왕중의 왕이라는 말이다. 왕중의 왕으로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절대적인 주권으로 운행하시는 지존하시고 엄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전능의 하나님, 그 신비한 능력으로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 어찌 찬양 안하랴! 그 능력과 지혜앞에 어찌 찬양 안하겠는가!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아는 자의 마땅한 태도이다. 그 능력과 지혜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있는 피조물을 올바른 응답인 것이다.

4절에서는 우리가 찬양해야 할 다른 이유를 말씀하고 있다.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즉 우리를 택하시어 당신의 기업으로 삼아 주셔서 야곱의 영화 곧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누려야 할 영화를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찬양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하나님의 그 권능과 지혜앞에 찬양해야함과 동시에 우리는 우리를 택하시어서 당신의 기업으로 삼으신 그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남들보다 더 잘 난 것도, 똑똑한 것도, 더 잘하는 것도 없는 우리를 하나님의 그 절대적인 주권과 그 한량없는 사랑하심과 은혜로 우리를 부르시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려야 할 그 영화에 참여케 해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우리 하나님께 찬양해야 한다. 생각해 보라. 누가 나를 위하여 죽어줄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릴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설령 누군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다 한들 누가 나의 죄를 대속할 수 있겠는가? 누가 끊임없이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부랑아를 받아 주겠는가? 그것도 자기의 목숨까지 내어 놓으면서......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해주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런 인생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온 몸이 찢기신 것이다. 왜?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그것이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영화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그러니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정녕 정상적인 감정과 이성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기억할때에 어찌 감격과 기쁨과 감사속에서 찬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3.찬양의 방법

오늘 말씀 1절에서는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며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치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우리의 온 몸을 동원해서 찬양하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손바닥을 치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것은 단순히 손뼉만을 치라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손뼉을 치며, 때로는 춤을 추며, 때로는 정말 애통해하며, 때로는 통곡을 하며 자기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찬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150:4절에서는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7절에서는 지혜의 시로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지혜란 무엇인가? 지혜란 물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의 시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거룩하심과 은혜와 사랑을 알고 거기에 합당한 영광을 찬양을 통해서 돌리라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하나님의 그 권능과 자비와 긍휼과 사랑하심과 은혜를 안다면 찬양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이 정말 우리의 심령속에 사무치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정말 때로는 어린아이가 가장 갖고 싶어하던 것을 얻었을 때와 같은 기쁨으로 손뼉을 치며 찬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마땅한 도리다. 그것이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자의 마땅한 태도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의 마땅한 의무요, 동시에 특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자. 정말 온몸으로 찬양해보자. 춤을 추어 찬양하고, 손뼉치며 찬양하고, 기뻐하며 찬양하고, 때로는 애통하며, 때로는 정말 통곡을 하며 하나님께 찬양하자. 이러한 찬양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욱 큰 영광을 돌려 드리자.

그러면 진정 생명의 은혜가 넘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다. 성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위로와 평강과 소망이 넘칠 것이다.

그까짓 노래방가서 노래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보약 열재 먹는 것보다도 낫다. 스트레스도 확 달아난다. 마귀도 달아난다. 근심걱정도 달아난다. 속에 맺혀 있던 것도 달아난다.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물리치고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게 된다.

오늘 가족찬양대회를 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통해서 기쁨을 누리고, 찬양을 통해서 은혜받고, 찬양을 통해서 사랑을 나누고, 찬양을 통해서 힘을 얻고...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힘찬 찬양생활로 더욱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은혜를 충만히 누리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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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말씀] 범사에 감사하라

 

 

 

민수기 11장 4∼15절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군대에 쫓기다 홍해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당신이 우리를 끌어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 이같이 하느냐” “애굽에서 당신에게 우리를 내버려두라 했고,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했느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게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고 길을 터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선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온 회중이 굶주려 죽게 됐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먹고도 남을 충분한 만나를 새벽마다 주셨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만나가 끊길 수 있다며 또 불안해했습니다. 르비딤에서는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 우리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이 샘솟아 나오는 기적을 통해 그들의 갈증을 해결했습니다.

