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여러 가지 시험

 

 

 

야고보서 1장 2절


  
양을 키우는 목자는 염소를 함께 집어넣습니다. 양은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두면 병에 자주 걸립니다. 이런 양들 가운데 염소가 있으면 양들 사이를 헤집고 다닙니다. 이때 양들은 뿔 달린 염소를 피해 도망 다니며 저절로 운동을 해 건강해집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을 강한 믿음으로 키우기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우리에게 시시각각 찾아오는 여러 시험이 바로 우리 삶 가운데 염소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 시험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쓰다 보면 어느새 우리 믿음이 자라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욥은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 그 고난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믿음을 연단하는 은혜의 손길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10)

사도 야고보도 같은 권면을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야고보서 1:2)

하나님의 모든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훈련을 위한 시험입니다. 첫째, 이런 시험이 오면 기쁘게 참고 감당해야 합니다. 믿음의 유익을 위한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고난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도움 받을 사람도 만나게 하십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상 주실 것을 기대하며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른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야고보서 1:12)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다른 종류의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의 유혹(야고보 1:13)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속지 말고 즉시 물리쳐야 합니다. 이런 유혹이 찾아올 때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악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야고보서 4:7)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를 타락시키기 위해 사탄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사탄은 그 사람에게 커다란 금덩이를 보여줬습니다. 그가 눈도 깜빡하지 않자 다음에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냈습니다. 역시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방법으로 그의 질투심을 자극했습니다. “당신의 경쟁자가 방금 자네보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네.” 그는 이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리고 화를 내면서 자기 믿음의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성장시켜 결국에는 큰 상을 주시기 위해 인생길에서 여러 가지 염소를 만나게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굳센 믿음으로 나아가는 은혜로운 기회로 삼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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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 설교 ] 승리하는 삶  (0) 20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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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복음 7장 7~11절

2002년 목포 인근 야산에 항공기가 추락했을 때도,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가 났을 때도 생존자가 휴대전화로 119구조를 요청했기 때문에 그나마 신속한 구조작업이 가능했습니다. 휴대전화라는 손바닥만한 통신수단이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을 구하는 데 휴대전화보다 더 좋은 수단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와 관련된 오늘 본문을 통해 새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 봅시다.

첫째, 하나님은 성도에게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구하라’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이테오’라고 하는데 이는 ‘요청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요구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의 형편과 필요를 다 아시는 분인데, 아시면서도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도하지 않고 일이 잘되면 자기 잘 나서 된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받으라는 것입니다. 또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해 주시는구나!’ 하는 것을 성도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더욱 큰 믿음과 기쁨을 풍성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찾으라’는 말은 헬라어로 ‘제테이테’라고 하는데 명령형으로 돼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엔 도저히 해결할 길이 없는 어려운 문제처럼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구하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한국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비디오 가운데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 여인네들이 다듬이질하는 소리, 철새가 떼지어 날아가는 소리, 빗자루로 마당 쓰는 소리, 장닭이 우는 소리 등이 소개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리보다 더 아름답고 힘 있는 소리가 있습니다. 바로 예배당의 기도 소리입니다. 나라가, 개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교회당에선 성도들의 기도 소리가 울려퍼져야 합니다.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위기를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만드는 열쇠는 바로 기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 늘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타인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선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즉 문을 두드리는 것은 반응을 얻어 내고 닫힌 문을 열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가 하나님의 반응을 얻어내고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할 때 생기는 든든함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열심히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간구하는 최상의 것을 주실 것입니다. 응답이 더딘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더 좋으신 것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응답이 없습니까?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이미 좋은 것을 주셨는데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류사를 운행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시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새해에는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승리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신건일 목사(서울 북아현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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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Today's preaching)  / 범사에 감사하라.

 

 

 

민수기 11장 4∼15절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군대에 쫓기다 홍해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당신이 우리를 끌어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 이같이 하느냐” “애굽에서 당신에게 우리를 내버려두라 했고,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했느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게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고 길을 터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선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온 회중이 굶주려 죽게 됐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먹고도 남을 충분한 만나를 새벽마다 주셨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만나가 끊길 수 있다며 또 불안해했습니다. 르비딤에서는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 우리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이 샘솟아 나오는 기적을 통해 그들의 갈증을 해결했습니다.

