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하나님으로 만족하라

 

 

 

찬송 : ‘주 예수여 은혜를’ 368장(통 486)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출애굽기 20장 17절
 
 말씀 : ‘탐내다’라는 말은 ‘몹시 바라고 열망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본문 17절에 나오는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구절은 십계명의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와 중첩되는 것 같고,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말은 제8계명의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과 겹쳐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제7계명과 제8계명은 실제적인 행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10계명은 마음의 상태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 행위를 촉발하는 마음 즉 탐욕을 다스리라고 당부합니다.

탐욕을 품으면 만족할 줄 모르게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물론 탐욕을 부려 일시적으로 만족을 누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오래 가던가요. 잠깐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순간적인 만족감을 얻기 위해 탐욕을 또 부립니다. 결국 탐욕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체해 버립니다. 하나님보다 탐심이 더 높아지는 것, 이는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탐욕의 근원을 좇아 올라가다보면 그 꼭짓점에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탐욕의 출발점은 안전을 보장받고 싶은 심리입니다.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제외하고 매일 하루분의 만나만 갖고 가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루치 이상의 만나를 가져갔습니다. 왜 이들은 일용할 양식보다 더 많이 가져갔을까요. 내일에 대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창고에 곡식을 가득 쌓아놓은 부자는 쌓아놓은 곡식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았다고 흡족해 합니다. 그러나 누가 그것을 보장해 줄까요. 하나님이 오늘이라도 부르시면 그것으로 끝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늘 보장받지 못한 내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살아갑니다. 때문에 보험도 들고 저축도 합니다. 그렇게 미래를 대비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미래를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현실에서 탐욕부리는 것을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마음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엉뚱한 탐욕과 갈망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만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우리 심령이 채워질 때 다른 헛된 것에 기웃거리지 않게 됩니다. 여전히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고 욕심을 내십니까.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을 통해 마음을 채우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탐욕을 그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오늘까지 십계명을 통해 깨달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으로 충만하지 않다면 세상의 허탄한 것을 욕망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한성훈 목사(수원 살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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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믿음의 위력을 발하라

 

 


찬송 : ‘주 믿는 사람 일어나’ 357장(통 39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11장 11~25절

말씀 :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평온하게 성 밖으로 나가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그들은 같은 장소를 지나가면서 전날 주님께서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놀라서 말합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21절) 예수님께서 무화과 열매를 기대했을 때 그 무화과나무가 주님을 거절하자 예수님께서도 그 나무를 거절함으로써 초래된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일을 통하여 믿음과 기도의 교훈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려면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명령의 권능에 놀랐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생기 있고 적극적인 믿음이 어째서 그들의 기도에 놀라운 권능을 불어 넣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23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힘과 권능을 통해서라면 어떠한 큰 어려움도 극복될 뿐 아니라 반드시 순조롭게 해결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려면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24절)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을 줄로 믿으라는 기대의 말씀이 아니라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주시는 권세를 지니신 주님께서 ‘너희에게 그대로 될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강도의 굴혈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시킨 것처럼 형식과 죄로 뭉쳐진 산을 깊은 바다에 던질 때 믿음으로 세상이 정복되고 사단의 맹렬한 공격은 마침내 잠잠해질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기 위한 기도의 전제 조건을 덧붙이셨습니다. 승리의 기도에 요구되는 조건은 곧 우리가 아무 대가 없이 용서해주고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25절) 우리는 기도할 때에 다른 사람들, 특히 우리의 적과 우리에게 해를 끼쳤던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용서가 부족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데 큰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할 때마다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는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은혜의 보좌에 대해 가지는 하나의 큰 목적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며,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하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 :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지하여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에스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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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내 인생의 엔딩 크레딧

 

 

 

찬송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384장(통43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에베소서 4장 7∼16절

말씀 : 영화가 끝나면 곧바로 ‘엔딩 크레딧(Ending Credit)’이 올라갑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일어서서 나오기 때문에 주목하지 않지만 맨 마지막에 음악과 함께 오르는 자막이 ‘엔딩 크레딧’입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만이 아니라 감독, 시나리오, 조명, 촬영, 소품, 의상, 음악담당 등….