1년 후 바란 광야에선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땐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었다. 이제는 우리 기력이 다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이미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그 장엄한 광경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격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음에도 그들은 이런 불평을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저녁마다 메추라기 떼를 공급하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 처음 그들은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이 많은 식량을 공급하심에 경외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매일 같은 음식에 싫증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슬과 함께 내린 만나, 저녁마다 진에 덮인 메추라기, 그 기적의 산물을 보면서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간사한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 아닐까요. 감사하는 일에도 조건부 감사와 범사에 감사하는 게 있습니다. 조건부 감사가 하나님의 응답과 풍성하게 채워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라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면서 감사와 영광을 돌렸겠지요. 일종의 조건부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기대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할 일이 있을 때 잊지 말고 감사하라’고 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명령에 순종하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알고서 믿는 게 아니라 믿으면 믿을수록 더 알아가게 됩니다. 감사할 일이 있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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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설교  / 추수감사절 설교 / 큰 은혜 속에 살아가는 인생

 

 

 

 

제목 : 축복받은 사람들

말씀 : 시65:1-5

1.먼저 감사부터 합시다.

(닉부이치치, 오토다케히로타다, 이지선 사진 보여주기)

닉 부이치치는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보이스 목사님과 더쉬카 사모님의 사랑과 헌신과 기도로 그는 정상인의 다니는 학교를 다니며 대학까지 나왔습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훈련하여 컴퓨터는 물론 수영, 줄넘기, 골프, 농구를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드럼까지 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19살때부터 학교와 기업, 교회 등 수많은 단체에서 강연을 하였고, 세계 여러 나라의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입니다. 어떠한 상황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절 보십시오. 저는 이와같이 팔다리가 없지만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오토다케 히로타다입니다. 이 사람도 태어날때부터 팔다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정상적인 아이들과 함께 교육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으로, 잡지사 기자로, 방송사 캐스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사진은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자매입니다. 그녀는 이화여자대학교 4학년 때에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승용차로 귀가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 55퍼센트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살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7개월간의 입원, 11차례의 수술,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치료. 이후에도 지금까지 매년 몇차례의 끔찍스러운 고통의 수술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난 시간에 간증을 통해서 보았듯이 과거의 그 예쁜 얼굴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으니 돌아가야 할 이유가 뭐냐고, 지금 더 행복하다고, 지금 더 할 일이 많다고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과거의 그 예쁜 얼굴은 잃었지만 오히려 더 주님을 믿는 믿음가운데 든든히 서게 되었고, 주님이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와 용기를 줄 수 있는 귀한 것을 얻었기에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행복은 돈에 있지도 않고, 권력에 있지도 않습니다. 지식에 있지도 않습니다. 인기에도 있지 않습니다. 얼짱 몸짱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데 있는 것입니다. 많든 적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주께서 주신 내 인생의 목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과 기쁨과 존귀를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5:20절에서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달라고 하기 전에, 없는 것에 잃은 것에 좌절하고 낙담하기 전에 이미 주신 것에, 가지고 있는 것에, 누리고 있는 은혜에 먼저 감사부터 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없는 거, 모자라 거, 약한 것, 부족한 것 생각하며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절망하지 말고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고, 거기에 믿음이 있고, 거기에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먼저 감사부터 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자꾸 달라고 졸라대기 전에, 없다고 불평하기 전에, 많이 가진 자를 부러워하기 전에,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만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꼭 그런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하나님의 뜰에 거하게 됨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감사와 은혜를 알고 누릴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바로 다윗인데 먼저 다윗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된 복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4절에서 고백합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말 그대로 주님께 택함을 받고 주님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감사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많습니다.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이 감사요 은혜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요, 먹고 입고 마시고 숨쉬고 자고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자유를 누리고 평화를 누리고 어느 것 하나 감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도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 어느것도 온전히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큰 은혜요, 감사인 것은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의 정원에서 주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사랑과 은혜와 평강의 주님이신 주님의 자녀가 되어 그 능력과 은혜와 사랑의 주이신 주님의 정원에서 살면서 주님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세상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큰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솔직히 안 그렇습니까? 어떤 집에 산들 이런 은혜를 누리겠습니까? 제아무리 대궐 같은 집에다 축구장 골프장 수영장을 갖추고 온갖 아름다운 나무와 꽃을 가꾸어 놓은 정원속에 산다한들 주님의 정원에 사는 것만 하겠습니까? 그야말로 새발의 피도 안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한 너댓살 까지는 그런대로 부유한 가정이었지만 이후로 아버님의 실수로 가세가 완전히 기울어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초가삼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웃에는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고래등같은 같은 기와집 안채에다가 사랑채도 여러칸이었습니다. 초등학교때 가끔 그 집 마당을 지나면서 열려 있는 대문으로 그 집 안뜰을 몰래 들여다보곤 하였습니다. 안채는 어린나이라서 그런지 무슨 궁궐처럼 보였습니다. 