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부활주일설교 <부활의 능력>

 

 


제목 : 부활의 능력으로

말씀 : 요5:24~29

1.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죽음이라는 인류의 마지막 원수, 가장 큰 원수를 물리치시고 살아나셔서 예수님이 생명의 주라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내신 날입니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승리를 안겨 주신 날입니다. 이러한 전 우주 공간과 역사에 있어서 유일무이한 날을 맞이하여 부활의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으로 부활의 생명과 은혜와 기쁨이 능력이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죄 사함의 은총과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주어진 영원한 새 생명의 은총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것만이 참 종교의 조건입니다. 제아무리 지적 윤리적 도덕적 철학적으로 고상하고 심지어 사랑이 충만해도 생명의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요, 알맹이 없는 씨앗에 불과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어야 진짜고 이 참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지식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도덕도 흉낼 낼 수도 없고, 흉내 내지도 못한 놀랍고 신비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의 모든 법칙과 질서와 이성과 과학과 경험과 상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믿지를 못합니다. 무슨 황당한 소리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마저도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건 인간의 죄와 무지와 한계의 소치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인생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거나 말거나 부활은 우주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실이고 진실이고 현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에 누누이 예언되었던 일이요, 예수님께서 미리 예고하시고 약속하신 일입니다. 눅9:2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그리고 물론 당연히 그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마28:6절을 보십시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된대로,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당하셨다가 사망권세, 사탄의 권세를 보기 좋게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상식과 경험과 과학의 법칙은 물론 모든 죄와 무지와 어둠과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생명의 주님이심을, 그 안에 영원한 승리가 있음을, 그 분이 온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심을 만천하에 알리셨습니다.

물론 이 일은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어떤 영웅호걸이나 종교의 창시자나 철학이나 지식이나 과학이나 그 어떤 것도 하지도 못했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생명을 조금 유익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살릴 수는 없습니다. 조금 생명을 연장하고 조금 건강하게 해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생명을 창조할 수도, 살릴 수도 없습니다. 오직 유일한 생명의 창조자이시며 주관자이시며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우리 주님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살아생전에도 죽음을 향하여 명령하셨고, 그러자 사망이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였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향하여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7:14)고 명령하자 청년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 나는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외치셨을 때 썩어 가던 나사로가 걸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병들어 죽은 야이로의 딸에게 “소녀야, 일어나라.”고 명령하자 즉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도 오늘 친히 사망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절을 보내며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심령 속에 더욱 온전히 모셔 들이고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하고 확실한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 가운데 부활의 생명이 넘침으로 주님이 주시는 부활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소망과 승리가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러한 부활이요, 생명이신 우리 주님께서 이루신 부활의 생명을 마음껏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먼저 영적으로 부활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부활의 능력과 은혜를 마음껏 맛보며 살아가려면 먼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모셔 들임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남으로 우리 영혼이 부활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는다는 것은 죄와 무지와 불의를 비롯한 모든 어둠에 속한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써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요,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산다는 것은 믿음과 진리와 선과 의에 대하여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덧입어 죄에 대하여 죽음으로 죄에서 해방되고,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덧입어 의와 선과 진리에 대하여 살아남으로 말씀가운데 진리가운데 선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넘치게 되고, 그러면 부활의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어둡고 칙칙하고 더럽고 악하고 추한 것들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부활의 생명력과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25절을 보겠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이 때 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는 살아난다. 그런데 그 때가 언제냐? 바로 지금이다. 그런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 말씀에서의 죽은 자는 육신이 죽은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죽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신이 죽으면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오직 심판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후에는 복음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고, 혹 듣는다해도 믿고 회개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에서도 죽은 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고 살아난다는 것은 육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어 있는 영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살아난다는 것은 영혼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게 거듭남이지요. 그래서 바로 앞절의 24절에서는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거듭남이고 구원이고 영적인 부활인 것입니다. 우리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먼저 바로 이 거듭남, 즉 영적인 부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일단은 천국백성이 되고 그 다음에는 부활의 생명과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고 거듭남으로 일단은 영적으로 부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부활했으면 이제는 과거에 우리가 영적으로 죽어있을 때 우리를 지배하던 죄와 무지와 어둠의 세력들을 뿌리쳐 버려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영적으로 부활했는데 영적으로 죽은 자처럼 살면 안 되지 않습니까? 과거에 우리 영혼이 죽어 있어서 죄와 무지와 마귀사탄의 종이 되어 끌려다녔지만 이제는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모든 마귀사탄의 흉계와 유혹과 위협을 간파해 내고 호통을 치며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르게 섬기며 세상의 영광과 명예와 물질과 육신의 욕구와 모든 원망과 불평과 좌절과 시기와 질투와 거짓 등의 세상의 모든 더럽고 추하고 속되고 죄된 것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영혼이 부활한 자의 삶이요, 이것이 진정 능력있는 삶이요, 진정한 자유와 승리를 누리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세상의 상황이나 환경이나 돈과 명예와 세상 영광과 세상 즐거움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 걱정 근심 염려 원망 불평 좌절에 빠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룩하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아름답게 감사와 기쁨과 위로와 소망과 평강과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할렐루야 찬양하며 승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4:12,13절에서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외치며 능력있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하고 온전히 거듭남의 은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죄로 인하여 죽어있던 영혼이 온전히 부활하여 주님의 능력으로 세상으로 이기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되어 온전히 거듭난 심령, 부활한 영혼으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약하고 추하고 악하고 속된 것과 모든 원망과 불평과 시기와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을 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고 예수님의 생명 은혜 기쁨 평안 위로 소망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인격적 부활

