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야 할 길   예 화   

 

 

 

요즘 부쩍 제게 길을 묻는 이들이 많습니다. ‘인생길은 어떻게 가야 하는가.’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제게 이것저것 묻는 것이지요.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합니다. 큰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대체 우리는 어떻게 인생길을 가야 할까.

 

인생은 독행도(獨行道)입니다. 홀로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이 독립심입니다. 인생은 동행도(同行道)입니다. 함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불어 사는 협동심을 익혀야 합니다. 인생은 고행도(苦行道)입니다. 고생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이길 강건함을 길러야 합니다. 인생은 소명도(召命道)입니다. 부르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만의 소명을 깨닫고 그것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인생은 신행도(神行道)입니다. 내 힘만으론 도저히 독행도 동행도 고행도 소명도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할 때에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혹 지금 당신이 인생의 길을 잃었거나 그 걸음이 더뎌 답답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신행도, 곧 하나님과 함께 그 길을 걷는다면 그곳이 어디든 길은 열릴 것입니다.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시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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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미국의 한 대형교회 앞의 노숙자

 

 


미국의 대형 교회 근처에서 한 노숙자가
초라한 행색으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인 중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온 사람은 세 명에 불과했고
초췌하고 남루한 차림의
노숙자는 교회로 향하는 교인들에게
‘음식을 사려고 하니 잔돈 좀 달라’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노숙자는
성전 맨 앞자리에 앉으려 하였으나
예배 위원들에게
끌려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는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자석에 겨우 눈치를 보며 앉았고
광고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새로 우리 교회에 부임하신
스티펙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앞으로 나와 주시죠”
교인들은 모두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새로 부임한 목사를 찾아 일제히
고개를 뒤로 돌리는 순간
 모든 성도들은 경악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노숙자가 강단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가 바로 이 교회에 새로 부임한
스티펙 목사(노숙자)였습니다
그는 노숙인 차림 그대로
강단에 올라갔고...
 
곧장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40절까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과 염소’ 비유로
누가 양과 염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티펙 목사가 말씀을 마치자
회중은 무언가에 심하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인들 중엔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구는
교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이날 오전 조용한 목소리로
“오늘 아침 교인들이 모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교인들은 많으나
제자는 부족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라는 말을 남겼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믿는 것 이상으로
그것은 이웃과 함께
그리고 옆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교인수 1만 명의 미국 대형교회에서
예례미야 스티펙이라는 목사가
노숙인이 된 이야기가 페이스북 등
 인터넷 사이트를 강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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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맛

 

필자가 있는 이곳 러시아에서 긴 겨울 추위를 이기는 데는 홍차가 매우 큰 역할을 한다.
홍차를 마시면 따뜻한 기운이 올라와 몸을 녹여 주고 추위를 몰아내기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은 홍차를 즐겨 마신다.
하지만 필자는 오랫동안 커피 맛에 익숙해져 있어 아직도 홍차보다는
커피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한번은 식사 후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부엌에 가서 커피를 탔다.
커피와 설탕, 우유를 넣고 저어서 마셨는데 맛이 너무 이상했다.
설탕과 소금 둘 다 하얀색이어서 소금을 설탕으로
착각한 것이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소금을 넣은 커피는 마실 수가 없었다.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그 맛이 전혀 달라지듯이 우리 마음의 세계도 그러하다.
마음에 소망을 담을 수도 있고 절망을 담을 수도 있는데
그 마음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삶이 전혀 달라진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마음에 소망을 담은 사람은
행복과 기쁨을 얻고, 반대로 절망을 담은 사람은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
설탕은 단 맛을 내고 소금은 짠 맛을 내듯이 소망은 소망의 맛을 낸다.
마음에 소망을 담은 사람은 그 소망의 맛이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한 삶을 만들어 주게 된다.
김봉철 선교사/ 러시아 쌍트페테르부르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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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이 된 목사
 

 

 

'예레미야 스티펙'이란 목사는 예배가 있는

일요일 오전, 자신이 담임 목사로 부임하게

되는 한 교회 근처에 노숙자로 변신해

주변을 어슬렁거렸습니다.

교인 중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온

사람은 단 세 명에 불과했습니다.

​스티펙 목사는 좀 더 적극적으로 교회로

향하는 교인들에게 '배가 고파 음식을

사려하니 잔돈 좀 달라'고 구걸하기

시작했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교회에 들어간

스티펙 목사. 그는 맨 앞자리에 앉았지만,

​예배 위원들의 저지와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자리에 겨우 참석하게 됐습니다.

​이윽고 새로운 목사가 부임했다는 광고

시간. 맨 뒷자리의 스티펙 목사는 노숙인

차림 그대로 강단에 올랐고 교인들은

경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장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40절 까지 읽어 내려갔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과 염소'

비유로 누가 양인지 염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스티펙 목사가 말씀을 마치자 회중은

심하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교인들 중엔 흐느껴 우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스타펙 목사는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며"오늘 아침 교인들이 모이는 것을

봤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다. 세상에는 교인들이 많다.

​하지만 예수제자는 부족하다.

​여러분들은 언제 예수의 제자가 될

것입니까?" 라는 말을 남기고 예배를

마쳤다고 합니다.

 

가장 어려운 선행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실천하는

것 같습니다.

보이는 곳에서 한다 해서
선행의 의미가 퇴색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하여 외면하는

것에 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행을 실천하는

분들이 늘어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밝아지지 않을까요?


올해는 그런 분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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