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집사님의 임종예배기도 Prayers for Death and Dying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고000성도를 이 땅에 출생케 하시고 88년의 인생을 사는 동안 하나님의 딸로  삼아 주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집사로 충성스럽게 섬기면서 일생을 살게 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수명이 다하여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주님을 믿었던 믿음대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신 아버지!

고000 집사님 말년에 질병으로 많은 고통을 받으셨는데 그 영혼 불쌍히 여기고 긍휼을 베푸시사, 다시는 질병이 없고 고통이 없으며 영원한 평강과 희락만이 있는 아버지의 품으로 그의 영혼을 안아 주시옵소서!

긍휼의 아버지!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고 또 소중한 가족과 사별의 아픔으로 슬픔에 잠긴 자녀들과 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시고 눈물을 닦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고인의 장례를 존경하는 목사님과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믿음의 방식대로 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가정은 이번 장례를 기점으로 가정의 모든 대소사를 믿음의 방식대로 행하게 하시며 자자손손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받는 복된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또한 고인의 후손들이 이 사회에서 크게 출세하고 부귀와 공명을 누리는 일들이 대를 이어 끊이지 않고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어머니는 고인이 되었지만 평소 어머니가 자식들을 기도하시고 교훈 하셨던 것들을 늘 간직하며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녀들 되게 하옵소서!

고마우신 아버지!

이 발인예배를 집례하시는 목사님을 성령께서 붙들어 주시고, 이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전하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사람의 심령에게 강하게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국과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믿음을 이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주시옵소서! 

남은 장례일정을 위해 수고할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함께 하사 모든 장례일정을 형통하고 순조롭게 마치게 하시고, 믿음으로 장례식을 시작 했사오니 세상 방법이 조금도 없이 온전히 믿음의 방법대로 마치게 하옵소서!  고000 집사님과 앞서가신 성도들을 우리 본향인 천국에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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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예배 대표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시며,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는 전능하신 하나
님 아버지여!
지금 우리들이 이 곳에 모여서 이 세상을 먼저 떠나 아버지 앞으로
가신 ○○○ 성도님 (어른, 선생님)의 장례식을 거행하려고 하오니
아버지께서 은혜와 사랑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 성도님 (어른, 선생님)이 세상에 있을때에 아버지께
서 크신 능력으로 지켜 주시고 사랑의 손으로 인도하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 영원한 후사가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원하옵기는 이 장례가 아버지의 은혜 가운데 이루어져 이로 말미암
아 그의 유족과 친척들이 큰 위로를 받게 하옵시고, 이곳에 모인 우
리도 하나님의거룩하신 교훈을 배우고 죄를 뉘우치는 것과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믿음이 더욱 굳세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이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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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j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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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기본교리 교회론

대부분의 학자들은 신약성경이 씌어진 당시에 교회들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신약성경의 교회의 원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이들은 성경의 모본이 오늘날에는 "실제적"인 것이 못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교회는 어떻게 조직되는 것이며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일반적인 원칙으로서) 신약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지침을 주셨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대로 따라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형성

신약성경에서 "교회"라고 번역되는 단어는 "불러낸 무리" 혹은 "모임"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에베소에 있는 이교도들의 모임이나(행19:32) 애굽에서 불려나온 무리인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을 가리킬 때도 쓰이고 있습니다만(행7:38),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 대해 사용되는 것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믿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교회는 세 가지 면에서 분명히 구별되어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혹은 아직 세상에 나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 대해 사용되는데, 이 사람들은 오순절부터 휴거 때까지의 기간 중 믿었거나 믿게 될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오늘날 영어권에서 이러한 뜻으로 사용될 때 "교회"라는 단어는 지역교회와의 구분을 위해 종종 대문자(Church)로 쓰여집니다.
이 단어는 특정 시기에 이 땅에 살았던 신자들에 대해 사용됩니다(가령 "16세기 교회"처럼). 이 단어는 어떤 지역에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공부하며, 전도도 하는 어떤 지역의 신자들에 대해 사용됩니다. 한 지역에 여러 개의 교회가 있는 경우에는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갈1:2), "마게도냐 교회들"(고후8:1)과 같이 복수형인 "교회들"(church)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건물을 가리켜 "교회"라 부르지 않으며, 교회협회나 특정 교파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모두는 다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 와서 만들어낸 개념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흔히 추상적인 개념이 분명하게 이해되게 마련인데, 바로 성경에는 이런 식의 설명이 가득해서 우리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를 몇 가지 보게 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엡1:22,23). 그리스도는 머리로서 하늘에 계시고, 교회는 그 몸으로서 이 땅에 있으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2:12,13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한 건물입니다(엡2:20-22). 그리스도는 이 건물의 모퉁이 돌이시며, 이 건물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3:9,16도 보십시오. 교회는 한 새 사람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엡2:15). 전에 원수가 되어 서로 싸움을 벌이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부터 하나님은 한 새 사람을 만드셨는데, 이는 새 피조물이요 곧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엡5:25-27, 고후11:2).여기서 교회는 사랑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이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신부인 점과 비슷하지만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신약성경의 다른 곳을 보면 교회를 나타내는 예들이 또 있는데 가령 양무리(요10:16), 하나님의 밭(고전3:9), 하나님의 집,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3:15) 등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이루어진 한 새로운 몸이 언젠가 생길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고 감추인 바 되었기에 성경은 교회를 가리켜 "비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교회는 거룩한 비밀로서 하나님께서 신약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이제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엡3:4,5,9. 골1:26. 롬16:25,26). 그리스도는 마태복음16:18에서 미리 장래를 내다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미래 시제) 하셨고 사도행전1:5에서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시기를 그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5:11은 교회가 현재 존재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고, 고전12:13은 그리스도의 몸이 성령의 세례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미리 예언하신 말씀과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교회에 대한 언급(이 언급은 바울이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사 한 몸이 되게 하신다고 한 묘사와 부합됩니다) 사이에 오순절이 있었습니다(행2:4). 그러므로 오순절은 그리스도인의 교회가 탄생한 날입니다. 유대교의 특성 일부가 기독교에 남아있긴 하지만, 그 기원과 목적, 운명에 대해서는 이스라엘과 교회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이렇게 상이한 두 무리를 혼동하면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 각자에 대한 성경의 특별한 가르침 중 많은 것을 혼동하게 되며 그리하여 기독교에만 있는 은혜와 복들을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함께 퇴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믿는 자들이 모이는 각 지역교회는 우주적인 교회의 진리를 반영해야 합니다. 그 특징이라 하면 ① 하나됨(엡4:4 참된 교회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② 머리에 순종함(그리스도께 엡5:23, 골1:18. 같은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를 대표하시는 성령님께 요14:16, 26), ③ 보편성(행2:47, 고전12:12-26 모든 믿는 자들은 이 한 몸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역 교회는, 정결한 삶을 살고 심각한 과오를 계속 저지르지 않는 모든 믿는 자들을 영접해야 하는데, 이는 이들이 우주적인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④ 거룩함(고전3:17 하나님은 이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자기 백성들을 구별하셨으며 이는 전 성도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지역교회의 성도 각자는 순결하고 선한 삶을 유지함으로써 이 사실을 나타내고 또한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⑤ 성장(엡4:11,12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에게 주신 은사들로 말미암아 굳게 세워져[덕이 세워져]갑니다), ⑥ 믿는 자의 만인 제사장(벧전2:5,9 이것은 모두가 설교한다는 것이 아니며 모두가 예배하는 제사장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한다는 뜻입니다) 등이 있습니다.

모든 신자는 믿음을 전파하는 일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각자가 가진 은사를 통해서 하게 됩니다. 숫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 교회들은 에베소서4:12,13에 그려져 있는 대로 일종의 연쇄반응에 의해 세워져 나갑니다. 은사를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입니다. 그래서 은사 있는 인도자들은 성도들이 자라서 섬김으로 몸을 세우는 일을 하도록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지역교회에는 각각의 은사를 발휘할 분야가 있는데, 이러한 은사를 쓰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교회로 하여금 권리를 잃게 하는 것입니다. 국내와 해외에서 여러모로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돕는 일을 할 때 우주적인 교회가 사도행전에서와 같이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행1:8).

신약교회가 어떻게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보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왜 교회를 만드셨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여기에 대해 에베소서가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엡3:10,21)고 답을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복음 전파와 그리스도로 충만된 신자들의 삶을 통해 세상 뿐만 아니라 천사들의 세계에도 하나님의 지혜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역교회에서 믿는 자들이 함께 모여 그분께 예배하고 찬양할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교회가 온 세상을 다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는 사상은 말세에 배도가 있을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과 상반되는 것입니다(딤전4:1-3,7, 딤후3장, 4:1-4, 벧후2 장, 유3,4).

