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구원을 위한 기도  †.생활 기도문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행16:31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딤5:8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에서 구원을 받고 주님의 그 은혜를 정말로 경험한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들도 함께 그 은혜를 체험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가족들을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해 먼저 구원받은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구원해 달라고 눈물 뿌리며 기도한 적이 얼마나 있나요?
가족 구원을 위해 눈물로 하나님께 울부짖기를 원합니다.

혹은, 너무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나요?
낙심치말고 하나님의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우리 가족이 주 예수를 믿어 구원함을 받기 원합니다.
주님! 구원해 주옵소서.
가족들에게 믿음으로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변화된 모습을 드러내게 하소서.
가족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모든 분들을 위로해 주시고 끝까지 인내하며 간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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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는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그리하여 영생을 얻게 하셨으니 감사 하옵나이다.

  주님이시여,

  저희 가정을 믿음으로 지켜 주시고 당신 뜻대로 살게 하옵소서,

  온 가족이 다 예수 믿고 구원함을 얻으며 참 인간의 존재를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그러나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깨닫지 못하는 식구가 있사오니 그 심령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성령으로 감동 감화를 주셔서 자신의 존재를 깊이 자각하게 하시며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옵소서.

  온 가족이 당신만을 모시고 살며, 말씀대로 살 때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주실 것을 확실히 믿사오니 당신께서 다스려 주옵소서.

  먼저 영접한 식구들이 믿음의 본이 되게 하시고 전심전력으로

기도하며 간구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가정이 모든 식구들의 구원의 방주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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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하나님의 일꾼

 

 

 

찬송 :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441장(통 49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출애굽기 35:30∼36:1

성막건축의 명령을 받고 모세는 드디어 성막을 건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흙으로 벽돌을 만드는 일에는 전문가들이지만 성전 건축에 필요한 정교한 기술들을 배운 일이 없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일을 맡기고 싶어도 적임자를 찾지 못할 때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어떤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특별히 지명하여 부르십니다. 브살렐은 수석공인으로, 오홀리압은 브살렐의 협력자로 세웁니다. 모세가 비록 탁월한 인물이고 아론으로 그를 돕도록 붙여주셨지만 성막을 건축하는 일에 하나님은 따로 두 사람을 부르시고 모세의 지도를 받게 합니다. 좋은 지도자는 모든 일을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일꾼들을 세우고 격려하고 합심하여 함께 일을 잘 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적재적소에 일꾼들을 배치하고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리더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재능과 은사를 주셨고 그것을 최대한도로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지도자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둘째로 두 사람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충만은 그들을 지혜롭게 하였고 성소를 짓는 모든 일들을 할 줄 알게 하였습니다(36:1). “할 줄 알게 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외부에서 전문가를 불러오시는 것이 아니고 백성들 가운데 일할 사람을 먼저 뽑고 그들로 하여금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능력보다 부르심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자를 불러서 일을 맡기시기보다 부르신 자들에게 능력을 추가해주셔서 그 일을 하도록 만드십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기술과 재능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선물 곧 은사입니다.

셋째로 오홀리압을 협력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힘 있는 유다지파의 명문가문에서 브살렐을 세우고 타 지파에 비해 비교적 약한 단 지파의 오홀리압을 부지도자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아래 또한 많은 지혜로운 자들을 세워서 다양한 일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회 일은 이처럼 모든 성도들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일이 부족함이 없고 넉넉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중생으로의 부르심이고 또 하나는 일꾼으로의 부르심입니다. 교회가 일꾼이 없어 할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꾼을 부르시고 능력과 지혜로 충만케 하심으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인간적 계획과 능력으로 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 일할 때 지치지 않고 선한 열매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성막을 세우는 일에 부름 받은 가정이요 교회로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충성된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하늘로부터 오는 각양 은사로 무장하여 부르심에 합당한 일꾼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수환 목사(서울 람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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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우리의 하나님

 

 

 

 

 
 90장 (통 98장) 찬송듣기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미 7:18)

