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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설교] 예수그리스도의 종

 

 

 

제목:그리스도 예수의 흔적

본문-갈6:14-18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도 하고, 성도라고도 하며 혹은 제자라고도 합니다.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운 것은 행 11:26절에 나오는 바와같이 안디옥에서 였습니다. 본래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은 좋은 의미로 쓰였던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믿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말로써 지금의 예수쟁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단어였습니다. 왜냐하면 초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그야말로 별로 신통치 않은 사람들이었고 숫자적으로도 매우 적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도라고 부를 때 이는 말그대로 거룩한 무리들이라는 뜻으로 거룩이란 구별된다는 의미를 지니므로 결국 이 말은 거룩하게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제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제자라는 말은 단순한 학생이라는 말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학생은 단지 선생으로부터 지식과 기능, 기술등을 배우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스승에게서 지식과 지혜는 물론 전인격을 배우며 스승의 뜻을 따릅니다. 학생은 졸업이 있지만 제자는 졸업이 없습니다. 제자는 평생 스승에게서 인격, 성품, 지식, 사상, 정신과 신앙을 따르고 본받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단어의 의미속에서 우리가 성도로써 그리스도인으로써 제자로써 어떠한 삶의 모습을 가져야 할지를 알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로서는 주님의 가르침과 사상과 인격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으며, 그러면 우리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푸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에는 예수님의 제자로써 우리에게 가장 좋은 모범을 보여 주셨던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영적으로든 모든 면에서 분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 17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흔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티그마로써 이것은 어떤 주인의 소유물로서 찍는 낙인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흔적이란 너는 내것이라는, 반대로 말하면 나는 당신의 종이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실은 지극히 불명예스런 말입니다. 그것은 노예의 표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사도바울은 자랑스럽게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과 삶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의 몇가지 제자의 삶의 모습을 배울수가 있습니다.

1.예수그리스도의 제자는 주님의 종이라는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을 갖기 위해서는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스티그마 즉 흔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인의 소유물이라는 표시입니다. 그것은 나의 주인은 예수그리스도외에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은 곧 나는 오직 예수님의 지시만을 받아 살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오로지 주님만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기독교는 많은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을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 증거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입술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였다가도 자신에게 위험이 오고 환난이 오면 예수를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곧 그 몸에 예수그리스도의 분명한 흔적을 가지고 있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의해 나타난 결과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우리에게는 분명한 소속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곧 나는 사나 죽으나 예수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분명한 소속감이 있을때에만이 이 변화무쌍한 세계속에서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천지가 개벽한다고 해도 오직 주님만을 따를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명한 종의식이 없다면 상황이 변하고, 환경이 바뀌면 세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분만이 여러분의 주인으로서 유일한 구세주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 세상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흔적은 충성으로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분명한 종의식이 있으면 그것은 충성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충성에 있어서도 우리는 사도바울을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는 그 몸에 온통 충성스런 흔적 뿐이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는 말은 예수님의 종이라는 낙인이 찍힌채 충성스럽게 걸어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행 14:19절에서 보는바와 같이 갈라디아 지방의 한 성에서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버려짐을 당하기도 하였고, 빌립보 감옥에서 착고에 채워졌던 흔적, 고후 11장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유대인들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태장으로 세번 맞았고, 돌로 맞고, 한번 파선하여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서 강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형제의 위험을 당했고, 잠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던 이루 헤아릴 수 없을만큼 숱한 흔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육체의 흔적은 말할것도 없고 그는 그가 세운 교회들을 위하여 날마다 해산하는 수고를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원하기만 했다면 그러한 고통들을 피해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 그자신이 남들에 비교해서 다른 할 일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문벌과 학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그가 가지고 있던 세상의 모든 자랑거리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주님을 위한 삶을 위해 스스로 이러한 흔적들을 남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17절에서는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예수님의 종이 되고, 예수님의 낙인이 찍혀 충성스럽게 온갖 고난을 감수하며 살아왔던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14절에서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갈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 300여명의 감독들이 모였는데 그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혹은 한쪽눈이 없고 혹은 양쪽 손이 없고 혹은 다리가 불구인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써 당시 많은 핍박속에서도 오직 예수그리스도 영광에 동참하려하여,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정녕 주님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비록 고난이긴 하였지만 영광스러운 흔적이었습니다. 생명의 역사를 위한 흔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자랑스러운 흔적이었습니다. 큰 상급이 되어지는 흔적이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라고 하는 확실한 흔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고 그런 흔적을 가지길 바랍니다. 주님의 흔적을 가지고 살기를 바랍니다. 물론 몸에 흔적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난의 길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제자됨의 표시오, 그것이야 말로 가장 영광된 흔적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을 역사를 위한 흔적입니다.