마당에는 나무로 잘 가꿔져 있었고 여러 가지 꽃도 예쁘게 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이 마치 천국처럼 보였습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저런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저런 집 뜰안에서 놀면 얼마나 좋을까, 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면서 늘 부러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의 정원에서 살고 있습니까? 주님의 정원입니다. 그까짓 고래등같은 기와집 정원이 넓으면 얼마나 넓겠습니까? 좋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정원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우리의 정원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우리집입니다. 우리집 뜨락입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영광과 기쁨과 은혜와 존귀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완성되겠지만 그러나 지금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뜰안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은총을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위로와 소망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물론 때로는 환난과 핍박도 있습니다. 어려움이 올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주님은 결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그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주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더욱 주님을 바라보게 만드십니다. 더욱 주님과 동행케하십니다. 더욱 주님 앞에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승리하여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차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이렇게 주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의 뜰에 거하며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가운데 마음껏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기억하시고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것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까짓 세상의 것들 부러워하지도 말고 그것 때문에 낙심하거나 좌절하질랑 더더구나 말고 나는 하나님의 정원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기억하며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평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7,8절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평강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땅 끝에 거하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오직 주님만이 인생에게 닥쳐오는 모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두려움과 공포와 어둠속에서 우리를 지키시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안에 있는 자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거워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얼마나 많은 전쟁과 도전과 위협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끊임없이 블레셋이나 암몬이나 에돔사람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왕이 되기 전에는 얼마나 사울에게 괴롭힘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는 자식이 반란을 일으켜서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되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믿었습니다. 주의 역사하심을 믿었습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참고 견디며 주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결국 모든 대적자들을 물리쳐 주시고 위대한 성왕이 되게하히고 평강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평화가 어디 있습니까? 안식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다른데서 오지 않습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하나님에게서 주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영원하고 완전한 평화는 오직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과 평강과 은혜의 창조자이시고 수여자이시고 주관자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도 그 주님을 믿고 주님과 동행하는 자에게는 놀라운 평강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실제로 여러분, 우리는 외견적으로도 얼마나 놀라운 번영과 평안과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대한민국이 이 만큼 부요하고 태평성대를 누릴때가 언제 있었습니까? 이 땅위에 교회가 세워지고 찬양소리와 기도 소리가 울려퍼지고 성도들이 새벽마다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가정을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이 함께 하셨을 때 우리는 이만한 번영과 자유와 평화와 질서와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안에서는 분명 평안이 있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 분명 은혜가 있습니다. 여러분, 주의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주의 평안을 누리기 위하여 평강의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평강의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면서 주님안에 있는 그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결실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평화의 축복에 이어 결실의 축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9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보세요. 땅을 권고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권고하셨다는 돌아보셨다는 것입니다. 살펴서 필요한 것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을 돌아보사 물이 필요할 때 물을 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뜨거운 태양이 필요할 때 태양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단비를 내려서 단단해졌던 땅을 부드럽게 하여 싹을 내게 하셨다는 것이죠. 싹을 내게 하실 뿐 아니라 그 싹에 복을 주셔서 그 싹이 잘 자라도록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푸른 초장이 형성되어 그 초장에는 양떼가 덮여있고, 밭에는 곡식이 넉넉하게 덮여 있어서 온 무리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오늘 이땅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물론 힘든 일이 있고, 때때로 우리를 실망시키는 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예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땅은 축복받은 땅이예요. 은혜의 땅입니다.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들이예요.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값없이 받은 사람들이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도 여러분의 가정과 산업에 결실의 축복이 있는 것은 주께서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를 권고하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친히 돌아보시어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절기를 따라 적절한 태양빛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니 가장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갈 이 축복의 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도 농사의 현장에서, 사업장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열심히 수고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수고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감사요, 축복이요, 커다란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할 수 있는 터전과 조건과 환경과 건강과 지혜를 주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제반 조건들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열심히 수고한대로 먹을 수 있도록 인도하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저 감사할 것 뿐입니다. 영광 돌릴 것 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감사하고 영광 돌리고 기뻐해야 할일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특혜를 받았습니다.