1년 후 바란 광야에선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땐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었다. 이제는 우리 기력이 다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이미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그 장엄한 광경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격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음에도 그들은 이런 불평을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저녁마다 메추라기 떼를 공급하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 처음 그들은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이 많은 식량을 공급하심에 경외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매일 같은 음식에 싫증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슬과 함께 내린 만나, 저녁마다 진에 덮인 메추라기, 그 기적의 산물을 보면서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간사한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 아닐까요. 감사하는 일에도 조건부 감사와 범사에 감사하는 게 있습니다. 조건부 감사가 하나님의 응답과 풍성하게 채워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라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면서 감사와 영광을 돌렸겠지요. 일종의 조건부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기대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할 일이 있을 때 잊지 말고 감사하라’고 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명령에 순종하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알고서 믿는 게 아니라 믿으면 믿을수록 더 알아가게 됩니다. 감사할 일이 있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허현 목사(양주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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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
                     찬송 304장(통404장)    말씀 : 고후 5;13-16

오늘의 말씀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나의 발견(제목) :
본문 요약 -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기를 강권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신이 온전하든 미치든 오직 하나님과 성도들을 위해 산다고 말한다.

분문 살펴보기 - 세상에는 여러 모양의 사랑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남녀의 사랑, 우정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랑에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사랑의 양도 제한적이며, 아무리 계속 사랑하고 싶다 할지라도 죽음은 사랑의 연속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본문을 통해 사랑의 양과 길이를 무한히 초월하는 최고의 사랑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며, 자기희생의 거룩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얻는 방법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

  1. 절대적인 그리스도의 사랑
  1) 자신을 버리시는 사랑 -  하나님은 죄로 인해 죽음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다름 아닌 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참조, 요 3:16).
  2)고통받는 사랑 -   그리스도의 사랑은 함께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모두 대신 져 주시는 최상의 사랑입니다.
  3) 죽으시는 사랑 - 그리스도의 사랑은 버리시고 고통 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죄로 인해 반드시 죽어야만 했습니다. 이에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과 죄의 심판을 동시에 만족케 할 방법을 마련하셨습니다.

  2. 성도가 살아야 하는 삶
  바울 사도는 죄인을 위해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살리심을 입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15 절).
  1)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맨 먼저 우리들에게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15 절)이라고 말씀합니다.
  2) 육체를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 육체에 매여 죄의 종노릇하던(참조, 롬 6:6) 삶에서 벗어나 자신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참조, 롬 6:13).
나의 이해 (본문요약):

 


은혜의 나눔 -자유중국의 대만에 있는 아리산 밑에 '우풍야오'가 있는데 그 안에 들어서면 '이렇게 쓴 '장개석' 총통의 현판이 있다. 이는 '어진 사람은 용감하다'는 내용으로 중국 본토의 통사로 와서 대만을 다스리던 '우풍'을 찬양한 글인데 전해지는 일화는 다음과 같다. 그는 대만 원주민들이 해마다 사람을 잡아서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폐습을 없애기 위해 '이번 제사에는 시장에서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을 잡아다 제물로 바치라'고 명한 뒤 자신이 붉은 옷을 입고 시장으로 가서 스스로 제물이 되었다. 참된 용기는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것이다.
적용 -  바울은 온전히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그의 전 생애를 바쳤다. 심지어 자천하는 것조차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다. 본문은 오늘날 인기에 영합하여 자신을 자랑하기에 급급한 성도들, 특히 자신의 이력을 열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서 정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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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설교 ] 아름다운 세상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시되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다섯 가지 복을 주셨습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하지만 복 받은 존재임에도 사람들은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범죄를 저지름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는 범죄를 저지른 후 남자는 이마에 땀을 흘리는 노동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게 됐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겪게 됐으며, 자연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도록 변했습니다. 이것은 범죄 결과가 관계의 단절과 불화를 야기했음을 의미합니다. 또 인간은 범죄 전에 올바른 분별력과 판단력을 갖고 있었지만 범죄 후에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선지자를 세워주셨지만 사람들은 이를 거부했고, 후에는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써 관계 회복을 원하였으나 사람들은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관계 회복을 위해 끝내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셨으며, 우리가 올바른 분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14세기 문예부흥 이후부터 이성의 우위를 내세웠고, 지혜와 지식은 세속화되었으며 비(非)성서적으로 기울어졌습니다. 결국 물질 만능주의, 과학 제일주의 등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또다시 총체적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힘을 통해 이 땅에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를 진심으로 영접하고 그분을 전적으로 믿는 일입니다. 동시에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특히 성령님의 도움으로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는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정복하라는 말씀을 단순히 ‘발로 밟다’ ‘복종케 하다’라는 의미로 이해하기보다는 인간의 창조 목적이 하나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을 다스려가는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청지기로서 하나님께나 다른 사람들과 자연에게 유용한 정책을 펼쳐가야 할 것입니다. 다스림이란 단어를 주권을 잡거나 지배한다는 의미로 이해하지 말고 잘 가꾸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권위를 가지고 권리를 행사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책임지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되 우리 인간의 위치는 특별난 권위를 가지고 모든 것을 지배하고 복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가꾸고 보살피는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청지기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상진 목사(황지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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