성경 미가 7:18~7:20 성경감추기 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20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내용  
많은 신앙인들에게서 발견되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제각기 자신의 신앙대로 하나님에 대한 나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며 가르침을 주시는 '좋은 훈장님'으로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무엇이든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제공하시는 '요술램프'쯤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죄와 관련해 항상 잘못을 지적하고 심판하시며 옳은 길로 인도해주시는 '엄한 판사' 같은 분으로 하나님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경외심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분, 자비와 사랑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 이미지는, 사람들의 죄와 허물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으시지만 죄로 인하여 인생 전체를 망치거나 죄에 얽매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머물러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그려집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 은혜 가운데 인간을 머물게 하시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유력한 자들에게서 보이는 탐심과 권력남용, 그리고 우상숭배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면서도, 하나님의 '사유와 인애'를 동시에 선포합니다. 그분 앞에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온전히 회개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는 심판을 부르는 매서운 회초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하는 '자리'로 작용합니다. 인간의 결점과 허물, 죄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되어줍니다.

기도  
주님, 죄에 얽매이지 않게 하소서. 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깊이 체험하고 변화된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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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하나님으로 만족하라

 

 

 

찬송 : ‘주 예수여 은혜를’ 368장(통 486)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출애굽기 20장 17절
 
 말씀 : ‘탐내다’라는 말은 ‘몹시 바라고 열망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본문 17절에 나오는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구절은 십계명의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와 중첩되는 것 같고,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말은 제8계명의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과 겹쳐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제7계명과 제8계명은 실제적인 행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10계명은 마음의 상태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 행위를 촉발하는 마음 즉 탐욕을 다스리라고 당부합니다.

탐욕을 품으면 만족할 줄 모르게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물론 탐욕을 부려 일시적으로 만족을 누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오래 가던가요. 잠깐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순간적인 만족감을 얻기 위해 탐욕을 또 부립니다. 결국 탐욕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체해 버립니다. 하나님보다 탐심이 더 높아지는 것, 이는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탐욕의 근원을 좇아 올라가다보면 그 꼭짓점에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탐욕의 출발점은 안전을 보장받고 싶은 심리입니다.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제외하고 매일 하루분의 만나만 갖고 가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루치 이상의 만나를 가져갔습니다. 왜 이들은 일용할 양식보다 더 많이 가져갔을까요. 내일에 대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창고에 곡식을 가득 쌓아놓은 부자는 쌓아놓은 곡식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았다고 흡족해 합니다. 그러나 누가 그것을 보장해 줄까요. 하나님이 오늘이라도 부르시면 그것으로 끝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늘 보장받지 못한 내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살아갑니다. 때문에 보험도 들고 저축도 합니다. 그렇게 미래를 대비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미래를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현실에서 탐욕부리는 것을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마음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엉뚱한 탐욕과 갈망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만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우리 심령이 채워질 때 다른 헛된 것에 기웃거리지 않게 됩니다. 여전히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고 욕심을 내십니까.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을 통해 마음을 채우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탐욕을 그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오늘까지 십계명을 통해 깨달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으로 충만하지 않다면 세상의 허탄한 것을 욕망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한성훈 목사(수원 살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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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믿음의 위력을 발하라

 

 


찬송 : ‘주 믿는 사람 일어나’ 357장(통 39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11장 11~25절

말씀 :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평온하게 성 밖으로 나가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그들은 같은 장소를 지나가면서 전날 주님께서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놀라서 말합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21절) 예수님께서 무화과 열매를 기대했을 때 그 무화과나무가 주님을 거절하자 예수님께서도 그 나무를 거절함으로써 초래된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일을 통하여 믿음과 기도의 교훈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려면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명령의 권능에 놀랐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생기 있고 적극적인 믿음이 어째서 그들의 기도에 놀라운 권능을 불어 넣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23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힘과 권능을 통해서라면 어떠한 큰 어려움도 극복될 뿐 아니라 반드시 순조롭게 해결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려면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24절)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을 줄로 믿으라는 기대의 말씀이 아니라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주시는 권세를 지니신 주님께서 ‘너희에게 그대로 될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강도의 굴혈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시킨 것처럼 형식과 죄로 뭉쳐진 산을 깊은 바다에 던질 때 믿음으로 세상이 정복되고 사단의 맹렬한 공격은 마침내 잠잠해질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기 위한 기도의 전제 조건을 덧붙이셨습니다. 승리의 기도에 요구되는 조건은 곧 우리가 아무 대가 없이 용서해주고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25절) 우리는 기도할 때에 다른 사람들, 특히 우리의 적과 우리에게 해를 끼쳤던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용서가 부족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데 큰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할 때마다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는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은혜의 보좌에 대해 가지는 하나의 큰 목적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며,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하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 :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지하여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에스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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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내 인생의 엔딩 크레딧