여러분,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부활하면 자연히 인격적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때는 우리 영혼이 죽어 있어서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과 방향도 알지 못합니다.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지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영혼이 죽어 있어서 캄캄한 가운데 있으니 어떻게 알겠습니까? 별빛도 달빛도 그 어떤 인공적인 조명도 없는 완전히 캄캄한 밤길을 걸어가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가다가 넘어지고 자빠지고 구덩이에 빠지고 벽에 부딪치고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영혼이 죽어 있는 인생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게 됩니다. 올바른 가치관이나 인생관을 가질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바르게 사용하지도 못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모릅니다. 그저 죄된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부활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죽어 있어서 감각도 없고 분별력도 없고 캄캄한 가운데 있던 우리 영혼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시고 그래서 생명의 빛이 비춰지고 그래서 예수님의 능력으로 영혼이 살아나면 그야말로 우리 영혼이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그러면 비로소 인생을 알게 됩니다. 인생의 본분을 바르게 깨닫습니다. 내 육신과 생명과 능력과 지혜와 지식과 그 어떤 것도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비로소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주님의 기쁘신 뜻을 알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할줄 아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심령 속에 부활의 주님의 은혜가 충만함으로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희망과 소망과 위로와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름다워지고, 정직과 진실과 성실로 주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예배와 기도와 찬송하는 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말씀의 맛이 꿀맛처럼 달아집니다. 그래서 더욱 주님을 가까이하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 심령 속에 생명의 은혜로 더욱 가득하게 되고 그리하여 현재적 천국을 마음껏 맛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의 모습이요, 이것이 바로 말 그대로 거듭난 인생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5:17절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과거에 죽어있던 영혼이 살아난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와 죽음과 사탄이 내 안에 역사했으나 이제는 예수님과 의와 생명이 내 안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 영광을 돌리며 하늘나라를 맛보며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모셔들임으로 일단 영적으로 온전히 부활한 생명을 가지고, 더 나아가 과거의 모든 악하고 왜곡되고 추하고 부정적인 모든 모습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림으로 인격적으로도 온전히 부활하여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총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육체적 부활