수없이 많은 이들이 배후에서 수고했기에 훌륭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될 때 내 삶을 복되게 만들어준 사람들의 이름이 내 인생의 엔딩 크레딧에 기록됩니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가족, 스승들과 친구들, 그리고 함께 신앙생활한 교우들의 이름과 이웃들의 이름도 나올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다른 사람의 삶에 그렇게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인생이 있는데 하나는 ‘생존만 하는 인생’이고, 또 하나는 ‘기여하는 인생’입니다. 인간됨의 의미는 단순한 생존이 아닌 생존을 넘어 기여하는 인생이 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생존만 하는 인생을 넘어 기여하는 인생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인 은사를 잘 활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은사는 아주 쉽게 표현하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더불어 옳은 일이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다 만족되어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은혜의 선물이 바로 ‘은사’입니다.

8∼10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승리자로 이 땅 만물 가운데 주의 뜻을 충만하게 이루어 가시기 위해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11절은 지도자들에게 주신 구체적인 몇 가지 은사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12절에 보면 우리가 우리 이웃들을 온전히 섬김을 통해 이루어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있음을 말씀하는데 그것은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질 때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동체 내에서 섬김을 감당하면서 끊임없이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섬김을 통해 우리 공동체가 좀 더 든든하게, 아름답게 세워져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에 기여하는 인생을 살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삶의 엔딩 크레딧을 남기는 삶이 되기 위해 늘 우리가 기도해야 할 제목이 있습니다. “예수님 닮은 성숙한 제자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선물인 은사를 잘 활용함으로 우리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하게 쓰임받는 인생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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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용서 Forgiveness

 


부경환 목사(경기 오산감리교회) 기자

 

 
찬송 : ‘그 참혹한 십자가에’ 269장 (통 211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성경 : 사무엘하 19장 21~22절

말씀 : 우리는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에 이성보다 감정이 훨씬 더 우리 삶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미움을 걷어내고 용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때 자신을 팔아먹은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왔습니다.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형들을 용서합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시고 빚진 자의 비유로 용서해야 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죄 사함의 용서를 받은 우리들이 형제를 용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스테반 집사는 유대인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 기도합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하나님께서는 죽을죄를 지은 우리들을 용서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시므이가 압살롬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을 저주합니다. 아마도 이제 다윗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승리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시므이는 급히 다윗 왕 앞에 나와 19∼20절에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라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를 본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21절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아비새의 말은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22절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고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다윗은 용서합니다. 우리는 항상 남을 용서하기 전에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용서하는 것이 십자가처럼 느껴지면 달게 짊어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기도 : 우리의 죄를 사랑으로 덮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기만 하면 용서해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오늘도 살아갑니다. 그 사랑, 그 은혜 잊지 않고 사랑으로 용서하며 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부경환 목사(경기 오산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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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신앙을 이어가는 방법

 

 

 

 

 

 

찬송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14장(통 511)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느헤미야 10장 28∼39절 
 
말씀 : 오늘 본문에서 유다 백성들은 자신과 조상들의 잘못을 다 고백한 뒤 다시는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이 맹세를 어기면 저주도 기꺼이 받겠다는 아주 단호한 맹세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어떻게 살기로 결단하고 있습니까. 

먼저 이방인과 결혼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성경의 역사를 살펴볼 때 이방인과 결혼하는 문제로 나라가 위기에 처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페니키아 출신 이세벨이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시집오면서 얼마나 나라 안에 우상숭배가 극심해졌습니까. 솔로몬도 외교적 수단으로 이방여인들과 결혼하면서 결국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혼미해지고 타락의 길로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우리가 영적으로 타락하지 않으려면 이방인과 결혼해선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릅니다. 

오늘날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것은 단순히 신앙적 차이가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결혼은 가정 안에서 작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과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신앙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큽니다. 