지금 여기서도 우리는 마음껏 주와 동행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마음껏 찬양하며 예배드리며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복된 삶의 터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복받은 사람들이지 얼마나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물론 힘들때도 있습니다.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받은 바 은혜가 더 큽니다. 제아무리 어려워도 받은 은혜가 몇 백배 천배 만배 더 큽니다. 그러므로 먼저 감사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있음에 감사하고, 주님의 뜰안에 거하게 하심에 감사하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감사하고, 이 풍요로움에 감사하고, 이 자유와 평화와 질서가 있음에 감사하고,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고, 이웃이 있음에 감사하고, 살아숨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할때에 혹시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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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주일낮예배설교 ( 보배로운 믿음 )


 

 
 


제목 : 보배로운 믿음

말씀 : 벧후1:1~4

 

베드로 전서

A.D.64년경. 로마 네로 황제의 기독교 핍박 시작. 아직 본격적으로 박해가 시작되진 않았지만 로마제국 내에 흩어져 거류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박해에 대비해 믿음으로 이겨 나갈 것을 권면. 우리는 산 소망이 있는 자들, 영혼의 구원을 받은 자들로 잠깐 근심 할 수 밖에 없지만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은 것, 오직 주의 말씀만 영원함.

우리는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 그러기에 거짓 것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선한 싸움을 해야 함으로 오히려 더 많은 고난과 핍박. 그러므로 깨어 근신하며 굳건한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하며 기꺼이 고난 받을 것.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증표로써 도리어 영광스러운 일. 그렇게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할 때에 하나님이 끝까지 지켜줘 승리할 것.

그렇다. 죄와 무지와 어둠속에 있는 세상. 마귀사탄이 역사하고 있는 세상. 나도 세상도 다 죄와 무지와 어둠. 끊임없는 죄와 유혹과 핍박과 도전. 그러므로 고난과 핍박도. 그러나 우리는 진리에 속한 자이므로 좁은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달려가야. 진리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해야. 깨어 근신해야.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차지할 것.

 

베드로 후서

베드로가 두 번째 보낸 서신. 베드로전서를 보낸 뒤 3,4년 뒤에. 네로의 핍박이 더욱 가중되던 때.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 발생. 어느 정도 견디다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배교하기도. 특히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문. 곧 오실 줄 알았던 주님이 오시지는 않고 핍박만 가중되자 낙심하는 사람들.

이에 베드로사도는 다시 서신을 보내어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주셨으니 믿음을 굳게 지킬 것. 믿음으로 인내 할 것. 개가 토하였던 것을 도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로 돌아가듯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끌려가지 말라.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음을 기억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믿음을 지킬 것을 강조.

우리도 정말 조심해야.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우리들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왜곡된 가치관에 속지 말아야. 마귀 사탄은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환난과 핍박으로 때로는 세상의 온갖 왜곡되고 거짓된 사상으로 우리를 넘어트리려고 함. 깨어 있어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 오직 그것만이 진리의 길, 생명의 길. 그러려면 참고 기다려야.

오늘 말씀. 송신자와 수신자. 축복 기도. 성도의 정체성 상기.

1.송신자와 수신자

벧후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1)예수 그리스도의 종 - 송신자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라고 소개.

종은 dou'lo"로 노예라는 뜻. 완전히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는 자, 주인을 섬기며 그 뜻을 받들어 수행하는 자. 주인의 뜻을 헤아려 준행하며 그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자. 그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자. 동시에 종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했을 때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자.

우리는 완전히 주님께 종속되어 주님의 수족이 되어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존재. 종은 몸도 마음도 시간도 물질도 재능도 생각도 오직 주인의 것. 주인의 뜻에 의하여 움직여야. 주님은 완전한 생명과 사랑과 은혜와 기쁨과 위로와 소망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 주님 뜻대로 살아갈 때 최고의 가치, 의미, 복, 은혜 누리다가 영광의 나라.

 

사도는 ajpovstolo"로 ‘보냄을 받은 자’ 원칙적으로 모든 인간은 관리인으로 보냄을 받은 자. 주어진 자리에서 잘 관리하여 하나님의 주신 동산을 아름답게 가꾸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그 가운데서 생명의 은총을 누리도록. 그러나 세상 사람은 몰라.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거기다 한가지 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보냄을 받은 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로 보냄을 받은 자. 그러므로 보냄을 받은 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그러므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자.

