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설교] 성령 세례를 받으라

 

 

제목 : 성령 세례를 받읍시다.

말씀 : 행1:4,5

1.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고 얻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재물도 얻고 싶고, 건강도 얻고 싶습니다. 기왕이면 권세도 얻고 싶습니다. 기왕이면 예쁜 부인이나 백마 탄 왕자같은 남편도 얻고 싶습니다. 평안도 자유도 즐거움도 기쁨도 사랑도 존중도 받고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좋은 것을 누리며 사랑과 축복과 기쁨 속에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입니다. 또 그렇게 뭔가 좋은 것들을 누리고 싶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게 됨으로 좀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동기가 됨으로 이러한 것들에 대한 건전한 추구는 도리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얻고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말로 이러한 것들보다 더 우선해서 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도 우리 인생에게 보템과 유익과 기쁨이 되지만 그보다 더욱 보템과 유익과 은혜와 기쁨을 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우리는 인생의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인으로서의 인간 영혼은 죄와 무지속에 있어서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축복의 길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 인간 영혼이 하나님의 고귀한 형상으로서 누릴 수 있는 그 엄청난 축복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영,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심령속에 들어오셔서 우리 심령속의 굳어지고 무지한 것들을 깨트려 버리고, 죄된 것들을 씻어 버려야 비로소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알게 되면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게 되고 예수님 믿고 정말로 그 안에 있는 그 놀라운 생명 은혜 기쁨 자유 평안을 마음껏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세상에서 천만금을 얻을 것보다도, 천하제일의 권세를 얻은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무엇을 기다리라? 아버지께서 약속한 것. 그게 뭡니까? 성령입니다. 요14:1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바로 이 약속하신 성령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성령을 받아야 너희들이 나를 바르게 알고 사명을 힘있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약속하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진 심령이 깨끗해져서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리고, 천국이 보이게 됩니다. 그래야 자신을 알고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알게 됩니다.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을 믿게 되고 그래서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생명과 기쁨과 평강과 위로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나 위협이나 유혹도 넉넉히 이기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던 제자들, 심지어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며 부인했던 베드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를 못했던 제자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한곳에 모여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던 제자들도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다가 성령 충만함을 받은 다음에는 완전히 180도 달라겼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고 하늘나라가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참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워서 걸어 잠갔던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뛰어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 그러나 부활하셨다. 이 분이 그리스도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힘차게 외쳤습니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게 옳으냐 너희들 말 듣는 게 옳으냐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하루에 삼천명 오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세워졌고, 계속해서 성령의 능력을 받은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헌신을 통하여 또 다른 교회가 세워지고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 까지 이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요20:22절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지식을 얻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그보다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 받아야 죄사함 받습니다. 그래야 심령이 깨끗해 집니다. 그래야 눈이 밝아집니다. 천국이 밝게 보입니다. 선과 악을 바르게 분별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똑똑하게 들립니다. 지혜와 능력과 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상황과 환경을 이깁니다. 죄와 유혹을 이깁니다. 능력있게 생명있게 담대하게 천성을 향하여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의 은혜가 풍성한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생명의 영이요, 진리의 영이요, 지혜의 영이요, 능력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생명과 진리와 능력이 충만한 복된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됩니까?

2.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려면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가 뭡니까?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엡1:23절이지요.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이 곧 예수 그리스도 곧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은혜,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지혜, 예수님의 능력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지상교회는 온전치 못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교회 안에 만이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가 있습니다. 주님의 삶과 주님의 가르침과 주님의 뜻을 가르쳐 주는 곳은 오직 교회 뿐입니다. 그러니 이런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가까이해야 성령 충만 받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앞에서 보았던 4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 산입니다.(창22:2) 다윗이 장막을 치고 언약궤를 모셔두었던 곳입니다.(대상15:1)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곳입니다.(대하3: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인류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곳입니다. 즉 예루살렘은 인류구원의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거룩한 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있는 곳, 말씀이 있는 곳,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가 있는 곳,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 머물며 더욱 말씀 위에 서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까지는 너희 연약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제자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예루살렘은 어디 입니까? 교회밖에 더 있겠습니까. 주님의 피값으로 세우신 곳,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예배와 기도와 말씀과 찬양과 전도와 섬김과 봉사가 있는 곳입니다. 이런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봉사와 섬김 등으로 주님과 교제하고 성도와 교제할 때 성령을 받지 못한 자는 성령을 받게 되고, 이미 받은 자는 더욱 충만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충만하게 받은 사람은 생명의 은총이 있고 기쁨이 있고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며 주의 사역 힘있게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몸된 교회,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섬김이 있는 교회, 그래서 이 땅에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유일한 기관인 교회를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곳을 가까이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보다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섬기고 교제하는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말씀과 사랑과 은혜와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교제할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 정말로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강과 위로와 소망이 넘쳐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언제 참 제자가 되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대로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나서부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까? 기도에 힘쓸 때였습니다.