교회의 기능

하나님께서 지역교회로 하여금 그분의 지혜와 은혜를 영광스럽게 증거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하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분은 자기 성도들에게 능력과 은사, 조직, 예식, 징계, 여자들의 섬김, 재정지원 수단을 주셨습니다.
참 교회의 능력은 한 위격 안에 있습니다. 그분은 다름 아닌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교회는 기도모임 가운데 탄생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2:42에서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기록된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흔히 기도모임은 교회의 여러 집회들 중에서 참석자가 가장 적지만 그리스도는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합심기도와 연관된 특별한 약속도 주셨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19,20).
어떤 누구도 아닌 바로 성령님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십니다. 공적인 사역을 결정함에 있어서나, 헌금을 적절히 분배해 사용하는 일에나, 예배와 집회를 준비함에 있어서나, 범죄한 신자를 징계함에 있어서나, 또 그 외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있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인위적인 계획을 구상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성령 하나님께 여쭙고 그분의 답을 구하는 데는 영적인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하는 고정된 규제사항들을 가지고 성령을 "소멸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아담하고 질서 있게" 그리고 신약성경의 원리라는 틀 안에서 일을 처리하기만 한다면, 예배나 공중 집회, 혹은 기타 다른 부분에서 모든 지역교회가 똑같아야 될 의무는 전혀 없습니다. 은사 있는 형제들과 성경적으로 인정받는 장로들의 인도는 일의 질서를 유지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승천하실 때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엡4:8-16). 여기에는 은사로 일컬어지는 다섯 가지 유형의 사람들 즉,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가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12:8-10에도 그가 목사나 교사 혹은 전도자이든 관계없이 어느 신자에게든지 성령께서 주시는 재능적인 "은사"의 목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임 전도자가 되지 않고도 사람을 구주께 인도하는 전도자의 일을 할 수 있는 은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 장에서는 에베소서4장에 나오는 주요 은사 다섯 가지를 상고할 것입니다.
사도들은 교회의 터를 세우는 일을 위해 있었습니다(엡2:20). 이들은 우리 주님의 부활의 증인이었고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구원받을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뵈었습니다). 오늘날 사도라는 이 낱말이 지닌 의미에 완전히 걸맞는 사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선교사들이("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모두 이 사도들과 비슷한 일을 하지만 이들에게는 바울이나 베드로가 가졌던 놀라운 은사나 권능은 없습니다. 오늘날 자기가 사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도의 권위를 도둑질하려고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피해야 합니다. 사도들에게는 "후계자"가 없습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되기 전 신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고 장차 올 사실들을 예언하였으며 지역교회에 전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누구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완성된 신약성경이 신앙과 실제적인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자기가 신약의 선지자들과 동등한 수준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속은 자들이거나, 아니면 속이는 자, 혹은 둘 다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항상 전도자가 필요하며 또 항상 전도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널리 알려졌든 아니면 지역교회 안에만 알려졌든지 간에 이들은 복음을 전함으로써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여기 저기 다닙니다. 그래서 주님께 돌아온 자가 여럿 되면, 목자들과 교사들이 이 새신자들을 가르쳐서 새로운 모임을 세우거나 이미 그곳에 모이는 모임에 더해지게 합니다. 진정한 전도자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정하게 합니다. 성경적이지 않거나 정직하지 못한 "전도" 때문에 교회가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단지 몇 달이나 혹 그보다 더 짧은 기간에 끝나버리는 거짓 신앙고백 보다는, 차라리 "결신자"가 적거나 없는 것이 더 낫습니다.

목자는 목자장 밑에 있습니다. 목자장은 그리스도십니다. 목자들(신약에서는 언제나 복수형으로 나옴)은, 일반적으로 잘못된 생각처럼 지역교회의 통치자가 아니라 은사입니다. 목자들은 장로나 감독의 책무를 맡은 자들과 동일한 사람인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원문에서는 목자들이 교사들과 너무나 긴밀히 관련되어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목자와 교사가 한 가지 은사의 양면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서 만일 가르침의 은사가 없다면 결코 진정한 목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 목자들은 가르침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영적인 양식을 자기 양떼에게 먹이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부탁하신 양떼를 돕기 위해 다른 일들도 해야 합니다. 격려의 말을 해주고, 병이 든 자들과 방황하는 자들을 심방하고,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상담해 주는 일들은, 이들이 해야될 많은 일들 중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목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성도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됩니다. 은혜를 입은 여러 목자들이 있는 지역교회는 실로 복된 것이며 큰 교회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을 돌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있고 성심성의껏 일하는 사람이라 해도 마땅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교사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즉 정보를 전달해주는 사람인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 교사는 이런 수준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왜냐하면 가르침의 은사는 자기가 가르치는 내용을 삶으로 실천해야 하고 또 그가 가르치는 것이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교리(Doctrine)"(행2:42)는 단지 사도들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성령님 없이는 어떠한 가르침도 성경적 수준에 미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구체적인 사실이나 건전한 교리를 학문적으로 배울 수는 있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인간의 교만만 부추기고 영적 성장을 저해합니다. 성경을 배우기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지역교회에서 가르침의 은사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한 번에 조금씩 배우기 때문에 이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건전한 기독교 학교에서 정식으로 성경을 배우면 체계적인 가르침으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지역교회에서 안 가르칠지도 모르는 어떤 배경지식들을 습득하는 데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교회 안에서 목회하기 전에 정식으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은 없습니다. 말씀으로부터 훈련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특별히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늘 신령한 은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교회들이 이 점 때문에 파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전도하고, 성도를 돌아보며(목회하며), 말씀을 증거하고,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하고, 귀히 여기며,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고,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신약성경은 조직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닙니다(고전14:33). 지역교회 안에는 질서가 있어야 하는데, 사람의 질서가 아닌 하나님의 질서이어야만 합니다.
빌립보에 보낸 편지는 그 받는 대상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성도들과 감독(지키는 자)들과 집사들이었습니다. 교회의 모든 신자들 가운데에는 감독들과 집사들이 포함되지만, 이 감독이나 집사에 속하는 사람들은 지역교회 안에서 특별한 조직상의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는 신약성경 곳곳에 나타난 질서인 여러 명으로 된 각 부류가 있었습니다. "직분을 맡은 자들"(굳이 용어를 사용하자면)이 중요하지만 사도들의 문안 편지에서 첫 번째 자리에 놓인 부류는 예배하는 제사장인 모든 지체가 놓여 있는데, 이것은 소위 "성직자"가 첫째 위치에 있고 "평신도"가 두 번째 위치에 있는 오늘날 널리 퍼진 일부 제도와는 매우 다릅니다.

감독(bishop)이란 낱말은 "지키는 자" 혹은 "감독관"이란 뜻의 낱말을 그저 영어로 옮긴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권위를 지닌 한 사람의 성직자(즉 "주교" - 역주)가 여러 개의 교회를 주관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적으로 볼 때 한 교회 안에 감독들이 몇 명씩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20장(17절과28절을 비교해보십시오)과 디도서1장(5절과7절을 비교해 보십시오)은 "감독"과 "장로"가 같은 뜻임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두 용어의 차이점은 이 위치에 있는 사람의 의무(감독하는 일)와 위엄(장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밝히고 있는 장로가 되기 위한 자격기준은 매우 높으며 또 영적인 것입니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장로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디모데전서3:1-7과 디도서1:7-9은 장로가 되기 위한 분명하고도 세밀한 자격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누가 이 높은 직위를 맡기에 합당한지 보여주실 수 있을 뿐입니다. 그분은 양떼를 주인이 아닌 목자처럼 돌볼 사람들, 자신과 자기 가족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들, 그리고 거짓 교사들을 대하여 믿음을 지키고자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실 것입니다(벧전5:2, 행20:28). 비록 장로들의 의무이기 때문에 양무리를 꾸짖고 권고하더라도(이로 인해 마음이 상한 자들이 그들을 인기 없는 자로 만들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들을 가장 귀히 여기며(살전5:13), 잘 다스리는 자를 또한 "배나 존경"해야(이 낱말은 흔히 재정적으로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됩니다(딤전5:17). 성실히 일한 충성된 감독들은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벧전5:4).

헬라어 디아코노스( )는 단지 종이라는 뜻입니다. 때로 이 낱말은 신약에서 전혀 비전문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번역되고, 어떤 때는 빌립보서1:1에서처럼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며, 영어로 표기할 때 단순히 집사라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마도 사도행전6:1-7은 집사들을 언급한 최초의 말씀일 것입니다. 이 단락에서는 실제로 집사에 해당되는 단어가 아닌 연관된 동사("섬기다")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집사들의 봉사는 그저 식탁에서 시중드는 것보다 더 범위가 넓어서, 온갖 일을 다 포함하되 장로들이 직접 책임 맡고 있는 일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여겨집니다. 집사의 자격 요건은 높으며(딤전3:8-13), 장로들의 자격요건과 비슷합니다. 또한 집사들은 정식으로 섬김을 허락 받기 전에 다음 사항들이 증명되어야 합니다(10절). 즉 단정하고, 신앙이 건전해야 되며, 이(利)를 탐내지 않는 것 등이 그 자격요건 중 일부입니다. 11절은 집사들의 아내(흠정역) 혹은 여자 집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로마서16:1은 뵈뵈를 여자 집사로 부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그를 교회 안에서 섬기는 종으로 부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잘 섬기는 집사는 아름다운 지위를 얻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습니다(딤전3:13).