 

 

 

찬송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384장(통43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에베소서 4장 7∼16절

말씀 : 영화가 끝나면 곧바로 ‘엔딩 크레딧(Ending Credit)’이 올라갑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일어서서 나오기 때문에 주목하지 않지만 맨 마지막에 음악과 함께 오르는 자막이 ‘엔딩 크레딧’입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만이 아니라 감독, 시나리오, 조명, 촬영, 소품, 의상, 음악담당 등….

수없이 많은 이들이 배후에서 수고했기에 훌륭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될 때 내 삶을 복되게 만들어준 사람들의 이름이 내 인생의 엔딩 크레딧에 기록됩니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가족, 스승들과 친구들, 그리고 함께 신앙생활한 교우들의 이름과 이웃들의 이름도 나올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다른 사람의 삶에 그렇게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인생이 있는데 하나는 ‘생존만 하는 인생’이고, 또 하나는 ‘기여하는 인생’입니다. 인간됨의 의미는 단순한 생존이 아닌 생존을 넘어 기여하는 인생이 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생존만 하는 인생을 넘어 기여하는 인생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인 은사를 잘 활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은사는 아주 쉽게 표현하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더불어 옳은 일이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다 만족되어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은혜의 선물이 바로 ‘은사’입니다.

8∼10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승리자로 이 땅 만물 가운데 주의 뜻을 충만하게 이루어 가시기 위해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11절은 지도자들에게 주신 구체적인 몇 가지 은사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12절에 보면 우리가 우리 이웃들을 온전히 섬김을 통해 이루어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있음을 말씀하는데 그것은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질 때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동체 내에서 섬김을 감당하면서 끊임없이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섬김을 통해 우리 공동체가 좀 더 든든하게, 아름답게 세워져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에 기여하는 인생을 살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삶의 엔딩 크레딧을 남기는 삶이 되기 위해 늘 우리가 기도해야 할 제목이 있습니다. “예수님 닮은 성숙한 제자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선물인 은사를 잘 활용함으로 우리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하게 쓰임받는 인생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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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회 헌신 예배 기도 

 

  


             

                       

젊은이들의 입술을 통하여서 찬양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무지와 불순종으로 묻어둔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내어

보입니다. 젊었다고 하는 오만으로 주의 뜻을 어겼던 우리의 죄된 모습을 주님 앞에 내어보입니다. 이제 겸손히 머리를 숙여 하나님

앞에 나아와 주님을 찾고자 합니다.

 


이제라도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써 참된 것을 보게 하옵소서. 새 시대 새 역사를 펼치시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대한 불평과

원망의 마음을 새롭게 개혁하며 창조할 수 있는 용기의 마음으로 변화되게 하옵소서.

우리 자신이 헌신의 옷을 여미고 목숨을 다해서 우리에게 주신 새 교훈을 힘입어 이 땅에 새로운 그리스도의 문화를 만들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슬기를 주셔서 위대한 선택을 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끝까지 온 몸을 바쳐 한 길로 나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 집사를 생각해 봅니다. 매도 맞고 옥에도 갇히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던 사도 바울을 생각해 봅니다.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서 주님의 고통에 동참하며 죽어간 사도 베드로도 생각해 봅니다.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큰 힘을 주며 저희들의 삶에 새로운 도전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비록 한 달란트가 우리에게 쥐어 졌더라도 불평하지 않게 하옵소서. 또한 핑계하지 않고 바로 선용할 줄 아는

책임감과 성실을 허락하옵소서.

