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돌려야 합니다.

 

 

 

사도행전3:11-19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자 사람들이 자기를 주목하고 자기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왜 나를 주목하고 바라보느냐?

나를 바라보지 말고, 나를 주목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주목하라고 외치는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앞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미문에 한 앉은뱅이가 구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걸인은 당연히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도 구걸합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를 보라고 외치면서 자기를 바라보는 그를 향하여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러면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앉은뱅이가 힘을 얻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성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고 바라보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나를 바라보지 말고 나를 주목하지 말고 너희 시선을 주님께 돌려야한다.’고 외쳤던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베드로는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외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이 앉은뱅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알지 못하였기에 그저 드러난 현상만 보고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적의 본질은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나타난 현상은 베드로가 고친 것 같았지만 본질은 예수님이 고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를 주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절대 사람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하고 그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자신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이나 우리의 주변에서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경건과 권능으로 병을 고치고 치유하고 기적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는 것뿐이고 고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힘입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다 살라버린 것도 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던 비를 오게 한 것도 엘리야가 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만이 치유자가 되시고 하나님만이 보호자가 되시고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고 반석이 되시고 산성이 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여 아들을 얻은 한나는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고 하나님을 찬양하므로 자신이 아들을 얻은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고 노래하므로 우리가 의지하고 믿고 바라보아야 할 분이 하나님이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귀하게 쓰임 받는 종들도 하나님의 역사 앞에 진실해야 하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회로 자신을 선전하고 자신을 주목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서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자신의 삶을 끝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천부교라는 기독교 이단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전도관으로 잘 알려진 집단인데 이 천부교의 창시자인 박태선이는 장로교회 장로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분에게 놀라운 은혜와 은총을 허락해주셔서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시게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고 집회 때마다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언제나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어날 때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리가 한 번 기적을 체험하면 끊임없이 기적을 요구하고 더 큰 기적을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솔직하게 인정을 하고 자신의 경건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이심을 증거 해서 주님을 바라보게 하고 주님께로 이끌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자기를 선전하는 기회로 삼고 일어나지 않는 기적을 일어나는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서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결국 거짓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다 떠나버리고 지금은 천부교라는 이름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으로 속이는 것은 절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지금 신천지에서 거짓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을 성경공부로 끌어들일 때도 온갖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여서 데려갑니다.

그런 거짓말은 해도 괜찮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리는 절대 거짓위에 세워질 수 없습니다.

거짓위에 세워진 것은 오래갈 수 없고 다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거짓은 무엇이고 진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지 않고 자기를 주목하게 하고 자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다 거짓입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하는 것처럼 속이고 자신을 드러내고 선전하는 것이 다 거짓입니다.

자신은 연약한 존재요 이 모든 일의 근원은 자기가 아니라 주님이심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참이요 진리입니다.

 

한국 교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유 사역자 중 한 분이 김 익두 목사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2만여 명의 난치병 환자들을 안수 기도하여 고쳤으며,

280여 개의 교회를 세웠고, 200여 명의 신학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그러다가 6.25사변 때 공산당에 맞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에게 치유의 역사가 나타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전도사 시절, 길을 가다가 앉은뱅이 거지를 보았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3장의 베드로가 미문 앞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믿기만 하면 성경대로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 해 보자’ 결심하고 한적한 과수원 돌담 밑으로 거지를 업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하면서 그 앉은뱅이의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앉은뱅이 거지는 아파서 죽겠다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는 크게 좌절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는 하나님께 ‘성경대로 했는데도 왜 안 되느냐’고 몸부림치며 기도하다가 나중에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관심이 온통 기적에만 있었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오직 예수님의 마음만 품기로 했습니다.

다시 그 거지를 만났을 때 지난 날 잘못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를 향한 주님의 마음에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거지가 일어났고 이후 그 목사님을 통하여 수많은 치유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려고 하지 말라!

오직 예수님만 주목하고 예수님의 마음만 품으라!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만을 드러내라!”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는 ‘나를 주목하지 마십시오, 나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내가 아니라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 강하게 외쳤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붙잡아야 될 참된 진리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또 주님께로 사람을 인도해야 합니까?

그 분을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예수라는 이름은 가장 저주스러운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명으로 가장 치욕적인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그 이름보다 더 저주스러운 이름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베드로는 그 이름을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기에 그 이름이 가장 영화롭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비록 우리의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이름은 가장 저주스러운 이름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능력이 있고 예수님의 이름이 기적을 베풀 수 있는 것은 그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그 이름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 이름을 주목하고 믿어야 합니까?

그 분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할 구원의 주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시고 주로 세우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대신에 주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가장 영화롭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 이름을 믿는 자를 놀라운 기적으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 베드로는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이 사람을 성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 사람을 성하게 할 때 그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이름이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고 예수님의 이름에 힘이 있고 예수님의 이름에 치유의 역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의 이름에 구원이 있습니다.