사람들은 예식 혹은 성사(聖事)를 많이 만들어 왔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두 가지 예식을 언급합니다. 즉 물 침례와 떡을 떼는 것 두 가지입니다. 이 예식들이 참여자들에게 무슨 "은혜"를 주는 것은 아니며 다만 구주께 대한 사랑과 순종의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침례식은 한 사람에게 단 한 번 베푸는 것이 옳습니다. 성찬은 자주 빈번하게 베풀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침례를 지역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에 필수요건으로 삼습니다. 이상적으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침례를 받아야하지만 성경 어디에서도 침례를 교회지체가 되는 것과 연관 짓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실 지역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에 대한 성경말씀은 있지도 않습니다. 침례가 마음속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표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침례에 대한 논란은 많이 없어질 것입니다. 침례는 죄를 씻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침례는 사람을 구원할 수도 없고 또 구원하는 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침례가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가리키며, 또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에 있어 그분과 한 몸으로 여김받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령으로 침례받는 것을 상징한다"고 여깁니다. 요컨대 모든 전도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은 침례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행위요, 한 사람을 공적으로 구별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오늘날도 단순히 믿음을 고백하는 것보다 침례를 받는 것이 더 큰 핍박의 신호가 되고 있습니다.
"침례를 주다"는 단어에는 헬라어로 "물에 담그다" 혹은 "물에 잠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이차적인 의미는 "동일한 것으로 여김"인데, 그리스도와 동일시된다는 것은 침례에 있어 중요한 개념입니다. 물에 완전히 잠겨야 침례를 올바르게 받는 것입니다. 침례요한은 "물이 많은"(요3:23) 장소를 골라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만일 물을 뿌리거나 붓는 것이 옳은 방식이면 이렇게 많은 물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침례받으실 때 "물에서 올라오셨으며"(마3:16),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는 둘 다 "물에 내려갔습니다"(행8:38).
침례의 의미나 방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침례의 대상입니다. 구원받지 못했으나 종교적인 사람이 기독교 내에서 조직을 갖춘 어떤 무리에 의해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침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여전히 침례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신약에서는 구원받은 사람만이 침례를 받습니다. 침례받는 사람이 다 어른이라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받은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아기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게되면 자기 영혼의 안전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갖게 됩니다. 사람은 너무나 쉽게 종교의식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순서를 보면 언제든지 "믿고 세례를 받더라"며 결코 그 반대가 아닙니다. 가끔 빌립보 간수의 경우를 예로 들며, 진실한 믿음과 관계없이 온 집안 사람이 다 침례를 받아야 된다는 주장을 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행16:34)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가서 모든 족속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 가르침이 성경적이라는 것과 또한 침례 자체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마28:19,20).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은 "성찬식"이나 "주의 만찬", 또는 사도행전에서처럼 "떡을 떼는 것"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성찬식은 단순한 예식으로서 침례와 마찬가지로 복음서에 명령되어 있고 사도행전에서 실천되고 있으며 서신서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잡히시던 날 밤 주 예수님은 떡을 떼고 잔을 나눔으로써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을 기억해야 할 예식을 제정하셨습니다(고전11:26). 주님의 분부이기 때문에 이렇게 주님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사람의 연약을 알고 계신 주님은 자비롭게도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상징을 주셨는데, 곧 우리를 위해 주신 주님의 몸을 나타내는 떡과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나타내 주는 포도열매를 주신 것입니다. 이런 상징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최고의 증거로서 우리의 기억을 생생하게 소생시켜 주는 것입니다.
믿는 자인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함께 모여 죽으신 주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주의 상에 둘러앉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임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존전에 직접 나아감을 얻습니다(히10:19-22). 성찬식은 오랜 세월을 내려오며 변함없이 믿음을 고백하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예배의 중심이 되어왔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일부에서 의식주의(儀式主義)를 두려워한 나머지 성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도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만일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진심으로 예배를 드리게 하실 수 있다면, 떡을 떼는 것이 단순한 의식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기억하는 모임은 믿는 자들에게 놀라운 영적 유익을 주며,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막아주는 보루가 되어줍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을 기념하기 위해 얼마나 자주 모여야 하는지에 대한 엄격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매 주일마다 주의 만찬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행20:7). 분명 연보도 이 날 드렸을 텐데, 그 이유는 매주일 첫날에 자기들의 헌금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고전16:2). 본성적으로 우리는 대부분 너무나 냉담하고 고마움을 모르는 자들이기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영적으로 자주 돌이켜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는 데에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의 간증은, 복음집회나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각종 집회에 참석하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손상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찬에 참여하도록 허락을 받자마자 함께 믿는 신자로서 성도들과 교제가운데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는데, 그것은 부도덕하거나 경솔하게 살도록 잘못 인도하는 자나 혹은 잘못된 교리를 퍼뜨리는 자를 징계하는 교회의 다스림을 받을 의무도 됩니다. 오늘날 교인을 잃을까 염려해서 징계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또한 어떤 지역이나 무리 중에서는 징계 가운데 있다가도, 다른 곳에 가면 아무 잘못도 범한 적이 없는 사람인양 영접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징계의 온전한 목적은 잘못한 자를 바로 잡아 다시 교제를 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에 있어 지혜와 은혜가 절대 필요하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교회가 거룩하려면 규모없는 자에게는 반드시 경고가 주어져야 합니다(살전5:14). 규모 없는 자들은(살후3:11,14, 15)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과 더불어 피해야 될 대상입니다(롬16:17). 또 이단은 딱 잘라서 거절해야 합니다(딤3:10). 신약에서 이단은 중요한 교리상의 문제에 있어 잘못된 견해를 받아들임으로써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징계의 최종적인 형태는 출교입니다(고전5:11,13). 출교는 신중하게 해야되며, 음행하는 자와, 탐람하는 자와, 우상 숭배하는 자와, 후색하거나 술취하거나 토색하는 자들이 그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징계는 공정해야 되며 교회문제는 그 교회 성도들만 알게 하고 교회 밖으로 나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앞에서와 같이 자격을 전적으로 상실한 사람들 중 일부가 어느 다른 건전한 모임에 교제를 요청할 때 통제되어진다면 아마 우리는 복음증거에 있어서 더 많은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섬김은 대단한 것이지만, 강단 사역은 그들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는 동등하지만(갈3:28), 여자들은 교회에서 말해서는 안되며(고전14:34,35) 남자들을 가르치거나 남자의 권위를 빼앗아 주관하려 해서도 안됩니다(딤전2:12). 여자는 다른 여자들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지만 남자가 섞여있는 무리를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는 표시로 머리를 가려야 하는데, 이것은 교회의 질서를 지켜보고 있는 천사들에 대한 간증이기도 합니다(고전11:10). 여자들이 순종해야되는 이유는 여자가 나중에 지음 받았고 죄는 먼저 범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자가 설교자나, 공적인 교사나, 혹은 장로가 될 수 없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여자는 자기의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으며(눅8:3), 손 대접을 할 수 있고(롬16:1), 자기보다 나이 어린 여자들을 또한 가르칠 수 있습니다(딛2:4). 교회 밖에서는 여자도 브리스길라가 남편 아굴라를 도와 아볼로를 가르쳤던 것처럼 남자들을 비공식적으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행18:26). 여자는 모든 사람을 격려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 헌신된 여인들은 구제나 해외선교, 또 그 밖에 셀 수 없이 많은 봉사를 활발하게 벌여 왔습니다. 여자들은 성경의 제한 안에서 쉽게 머무를 수 있으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봉사가 결코 적은 일이 아닙니다.

지역교회의 모임 장소를 준비하거나 선교사와 장로들, 과부와 가난한 자, 설교자와 전도자를 지원하는 데는 비용이 듭니다. 이 돈들은 다 어디서 오는 걸까요? 즐겨내고 사랑으로 하는 성도들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에서 이스라엘은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 의무였지만, 은혜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최소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입니다! 헌금은 수입에 비례해야 하며(고전16:2), 은밀해야 하며(마6:1-4), 즐겨 내야 합니다(고후9:7). 우리 모두는 할 수 있는 한 많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즐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할 수 없는 은사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고후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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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이름 그리고 예수님과 십자가

 

 

 

 

요한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을 얻기 위해선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분께서 인류를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알아야 기도로 대화할 수 있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닮아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분이 어떤 분이고 어떤 삶을 사셨는지 잘 모릅니다. 그럼 구원의 유일한 문이요 길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이름

 

 

요한 1/17 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것이기 때문이라.
(For the law was given by Moses, but grace and truth came by Jesus Christ.) kjv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스'(Jesus, 지저스)라는 이름은 히브리 이름 '여호수아'의 단축형 '예슈아'의 헬라어 형태입니다. 이 예수님의 이름 '여호수아' 속에는 하나님의 성호 네 글자 야훼(YHWH)가 축소되어 담겨져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이름인 YHWH의 정확한 발음은 알 수 없으나 보통 '야훼' 또는 '여호와'로 발음합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하신다' 또는 '여호와는 도우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류 구원의 주체요, 모든 도움과 은혜의 주체적 행위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主)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예수님의 영이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하는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요한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마가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으며 새 언어들을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한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니라, 하였더라.

 

로마서 10/13 이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임이라.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이 시행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능력을 받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새 언어(방언)를 말하며, 악한 것으로부터 해를 받지 않고, 병든 사람을 안수하여 치료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 이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으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나의 구원주로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 했습니다.

 

 

2.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구세주 그리스도(메시야)입니다.