 


미련한 우리들이 하나님의 원리를 바로 터득하여 예리한 분별력으로 하나님 사랑을 알게 하옵소서. 작은 일에 충실하며, 그것이

귀한 것임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성실히 수행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향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외치게 하옵소서.

이 시간에 드리는 헌신의 결단이 장소와 시간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숨이 끝나는 그 시간까지 이어지게 하옵소서.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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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용서 Forgiveness

 


부경환 목사(경기 오산감리교회) 기자

 

 
찬송 : ‘그 참혹한 십자가에’ 269장 (통 211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성경 : 사무엘하 19장 21~22절

말씀 : 우리는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에 이성보다 감정이 훨씬 더 우리 삶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미움을 걷어내고 용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때 자신을 팔아먹은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왔습니다.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형들을 용서합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시고 빚진 자의 비유로 용서해야 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죄 사함의 용서를 받은 우리들이 형제를 용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스테반 집사는 유대인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 기도합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하나님께서는 죽을죄를 지은 우리들을 용서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시므이가 압살롬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을 저주합니다. 아마도 이제 다윗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승리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시므이는 급히 다윗 왕 앞에 나와 19∼20절에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라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를 본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21절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아비새의 말은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22절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고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다윗은 용서합니다. 우리는 항상 남을 용서하기 전에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용서하는 것이 십자가처럼 느껴지면 달게 짊어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기도 : 우리의 죄를 사랑으로 덮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기만 하면 용서해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오늘도 살아갑니다. 그 사랑, 그 은혜 잊지 않고 사랑으로 용서하며 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부경환 목사(경기 오산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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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예배 기도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금 우리들이 이곳에 모여서 이 세상을 먼저 떠나
아버지 앞으로 가신 ○○○ 성도님
(어른, 선생님)의 장례식을 거행하려고 하오니
아버지께서 은혜와 사랑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 성도님 (어른, 선생님)이 세상에 있을 때에
아버지께서 크신 능력으로 지켜 주시고 사랑의 손으로 인도하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 영원한 후사가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원하옵기는 이 장례가 아버지의 은혜 가운데 이루어져 이로 말미암아
그의 유족과 친척들이 큰 위로를 받게 하옵시고,
이곳에 모인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교훈을 배우고 죄를 뉘우치는
것과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믿음이 더욱 굳세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이 이름으로 기도 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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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 부부의 불행 이야기(행5장1-11)

 

 

 

 

성경본문|사도행전 5장 01절 ~ 11절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우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저는 지난 화요일 국기원에서 개최된 “2006 미션컵 전국태권도대회”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며 태권도 시범을 잠시 관람했는데, 청소년들이 자기들이 닦은 태권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태권도 시범에 최선을 다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눈물겨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모인 600여명 이상의 선수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최선을 다하는 순복음노원교회 성도들의 헌신적인 모습도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사도 행전 2장 이하에 기록된 예루살렘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교제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봉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전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바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밭과 집이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두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행4:34,35). 신앙 생활과 봉사 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저들의 모습은 참으로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교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봉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전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바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신자들 중에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불성실한 신자들도 있었습니다. 기도회에도 제대로 참석하지 않고, 교제하는 일이나 봉사하는 일에도 제대로 참석하지 않고, 전도하는 일이나 바치는 일에도 제대로 참석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불성실한 신자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그와 같은 불성실한 신자들 중의 두 사람인 아나니아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나니아 부부가 불성실했다는 기록은 없으나 저는 그렇게 추측합니다.

 