행1:14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분부를 따라 예수님을 따르는 다른 많은 분들과 더불어 마가의 다락방에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을 때 드디어 오순절 날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후 제자들은 능력있는 제자들이 되어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즉 기도할때에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았고,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받은 이후 능력있는 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 막9:29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어느 날 예수님은 산에 기도하러 가시고 제자들만 남았는데 어떤 아버지가 귀신 들린 소년을 데리고 와서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하였지만 못고쳐 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오셔서 귀신아 나가가 한마디 하니까 귀신이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우리는 왜 못쫓았습니까, 그러니까 기도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너희 믿음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이런 모든 잡류들, 더러운 것들, 추한 것들, 유혹들, 마귀의 장난들 다 물리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성도들과 신령한 교제를 나눌 때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히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이 대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깨어 기도하며 주님과 온전한 교제를 이룰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모든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을 물리쳐 버리고 더욱 큰 감사과 기쁨과 은혜와 능력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겸손히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또한 말씀을 듣고 받기 위함입니다. 그럴 때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행10:44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 말씀은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사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온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까지 불러 모아놓고 베드로를 모셔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밖으로 나가 발 앞에 절하고 모셔 들이고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자 그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오자 그 발아래 엎드려서 절했습니다. 가족은 물론 친척, 친구들까지 모아놓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만큼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엎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때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과 가치관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기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말씀, 은혜의 말씀, 능력의 말씀 앞에 조용히 무릅꿇고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곳에 은혜가 있습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다윗은 얼마나 말씀을 사모했는지 말씀이 송이꿀보다도 더 달다고 하였습니다.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저와 여러분은 더욱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 말씀의 은혜로 내 심령이 밝아지고 희망과 은혜가 넘치고 능력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성령의 지배 속에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할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래야 믿음을 갖게 되고 나아가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운데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뿐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온전히 성령의 지배속에서 살면서 능력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진정한 능력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세상에서는 돈이 힘이고 권력이 힘이고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만 그게 진짜 힘이 아닙니다. 진짜 힘은 죄를 이기는 힘입니다. 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힘입니다. 상황과 환경과 유혹과 핍박과 죽음을 이기는 힘입니다.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성령의 충만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며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죽음도 마귀사탄의 권세도 모두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돈과 명예와 권세가 있어도 결국 지는 자가 됩니다. 심지어 아무리 고상하게 종교생활해도, 교회가 아무리 웅장해도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하면 힘이 없습니다. 환난풍파 몰아치면 무너집니다. 세상의 유혹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래서 엡5:18절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 취하지 말라. 술의 지배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혼란스럽게 만들고 분별력을 희미하게 만듭니다. 영적 도덕적 윤리적 감각을 무디게 만듭니다. 술 뿐아니라 세상의 것들이 다 그렇습니다. 향락과 오락은 말할 것도 없고 물질과 명예와 지식과 권세와 이런 것들도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에 취하면 마침내 감각이 무디어지고 영혼이 황폐해지고 그러다 마침내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에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성령은 살리는 영이니까. 지혜의 영이니까, 생명의 영이니까, 사랑의 영이니까, 은혜의 영이니까, 화평과 위로와 소망과 자비의 영이니까, 이런 영으로 충만해야 비로소 올바른 분별력이 생기고 기쁨과 은혜와 사랑과 능력이 충만해 지니까, 그러므로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세상의 다른 것으로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정말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물밀 듯 쏟아져 내려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완전한 생명의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지식이나 그까짓 술이나 향락이나 오락이나 이런 것들이 주는 기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이 기쁨은 영원한 기쁨입니다.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이기는 기쁨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추한 것들과 죄와 유혹과 핍박을 이기는 고상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기쁨입니다. 그러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되는 퍼펙트한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을 구하기에 앞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위하여 교회를 가까이 하고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정말 한분도 빠짐없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세상의 모든 죄와 추한 것들과 환난과 환경과 상황과 조건을 이기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감사와 평강과 위로 소망이 충만한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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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설교 /성령강림절 : 성령을 따라 행하라