인류 최대의 영광스런 흔적을 가지고 계신 분은 물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존귀하신 몸에 무지한 인류는 엄청난 상처를 냈습니다. 이마는 가시에 찔리신 흔적이요, 손과 발에는 못에 박힌 흔적이요, 옆구리에는 창에 찔리신 흔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아픔이었습니다.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의 흔적이었습니다. 영광의 흔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그 십자가는 인류를 구원했습니다.

캐나다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메리의 엄마는 얼굴에 화상을 입어 보기가 매우 흉했습니다. 메리는 국민학생인데 그런 엄마가 몹시 창피했습니다. 친구들은 놀려댔습니다. 그래서 엄마를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메리가 또 울면서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철부지 어린아이들이 또 메리를 놀린 것이었습니다. 메리는 엄마가 싫다고 했습니다. 메리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메리야 이 엄마도 누구 못지않게 아름다운 때가 있었단다. 자 보렴.”하고는 그녀의 사진첩을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는 그녀의 꿈많던 대학시절, 눈부시게 아름다운 결혼때의 모습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했습니다. “네가 두살때 였지. 엄마는 너를 재워 놓고 시장엘 갔었지. 그런데 시장으로가는 도중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와 돌아다 보니 우리집 쪽에서 불길이 솟고 있었단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집을 향하여 정신없이 달려갔어. 우리집에 불이 붙어 있었단다. 나는 앞이 캄캄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직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너의 모습만이 눈에 선했다. 정신없이 달려가 막무가내로 불타는 집속으로 뛰어 들어 갔어. 그리고 너를 보자기에 싸서 끌어앉고 뛰었다. 어디론가 그저 뛰었다.

어떻게 밖으로 나왔을때 나는 쓰러져 정신을 잃었지. 몇시간이 지난뒤 내가 깨어났을때는 내몸은 온통 붕대로 감겨 있었다. 나는 너를 불렀다. 그 때 누군가가 말했다. 아기는 무사하다고.... 나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단다. 그후 나의 모습은 이렇게 흉칙한 모습이 되었단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나의 이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그리고 감사한단다.” 메리는 엄마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엄마의 얼굴은 천사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메리 엄마의 흔적은 참으로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값진 흔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은 그보다 더 비교할수 없이 더 값진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이든 모두 흔적을 가지고 그리고 흔적을 남기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향략의 흔적, 거짓의 흔적, 미움의 흔적, 낭비의 흔적, 도적질의 흔적, 술과 마약의 흔적, 시기와 질투의 흔적, 게으름의 흔적 등등을 가지고 혹은 남기며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과연 무슨 흔적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라십니까? 무슨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사도바울은 오늘 14절에서 우리에게 가장 값진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이여,

우리 정말 아름다운 흔적들을 남겨 봅시다. 아름답고 값진 흔적을 우리몸에 지녀 봅시다. 우리모두 정말이지 아름다운 그리고 영광스런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가장 값진 것으로 만들어갑시다. 가장 영광스러운 흔적을 남기는 복된 삶을 살다가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품에 안기는 가장 멋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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