여러분,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일단은 영적으로 부활하게 되고, 영적으로 부활하면 전 인격이 새로워져 인격적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영과 혼의 부활이 전부는 아닙니다. 부활의 완성은 신령한 육체로의 부활입니다. 이 부활이 마지막 부활이요 완전한 부활이요 궁극적 부활입니다. 이 부활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루어질 것인데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아오고, 주님을 알지 못하고 거부함으로 죄를 그대로 가지고 간 영혼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28,29절을 보겠습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보십시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주님의 음성을 들을때가 온다. 그때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을 하게 될 것이요,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여기서 선한 일, 악한 일은 단순히 인격적으로 선하고 악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믿음이 없다면 인격적으로 아무리 선해도 선한 일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큰 선한 일은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아무리 선을 행해도 선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으면 설령 세상에서 선을 좀 행한다해도 선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10:6절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육체적인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의 육체는 지금의 육체와는 달리 신령한 육체요, 영광스러운 육체입니다. 그래서 늙지도 병들지도 아프지도 죽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염려 근심 걱정 원망 불평 등의 어둠에 속한 것들은 하나도 없고, 하나도 지배를 받지 않는 완전한 육체입니다. 이 신령한 육신은 물질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지만 그러나 시공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15:42~44절에서는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선 영적으로 부활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 부활합니다.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부활합니다. 이 육체적인 부활이 이루어질 때 부활이 완성됩니다. 영적 인격적 부활을 가진 자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모든 어둠과 마귀사탄과 죽음과 세상의 왜곡되고 무지하고 추하고 더러운 것들을 이기는 삶을 살기는 하지만 100%는 못됩니다. 혹 70%. 혹 80%, 혹 90% 하늘나라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혹은 주님이 다시 오셔서 육체의 부활이 이루어져 전인격적으로 부활이 완전히 완성되었을 때 우리는 그야말로 완전한 생명의 은총을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오늘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 어둠의 권세, 마귀 사탄의 권세, 지옥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부활절을 맞이하여 진정 오직 유일한 생명의 부활이신 예수님을 더욱 온전히 심령 속에 모셔 들이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실로 영혼이 온전히 거듭나고 부활하고 인격적으로도 거듭나고 부활함으로 마귀 사탄 어둠 권세 물리치신 부활의 주님의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어둡고 칙칙하고 더럽고 악한 것들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부활이 완성된 단계가 아니라서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하여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에게는 반드시 영과 육과 혼이 완전한 새 생명으로서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며, 부활의 주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으로 모든 죄와 무지와 추함과 낙심 원망 불평 절망 근심 염려 시기 미움 거짓 위선 다 집어던지고 믿음과 사랑과 감사와 기쁨과 은혜와 평강과 위로와 소망 가운데 부활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며 부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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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설교] 나같은 사람도 부활을 전하는데요

 

 

 

 

나같은 사람도 부활을 전하는데요

마가복음16;9-11


단체로 삭발한 교회

미국 미주리(Missour)주에 있는 어느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미용실에,

그날따라 많은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손님마다 하나같이 삭발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손님들은 50여 명 정도가 출석하는 작은 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미용사는 삭발을 요청하는 손님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상한 광신도들이 아니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골교회에 사연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성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던 여중생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는 어린 나이에 암으로 투병 중이었습니다.

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까지 마친 소녀가 교회를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목사님과 몇몇 성도님들이 병문안을 갔습니다.

소녀는 항암치료 중에 빡빡 밀어버린 머리 때문에 창피해서 외출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나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성도들은 모두 머리를 깎고 삭발하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이 사연을 듣고 감동한 미용사는 지역 방송국에 연락했습니다.

이 여중생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드디어 부활주일날, 엄마는 자기 딸을 간곡히 설득하여 모자를 씌워 교회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교회 문을 연 순간, 모든 성도들의 빡빡머리를 한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소녀는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결심한 듯 모자를 벗었습니다.

그 상황을 중계하던 방송국 기자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그러나 언젠가 교회를 나가게 된다면 이런 교회를 나가고 싶습니다.”