 

 


제목 : 성령을 따라 행하라

말씀 : 갈5:16-24

1.육신의 지배 속에 사는 인생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납니다. 살인사건, 성폭행사건, 폭력사건, 강도사건... 또 국가 간에도 전쟁과 억압과 착취와... 심지어 옛날에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노예를 삼아 짐승처럼 부려 먹기도 하고.... 하기야 요즘에 보니까 어떤 섬에서는 외국인들을 데려다가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임금도 제대로 안주고 부려 먹기도 한다는 군요. 하기야 남나물 콩나물 할게 뭐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서로 편이 갈라져 쌈박질이나 해대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왜 비 인간적이고 비 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너무나 많은 인생들이 육체에게 지배당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신과 영혼이 심각하게 병이 들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 육신의 소욕의 노예가 되어 인간이하의 삶을 영위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19-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마땅히 영혼이 마음과 몸을 다스리며 아름답고 가치있게 살아가야 하는데 정신과 영혼이 죽어 있어 육신의 지배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온갖 죄를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육체’라는 단어입니다. 이 육체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savrx(사르크스)인데 이 말은 단순히 육체를 가르키는 말이 아니라 몸과 더불어 거기에 깃들여져 있는 어떤 육체적, 정신적 욕망까지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라고 말할 때 육체의 일이란 단순히 몸으로 하는 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오염된 육체의 정욕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바로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한 것 등등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여기서 우리는 우리인생에게 발생되는 문제의 원인을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도저히 인간이 할 짓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일들이 저질러지고 있느냐하면 우리 인간이 육신의 정욕에 지배당하여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마땅히 육신과 정신이 영혼의 지배를 받아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되는데 영혼이 죽어 있어 육과 정신이 미쳐서 엉뚱한 짓들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인간으로서의 참된 가치와 의미와 기쁨과 고귀함을 누리지 못하고 무가치하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인생은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21절 하반절 보세요.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어떻게 된다고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로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영혼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다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로봇은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의 통제 안에서 움직일 때만이 올바른 기능을 하게 됩니다. 로봇을 구성하고 있는 몸체들이 제작자가 구성한 프로그램대로 움직일 때에 로봇은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가 고장나 로봇의 몸체들이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이 로봇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론 고쳐서 쓸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끝까지 말썽을 부리면 폐기처분 당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의 통제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과 몸이 영혼의 통제를 받아 움직일 때 인간은 올바르게 제 기능과 역할을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그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는 복되고 가치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고장난 로봇과 같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음행과 술수와 우상숭배와 원수 짓는 것과 분쟁과 술취함과 방탕함과 같은 수많은 죄악들이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이 시대의 이 문제의 핵심이 육체의 소욕이 영혼의 지배를 떠나 제멋대로 움직이는데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저와 여러분은 결코 육체의 소욕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삶이 되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찌하든지 하나님이 주셨던 그 순수한 영혼이 여러분을 지배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영혼이 우리의 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올바르게 이끌어 감으로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은혜의 길을 잘 달려가 주님이 주시는 그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가치를 마음껏 누리며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복을 가져다 주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육신의 지배를 벗어던지고 영혼의 지배를 따라 진리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16,1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니까 우리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죄된 본성이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를 끊임없이 죄의 길로 내 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좇아 행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에게도 죄된 육신의 소욕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음으로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이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하든지 이 죄된 육신의 소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끊임없이 자신 쳐서 복종시켜 성령의 소욕을 따르기를 힘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지요. 죄된 본성이 우리에게 있고, 그것이 우리를 자꾸만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게 하는데 그러기에 어찌 하든지 성령의 소욕을 따라야 하겠는데 그 놈의 죄된 본성 때문에 그게 잘 안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 속에서 갈등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습니까? 방법은 하나입니다. 어찌하든지 우리의 심령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성령으로 우리의 심령을 채워서 죄된 본성을 쫓아내서 그것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는 무엇이 나를 사로잡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내 안에 가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전자에 맑은 물이 들어 있으면 맑은 물이 나오고, 흙탕물이 들어 있으면 흙탕물이 나옵니다. 단물이 들어 있으면 단물이 나오고, 쓴 물이 들어 있으면 쓴물이 나옵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들어 있으면 사랑이 나오고, 미움이 들어 있으면 미움이 나옵니다. 원망과 불평이 들어 있으면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감사가 들어 있으면 감사가 나옵니다. 성령이 가득차 있으면 성령의 행실이 나오고, 세상의 영이 가득차 있으면 세상의 행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5:17,18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육체를 따라 세상의 엉뚱한 것을 따라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것에도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성령님이 충만하니까 당연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은혜의 길로 잘 달려가 생명의 은총을 온전하게 누리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지배를 벗어던지고 성령을 좇아 행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려면 어찌하든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생활을 통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리와 생명의 영이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지배 속에서 의의 길, 진리의 길을 달려갈 때에 더욱 은혜와 기쁨과 생명의 풍성한 은혜가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의 모습.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지배가운데 들어가면 이제는 새로운 삶이 전개됩니다. 전에 육체의 지배를 받던 삶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생명,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인생관, 새로운 존재, 새로운 가치, 새로운 목표, 새로운 방향, 새로운 방법을 가지고 인생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거듭난 삶인 것입니다.