 

 

 

구약시대 4000년은 아담의 범죄에 대한 형벌 기간으로 죄와 율법에 얽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인류에게 보내 주셔서 온전한 구원을 이룰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의 뿌리들에서 한 가지가 자랄 것이라. 주의 영이 그의 위에 머물리니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획과 능력의 영이며, 지식과 주를 두려워하는 영이라.

 

다니엘 9/25~26 그러므로 알고 깨달으라. 예루살렘을 복원하고 건축하라는 그 명령이 나오는 때부터 메시야 통치자까지 칠 주와 육십이 주가 될 것이요, 그 거리와 그 성벽이 재건되리니 곧 고난스런 때들이라. 육십이 주 후에는 메시야가 끊어질 것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요, 또 장차 올 그 통치자의 백성이 도성과 성소를 파괴하리니 그 끝은 홍수로 뒤덮일 것이요, 그 전쟁의 끝에는 황폐함이 정해졌느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를 뿌리로 하여 메시야가 다윗의 혈통에서 나실 것을 예언했는데 마태복음 1장에서는 자세한 족보를 들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의 영'(성령)이 그에게 강림하심으로써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이상세계를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인 메시야가 활동하고 죽는 시기까지 예언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0/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께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어 주셔서 그가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며 마귀에게 억압받는 모든 자를 치유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심이라.

 

누가 23/3 빌라도가 그에게 물어 말하기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하니, 주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렇도다.”라고 하시니라.

 

히브리서 4/14 우리에게는 위대한 대제사장, 곧 하늘들로 올라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계시므로, 우리는 우리의 고백을 굳게 붙들어야 하리라.

 

마태 21/11 그 무리가 말하기를 "이분은 갈릴리 나사렛의 선지자 예수시라"고 하더라.

 

하나님 영이 강림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명자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기름이 성령을 상징함으로 구세주를 그리스도(Christ, 기름 부음 받은 자, 헬라어) 또는 메시야(마쉬아흐, Messias, 기름 부음 받은자, 히브리어)라고 합니다. 구약 시대에서 기름 부음 받은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왕,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자, 신약시대의 대제사장이자, 말씀을 전하는 선자자(대언자)의 역할을 모두 하셨습니다.

 

미가 5/2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프라타야, 네가 비록 유다의 수천 가운데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통치할 자가 너로부터 내게로 나오리라. 그의 나오심은 예로부터요, 영원부터였느니라.

 

누가 2/4~7 요셉도 갈리리 나사렛 성읍에서 유대 다윗의 성읍, 즉 베들레헴이라는 곳으로 가니 (이는 그가 다윗 가문의 계열이기 때문이더라.) 그가 자기와 정혼한 아내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는데, 그녀는 아이로 인하여 배가 불렀더라. 그들이 그곳에 있는 동안 날이 차서 그녀가 해산하게 되었더라. 그리하여 그녀가 자기의 첫아들을 낳아 그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누이니, 이는 여관에 그들이 들 방이 없었기 때문이라.

 

미가 선지자는 유다의 작은 마을인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통치자가 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유대인 요셉이 로마황제의 명령에 따라 조세 등록을 위해 갈릴리 나사렛에서 고향 베들레헴으로 정혼한 아내 마리아와 함께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날이 차서 마리아가 아들 예수를 낳음으로써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누가 2/11 이는 다윗의 고을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분은 주이신 그리스도시니라.
(For unto you is born this day in the city of David a Saviour, which is Christ the Lord.) kjv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주위에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다윗의 고을인 베들레헴에서 구주가 나셨는데 그분은 주(主)이신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끌어 주는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구주(救主, Savior, 구세주, 구원주, 구원자) 또는 주님(the Lord)으로 불립니다.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한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해석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라.

 

마태 1/18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하니라. 그의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으나 동침하기 이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그녀에게 나타났더라.

 

이사야 선지자는 한 처녀가 남자와 동침하지 않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표적(sign)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신 징표입니다.
아들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는데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예언대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약혼)한 사이였지만 동침하기 전에 임신을 했습니다.

 

마태 1/20~21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너 다윗의 아들 요셉아, 마리아를 네 아내로 삼는 일을 두려워 말라. 그녀에게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그녀가 한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주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하니라.

 

이에 요셉이 파혼하려고 하자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마리아와 결혼했고, 마리아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아기의 이름을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해 줄 것이기 때문에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여호와)은 구원해 주신다'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4/15 이는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없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라.

 

벧전 1/19 흠도 점도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인간 유전이 아닌 처녀 상태에서 성령의 잉태로 세상에 오신 것은 아담의 원죄를 상속 받지 않고 하늘이 주신 깨끗한 몸으로 오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이 태어나셨고, 죄를 짓지도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가져갈 흠 없는 어린 양이 되신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생명을 낳으시며,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에게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사야 53/5 그러나 그는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고, 그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였도다.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에게 내려졌고,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것을 암시하는 구절로 우리 죄를 대신해 고통을 받으실 것을 예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악으로 몸이 상하셨고, 이를 믿는 사람은 저주에서 벗어나 치유되고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메시야 초림에 관한 구약의 예언 48가지를 성취하셨는데, 이는 확률적으로 우연히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정확히 성취한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란 가장 큰 증거입니다. 이밖에 예수님이 하신 진리의 말씀, 그가 행한 다양한 기적, 십자가 죽음 이후의 부활과 승천 등도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이 성취하신 대표적인 구약의 예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리스도는 이스라엘로부터 오실 것이다(민 24:17-19). 
•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 될 것이다(창 12:3 ;17:19, 민24:17). 
•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다(미 5:2). 
• 그리스도는 처녀에게서 태어나실 것이다(사 7:14). 
•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때는 상세히 예언되어 있다(단 9:25). 
•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의 선두주자에 의해서 선포될 것이다(사 4:3-4). 
• 메시야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사 9:6). 
• 그는 어린 시절을 이집트에서 보내실 것이다(호 11:1). 
• 그는 고난을 받고 속죄를 이루실 것이다(사 53장). 
• 그는 나귀의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것이다(슼 9:9). 
• 그가 고통 중에 있을 때 쓸개즙과 식초가 주어질 것이다(시 69:21). 
• 그의 뼈는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시 43:20). 
• 사람들은 그의 옷을 나눠 갖기 위하여 제비를 뽑을 것이다(시 22:18). 
• 그는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기록된 어떤 말들을 할 것이다(시 22:1). 
• 그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질 것이다(시 16:10). 
• 그리스도는 친구에 의해 배반당한 것이다(시 41:9). 
• 그는 은 삼십에 팔릴 것이다(슼 11:12). 
• 그는 거짓 증인에 의해 모함받을 것이다(시 35:11). 
• 그는 침 뱉음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맞을 것이다(사 50:6). 
• 그는 이유없이 미움을 받을 것이다(시 35:19). 
• 그는 멸시와 조롱을 당할 것이다(시 22:7,8).

 

 

3.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각 시대마다 새로운 계명을 주시는데 그 계명을 지키면 구원 받고, 지키지 못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아담과 이브 때는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계명(명령)을 주셨고, 노아 때는 방주를 짓고 타라는 계명을 주셨으며, 모세 이후에는 율법과 제사법을 주어 지키게 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법, 즉 인류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누가 5/37~38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붓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그 가죽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쏟아지고 가죽 부대도 망가지리라. 그러나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부어야만 하나니, 그리하면 둘 다 보존되느니라.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왜 금식하지 않는냐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지,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가죽 부대가 터져 못 쓰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낡은 가죽 부대는 구약시대, 새 가죽 부대는 신약시대, 헌 포도주는 율법, 새 포도주는 생명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왔으니 이전 시대의 법인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 6/68 그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나이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것은 영생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Eterner Life)으로 죽었던 우리 영이 살아나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구약 시대에는 영이 죽었기 때문에 육신의 계명에 관한 율법과 육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법밖에 받을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영의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 그럼 구약 시대의 율법과 제사법이 신약 시대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a) 형식에 얽매었던 육적인 제사가 하나님을 영적으로 섬기는 경배(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요한 4/24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
(God is a Spirit : and they that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kjv


 사마리아 여인이 꼭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려야 하느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이 살아 났기 때문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드리며 영광 돌리면 되는 것입니다. 제사(offering)는 신께 헌물을 드리는 의미가 있지만 경배(worship, 예배)는 신을 공경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태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신약시대에는 영이 살아 났기 때문에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도 당당히 하나님께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화하듯이 기도로써 우리의 소원을 말하면 아버지가 자녀의 소원을 들어 주듯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 줄 것이라 하셨습니다. 영이 죽었던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구하기는커녕,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에 급급했었습니다.

 

 

b) 육신에 관한 율법이 영에 관한 생명의 말씀으로 바뀌었습니다.


 

율법은 육체가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 주신 법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인데 우상 섬기지 말고, 살인, 간음, 거짓말, 도적질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육신에 관한 법으로 영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영에 관한 진리 말씀이 바로 생명의 법이며,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Ⅰ) 주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구약 시대 때는 모든 율법을 지켜야 복을 받고, 그 중 하나라도 어기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그 종류가 613가지나 되어 외우고 실천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 중에는 안식일법이나 제사법이나 정결례 같은 지키기 까다로운 법도 있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모두 지키기도 어렵지만 모든 율법을 지켰다 하더라도 영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요한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태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는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더라. 