19절에서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인 너희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왜 중요합니까?

그 이름을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고치신 사건을 왜 주님이 일으키셨을까요?

물론 앉은뱅이가 불쌍하고 그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일으키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보이는 현상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고 그 이름을 힘입어 구원을 받게 하려는 목적에서 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어지는 4장의 설교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오 천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식들이 잘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러기에 시작은 치유로 했다고 해도 결과는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잘 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었다고 해도 결과는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치유만 받고 돈을 벌고 거기서 끝나고 구원을 받지 못하면 그것은 너무 안타깝고 부족한 모습입니다.

구원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보이는 현상에서 끝나서는 안 되고 현상 뒤에 있는 본질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치유로 알게 된 예수님의 이름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이름을 주목해야 합니다.

기적으로 알게 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앞부분에서 고인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왜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들을 바라보았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만 여러분, 오늘 우리도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주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사람을 바라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적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은 바라보면서 그 사람을 사용하고 능력을 주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나타난 현상은 바라보면서 그 현상을 일으키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런 우리들을 향하여 베드로 사도는 다시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나를 주목하지 마십시오.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한 것입니다.’

‘기적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기적 뒤에 있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십시오.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은 더 크신 놀라운 일들을 우리 가운데 행하실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사람들은 몰려들어 계속하여 떡을 만들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역사도 일으키지 않으시고 계속 ‘나를 먹으라. 내 살이 영생의 양식’이라는 그들이 듣기에 이상한 말씀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다 떠나가자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오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기적만 바라보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갈 때 기적을 보지 않고 영생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붙잡은 제자들은 나중에 다 기적의 사도들이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주의 역사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되지만, 기적만 바라보고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나중에 실족하게 됩니다.

떡을 구하다가 영생을 놓치고 건강을 찾다가 영생의 주님을 놓치게 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강영우 박사는 실명이 되고 눈뜨기를 위해 몸부림치면서 기도했지만 그는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후에 그는 ‘내가 눈을 떴으면 소년 가장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미국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한인 중 한 사람이 되었고 지금 현재 미국을 움직이는 500인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비록 눈은 뜨지 못하였지만 대신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기적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능력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유명한 치유자를 바라보지 말고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질병도 바라보지 말고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블로그 이미지

chojien

,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돌려야 합니다.

 

 

 

사도행전3:11-19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자 사람들이 자기를 주목하고 자기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왜 나를 주목하고 바라보느냐?

나를 바라보지 말고, 나를 주목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주목하라고 외치는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앞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미문에 한 앉은뱅이가 구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걸인은 당연히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도 구걸합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를 보라고 외치면서 자기를 바라보는 그를 향하여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러면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앉은뱅이가 힘을 얻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성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고 바라보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나를 바라보지 말고 나를 주목하지 말고 너희 시선을 주님께 돌려야한다.’고 외쳤던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베드로는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외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이 앉은뱅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알지 못하였기에 그저 드러난 현상만 보고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적의 본질은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나타난 현상은 베드로가 고친 것 같았지만 본질은 예수님이 고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를 주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절대 사람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하고 그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자신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이나 우리의 주변에서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경건과 권능으로 병을 고치고 치유하고 기적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는 것뿐이고 고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힘입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다 살라버린 것도 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던 비를 오게 한 것도 엘리야가 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만이 치유자가 되시고 하나님만이 보호자가 되시고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고 반석이 되시고 산성이 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여 아들을 얻은 한나는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고 하나님을 찬양하므로 자신이 아들을 얻은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고 노래하므로 우리가 의지하고 믿고 바라보아야 할 분이 하나님이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귀하게 쓰임 받는 종들도 하나님의 역사 앞에 진실해야 하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회로 자신을 선전하고 자신을 주목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서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자신의 삶을 끝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천부교라는 기독교 이단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전도관으로 잘 알려진 집단인데 이 천부교의 창시자인 박태선이는 장로교회 장로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분에게 놀라운 은혜와 은총을 허락해주셔서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시게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고 집회 때마다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언제나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어날 때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리가 한 번 기적을 체험하면 끊임없이 기적을 요구하고 더 큰 기적을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솔직하게 인정을 하고 자신의 경건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이심을 증거 해서 주님을 바라보게 하고 주님께로 이끌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자기를 선전하는 기회로 삼고 일어나지 않는 기적을 일어나는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서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결국 거짓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다 떠나버리고 지금은 천부교라는 이름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으로 속이는 것은 절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지금 신천지에서 거짓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을 성경공부로 끌어들일 때도 온갖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여서 데려갑니다.

그런 거짓말은 해도 괜찮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리는 절대 거짓위에 세워질 수 없습니다.