고후5: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나를 억누르고 있던 옛주인 마귀사탄이 쫓겨나가고 진리와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새 주인이 되므로 육신의 소욕을 따르던 옛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내 마음에 임하시면 전혀 새로운 인생이 전개됩니다. 과거에는 사탄의 권세 아래서 내가 주인 노릇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 사탄이 주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속아 내 이성과 지성과 경험대로 살면 내가 왕노릇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보는 대로 행했습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길로 갔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습니다. 내 육신의 즐거움을 추구했습니다. 세상이 가는대로 갔습니다. 세상의 조류를 따라 흘러갔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게 인생이라고 여겼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듣지 않고 죽어라고 그 길이 맞다고 여기며 고집을 피우며 죽음의 길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어리석게도 도리어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비웃고 조롱하고 멸시하며 심지어는 핍박하며 그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이것인 바로 육신의 소욕을 따라 죄의 노예로 살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성령이 들어오시면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생명의 영이시며, 진리의 영이시며, 은혜의 영이신 성령이 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쫓겨가고 죄의 권세가 물러갑니다. 마귀사탄의 역사로 내 안에 들어와있던 죄와 어둠과 죽음과 권세가 물러갑니다.

그런 죄와 어둠과 마귀의 권세가 물러가니 영혼과 마음과 눈과 귀가 밝아집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모든 것이 바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안에 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추악한 모습들이 밝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천국과 지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영광이 나라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드디어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가게 됩니다.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충만해 집니다. 그래서 드디어 생명의 열매, 사랑의 열매, 기쁨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23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육신의 소욕을 물리치면 세상의 온갖 죄되고 잡다한 것들이 물러가고 이런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성령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열매는 생명의 열매입니다. 거듭남입니다. 성령이 들어오시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알고 믿고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면 죄사함과 새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이 핵심적인 열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은 결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새생명을 얻게 되면 그 새생명을 가진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선과 진리와 거룩함을 향하여 달려가게 됩니다. 그러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바랍니다. 더욱 깨어 기도하며 말씀묵상하며 열심히 찬양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당연하지 않습니까? 빛의 은혜를 받으려면 빛을 가까이 해야 하지 않습니까? 물을 마시려면 물가로 가야하지 않습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가야하지 않습니까? 성령께서 어디에 임재하십니까? 말씀과 기도와 찬양하는 곳에 임재하시지 않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기를 힘쓸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았습니까?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말씀을 전할 때에 그 가정에 성령이 임재하지 않았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을 정말 더욱 말씀과 기도와 찬양에 힘씀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더욱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성령충만함을 받아은 생활과 열결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성령강림주일임과 동시에 어버이 주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성령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충만 받은 것을 방언받고, 병고치는 은사받고, 예언하고 맨날 기도나 하고 찬양이나 하고 예배만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만약 거기서 끝난다면 그건 성령 충만 받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이 지배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당연히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인간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마땅히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부모님 공경이 인간에 대한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입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러므로 부모님을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제아무리 기도 잘하고 찬양 잘하고 예배 잘 드려도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 관계에 대하여 주신 첫 번째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며 어찌 그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이라 하겠습니까?

여러분, 다시한번 말씀드리거니와 성령 충만함은 결코 기도와 찬양과 말씀과 예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의 삶속에 접목시켜야 합니다.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가정생활, 사회생활, 학교생활, 직장생활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성령충만한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오늘 성령강림주일이며 동시에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이제는 더 이상 죄와 무지와 어둠 가운데 있는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우리를 언제나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위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아래로 사람들을 잘 섬기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충만히 맺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아웃을 사랑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과 함께 생명의 기쁨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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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성령을 받았느냐?

 


제목 : 성령을 받았느냐?

말씀 : 행19:1-7