2)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자들 - 수신자

베드로는 수신자들의 신분 또는 정체성을 상기시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 즉 베드로는 이 편지를 받는 그들이 얼마나 굉장한 사람들인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상기시킴, 즉 귀한 믿음의 소유자답게, 그 엄청난 신분의 소유자답게 세상의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이 보배로운 믿음을 굳게 지키고, 의와 진리와 선 가운데 귀한 삶을 살라는 것.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어 얻게 됨. 그러므로 이 보배로운 믿음을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꾸면 안돼. 환난과 핍박이 와서 설령 육체의 생명은 잃은 망정 이것만은 잃어서는 안돼.

당연하지 않나? 믿음보다 큰 보배가 어디 있는가? 무엇이 믿음보다 우리에게 더 큰 생명의 은총을 가져다주겠나? 무엇이 이보다 더 큰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영광을 가져다주겠나? 이것은 상대적인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무엇과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것은 다 잃어봤자 별거 아니다. 그러나 믿음은 잃으면 끝장. 영원히 끔찍한 고통.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또 마13:44절에서 말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큰 보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자. 가장 큰 보배를 가진 자들임으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자. 세상의 별 것 아닌 것들에게 조금이라도 믿음을 팔아먹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자. 오직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영원하고도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자.

 

2.축복기도

벧후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모든 서신서의 서두와 종결 부분에서 계속 말씀했던 내용. 여기서는 두 가지를 강조. 첫째는 인생의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 둘째는 그 복은 어디로부터 어떻게 오는가? 물론 인생의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이 복의 근원. 그 하나님을 알고 바르게 섬길 때 은혜와 평강. 인생의 진정한 복은 하나님이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생명과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세상에서 누리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과 위로와 소망도 오직 하나님이 주실 때 가능. 세상의 돈과 명예와 물질과 지식도 어느 정도 우리 삶에 유익이 되나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게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 은혜는 하나님을 앎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을 알 때 믿게 되고 믿을 때 그 은혜를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위로와 소망을 구해야. 그러려면 주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어야. 주님이 누구신지 어떻게 믿고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주님의 뜻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엎드려야 한다.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주님이 깨닫게 하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셔서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가게 한다. 그래서 주님의 평강과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들을 찾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따라가기보다 주님을 찾자. 겸손히 엎드리자. 주님을 사모하자. 그래서 주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충만함으로 세상의모든 것을 이기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자.

 

3.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심

벧후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 여기서 생명이란 하나님이 본래 주셨던 기쁨과 은혜와 복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영원토록 조금도 부족함 없이 완전히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생명. 물론 이것은 신기한 능력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완성된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이다. 우리의 죄와 무지와 허물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런 완전한 생명의 소유자가 되는 것.

경건이란 그런 완전한 생명을 가진 자들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 생명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본질적인 정체성. 경건은 온전한 생명을 가진 자들이 가져야 할 삶의 외견적인 모습. 그런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은 그렇게 생명을 가진 자로 경건한 삶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갈 때 주어지는 모든 은혜들을 주셨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고, 특혜이고, 외견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삶의 모습. 그러므로 특별한 은혜를 받은 자들답게 특별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세상과 야합하거나 타협하거나 끌려 다니지 말고 믿음을 지켜나가라는 의미.

그러므로 우리는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존귀한 인생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긍지와 자존심을 가지고 험하고 혼탁하고 왜곡된 세상에 끌려가지 말자. 이것은 오직 예수님 안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직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주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잘 달려감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 되자.

4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됨.

벧후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로써’ 라는 것은 3절의 자기 영광과 덕으로써 라는 말씀으로 오직 주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다는 말씀. 지극히 큰 약속이란 물론 영원한 영광의 나라. 따라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 때문에 그까짓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에 끌려 다니거나 노예가 되지 않고 신성한 성품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 사는 자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받은 자들이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약속으로 받았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약속으로 받으면 세상의 것들이 작은 것임을 안다. 거기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거기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고 살게 된다.