바클레이의 주석을 보았더니 아나니아 부부가 범한 죄 중의 기본적인 죄가 불성실의 죄였다고 지적했습니다. Failure in diligence 가 그들의 기본적인 죄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신앙 생활에 불성실할 때, 여러가지 잘못에 빠질 수가 있는데 오늘 아침 아나니아 부부가 빠졌던 세 가지 잘못에 대해서 함께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첫째, 아나니아 부부는 명예욕에 빠졌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을 받기를 원합니다. 존경과 칭찬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나쁜 일은 아닙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신앙의 인격을 갖추고 봉사의 삶을 지니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고 칭찬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도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됩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행16:2)라고 했습니다. 도르가는 욥바에 있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행10:22). 도르가와 고넬료는 하나님으로부터도 인정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들도 모두 칭찬 받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6:3). 초대교회 신자들 중 밭과 집이 있는 신자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두었고 사도들은 그것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했을 때, 저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신자들이 신자다운 인격과 삶을 지닐 때 존경과 칭찬을 받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신자들이 사회로부터 인정과 존경과 칭찬을 많이 받는 것은 좋은 일이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 부부는 신앙 생활과 봉사 생활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주변에 있는 신자들이 교회 안팎에서 존경과 칭찬을 받는 것을 보고는, 자기들도 존경과 칭찬을 받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 중에 밭과 집이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값을 헌금으로 바치고 특히 바나바가 밭을 팔아서 그 값을 헌금으로 바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래서 저들이 사도들과 신자들의 존경과 칭찬을 받는 것을 보았을 때, 아나니아 부부는 자기들도 무엇을 해서라도 존경과 칭찬을 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저는 강변교회를 시작하기 전에 새로 시작하는 개척교회인 영안교회를 8개월 동안 맡아서 섬긴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여러 가지 중요한 교훈들을 얻었는데 그 중의 한 가지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교회당을 하나 지어서 바치든지, 1억 원의 헌금을 드리든지, 자동차를 한 대 사서 드리는 일이 반드시 옳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자동차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서 1억 원의 헌금을 드릴 때, 1억 원 상당의 죄를 지을 수도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 생활도 봉사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서 무슨 일을 일부러 시도할 때 무서운 잘못을 범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 설교에서 이렇게 경고의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마6:2).

 

사람에게 인정과 칭찬과 영광을 얻으려고 사람들이 보는 데서 억지로 헌금도 하고 억지로 구제도 하고 억지로 봉사도 하는 것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정 반대로 생각을 하면 그것도 큰 잘못입니다. “그래, 나는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을 받지 않으려고 헌금도 하지 않고, 구제도 하지 않고, 봉사도 하지 않아, 내가 참 잘 하는 것이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큰 잘못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칭찬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헌금으로 바치는 것을 보시면서 그를 칭찬하시고 부자의 인색한 헌금은 칭찬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막12:41-44). 아나니아 부부는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서 두 사람이 공모한 후 소유를 팔았습니다. 바나바처럼 그들도 땅을 팔았습니다. 대단한 결단이었지만 그 동기는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는 불순한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아나니아 부부는 탐욕에 빠졌습니다.

아나니아 부부가 소유를 판 것은 대단한 결단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는 명예욕에 이끌려서 그렇게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헌금을 하기 위해서 소유를 판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소유를 판 값이 얼마였는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이 소유를 판 값을 바라보았을 때 그것을 다 바치기가 아까운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탐욕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땅을 판 값의 일부를 감추기로 공모를 했습니다. 두 사람의 마음이 꼭 맞았습니다. 한 사람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부부가 좋은 일에 공모를 하여야 하는데 아나니아 부부는 나쁜 일에 공모를 했습니다.

 

박종렬 목사님의 설교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떤 가정은 나쁜 일에 부부가 보조를 맞추는 일이 있다. 예배에 지각하고 헌금에 인색하고 맡은 일에 무책임하고 말 많고 세상 쾌락을 사랑하고 교역자를 괴롭히는 일에 부부가 죽이 맞는 일이 있다. 아나니아 부부가 그러했다.”

아나니아 부부는 땅을 판 값의 일부를 감추기로 공모를 했습니다. 두 사람은 돈을 너무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는데, 두 사람은 돈을 너무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헌금을 바치기 위해서 마련한 돈이었는데 헌금의 일부를 떼어 먹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헌금의 일부를 떼어 먹을 수가 있습니다. 십일조의 일부를 떼어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서운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돈을 사랑해서 헌금의 일부를 떼어 먹다가 그만 무서운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돈을 너무 사랑하다가 헌금의 일부를 떼어 먹을 때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보시지만은 않습니다. 무섭게 책망을 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3:8,9).