 

 

요한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 가운데 보내신 이유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멸망(심판, 지옥행)하지 않고 영생(구원, 천국행)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아들이자, 나의 유일한 구원주임을 믿어야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요한 5/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


요한 1/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 6/48~51 나는 그 생명의 빵이라.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죽었으나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니 그것을 먹는 자는 죽지 아니하리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또 내가 줄 이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줄 나의 살이라."고 하시니라.

 

마태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현명한 사람과 같아서
 

예수님을 나의 구원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들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며, 그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니 나를 먹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실체가 말씀이니 예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이자 진리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믿어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신앙의 집을 반석 위에 지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Ⅱ)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마태 22/37~3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며, 큰 계명이니라.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이 주신 계명 가운데 가장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기는 것이 아나라 나의 마음과 혼과 생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십니다. 늘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의지하며 사랑해야 죄와 사탄이 틈을 타지 못합니다.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가까운 사람 뿐만 아나라 불우한 이웃들까지 사랑해 도우란 것입니다.

 

출애굽기 21/23~25 만일 어떤 피해가 따르면 그때는 생명은 생명으로 갚아야 하며,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인 것은 데임으로, 상처는 상처로, 매질한 것은 매질한 것으로 갚을지니라.

 

마태 5/44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천대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구약시대에는 내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그대로 갚아 주었지만, 신약시대에는 나의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를 잘해 주고, 나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내게 해를 끼치는 원수를 미워하지 않기도 힘든데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원한은 나를 악하게 만든다는 걸 생각할 때 오히려 원수를 불쌍히 여기고, 더 이상 죄 짓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을 본받은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진정한 영의 사랑은 육신의 감정적 사랑과는 다릅니다.


육신의 사랑은 외모나 일시적 기분에 의해서 좋아지고 시간이 지나면 싫증나며 여러 이유로 실망하거나 미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의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거룩하고 숭고하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이며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입니다.

 

고전 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고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급히 성내지 아니하며 악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를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뎌 내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사랑은 인내하고, 친절하고, 온유하고, 시기 질투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고, 예의 바르며, 화내지 않고, 선하고, 진리를 기뻐하며, 모든 것을 바라고 믿고 참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점점 미움과 시기와 타툼이 심해지고, 이혼율이 높아가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악하거나 이기적이지 않고, 선한 진리와 겸손과 인내와 믿음과 희생으로 다져진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Ⅲ) 내게 죄 지은 자를 무조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마태 18/21~22 그때 베드로가 주께 나와 말씀드리기를 "주여, 내 형제가 내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하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에게 일곱 번까지라고 말하지 않고,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고 하노라.

 

누가 17/4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너에게 죄를 짓고, 또 하루에 일곱 번이나 너에게 돌아와서 '내가 회개한다.'고 말하면 그를 용서하라."고 하시더라.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일곱 번 정도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 라고 물어 보니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 즉 490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했습니다. 또한 형제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자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회개한(잘못했)다고 말하면 그를 용서해 주라고 하십니다. 이는 형제가 내게 행한 죄에 대해 복수하거나 원한을 품지 말고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마태 18/33 내가 너를 가엾게 여김 같이 너도 네 동료 종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하냐?

 


그리고 그 이유를 마태 18/23~35 에서 빚 탕감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우리의 큰 죄(빚)를 은혜로 용서(탕감)해 주셨는데 우리가 형제의 작은 죄(빚)를 용서치 않는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 구원 받은 자는 최소한의 도리를 지켜야 계속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마태 6/12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빚진 것도 용서해 주옵시며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도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빚진 것도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맞았는데도 그를 미워하지 않고 용서했습니다. 사울왕을 죽일 기회도 있었지만 죽이지 않고,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바랬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도 악행을 반복하던 사울왕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로마서 12/19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은 나의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고 하였느니라.

 

로마서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벧전 2/21~23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한 본을 남겨 놓으시어, 너희로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짓지도 아니 하셨고, 그 입에는 간사함도 없으셨으며, 모욕을 당하셨으나 다시 모욕으로 갚지 아니하셨고, 고통을 당하셨으나 다시 위협하지 아니하셨으며, 오직 의롭게 심판하는 분께 자신을 의탁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악인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이 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에 대해 악으로 대항하면 악에게 지는 것이고, 악에 대해 선으로 대응하면 악에게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다시 모욕으로 갚지 아니하시고, 고통을 당하셨으나 다시 위협하지 않음으로 원수를 사랑하고, 죄를 용서하며, 선으로 악을 이긴 본을 친히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Ⅳ)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마태 7/1~3 "판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라. 너희가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너희도 판단받을 것이며, 너희가 재는 그 자로 너희도 다시 측정을 받으리라.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생각지 못하느냐?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남의 허물을 비웃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해 상처를 주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다 똑같은 죄인인데도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남의 탓만 합니다. 이는 남의 흉을 보면서 자신은 우월감을 느끼려는 심리적인 작용에서도 비롯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판단받지 않고 긍휼을 입으려면 나도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마음에 안들거나 연약한 급우를 집단으로 따돌림 하고 괴롭힙니다. 집단 따돌림 당한 학생은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기까지 합니다. 남을 언어나 행동으로 괴롭히는 것은 간접적인 살인행위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오히려 덮어주고 감싸줘야 겠습니다.

 

 

Ⅴ) 마음으로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한 보화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악한 보화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그 입이 말하기 때문이라.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결국 선한 행동을 하고,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결국 악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미운 마음이나 서운한 마음을 가지면, 결국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의 발생지인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구약시대에는 행동으로 범죄한 것이 것이 죄이지만, 신약시대에는 마음으로 범죄한 것도 죄가 됩니다.

 

 

야고보서 1/15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사람이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죄를 짓게 되고, 점점 더 큰 죄를 지어 결국 영혼육의 파멸(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의 모든 욕심(물욕, 명예욕, 권력욕, 식욕, 성욕)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자전거 타면 소형차라도 타고 싶고, 소형차 타면 중형차 타고 싶으며, 중형차 타면 외제차 타고 싶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저급한 육신의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차원 높은'(영적인) 진리를 추구(사모)하며 살아야겠습니다.

 

 

4. 유대인은 왜 예수님을 배척했나?

 

 

유대인들은 자신을 구원할 왕이자 기다리던 메시야인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며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믿게 하기 위해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며, 죽은 사람까지 살리셨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세인 서기관 같은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며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죄인, 세리, 창녀, 어부 등 그시대 하층민만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고 따랐을 뿐입니다.

 

 

* 그럼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배척했는지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a) 위선과 탐욕에 빠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예수님이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는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신랄(辛辣)하게 비판하십니다. 대표적인 잘못은 형식주의와 위선에 빠져서 겉으로는 경건한 체 하고 높임을 받지만 속으로는 각종 죄악과 탐욕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은 희생하기 싫어하면서 남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고, 말과 행실이 다른 것 등을 지적하셨습니다.

 

 

마태 23/14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며 남들에게 보이고자 길게 기도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심판을 받으리라.

 

마태 23/25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나 속은 약탈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

 

마태 23/27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회칠한 무덤들처럼 실로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도다.

 

 

누구든지 자신의 잘못을 들추어 내면 싫은 법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지적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드리지 않고 오히려 분개했습니다. 민중의 마음이 언행 일치하는 예수님에게로 쏠리자 이에 밥줄이 끊길 것을 염려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세우게 됩니다.

 

 

b)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이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한 10/33 유대인들이 주께 대답하여 말하기를 "선한 일로 인하여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모독하기 때문이라. 이는 네가 사람이면서 하나님으로 자처하기 때문이라."고 하니라.

 

요한 19/7 유대인들이 그에게 대답하기를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는데 우리의 율법에 따르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하나이다. 이는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이니이다."라고 하더라.

 

레위기 24/16 주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지니, 모든 회중이 분명히 그를 돌로 칠지니라. 타국인도 그가 주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 땅에서 난 자와 마찬가지로 죽을지니라.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니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사람이면서 하나님으로 자처한 것은 신성모독이라며 예수님을 돌로 치려 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율법에 따르면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예수님이 하나님 내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이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요한 14/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에게 하는 말들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그 일들을 하시는 것이라.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나를 본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언행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안에 계셔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병자를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엄청난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아버지께서 보내신 영)의 감동을 통해 우리를 구원할 온전한 진리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마태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는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더라.

 

시편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깊이 생각하시오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찾아오시나이까?

 

마태 27/54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크게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참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하더라.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합니다. 인간은 엄밀히 말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부모(사람)로부터 태어난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 人子)입니다. 예수님은 외모로는 사람의 아들이지만 내면으로는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과 형상을 그대로 닮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지진과 기적이 일어나자 백부장과 지키던 사람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합니다.

 

 

c) 율법을 지키지 않는 예수님을 율법 파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6/7 그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주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를 지켜보고 있었으니, 이는 그에게서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 함이더라.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분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었고, 떡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 귀신들려 꼬부라진 여자, 38년된 병자 등을 고쳐주셨습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 보다는 율법으로 그를 트집 잡았습니다.

 

마태 12/8 인자는 곧 안식일의 주니라."고 하시더라.