당연하지 않나? 진정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보았는데 그까짓 세상의 것에 끌려 다닐 이유가 뭔가? 세상의 것을 바라볼 이유가 뭔가? 어찌 주님을 바라보지 않겠나? 그러면 성령님이 어찌 함께 하시지 않겠나? 그러면 얼마나 더 주님을 닮아가겠나? 그러면 얼마나 주님의 은총 누리며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겠나?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는 주님의 종임을 잊지 말고 주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하자. 진실로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는 기억하며 세상의 것에 휘둘리거나 낙심 원망 근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자.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소유한 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며 주님의 영광 나타내며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며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리는 복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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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주일오후예배설교 / 보배로운 믿음(벧후1:1-4)

 

 

 

제목 : 보배로운 믿음

말씀 : 벧후1:1~4

베드로 전서

A.D.64년경. 로마 네로 황제의 기독교 핍박 시작. 아직 본격적으로 박해가 시작되진 않았지만 로마제국 내에 흩어져 거류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박해에 대비해 믿음으로 이겨 나갈 것을 권면. 우리는 산 소망이 있는 자들, 영혼의 구원을 받은 자들로 잠깐 근심 할 수 밖에 없지만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은 것, 오직 주의 말씀만 영원함.

우리는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 그러기에 거짓 것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선한 싸움을 해야 함으로 오히려 더 많은 고난과 핍박. 그러므로 깨어 근신하며 굳건한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하며 기꺼이 고난 받을 것.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증표로써 도리어 영광스러운 일. 그렇게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할 때에 하나님이 끝까지 지켜줘 승리할 것.

그렇다. 죄와 무지와 어둠속에 있는 세상. 마귀사탄이 역사하고 있는 세상. 나도 세상도 다 죄와 무지와 어둠. 끊임없는 죄와 유혹과 핍박과 도전. 그러므로 고난과 핍박도. 그러나 우리는 진리에 속한 자이므로 좁은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달려가야. 진리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해야. 깨어 근신해야.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차지할 것.

베드로 후서

베드로가 두 번째 보낸 서신. 베드로전서를 보낸 뒤 3,4년 뒤에. 네로의 핍박이 더욱 가중되던 때.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 발생. 어느 정도 견디다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배교하기도. 특히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문. 곧 오실 줄 알았던 주님이 오시지는 않고 핍박만 가중되자 낙심하는 사람들.

이에 베드로사도는 다시 서신을 보내어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주셨으니 믿음을 굳게 지킬 것. 믿음으로 인내 할 것. 개가 토하였던 것을 도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로 돌아가듯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끌려가지 말라.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음을 기억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믿음을 지킬 것을 강조.

우리도 정말 조심해야.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우리들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왜곡된 가치관에 속지 말아야. 마귀 사탄은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환난과 핍박으로 때로는 세상의 온갖 왜곡되고 거짓된 사상으로 우리를 넘어트리려고 함. 깨어 있어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 오직 그것만이 진리의 길, 생명의 길. 그러려면 참고 기다려야.

오늘 말씀. 송신자와 수신자. 축복 기도. 성도의 정체성 상기.

1.송신자와 수신자

벧후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1)예수 그리스도의 종 - 송신자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라고 소개.

종은 dou'lo"로 노예라는 뜻. 완전히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는 자, 주인을 섬기며 그 뜻을 받들어 수행하는 자. 주인의 뜻을 헤아려 준행하며 그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자. 그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자. 동시에 종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했을 때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자.

우리는 완전히 주님께 종속되어 주님의 수족이 되어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존재. 종은 몸도 마음도 시간도 물질도 재능도 생각도 오직 주인의 것. 주인의 뜻에 의하여 움직여야. 주님은 완전한 생명과 사랑과 은혜와 기쁨과 위로와 소망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 주님 뜻대로 살아갈 때 최고의 가치, 의미, 복, 은혜 누리다가 영광의 나라.

사도는 ajpovstolo"로 ‘보냄을 받은 자’ 원칙적으로 모든 인간은 관리인으로 보냄을 받은 자. 주어진 자리에서 잘 관리하여 하나님의 주신 동산을 아름답게 가꾸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그 가운데서 생명의 은총을 누리도록. 그러나 세상 사람은 몰라.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거기다 한가지 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보냄을 받은 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로 보냄을 받은 자. 그러므로 보냄을 받은 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그러므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자.