1.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유명한 지도자 가운데 지금 천국에 가 계신 고 이중표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의 설교의 주제는 별세 신앙이었습니다. 별세 신앙이란 말 그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로서 더 이상 내 생각과 고집과 이성과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한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 속에 살면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이런 유명한 목사님이 된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는데 그는 한국교회를 위해서 크게 사용되는 종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유명한 목사님들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이 때 한가지 발견한 것이 유명한 목사님들은 대부분 낙동강이나 대동강이나 두만강이나 큰 강변에서 자랐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경직, 김창인, 박조준, 김선도, 곽선희 목사님은 대동강 물을 마시며 자랐고, 김재준, 강원용목사님은 두만강 물을 마시며 자랐고, 이종성, 이상근 목사님은 낙동강 물을 마시며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한국교회 유명한 목사님들은 다 큰 강물을 먹고 살아서 저렇게 훌륭한 목사님들이 되었는데 저는 이 전라도의 작은 강 만경강물을 먹고 자라서 이렇게 키도 작고 능력도 부족합니다. 그래도 저도 한국교회를 위하여 큰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종아, 걱정 말아라. 압록강이 크면 얼마나 크겠느냐? 낙동강이 길면 얼마나 길겠느냐? 너는 압록강이나 낙동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생명의 강물을 듬뿍 마시거라. 그러면 큰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은 더욱 열심히 기도하며 성령의 생수를 듬뿍 마셔서 결국 한국교회의 유명한 목사님 중의 한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물론 세상의 조건도 인생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욱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생명의 강물을 마셨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생명의 강물을 마셔도 적게 마셨느냐 많이 마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강물을 마신 자는 물론 그 영혼이 살아나고 정신이 살아나고 가치관이 살아나고 능력이 살아납니다. 적게 마신 자는 겨우 살아나고 많이 마신 자는 은혜와 능력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수 강물을 마시지 못한 자는 그 영혼이 죽어있음으로 영원하고 온전한 생명의 은총과 능력가운데 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2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여러분, 여기서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은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보고 던진 질문입니다. 누구에게 던진 질문이라고요? 제자들에게.... 그러면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 믿을 수 있는데 그러면 제자라면 예수님 믿는다는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성령을 받았어야 하는 건데 왜 새삼스럽게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했지만 진정으로 믿은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을 받아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그래서 자신이 죽고 거듭나 새로운 생명을 가진 자로서 거기에 걸맞은 생각과 가치관과 삶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그냥 종교적으로 인간적으로 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교회 생활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정말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뭐 말할 것도 없이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즉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즉 이성과 지성과 마음으로 훌륭하고 능력 있고 선하시고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는 분이라는 그런 종교적 차원의 고백이 아니라 정말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당하셨다가 부활하시어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주신 유일한 구세주가 되심을 분명하게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 자아와 고집과 이성과 가치관이 깨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전히 거듭난 존재로 주님과 동행함으로 온전한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세상의 다른 좋은 것들도 얻기를 힘쓰기 전에 먼저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되 충만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 자신의 죄와 무지를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 믿고 거듭난 생명으로 영광의 나라를 누리는 것은 물론 지금 여기서도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써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성령은 왜 받아야 합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왜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물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알고 그래서 비로소 구원의 은총을 누리는 길은 오직 성령을 받는 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죄와 무지가운데 있는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하잖아요. 죄와 무지와 어둠과 한계 속에 있는 인생이 우주만물과 인간과 영원한 세계에 대하여 어떻게 압니까? 누구에게서 배워 압니까? 어떻게 연구해서 압니까? 설령 죄와 무지가운데 있지 않더라도 인간의 지혜는 정말 작은 것으로 그것으로는 죽음 이후의 세계는 말할 것도 없이 이 세상 우주만물과 생로병사에 대하여도 알 수도 없고 어찌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나고 유식해도 하나님과 인생과 우주만물을 바르게 알려면 오직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배우기 위해서 물론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그 말씀을 듣고 깨닫고 믿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함으로 말씀을 들어도 이해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동시에 우리 심령 속에 깨달음과 믿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과 인생과 우주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대하여 알고 깨닫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2:10절을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또 요14:26절을 보십시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즉 성령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시는 분이시오, 동시에 그것을 가르쳐 주시고 깨닫고 믿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아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알고 믿고 구원받고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곧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고, 그래서 제자들은 그 말씀을 따라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에 힘쓰다가 성령 충만함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특별히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오직 성령을 받아야 우리 영혼이 살고 그래서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걸 기억한다면 인간의 그 작은 생각과 경험과 지식을 다 내려놓고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말씀과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론 지금 여기서도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감사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성령은 어떻게 받습니까?