 

예수님은 새시대의 주인으로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러 오셨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전의 법은 효력을 잃었습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는 밤 12시 이후에 다니는 것이 통행금지 죄에 해당했지만 지금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법을 선포하신 예수님은 구약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라 하여 율법 모두를 폐하신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3/31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우리가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6/6 우리가 이것을 아나니 곧 우리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더 이상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율법 중 제사의식이나 형식적인 규례는 지킬 필요가 없지만 신앙과 도덕적인 계명은 여전히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지킬 수 없는 율법을 폐하시고, 더 높은 차원의 영의 법인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근원이 되는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으로 가득찬 사람은 형제에게 거짓말 하거나 도적질 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으므로 율법이 저절로 지켜지게 됩니다.

 

 

마태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서를 폐기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루려고 왔노라.

 

 

따라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더 이상적으로 발전시켜 완성시킨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린 아이였을 때에는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서 종 노릇 하였으나

 

 

율법은 초등학문이고, 초등학문을 거쳐야 고등학문인 생명의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도 초등학교를 나와야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육신에 관한 율법은 차원 높은 영의 법을 익히기 위한 과정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은 율법도 아닌 장로들이 만든 전통인 유전이었습니다.

 

 

마태 15/2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나이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니,

 

 

d)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교만에 빠져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요한 7/52 그들이 대답하여, 그에게 말하기를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갈릴리에서는 어떤 선지자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찾아보라."고 하더라.

 

당시의 엘리트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교만과 위선에 빠져 유대의 변방 지역이었던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학식을 갖추고 위엄 있다고 생각한 이들이 시골 출신이자 정통교육도 받지 못하고 누추한 차림의 예수님께 머리를 굽힌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가 2/17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지만 병든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니라.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왔노라."고 하시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왜 예수님이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지 물으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건강한 자가 아닌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고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암환자가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지고 있는데도 나는 건강하다고 버티면 의사가 치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도 이런 상황에선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야고보서 4/6 그러나 그가 더 많은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그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거절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땐 나는 구제불능의 죄인이고, 결국 죽을 수밖에 없으며,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오직 예수님만 믿고 의지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고 구원해 주십니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은 교만하고 마음이 부유하며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절하시고,  겸손하고 마음이 가난하며 죄를 애통해 하는 자를 찾아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5. 유대인의 배역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거부인가?

 

 

예수님께서는 여러 비유를 통해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는 혼인잔치 비유가 나오는데 임금이 아들 혼인잔치를 위해 종들을 보내서 사람들을 초청하나 다 자기 일에 바뻐 무관심 할 뿐만이 아니라 보낸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진노하여 군대를 보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사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마태 21/33~41에서는 포도원 비유가 나오는데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나가서 열매가 익을 때 소출을 받으려고 종들을 보내니 심히 때리고 죽이므로 '내 아들은 공경하겠지' 라고 생각하고 아들을 보내나 상속자 아들을 죽여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아들도 죽이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와 이 악한자들을 진멸하고 다른 농부들에게 농장을 줍니다. 이 역시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과 예수님을 죽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거부한 유대인들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살전 2/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계시록 2/9 내가 너의 행위와 궁핍을 아노라.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독을 아노니,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요,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니라.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사도들을 핍박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초대교회 성도들을 복음사역을 훼방하고 박해한 유대인들의 모독을 아신다고 하시면서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탄의 회당(synagogue, 유대인의 집회장소)이라고 합니다.

 

 

에스라 7/13 내가 칙령을 내리노니 내 영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서 자원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마음먹은 자들은 다 너와 함께 갈지어다.
(I make a decree, that all they of the people of Israel, and of his priests and Levites, in my realm, which are minded of their own freewill to go up to Jerusalem, go with thee.)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freewill) 때문입니다.

 
 

freewill은 '자유의지'로 내가 누구의 간섭 없이 내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원격조종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이브도 자신이 가진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5/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이는 그가 나를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 내 계명들을 이행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슬퍼하여 밤새도록 주께 부르짖더라.

 

사무엘상 16/7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이는 주가 보는 것이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

 

 

하나님은 사울을 세워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후회를 하십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식 잘 못 되는 것을 어쩔 수 없듯이 하나님도 인간이 자유의지에 관여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outward appearance) 보다 마음(heart)을 보시고 다윗을 왕으로 삼으십니다.

 

 

출애굽기 19/5~6 그러므로 이제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보다 나에게 독특한 보물이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에게 제사장들의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이것이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고할 말이니라." 하시니라.

 

이사야 49/6 그가 또 말씀하셨도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의 보존된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 내가 또한 너를 이방인들에게 빛으로 주리니 네가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복종하면 모든 백성보다 독특한 보물이 되고, 제사장 왕국이자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이방인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구원을 베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아 온갖 죄악과 우상숭배에 빠졌고, 결정적으로 구원주이자 왕인 예수님을 받아 들이지 않아 심판을 받게 되었으며, 이방인에게 그 모든 복락이 돌아갔습니다.

 

 

로마서 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도 그의 아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으니 더욱더 화해하게 된 우리는 그의 생명으로 인하여 구원받게 되리라.

 

2,000년전 유대인의 불신과 무지로 예수님이 돌아가셨지만 유대인은 죄 많은 우리 인간을 예표합니다. 즉 죄인된 인간이 의인인 예수님을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간을 용서하셨고, 우리는 우리 죄를 대신해 흘리신 그의 피로써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의 깊은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 유대인의 배역은 다음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합니다.

 
 

첫째는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마태 23/35~36 그리하여 의로운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마태 27/25 모든 백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하더라.

 

누가 19/43 그 날들이 너에게 닥칠 것이니, 너의 원수들이 흙언덕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사면으로부터 너를 공격하여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죽인 의인과 선지자들의 의로운 피가 당세대에 유대인에게 돌아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는 무죄한 피(보응)를 자신과 자손들에게 돌린다고 하였습니다. AD 70년에 로마 군대가 반란을 일으킨 유대민족을 진압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는데 주위에 흙언덕을 쌓고 입성합니다.

 

 

마가 13/2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거대한 건물들을 보느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않고 다 무너지리라."고 하시니라.

 

로마군은 성전의 금을 약탈하기 위해 성전을 모두 무너뜨리고, 유대인들을 대량학살 했으며, 나라 자체를 없애고, 남은 자들을 노예로 팔아 넘겼습니다. 또한 유대인은 2000년 가까이 전 세계를 유랑하며 온갖 핍박과 수모를 당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600만명이라는 기록적인 학살을 당했으니 메시야를 죽인 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방인(비 유대인)에 대한 선교입니다.

 

 

로마서 2/28~29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체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니 영에 있고 법문에 있지 않은 것이라. 그들의 찬사는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니라.

 

혼인잔치 비유와 포도원 비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가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지중해 인근 여러 나라를 순회하였고,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유대인은 구세주인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으로서의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요한 4/19~20 이것이 정죄라. 즉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빛보다는 오히려 더 어두움을 사랑하니 이는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라. 악을 행하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혹 자기의 행위가 책망받을까 함이라.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본능과 쾌락과 욕심에 빠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육신을 예표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였고, 참혹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어두움(죄, 거짓, 사탄)을 좋아하는 육신은 본능적으로 빛(의, 진리, 하나님)을 멀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온전한 구원을 위해서는 반항적이고 이기적인 자기 육신을 억제해 복종시켜야 합니다.

 

 

6.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지는 의미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드리면 구원이고, 거부하면 심판인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은 온 인류를 심판하고 사탄에게 내어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과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내 모든 죄가 씻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요한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같이 인자도 그렇게 들려올려져야만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1 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가운데서 너희 눈 앞에 분명하게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어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를 설명한 구절로 출애굽 때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불신하고 불평 불만을 늘어 놓아 하나님으로부터 심팜을 받았지만 놋 뱀을 쳐다 보아야 불 뱀에 물리지 않았던 것처럼,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불신했던 인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 보아야지만 구원(멸망치 않고 영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눈 앞에 보이므로 거짓에 속지 말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너희를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키려는 것이라.

 

 

사도 바울은 십자가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구원 받을 수 있는 계명을 주시는데 이는 인간 스스로 바꿀 수 없습니다. 아담 때에는 선악과 따 먹지 말라는 계명이 있었고, 노아 때에는 방주에 타라는 계명이 있었으며, 모세 이후에는 십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이 계명입니다.

 

 

에베소서 1/7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가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즉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주이자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그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셨으며,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내 모든 죄가 씻어져 죄사함 받는다는 것을 믿는 것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계명입니다. 예수님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모진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고전 1/22~24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노니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거치는 것이 되고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헬라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또 하나님의 지혜니라.