 

구약 시대에 아간이란 사람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 덩이 오십 세겔을 자기 장막 땅 속에 감추었다가 무서운 저주를 받아 아골 골짜기 돌 무더기에 묻힌 일이 있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 사르고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수7:25).


엘리사의 종 게하시도 옷 두 벌과 은 두 달란트를 나아만에게서 받아 자기 집에 감추었다가 무서운 저주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 같이 되었더라”(왕하5:26,27). 재물에 대한 탐심과 탐욕은 무서운 책망과 무서운 저주를 불러옵니다.

 

저의 삶을 돌이켜볼 때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제가 헌금을 떼어 먹은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돈에 대한 탐심도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신학교의 교장으로 있을 때 나를 위해서 판공비를 어느 정도 쓸 수도 있었지만 거의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강변교회의 목사로 있으면서 교회가 써야 할 돈이 많을 때 되도록 적게 쓰려고 했고 다른 돈으로 그것을 보충한 일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것은 제가 저의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자주 들은 이야기이지만, 저의 어머니는 돈에 대해서 깨끗했습니다. 남에게서 빌린 돈은 기한 내에 반드시 값 곤 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돈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돈에 대해서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어둡고 컴컴한 면이 있었습니다. 재물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땅을 판 값에서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두 사람이 공모해서 벽장에 감추었는지 땅을 파고 거기에 감추었는지, 땅을 판 값의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그래서 무서운 책망과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셋째, 아나니아 부부는 거짓과 불 회개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명예욕이나 탐욕 등 죄에 빠질 때 그 죄를 지적하시며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가룟 유다에게도 예수님은 죄를 지적하시며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아나니아 부부가 땅을 판 값의 얼마를 감추고 일부를 그에게 가져왔을 때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에게 저들이 땅 값을 감춘 죄를 정면으로 지적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5:3,4).

 

아나니아는 사도 베드로의 긴 책망을 듣고도 아무런 뉘우침의 반응을 나타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 시간 후 그의 아내 삽비라가 사도 베드로에게 와서 똑 같은 책망을 듣고도 아무런 뉘우침의 반응을 나타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하게 자기들의 죄를 은폐했습니다. “예 이것뿐입니다” 라고 당당하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 오니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 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행5:7,8). 두 사람이 단단히 공모를 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회개의 기회를 박차고 거짓과 불 회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가장 불행하고 가장 비극적인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과 관련하여 명예욕이나 탐욕이나 거짓의 잘못을 범할 때 그것이 단순한 윤리적인 죄에 그치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사단을 끌어드리는 무서운 죄이고 성령을 대적하는 무서운 죄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 앞에서 명예욕이나 탐욕이나 거짓의 죄를 범할 때 그것이 사단을 끌어드리고 성령과 대적하는 무서운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5:3).

 

회개의 기회를 박차고 거짓과 불 회개에 빠진 아나니아 부부는 둘 다 사도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서 혼이 떠나 죽었습니다.

“아나이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사람들이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행5:5,6).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 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가 크게 두려워하더라”(행5:10,11).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아침 “아나니아 부부의 불행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신자의 생활을 하다가 그리고 헌금의 일부를 교회에 갖다 비치다가 심판을 받게 되는 일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강변교회 신자들 중에서 아나니아 부부와 같은 불행에 빠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때로는 여러분들이 좋아하지 않는 책망의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불행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평상시에 신앙생활과 봉사 생활에 최선을 다하면 될 것입니다. 기도와 교제와 봉사와 전도와 바치는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전도부원들처럼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하기를 힘쓰고 봉사하기를 힘쓰고 전도하기를 힘쓰면 될 것입니다. 평상시에 신앙 생활과 봉사 생활에 최선을 다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선배들인 청교도들은 신앙 생활과 봉사 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지나칠 정도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위선과 거짓의 죄를 범하게 될 때 즉시즉시 회개를 하면 될 것입니다.

 

다음 주일에는 “일곱 집사들의 행복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강변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모두 일곱 집사들처럼 행복한 사람들이 될지언정 아나니아 부부 같은 불행한 사람은 한 사람도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출 처| 김명혁목사(강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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