거짓위에 세워진 것은 오래갈 수 없고 다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거짓은 무엇이고 진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지 않고 자기를 주목하게 하고 자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다 거짓입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하는 것처럼 속이고 자신을 드러내고 선전하는 것이 다 거짓입니다.

자신은 연약한 존재요 이 모든 일의 근원은 자기가 아니라 주님이심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참이요 진리입니다.

 

한국 교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유 사역자 중 한 분이 김 익두 목사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2만여 명의 난치병 환자들을 안수 기도하여 고쳤으며,

280여 개의 교회를 세웠고, 200여 명의 신학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그러다가 6.25사변 때 공산당에 맞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에게 치유의 역사가 나타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전도사 시절, 길을 가다가 앉은뱅이 거지를 보았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3장의 베드로가 미문 앞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믿기만 하면 성경대로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 해 보자’ 결심하고 한적한 과수원 돌담 밑으로 거지를 업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하면서 그 앉은뱅이의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앉은뱅이 거지는 아파서 죽겠다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는 크게 좌절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는 하나님께 ‘성경대로 했는데도 왜 안 되느냐’고 몸부림치며 기도하다가 나중에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관심이 온통 기적에만 있었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오직 예수님의 마음만 품기로 했습니다.

다시 그 거지를 만났을 때 지난 날 잘못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를 향한 주님의 마음에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거지가 일어났고 이후 그 목사님을 통하여 수많은 치유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려고 하지 말라!

오직 예수님만 주목하고 예수님의 마음만 품으라!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만을 드러내라!”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는 ‘나를 주목하지 마십시오, 나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내가 아니라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 강하게 외쳤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붙잡아야 될 참된 진리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또 주님께로 사람을 인도해야 합니까?

그 분을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예수라는 이름은 가장 저주스러운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명으로 가장 치욕적인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그 이름보다 더 저주스러운 이름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베드로는 그 이름을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기에 그 이름이 가장 영화롭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비록 우리의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이름은 가장 저주스러운 이름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능력이 있고 예수님의 이름이 기적을 베풀 수 있는 것은 그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그 이름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 이름을 주목하고 믿어야 합니까?

그 분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할 구원의 주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시고 주로 세우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대신에 주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가장 영화롭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 이름을 믿는 자를 놀라운 기적으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 베드로는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이 사람을 성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 사람을 성하게 할 때 그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이름이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고 예수님의 이름에 힘이 있고 예수님의 이름에 치유의 역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의 이름에 구원이 있습니다.

19절에서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인 너희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왜 중요합니까?

그 이름을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고치신 사건을 왜 주님이 일으키셨을까요?

물론 앉은뱅이가 불쌍하고 그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일으키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보이는 현상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고 그 이름을 힘입어 구원을 받게 하려는 목적에서 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어지는 4장의 설교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오 천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식들이 잘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러기에 시작은 치유로 했다고 해도 결과는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잘 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었다고 해도 결과는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치유만 받고 돈을 벌고 거기서 끝나고 구원을 받지 못하면 그것은 너무 안타깝고 부족한 모습입니다.

구원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보이는 현상에서 끝나서는 안 되고 현상 뒤에 있는 본질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치유로 알게 된 예수님의 이름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이름을 주목해야 합니다.

기적으로 알게 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앞부분에서 고인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왜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들을 바라보았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만 여러분, 오늘 우리도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주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사람을 바라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적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은 바라보면서 그 사람을 사용하고 능력을 주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나타난 현상은 바라보면서 그 현상을 일으키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런 우리들을 향하여 베드로 사도는 다시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나를 주목하지 마십시오.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한 것입니다.’

‘기적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기적 뒤에 있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십시오.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은 더 크신 놀라운 일들을 우리 가운데 행하실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사람들은 몰려들어 계속하여 떡을 만들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역사도 일으키지 않으시고 계속 ‘나를 먹으라. 내 살이 영생의 양식’이라는 그들이 듣기에 이상한 말씀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다 떠나가자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오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기적만 바라보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갈 때 기적을 보지 않고 영생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붙잡은 제자들은 나중에 다 기적의 사도들이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주의 역사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되지만, 기적만 바라보고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나중에 실족하게 됩니다.

떡을 구하다가 영생을 놓치고 건강을 찾다가 영생의 주님을 놓치게 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강영우 박사는 실명이 되고 눈뜨기를 위해 몸부림치면서 기도했지만 그는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후에 그는 ‘내가 눈을 떴으면 소년 가장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미국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한인 중 한 사람이 되었고 지금 현재 미국을 움직이는 500인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비록 눈은 뜨지 못하였지만 대신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기적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능력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유명한 치유자를 바라보지 말고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질병도 바라보지 말고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블로그 이미지

choji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