그 방송을 보던 많은 사람들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사람의 죄악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살아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금요일 오후 3시에 못 박혀 죽으시고 오후5시쯤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빈 바위무덤에 장례를 치르게 된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데 일등공신인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과 로마병사들은

예수님께서 살아생전에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고 하신 말씀을 상기하면서

예수님이 부활할 수 없도록 바위무덤에 커다란 돌로 닫아놓고 병사들을 시켜서 지키도록 한다.

아무리 커다란 돌로 무덤 문을 닫고,

병사들이 겹겹이 무덤 주변을 지킨다고 해도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길은 없다.

예수님은 죽은 지 3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다.

토요일 저녁까지 안식일을 보내고 안식일 다음 날이 되었을 때,

캄캄한 밤 시간을 지나고 이른 새벽시간이 되었을 때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 사망의 권세, 사탄 마귀의 권세를 이기시고 홀연히 다시 살아나신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 부활하신 시간에는 유월절을 지나고 무교절 절기 기간이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아침 번제와 초실절이라고 부르는 맥추절 제사를 드리는 시간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제물의 제사를 드리고 있고,

성전이신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당당하게 부활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가로막을 자가 누가 있을까?

사탄, 마귀가 가로 막을 수 있을까?

아무리 강한 권세, 공중권세를 잡고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가로막을 권세는 없다.

대제사장들, 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이라고 예수님의 부활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는 있어도

예수님의 부활을 가로막을 수 있는 권세는 두 눈 부릅뜨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직접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로마제국이라고 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

‘전 세계를 로마로’라고 하면서 전 세계를 정복한 권세라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가로막을 수 있는 권세는 없다.

무덤이라고, 시신이라고 예수님의 부활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

아무리 무덤이라 해도, 이미 죽은 시신이라 해도 예수님의 부활을 가로막을 수 없다.

어떤 권세도, 어떤 세력들도, 어떤 환경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가로막을 수 없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이미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이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믿으니까 부활하시고,

사람들이 믿지 않으니까 부활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믿거나 믿지 못하거나 상관없이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이것은 역사적인 엄연한 사실이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은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에게 나타나신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두려워서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부활하셨다고 전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할 수 없다.

 

왜냐하면

① 나같은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다고 제자들이 믿을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들 남자들이고, 나는 연약한 여자 아닌가?

그것도 일곱 귀신에 걸려서 제대로 사람이라고 인정도 받지 못하던 여인이 아니던가?

지금이야 예수님께서 일곱 귀신을 내쫓아주셔서 귀신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귀한 딸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평안하게 살지만 내 전력이 어디로 간단 말인가?

 

② 여자인 내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가장 먼저 만나주셨다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한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수치를 안기는 결과가 되지 않나?

유대인들은 명예와 수치를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여자인 내가 먼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하는 것은

아무래도 제자들에게 명예롭지 않고 수치를 안겨다 주는 꼴이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명예롭게 살아야 앞으로 주님의 제자로서, 사도로서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되는 것이지 않나?

그러니 내가 여자인 내가, 그것도 일곱 귀신에 사로잡혔던 경력이 있는 내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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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남녀구별이 엄연하던 시대 아닌가?

여자는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숫자에도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러니 나같은 여자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한다고 증언하면 누가 들어주기나 하겠는가?

 

죽음의 권세, 사탄의 권세, 무덤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막달라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찾아와서 자신이 부활하였노라고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직접 보여주시는 예수님.

빨리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찾아가서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

사탄과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다고, 부활하였다고 증언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낙심하고 좌절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제자들,

엠마오로 돌아가는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 주시는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 부활하셨음에도,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증언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직접 찾아와서

“왜 믿음이 없느냐?”고 하시면서 책망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실 것은 다 보여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음이 없어서 두려워하고 염려할 때 예수님은 책망하시고 꾸짖으신다.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의 다시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세워나가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막달라 마리아가 베드로를 비롯하여 11명의 제자들, 70명의 제자들,

120명의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고 전할 때

이들은 마리아가 전하는 부활의 소식을 믿을 수 없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나타나 주시고 책망하고 꾸짖으면서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면서 믿음의 사람으로, 사도들로 세워 가신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나는 축복의 여인이 된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최초의 여인이 된다.