여러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령 충만함을 받습니까?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오직 성령을 받아야 새 생명을 얻고 생명의 은혜와 능력 가운데 산다는 것을 인정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령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임재하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가정을 방문하고 싶은데 그 집에서 여러분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면 갈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그래도 억지로 갔는데 반가워하기는커녕 시큰둥하게 여기고 귀찮게 여기면 그 집에 오래 머물겠습니까?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의 오심을 정말 다른 무엇보다도 반가워하고 간절히 기다리고 사모하고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하고 하는 그 영혼 속에 찾아 가시고 거기 오래 머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07:9절에서는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죽어라고 세상의 별것 아닌 것을 사모하며 그것에 온 정열을 바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말고 정말 우리에게 완전한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강과 위로를 주시는 성령님을 간절히 사모하여 그 은혜를 충만하게 덧입기 위하여 열심히 주님 앞에 자신을 세움으로 생명의 은혜와 능력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령의 임재를 기다릴 때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게 뭐냐? 심령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애타게 기다려도 심령이 더러워져 있으면 성령께서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만약 귀한 손님을 초청해 놓고는 씻지도 않고 더러운 옷을 입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방에는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어서 냄새가 풀풀 나고 한다면 귀한 손님이 와서 그 집에 들어갈 마음이 나겠습니까?