2)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자들 - 수신자

베드로는 수신자들의 신분 또는 정체성을 상기시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 즉 베드로는 이 편지를 받는 그들이 얼마나 굉장한 사람들인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상기시킴, 즉 귀한 믿음의 소유자답게, 그 엄청난 신분의 소유자답게 세상의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이 보배로운 믿음을 굳게 지키고, 의와 진리와 선 가운데 귀한 삶을 살라는 것.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어 얻게 됨. 그러므로 이 보배로운 믿음을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꾸면 안돼. 환난과 핍박이 와서 설령 육체의 생명은 잃은 망정 이것만은 잃어서는 안돼.

당연하지 않나? 믿음보다 큰 보배가 어디 있는가? 무엇이 믿음보다 우리에게 더 큰 생명의 은총을 가져다주겠나? 무엇이 이보다 더 큰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영광을 가져다주겠나? 이것은 상대적인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무엇과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것은 다 잃어봤자 별거 아니다. 그러나 믿음은 잃으면 끝장. 영원히 끔찍한 고통.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또 마13:44절에서 말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큰 보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자. 가장 큰 보배를 가진 자들임으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자. 세상의 별 것 아닌 것들에게 조금이라도 믿음을 팔아먹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자. 오직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영원하고도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자.

2.축복기도

벧후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모든 서신서의 서두와 종결 부분에서 계속 말씀했던 내용. 여기서는 두 가지를 강조. 첫째는 인생의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 둘째는 그 복은 어디로부터 어떻게 오는가? 물론 인생의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이 복의 근원. 그 하나님을 알고 바르게 섬길 때 은혜와 평강. 인생의 진정한 복은 하나님이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생명과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세상에서 누리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과 위로와 소망도 오직 하나님이 주실 때 가능. 세상의 돈과 명예와 물질과 지식도 어느 정도 우리 삶에 유익이 되나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게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 은혜는 하나님을 앎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을 알 때 믿게 되고 믿을 때 그 은혜를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위로와 소망을 구해야. 그러려면 주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어야. 주님이 누구신지 어떻게 믿고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주님의 뜻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엎드려야 한다.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주님이 깨닫게 하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셔서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가게 한다. 그래서 주님의 평강과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들을 찾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따라가기보다 주님을 찾자. 겸손히 엎드리자. 주님을 사모하자. 그래서 주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충만함으로 세상의모든 것을 이기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자.

3.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심

벧후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 여기서 생명이란 하나님이 본래 주셨던 기쁨과 은혜와 복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영원토록 조금도 부족함 없이 완전히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생명. 물론 이것은 신기한 능력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완성된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이다. 우리의 죄와 무지와 허물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런 완전한 생명의 소유자가 되는 것.

경건이란 그런 완전한 생명을 가진 자들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 생명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본질적인 정체성. 경건은 온전한 생명을 가진 자들이 가져야 할 삶의 외견적인 모습. 그런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은 그렇게 생명을 가진 자로 경건한 삶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갈 때 주어지는 모든 은혜들을 주셨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고, 특혜이고, 외견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삶의 모습. 그러므로 특별한 은혜를 받은 자들답게 특별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세상과 야합하거나 타협하거나 끌려 다니지 말고 믿음을 지켜나가라는 의미.

그러므로 우리는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존귀한 인생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긍지와 자존심을 가지고 험하고 혼탁하고 왜곡된 세상에 끌려가지 말자. 이것은 오직 예수님 안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직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주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잘 달려감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 되자.

4.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됨.

벧후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로써’ 라는 것은 3절의 자기 영광과 덕으로써 라는 말씀으로 오직 주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다는 말씀. 지극히 큰 약속이란 물론 영원한 영광의 나라. 따라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 때문에 그까짓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에 끌려 다니거나 노예가 되지 않고 신성한 성품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 사는 자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받은 자들이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약속으로 받았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약속으로 받으면 세상의 것들이 작은 것임을 안다. 거기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거기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고 살게 된다.

당연하지 않나? 진정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보았는데 그까짓 세상의 것에 끌려 다닐 이유가 뭔가? 세상의 것을 바라볼 이유가 뭔가? 어찌 주님을 바라보지 않겠나? 그러면 성령님이 어찌 함께 하시지 않겠나? 그러면 얼마나 더 주님을 닮아가겠나? 그러면 얼마나 주님의 은총 누리며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겠나?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는 주님의 종임을 잊지 말고 주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하자. 진실로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는 기억하며 세상의 것에 휘둘리거나 낙심 원망 근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자.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소유한 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며 주님의 영광 나타내며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며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리는 복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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