 

계시록 7/14 내가 그에게 말씀드리기를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들은 대환난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자기들의 옷을 씻어 어린 양의 피로 희게 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은 십자가 복음이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는 걸리는(stumblingblock, 장애물) 것이고, 지혜를 찾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게 들리지만 누구든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합니다. 계시록에서는 말세 때 대환난을 피하는 사람은 어린 양(예수님)의 피로 자기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즉 말세 때 구원 받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아 거룩하고 의롭게 된 사람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가지는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a) 대속 (代贖, substitution)

 

 

대속은 죄를 대신 받는다는 말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시대에 자신의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기 위해서는 성막에서 자신의 죄를 무죄한 염소나 양에게 안수해 전한 다음 제사장이 암염소나 어린 암컷양을 잡아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단 밑에 쏟은 다음 나머지를 번제단에 불살라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마태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골로새서 1/14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스스로 '흠 없는'(죄 없는) 어린 양이 되어서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내 모든 죄가 깨끗이 씻어져 용서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b) 구속 (球贖, redemption)

 

 

구속이란 죄인을 속전을 내고 건져낸다는 말로 예수님이 죄인된 우리를 마귀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피로써 죄값을 치루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죄로 감금된 사람을 보석금을 내고 석방시켜 주는 것이나, 노예로 예속된 사람을 '몸 값'(ransom)을 주고 해방시켜 주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몸값으로 주려고 온 것이라."고 하시더라.

 

고전 6/20 너희는 값을 치루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딤전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 값으로 내어 주셨으니 때가 이르면 증거되리라.

 

 

우리가 예수님의 희생과 은혜로 사탄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았으니 우리 모두 예수님에게 빚진 자입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은 엄청난 희생과 고초를 감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우리를 용서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피로써 값을 치루고 산 존재이니 구원 받은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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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보혈의 능력 (The power of the Blood of Jesus)

 


 

1.하나님과 화목함을 증거하는 능력.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2.속죄의 능력

①.구속함.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②.죄사함.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③.깨끗게 함.

(요일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④.죄에서 해방.

(계1:5)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 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⑤의롭다 하심.

(롬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 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⑥거룩케 하심.

(히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⑦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하심.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3.예수님과 동거하는 능력

(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 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4.마귀를 이기는 능력

(계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마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5.죽음의 재앙을 벗어나는 능력

(출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 를 볼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6.화목케하는 능력

(엡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7.병고치는 능력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 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8.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능력

(히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 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9.영생의 부활을 얻는 능력

(요6:54-55)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 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10.성령의 능력을 얻게하심

(요일5:5-6)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 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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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려주일의 그 연원과 의미, 그리고 고난주간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99127/20170408/%EC%A2%85%EB%… (656) 
 

 


 

예루살렘 입성 기념… ‘호산나주일’로 불리기도

 

종려주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그린 성화. ⓒ위키피디아

 

 

종려주일(棕櫚主日, Palm Sunday)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다(마 21:1-11, 막 11:1-11, 눅 19:28-38, 요 12:12-19).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의와 아름다움, 승리 등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날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으며,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외쳤다. 스가랴 9장 9절에 예언된 그대로였으며, 그래서 '호산나주일'이라 불리기도 했다.

종려주일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385년경 에게리아(Egeria)의 순례집에 나오는데, 당시 동로마 교회에 속했던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축하의 의미로 종려 행렬이 나섰다. 반면 서로마 교회들은 축하 분위기 대신 애도의 성격을 띠었다고 한다. 6세기경 스페인 의식서를 보면, 5세기경 동로마 교회의 종려주일 풍습이 전해졌음을 볼 수 있다.

중세에는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다음, 가까이 있는 다른 교회로 걸어가는 것이 종려주일의 관습이었다고 한다. 성도들은 종려주일이 되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되새겼다.

 

축성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축성이란 성례에 쓰이는 물건 등을 정해진 의식을 통해 성스러운 것으로 구별하는 것으로, 구약의 성별 의식(출 40:9-15)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중세 교회에서는 종려주일에 사용하는 종려나무 가지에 축성 의식을 행했다. 축성된 종려나무 가지는 귀신을 추방하거나 질병의 치유와 재앙을 막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도 했다.

군중들은 이렇듯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메시아 또는 선지자, 왕을 맞아들이는 예식을 거행했지만, 5일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쳤다.

올해는 4월 9일이 종려주일이며, 다음날인 10일부터 부활절 전날인 15일까지는 '고난주간(苦難週間, passion week)'이다.

'수난주간(受難週間)'으로도 불리는 고난주간은 잘 알려져 있듯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절기로, 종려주일 다음 날부터 부활 직전까지의 1주간을 말한다.

예로부터 성도들은 고난주간이 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경건하게 보냈다. 특히 최후의 만찬과 세족식을 기념하는 목요일, '세족목요일(洗足木曜日)'과 주님이 십자가 달려 돌아가신 금요일, '성금요일(聖金曜日, Good Friday)은 더욱 경건하게 보낸다. 오락을 금하고 금식을 하기도 한다.

마르틴 루터(Luther)는 종교개혁을 통해 고난주간에 행해지던 로마 가톨릭 의식들을 대부분 폐지했으나, 츠빙글리(U. Zwingli)의 영향 아래 부분적으로 회복됐다. 오늘날에는 교파에 따라 다양하게 지켜지고 있으며, 특별 새벽기도회나 저녁모임 등을 열어 경건하게 보내고자 노력한다.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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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뉴스  ‘피지 노동력 착취’ 신옥주집단 본거지 과천 은혜로교회 가 보니

 

피지 노동력 착취’ 신옥주집단 본거지 과천 은혜로교회 가 보니


교회 인근서 감자탕집 운영… 건물 3층 빌려 집단생활

 

 

 

▲신옥주집단의 본부인 경기도 과천 주암동 은혜로교회의 전경. 과천=송지수 인턴기자


지난 10일 찾아간 경기도 과천 주암동 은혜로교회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이곳은 신도 410여명을 피지로 이주시켜 노동력을 착취하는 신옥주집단의 본거지다. 교회는 2013년 1028㎡(311평)를 임차해 1층 조립식 건물을 지었다. 게시판에는 피지에 세운 GR(Grace Road, 은혜로의 영문명)그룹의 농지개간, 미용실, 빵집 등 다양한 사업을 소개하는 홍보물이 붙어 있었다. ‘피지- 당신이 내 심장을 찾을 수 있는 땅’이라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사진촬영을 하자 여자 신도가 달려 나왔다. ‘신씨가 지난달 26일 구속됐는데 모임을 계속 갖고 있느냐. 신씨가 풀려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예전처럼 매주 계속해서 모임을 갖는다. 당연히 나오실 것”이라고 말했다. ‘신씨의 구속사건도 성경말씀을 성취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노코멘트”라고 했다.

신도들은 이곳에서 600m 떨어진 GR해마루감자탕을 운영한다. 식당을 지키던 여성에게 ‘교회가 운영하는 식당이 맞냐’고 묻자 “절대 아니다”라며 시치미를 뗐다. ‘GR이 은혜로의 영문 명칭인 걸 알고 있다’고 하자 그제야 “교회가 아니라 신도들이 운영한다”고 했다. ‘피지는 언제 들어갈 예정이냐’고 묻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도 말라”며 문을 닫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수십명의 신도들은 교회에서 160m 떨어진 건물 3층을 빌려 집단생활을 한다. 건물 복도에는 유모차 2대와 여행용 가방 등이 있었다. 방에는 9명의 이름이 붙은 사물함이, 간이 옷걸이에는 수십 벌의 옷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동네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A씨는 “저 건물에 신도 50여명이 사는데 이 동네에서 짐 가방을 끌고 다니는 부녀자가 있으면 은혜로교회 신도로 보면 된다”면서 “아이들이 7∼8명 되는 것 같던데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귀띔했다. 화원에서 만난 B씨도 “지난해 신도와 가족들이 길거리에서 싸워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있었다”면서 “언젠가 저 집단의 문제가 터질 줄 알았다”고 했다.

부동산업을 하는 C씨는 “이 동네 월세방의 80%는 저 교회 신도들이 거주한다고 보면 된다”면서 “40만∼50만원의 월세를 제때 내지 않고 보증금 500만원까지 까먹어 집주인들이 돈을 주며 제발 나가달라고 애원하기까지 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그래서 월세방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혹시 은혜로교회에 다니냐’는 질문부터 한다”고 했다.

C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신도들이 ‘빨리 피지에 들어가야 한다. 살아서 천국에 가게 됐다’며 들뜬 표정으로 돌아다녔다”면서 “신도들이 피지로 가서 그런지 이쪽 신도들이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말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D씨는 “지난해 은혜로교회 여신도가 우리 식당에서 밥을 먹는 30대 여성에게 달려와 욕설을 퍼붓고 사정없이 뺨을 때리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우려스러운 현상은 이단인 신옥주집단과 정통 기독교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카센터에서 커피를 마시던 E씨는 “교회에 미치면 어쩔 수 없다”면서 “목사들이 돈벌이에 급급하다. 교회는 절대 나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신옥주집단은 간판에 ‘대한예수교장로회’ 문구를 넣어 놨다.

교회로 다시 가서 아동방치, 집단합숙 생활, 추가 피지 이주 등이 사실인지 물었다. 교회 관계자는 “우리들은 성경말씀대로 보고 듣고 믿고 가는 교회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면 안 된다”며 동문서답을 했다. 이어 “그냥 돌아가라. 더 이상 귀찮게 하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경고했다. 교회는 과천주암 뉴스테이지구에 편입돼 조만간 철거된다. 반사회적 종교집단이 다른 지역에 둥지를 틀 수 있다는 의미다.