성령님도 그렇습니다. 우리 심령이 불신과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원망과 불평과 분노와 음란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 등의 온갖 악하고 추하고 냄새나는 것들로 차 있으면 성령님이 찾아오시지도 않고 설령 찾아 오신다해도 금방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사모한다면 정말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하며 깨끗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아름답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령님이 기쁘시게 찾아오시고, 계속적으로 함께 하시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24:3,4절에서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도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평안과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동시에 우리 심령을 거룩하고 의롭고 깨끗하고 정직하고 아름답게 함으로 성령께서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 속에 기쁨으로 찾아가심으로 생명의 은혜가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성령 충만하면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 그러면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기본적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을 알게 되고 인생을 알게 되고 그래서 주님을 믿고 거듭나 새 생명을 얻음으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그러나 물론 그렇게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 그대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당연히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도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의의 길로 잘 달려가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과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상태를 비유적으로 말하면 마치 술에 취한 사람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물론 결과가 비슷하다는 것이 아니고, 아니 결과는 반대인데 원리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술 취하면 어떻게 됩니까? 용감해 집니다. 전에 있던 교회 사택에 바로 아랫집에 술주정뱅이 아저씨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은 술을 안 먹었을 때는 말도 안하고 누구한테 해로운 소리 한마디 못하는 색시 같은 양반인데 술에 취하면 돌변합니다. 부인한테 행패를 부리고, 동네방네 다니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사택 앞에 와서 혼자서 막 소리를 질러댑니다. 그러면 우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술취한 사람 상대해봐야 나만 손해니까요. 그러면 혼자 소리지르다가 제풀에 꺾여 돌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술 때문에 감각이 무뎌져 겁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술 취하면 죄를 짓는데도 용감해 집니다. 아무나 붙잡고 시비를 걸고 싸우고 음란한 짓을 합니다.

성령에 취해도 그렇습니다. 물론 술 취하면 나쁘게 용감하지만 성령에 취하면 진리 안에서 용감해 집니다. 마귀사탄 따위가 두렵지 않습니다. 가난도 멸시도 환난과 핍박도 심지어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사도들은 유대관원들이 또 다시 예수를 전하면 잡아 가두겠다고 위협해도 하나님 말씀 듣는 것과 너희 말 듣는 것과 어느 것이 옳으냐면서 용감하게 예수님을 전했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예수님을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여러분, 술에 취하면 말이 많아집니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듯이 술취하면 평소에는 못하던 이야기도 거리낌 없이 하고, 또한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면서 진절머리 나게 붙들고 이야기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도 그렇습니다. 물론 쓸데없고 추한 말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말이 많아집니다. 말씀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전도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소망을 주느라고 말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 술에 취하면 감각이 무뎌져서 힘든 일들을 조금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진짜로 근심걱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무디어져서 아픔을 잘 느끼지 못함으로 누리는 일시적이고 결과적으로 더 큰 아픔을 초래하는 왜곡된 평안입니다. 그래서 술이 깨면 더 괴롭고 후회스럽고 수치감만 느끼게 됩니다. 더구나 그런 과정에서 온갖 죄와 악 속에 빠지게 되고, 자기 몸 다 망가뜨리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돈을 악을 사용하는,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무시당하고 멸시받는 미련하고 악한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취하면 진짜로 세상 근심 걱정 염려 원망 불평이 없어지게 됩니다. 생명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의 영이신 성령께서 평강과 위로와 기쁨을 주시기 때문에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게 됨으로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기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5:22,23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래서 또 엡5:18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헛된 것에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에 취해야 합니다. 여러분, 요즘에 보면 심지어 교회 안에서 조차도 술 먹는 것을 정당화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순전히 마귀 사탄의 역사에 놀아나는 일입니다. 여러분, 좀전에 말씀드린 엡5:18절에서 술취한 것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방탕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잠23:31,32절을 보십시오.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또 같은 잠23:20절을 보십시오.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술을 즐겨하는 자들과 사귀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나실인 즉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사람은 독주는 물론 포도주나 심지어 포도나무 소산도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뭐 그밖에 술이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윤리적으로 가정적으로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다주는지는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도 먹고 서양교회에서도 먹는데 하면서 괜찮은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남들이 도둑질하면 같이 도둑질 할 건가요? 여러분, 우리는 세상이 다 그래도 심지어 교회가 다 그래도 오직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말씀만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오직 거기에만이 진정한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평강과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특별히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즐거움이나 그 어떤 다른 것을 사모함보다도 성령의 임재하심을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더욱 자신을 말씀 앞에 세우고 깨어 기도하며 말씀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심령을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우리 교회 위에 성령이 충만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거룩하고 의로운 삶으로 주님의 향기를 발하며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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