유다 백성들은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겠노라 맹세합니다. 당시에 주민들이 유대인으로만 구성돼 있었다면 모두가 율법을 지킬테니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같이 사는 이방인들이 안식일에도 물건을 팔았고, 유다 백성도 그 물건을 사왔던 것입니다. 때문에 유다 백성들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물품이나 곡물을 사지 않겠노라고 선언합니다. 안식일을 구별된 하나님의 날로 지키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키는 게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켜줬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는데 그렇게 안식일을 지키려고 노력한 결과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믿음이 대대에 전해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를 통한 믿음생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교회와 예배에 소홀히 하면서 주관적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이방인과 결혼하지 않고, 안식일을 지키겠노라 했던 결단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 믿음을 대대에 계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가진 이 신앙이 대를 이어 전수되기를 원합니다. 주의 날을 힘써 지킴으로 우리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이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한성훈 목사(수원 살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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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내 인생의 엔딩 크레딧

 

 

 

찬송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384장(통43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에베소서 4장 7∼16절

말씀 : 영화가 끝나면 곧바로 ‘엔딩 크레딧(Ending Credit)’이 올라갑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일어서서 나오기 때문에 주목하지 않지만 맨 마지막에 음악과 함께 오르는 자막이 ‘엔딩 크레딧’입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만이 아니라 감독, 시나리오, 조명, 촬영, 소품, 의상, 음악담당 등….

수없이 많은 이들이 배후에서 수고했기에 훌륭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될 때 내 삶을 복되게 만들어준 사람들의 이름이 내 인생의 엔딩 크레딧에 기록됩니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가족, 스승들과 친구들, 그리고 함께 신앙생활한 교우들의 이름과 이웃들의 이름도 나올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다른 사람의 삶에 그렇게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인생이 있는데 하나는 ‘생존만 하는 인생’이고, 또 하나는 ‘기여하는 인생’입니다. 인간됨의 의미는 단순한 생존이 아닌 생존을 넘어 기여하는 인생이 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생존만 하는 인생을 넘어 기여하는 인생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인 은사를 잘 활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은사는 아주 쉽게 표현하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더불어 옳은 일이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다 만족되어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은혜의 선물이 바로 ‘은사’입니다.

8∼10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승리자로 이 땅 만물 가운데 주의 뜻을 충만하게 이루어 가시기 위해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11절은 지도자들에게 주신 구체적인 몇 가지 은사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12절에 보면 우리가 우리 이웃들을 온전히 섬김을 통해 이루어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있음을 말씀하는데 그것은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질 때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동체 내에서 섬김을 감당하면서 끊임없이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섬김을 통해 우리 공동체가 좀 더 든든하게, 아름답게 세워져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에 기여하는 인생을 살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삶의 엔딩 크레딧을 남기는 삶이 되기 위해 늘 우리가 기도해야 할 제목이 있습니다. “예수님 닮은 성숙한 제자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선물인 은사를 잘 활용함으로 우리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하게 쓰임받는 인생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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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 진실한 접촉

 

 

 

찬송 : ‘구주예수 의지함이’ 542장(통340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5장 25∼34절

말씀 : 오늘 본문 내용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이라는 병으로 고통을 당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분의 옷에 손을 대므로 병이 낫게 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고 진실하게 주님과 만나고 접촉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말 못할 고민을 12년 동안이나 안고 살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돈만 많이 쓰고 병은 악화됐습니다. 그런 그에게 희망의 소식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쳐줄 수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 주변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병을 주님께 말씀드리기 힘들었습니다. 본문 28절에 보면 그는 예수님의 옷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병이 치료됐습니다. 근원적으로 치유되었으며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손을 대는 그 순간 병이 나았습니다

.

그러자 주님께서 돌아보시면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수많은 사람이 서로 밀쳐서 주님께 손을 댄 사람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만진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그 여인은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 고백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사건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합니다. 얼마나 많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봉사를 했습니까. 과연 나는 이 여인과 같은 믿음으로 진실하게 주님과 접촉한 적이 얼마나 됩니까. 아무런 의식도 믿음도 없이 예배하고 봉사한다며 교회에 오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수없이 많은 예배를 하면서도 감동이 없고 매번 반복되는 의식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까. 단 한 번 예배를 드려도 진지하고 진실하게 하고 예배하면서 누리는 기쁨과 감격이 너무 커서 삶의 활력을 경험한 적은 몇 번이나 됩니까. 간절하게 기도하며 눈물로 주님을 만났더니 놀라운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며 기도의 즐거움을 누린 경험은 얼마나 됩니까.

