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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사순절의 묵상과 기도

 


  
사 53:3~6, 골 1:24

기독교의 전통적 절기 가운데 하나인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주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사순절(四旬節, Lent)은 주후 325년 니케아종교회의 때 제정되었는데, 대체로 부활절 이전의 주일(6일)을 제외한 40일을 가리키며, 금년에는 2월22일 ‘재(Ash)의 수요일’부터 4월8일 부활절 직전까지입니다. ‘재의 수요일’에 자신의 죄악을 애통하며 회개한다는 뜻으로 이마에 재를 바르는 것만 보아도 이 절기가 성탄절이나 추수감사절과는 확연히 다른, 근신과 절제, 은둔과 묵상, 금식과 구제를 통한 자기 성찰에 집중하는 기간임을 알게 됩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요 장로교 창시자인 칼뱅이 한때 이 절기를 폐지할 것을 주장했는데, 그 이유인즉 사순절에 교인들이 금식과 고행을 통한 자기 공로를 과시하게 되었고, 그 결과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이신득의’(인간의 공로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 의로워져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위협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3장 1절에서처럼 이 기간 동안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깊이 생각할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골 1:24) 금식과 절제 가운데 그리고 복음전도 와중에 당하는 고난과 핍박을 통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다면, 칼뱅이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우리 자신의 부족한 영성을 크게 고양시킬 수 있는 복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 절기를 지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순절에 성도들이 생각하고 묵상해야 할 주제는 다름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입니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요소는 ‘생각 한다’는 것이고, 생각에 따라 인간의 모든 성품과 행동이 결정됩니다. 음란한 생각에서 음란한 인간이 나오고, 고귀한 생각에서 고귀한 인간이 탄생됩니다. 아무 죄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스스로 그토록 참혹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주전 8세기의 이사야 예언처럼, 예수의 죽음이 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죄와 죽음을 대신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19세기의 부흥사 스펄전 목사가 어느 날 벽에 걸린 십자가를 보고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자신의 메마른 가슴을 한탄했다는 이야기는 아무런 생각과 감동과 결단 없이 사순절을 지내는 우리들 자신의 자화상이 아닌지요?

예수님의 수난 장면은 마치 붙잡힌 생쥐와 개구리를 시골 아이들이 놀려대며 발로 차고 길바닥에 메어치는 장면을 연상시키고, 강제로 북송된 탈북자의 눈을 가린 채 북한 인민군이 짓밟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리치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만약 북한 감옥에서 살해당한 그분이 나를 살리기 위해 내 대신 끌려간 우리 형님이나 누님이나 아버지 또는 어머니셨다면 그분의 고난과 죽음 때문에 무사히 대한민국에 이주한 새터민으로서 어찌 한시인들 그 은혜를 잊겠으며,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기리는 기간 동안 푹신한 침대에 누워 오락을 즐기며 호의호식할 수 있겠습니까?

사순절 40여일만이라도 묵상과 기도, 그리고 금식과 절제와 선행 가운데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도 고백하고, 기독교를 폄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잠재울 수 있는, 복되고 아름다운 승리의 부활절을 우리 모두 함께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샬롬!

장영일 목사(장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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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사순절의 묵상과 기도

 

 

 
사 53:3~6, 골 1:24

기독교의 전통적 절기 가운데 하나인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주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사순절(四旬節, Lent)은 주후 325년 니케아종교회의 때 제정되었는데, 대체로 부활절 이전의 주일(6일)을 제외한 40일을 가리키며, 금년에는 2월22일 ‘재(Ash)의 수요일’부터 4월8일 부활절 직전까지입니다. ‘재의 수요일’에 자신의 죄악을 애통하며 회개한다는 뜻으로 이마에 재를 바르는 것만 보아도 이 절기가 성탄절이나 추수감사절과는 확연히 다른, 근신과 절제, 은둔과 묵상, 금식과 구제를 통한 자기 성찰에 집중하는 기간임을 알게 됩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요 장로교 창시자인 칼뱅이 한때 이 절기를 폐지할 것을 주장했는데, 그 이유인즉 사순절에 교인들이 금식과 고행을 통한 자기 공로를 과시하게 되었고, 그 결과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이신득의’(인간의 공로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 의로워져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위협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3장 1절에서처럼 이 기간 동안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깊이 생각할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골 1:24) 금식과 절제 가운데 그리고 복음전도 와중에 당하는 고난과 핍박을 통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다면, 칼뱅이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우리 자신의 부족한 영성을 크게 고양시킬 수 있는 복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 절기를 지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순절에 성도들이 생각하고 묵상해야 할 주제는 다름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입니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요소는 ‘생각 한다’는 것이고, 생각에 따라 인간의 모든 성품과 행동이 결정됩니다. 음란한 생각에서 음란한 인간이 나오고, 고귀한 생각에서 고귀한 인간이 탄생됩니다. 아무 죄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스스로 그토록 참혹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주전 8세기의 이사야 예언처럼, 예수의 죽음이 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죄와 죽음을 대신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19세기의 부흥사 스펄전 목사가 어느 날 벽에 걸린 십자가를 보고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자신의 메마른 가슴을 한탄했다는 이야기는 아무런 생각과 감동과 결단 없이 사순절을 지내는 우리들 자신의 자화상이 아닌지요?

예수님의 수난 장면은 마치 붙잡힌 생쥐와 개구리를 시골 아이들이 놀려대며 발로 차고 길바닥에 메어치는 장면을 연상시키고, 강제로 북송된 탈북자의 눈을 가린 채 북한 인민군이 짓밟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리치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만약 북한 감옥에서 살해당한 그분이 나를 살리기 위해 내 대신 끌려간 우리 형님이나 누님이나 아버지 또는 어머니셨다면 그분의 고난과 죽음 때문에 무사히 대한민국에 이주한 새터민으로서 어찌 한시인들 그 은혜를 잊겠으며,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기리는 기간 동안 푹신한 침대에 누워 오락을 즐기며 호의호식할 수 있겠습니까?

사순절 40여일만이라도 묵상과 기도, 그리고 금식과 절제와 선행 가운데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도 고백하고, 기독교를 폄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잠재울 수 있는, 복되고 아름다운 승리의 부활절을 우리 모두 함께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샬롬!

장영일 목사(장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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