과천=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국민일보
[원본링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92247&code=23111111&sid1=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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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과 신학] 구도자를 위한 기독교 안내

 

 

 

 

 
1. 기독교 신앙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기독교 신앙의 대상은 한마디로 요약하여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  삼위일체(三位一體)하나님 이십니다. 성부께서는 하늘과 땅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으며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으로 성경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인간을 자신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존재로 지으셨으며 사랑의 본체(요한일서4:7-10)로서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요한복음3:16).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메시아)로서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분으로 성경은 기록하였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靈)이시요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보혜사(保惠師)라고도 불리우는데 그리스도인을 거듭나도록 도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치도록 감동하시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서서 대신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인격적으로 성숙하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갈라디아서:22-23).
 
2. 기독교 신앙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으나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말씀드리면 잘 요약이 됩니다.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며(히브리서11:6),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에 대한 신뢰와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 그리고 약속의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성경에 잘 드러나 있기에 신약과 구약 성경을 계시의 책으로 믿으며, 성경에 쓰여진 약속의 내용들을 과거에도 이루어졌듯이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고 미래에도 이루어질 약속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또한 사람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에 하나님 외에 어떠한 다른 대상을 신으로 섬기지 않아야 한다고 믿으며 남녀노소, 빈부귀천, 모든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게 소중한 존재인 것을 믿습니다.

무엇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한다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 죽음, 부활 사건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계시의 사건으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데 있다고 믿습니다.

특별히 기독교인의 신앙의 내용의 독특성은 2000여년 전 유대땅 나사렛에서 사셨던 예수와 관련하여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며, 죽은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데 있습니다.
 
3. 기독교의 구원관은 무엇입니까?


기독교인들의 구원관은 매우 방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본질은 관계적인데 있습니다.
구원이란 일차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칭의)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를 위한 것으로 수용하면서 바른 관계가 시작되어 그 관계는 성령님이 도우심을 받아 일생동안 성장하여 가는 데 이를 성화(聖化)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은 필연코 이웃과의 관계도 바르게되며 더 나아가서 피조세계(자연만물)와 바른 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피조물의 관계가 바르게 완성되는 것을 총체적 구원이라고 부르고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종말에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구원은 해방 혹은 자유의 차원을 포함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여 하나님께 속함(소속의 변화), 하나님의 자녀됨(신분의 변화), 천국 시민됨(국적의 변화)을 의미하는데 이는 기독교인이 죄와 사망과 사탄과 육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와진 모습을 일겉는 말입니다.
 
4. 기독교의 성경은 무엇입니까?


 기독교인들은 성경(聖經)을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계시의 책으로 믿습니다. 신약(新約) 27권과 구약(舊約) 39권이 있는데 구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기록이 주제이며, 신약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이 주제입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세상의 다른 책과는 확연하게 구별하여 신앙과 윤리(행위)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5. 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흔히 기독교는 타종교를 배척하기 때문에 배타적이라고 여기지만 세상의 모든 공동체는 배타성이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이든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배타적 성향을 띠면서 그 정체성이 침해당하지 않는 범위에서 수용성을 지닙니다. 모든 색깔을 섞어 버리면 하얀색이나 까만색이 되고 말 듯이 수용성만 강조하여 모든 종교를 포용해야 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그것이 또 하나의 종교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혼합종교 역시 하나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타인의 종교를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의 것으로 수용하는 길뿐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배타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한 분 참된 신 하나님 외에는 어떤 피조물에게도 무릎 꿇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대화는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6.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올바른 응답이라고 하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대화적이고 관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없다면 기독교 신앙은 성립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다른 종교와 기독교가 구별되는 점입니다. 다수의 종교들이 굳이 신앙의 대상을 필수 조건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불교의 부처님도 성불한 사람의 한 모델이지 부처님이 없다고 불교의 신앙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 없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믿음은 심리적 차원을 포함하지만 심리적인 차원으로 환원되지는 않습니다. 믿음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싹트기 이전에 하나님은 창조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치밀하게 계획하시고 사람을 부르시고 실천하시고... 끝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분으로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인식하지 못했다고 세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독단이 아닐까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사람을 사랑하시는 행위를 "은혜"라고 부르며 그러한 사랑의 행위에 대하여 자각하고 응답하는 행위를 "믿음"이라고 합니다. 은혜에 대한 믿음의 응답이 있는 곳에 구원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신앙은 관계적 차원, 심리적 차원, 역사적 차원, 인식적 차원, 행동의 차원 등  총체적 차원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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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역사·세계사 교과서… 이슬람은 18개면, 기독교는 10개면에 소개


중·고등 역사·세계사 교과서 종교편향 대책 세미나 열려

 

 

 

▲박명수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왼쪽 두번째)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개최된 제1회 중·고등 역사·세계사 교과서 포럼에서발표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중·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 이슬람이 편향적으로 기술돼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역사 교과서에 한국 기독교의 근현대사가 소외돼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언급됐다.

진실역사교육연구회(대표 홍영태)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제1회 중·고등 역사·세계사 교과서 포럼을 갖고 이같이 논의했다. 이날 포럼에선 “종교나 이념에 따라 편향되고 왜곡된 교과서를 바로잡아 다음세대들이 객관적인 역사관과 종교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첫 발제를 한 이동주 선교신학연구소장은 ‘고등학교 세계사’(미래엔)가 이슬람을 편향적으로 기술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사실 이 교과서의 편향 사례는 대부분 교과서와 대동소이하다고 보면 된다”면서 “이슬람은 18개면,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까지 합쳐 ‘크리스트교’라 통칭해 고작 10개면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기독교인들에게도 낯선 ‘크리스트교’로 통칭하는 교과서는 반드시 개정이 필요하다”면서 “한국에서 가장 교인이 많은 종교인 개신교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불교 순으로 역사 기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성옥 아세아연합신학대 박사는 중학교에서 사용하는 9종의 교과서에 기술된 이슬람 부분만 별도로 분석했다. 그는 “모든 교과서에 이슬람을 평화와 화해의 종교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슬람국가(IS) 등의 테러만 봐도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면서 “미화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교과서에 버젓이 소개된 이슬람 미화 사례들도 소개했다. ‘알라는 모세에게 성서를 주었으며 마리아의 아들 예수에게 성스러운 표지를 주고 성령으로 그의 힘을 강하게 만들었다’(교학사), ‘이슬람교는 우상 숭배와 다신교를 부정하고 인간은 평등하므로 알라에 귀의하면 누구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금성출판사), ‘모세와 예수, 무함마드도 인간으로 다 같은 예언자일 뿐이며 이러한 점에서 예수를 신으로 인정한 크리스트교와 다르다’(미래엔) 등이다.

근현대사 속에서 큰 역할을 한 기독교가 아예 역사 교과서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명수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은 “현재 중등학교 역사 교과서 중 종교 분야의 가장 큰 문제는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 통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근현대사 속에서의 기독교 역할이 배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독립운동만 해도 기독교와 천도교가 중심이었는데 이를 배제하면 제대로 된 한국사를 통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홍영태 대표는 “교육부는 우리 자녀들을 위해 왜곡된 역사가 아닌 오직 진실만을 담은 역사 교과서와 세계사 교과서 기술을 해 달라”면서 “왜곡되고 편향된 이슬람 소개와 심지어 이슬람 포교를 의심할 만한 내용이 담긴 교과서를 바로잡기 위해 시민·종교 단체들이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건강한 다음세대를 양육하기 위한 토양을 만들기 위해 범국민적 홍보활동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진실역사교육연구회는 이날 포럼 전체를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출처] 국민일보
[원본링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85331&code=23111111&sid1=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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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학 기도예문 성숙을 구하는 기도

 

 


주님!
당신의 온전한 사랑으로 내 속에 있는 두려움을 내어쫓으시고,
나를 당신의 충만한 모습으로 만들어 가는 모험을 감행하게 하옵소서.

여러 가지 상처들과 변명으로 비뚤어진 내 모습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용기를 주시고, 두려움 때문에 무력하게
주저앉아 머물러 있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장점을 인정하게 하소서.
자기증오나 거짓된 겸손을 거부하고 칭찬을 고맙게 받아들이게 하시며
나의 존재가치나 독특함에 대한 자각과 자신감을 가지게 하옵소서.

나에게 있는 재능과 은사들을 감사함으로 시인하고 가꾸어서
창의적인 기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성취를 위한 긴장과 경직이 아니라, 주님을 모심으로
승패에 관계없이 나 자신을 사랑하며 존중할 줄 알게 하옵소서.

나의 약점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슬픈 일이 있을 때 공공연히 우시던 예수님처럼,
비탄에 빠져 있을 때 울음, 신음, 떨림과 같은
고통을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타인의 칭찬과
인정에만 의지해서 사는 오류에서 나를 건져 주시고,
나를 방어하거나 증명하기 위해 애쓰거나, 스스로를
학대하는 데 정력을 낭비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를 통하여 비굴, 무력, 자기비하가 아닌
참된 겸손의 미덕을 배우게 하시고,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게 하옵소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내가 주님에 의해서 깊이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음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내가 사랑스럽다는 것과 또 사랑받고 있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도 상대방에게 사랑을
잘 표현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주여!
고칠 수 없는 것들은 제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고칠 수 있는 것들은 고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리고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 (라인홀트 니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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