진실한 접촉은 놀라운 은혜를 입게 합니다. 기적을 체험하게 합니다. 주님 곁에 가까이 와서 서로 밀면서 주님과 접촉한 수많은 사람 중에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이 여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진실한 믿음의 접촉이 없이는 이런 기적이 없습니다.

나의 신앙생활을 반성합시다. 12년 동안의 고통과 아픔이 한 번의 접촉으로 해결된 이 여인처럼 우리가 주님을 진실하게 만나고 접촉하므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고 늘 기쁨과 감격의 신앙생활을 이어가야 합니다. 단 한 번의 예배를 통해서도 놀라운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있는 진실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그 진지함을 유지하고 기도할 때마다 그 진실한 접촉이 이루어지게 합시다.

기도 : 나는 얼마나 진지하고 진실하게 주님을 만나고 있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단 한 번의 예배에서라도 진지한 접촉을 통해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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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 ] 내가 전도한 사람 이렇게 될 줄이야   

 

 

 

 

찬송 : ‘주 예수 넓은 사랑’ 497장(통 274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1장 40~42절

우리는 단순하게 복음을 전할 뿐인데 전도한 그 사람이 뛰어난 사역자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본문이 바로 좋은 예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 안드레는 길가에 서 있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요한으로부터 그분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얘기를 듣고 관심을 가지게 된 안드레는 예수님을 따라가 그날 함께 지낸 후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깨닫고 형제인 시몬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전하고 시몬을 주님께로 데려옵니다. 주님은 시몬을 보시고 “이제 너는 세상의 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꿈을 가진 반석과 같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소망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한 영혼이 주님 앞으로 인도함을 받게 되면 주님은 그 영혼을 보시고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주님께 나온 바요나 시몬도 소망을 이루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실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베드로를 향해 “너는 이제 베드로라. 네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라”는 약속의 메시지를 들려주셨습니다(마 16:13∼19). 이 얼마나 놀랍고 엄청난 은혜입니까?

사람은 결혼해 아이를 낳을 때 비로소 온전한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영적인 자녀를 낳아 기를 때 신앙적으로 성숙해집니다.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을수록 그의 신앙 인격은 더욱 성숙한 자리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전도가 중요하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니 나는 그분의 심부름꾼이라는 생각을 하면 보다 쉬워질 것입니다. 철부지 어린아이들이 부모가 심부름을 시킬 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심부름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듯이 영적으로 미성숙한 우리를 너무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심부름의 대가까지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무엇일까요?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의 빈손에 금과 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얹어줌으로써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미하게 했던 베드로와 요한처럼(행 3:1∼10) 많은 것을 누리고 지니고 있지만 자기만족이 없어 늘 빈손을 내밀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영생의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보다 더 보람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안드레가 데리고 온 시몬이 베드로가 되었듯이 우리가 그저 신실한 심부름꾼으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한 해가 다 지나가기 전에 영적인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제게 힘을 더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임석순 목사<한국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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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하나님만 의지하라

 

 

 

542장 (통 340장) 찬송듣기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46:5)
•성경 시편 146:1~146:10 성경감추기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이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내용  
모든 사람에겐 종교성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는 종교성이라는 것은, 사람이 무엇인가 의지하고 기댈 것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자신의 지식(학력, 재능)을 믿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인간관계(혈연, 지연, 학연 등)를 믿는 사람이 있고, 이성에 기초한 과학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닻을 안전하게 드리울 수 있는 '기반' 같은 것을 내면에서 깊이 추구하게 마련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그의 종교인 셈이지요. 만일 이러한 것들이 정말 하나도 없이 완전히 단독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인간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와 같은 인간의 특징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애써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도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 삶을 지혜로운 삶으로 여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믿는 것이 더 확실하게 여겨지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은 인간이 의지할 것이 못 된다고 명확하게 분간하여주고 있습니다.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것을 신뢰합니다. 변하지 않는 유일한 분은 바로 하나님 한 분뿐이시지요. 지혜로운 사람은 바로 이 사실 앞에서 겸허하게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잠1:7)

•기도  
우리의 삶을 진정 책임져주거나 도와줄 수 없는 세상 것을 의지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를 온전히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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