하나님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되어지는 여인이 되어진다.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여인이 되어진다.

예수님에 대하여 더욱 더 믿음이 굳건하게 세워지고 성숙해지면서

초대교회의 창립 멤버로 교회의 훌륭한 여성 지도자로 세워진다.

초대교회의 창립 멤버가 되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강림을 위하여 기도하다가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을 체험하고 목격하는 여인이 되어진다.

수치의 상징이라는 여인이라고, 일곱 귀신에 걸렸던 여인이라는 과거는 깨끗하게 사라지고

이제는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여인이 되어지고,

교회에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여인의 지도자가 되어

교회를 위하여 훌륭하게 세움을 받는 여인이 되어진다.

초대교회에서 여성 지도자로서 강한 리더쉽을 가지고 교회의 여성들을 잘 이끌면서

사도들을 도와서 예루살렘교회를 든든하게 세워나가는 축복을 받는다,

시시각각으로 몰려오는 핍박 가운데서도 굳건하게 믿음을 지켜서

흔들리는 약한 성도들을 이끌고 믿음을 세워가는 일꾼으로 세워진다.

*** 우리가 진정으로 전해야 할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

세상의 모든 종교지도자들, 교주들은 한결같이 다 죽었다.

죽지 않았거나 다시 살아난 이들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스스로 태양신이라고 주장하면서 바벨론의 이방종교를 만들어낸 니므롯도 죽었고,

달신이라고 주장하던 세미라미스도 죽었고,

별신이라고 하는 담무스도 죽었다.

불교의 석가모니도 죽었다.

유교의 공자도 죽었다.

힌두교, 이슬람교의 마호멧도 죽었다.

천주교의 교황들도, 추기경들도 죽었다.

통일교의 문선명이도 죽었다.

하나님의 교회라는 안산홍이도 죽었다.

이제 멀지 않아서 신천지의 이만희도 죽을 것이다.

스스로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장길자 여인도 죽을 것이다.

자기 스스로 신이라고 주장한 김일성이도, 김정일이도 죽었다.

그렇지만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탄 마귀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은

우리 기독교에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유일하게 전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제자들에게 다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쳐주신 예수님은

500여명의 무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승천하셨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자살하여 죽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선별하는 조건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베드로는 선언한다.

행1:22에서 베드로는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고 하시면서 맛디아를 뽑아서 12명의 사도로 세우게 된다.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이 없다면

우리들은 인류 최악의 사기사건에 빠진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만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500여명의 무리들의 두 눈으로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이야기하고 같이 식사도 하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단 몇 사람밖에 없다면

그들을 매수하여 그들의 입을 막을 수 있다.

얼마든지 거짓말했다고 하면서 덮어 쉬울 수 있다.

하지만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적어도 500여명의 무리들이 보았다는데,

어떻게 500여명의 눈을 가릴 수 있단 말인가?

500여명의 무리들 중에서 120여명의 무리들이 한 곳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하여 10일 동안 전심으로 하나가 되어 기도할 때,

오순절에 성령강림을 체험하게 된다.

이들을 통하여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세워진다.

교회가 세워지고 영혼을 살리는 성도들이 되어진다.

믿음의 표적이 나타나게 된다.

믿음의 표적을 행하는 주인공들이 되어진다.

하나님의 교회와 구령사역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워지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숨 걸고 전해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구원의 시작이자 구원의 완성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축복의 시작이자 축복의 완성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믿음의 시작이자 믿음의 완성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의 시작이자 생명의 완성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지고

교회가 성장하는 시너지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 백성들에게 내려주시는 은혜의 최고봉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사람은 믿음이 성장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성도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고

나눌 수 있는 축복의 주인공, 축복의 통로, 축복의 근원이 되어지는 사람이다.

와☺우리교회 성도들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입으로, 온 몸으로, 온 삶으로 전하고 또 전하고 또 전하는 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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