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장례예식설교 (임종,입관,발인,하관,위로 예배 설교)

 

 


 

장례예배란

장례예식을 잘 치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부활 신앙의 표현이기도 하다. 죽음은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정의 중대한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 국가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일들이 뒤따르는 인간사의 중대한 장면이다.

성도의 시신은 매우 소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그 이유는 생명의 부활로 나올 몸이기 때문이다. 영혼이 담겨있던 육신을 정중히 다루는 것이 유가족에 대한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혼이 떠난 육신을 지나치게 소중히 여겨 우상시할 필요는 없다.

장례의 의의는 무엇보다 유족들을 위로하면서 복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과 이것을 계기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크게 도모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항상 마음에 두고 봉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장례예식을 통해 부활의 소망을 다시 한 번 확신하는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다.

장례식에는 임종예배, 입관식, 발인(출관)식, 하관식, 위로예배의 다섯 가지 예식이 있다. 이 가운데 입관식, 발인(출관)식, 하관식은 매우 중요한 예식이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장례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발인(출관)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장례예배 실제

 

1) 임종예배 설교
사람의 호흡이 끊어져 인생의 종말을 고하며, 천국에 들어가는 때가 곧 임종이다. 세상에서 오래 살았다 하더라도 구원의 확신이 없이 임종하였다면 그 사람에게는 개인적으로 다시없는 비극이다.

* 어떻게 운명이 임박한 것을 알 수 있는가? 심장이 거의 멎어가는 사람은 그의 눈동자를 보면 안다.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멎어 있으면 곧 떠날 때가 된 것이다. 그때에 손발을 살펴보아서 손톱과 발톱이 새까매지면 운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운명하려 할 때 집례자가 기억할 것은 예수님만 의지하도록 권면하고, 마지막 임종 기도를 드리며, 찬송을 계속 부르는 것이 좋다. 또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임종시에 신앙고백을 듣고 유족들에게 “예수님을 잘 믿어라”는 한 마디의 유언을 남길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 운명한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운명한 다음 중요한 것은 입관식, 발인(출관)식, 하관식이다. 그러므로 임종예배가 끝나면 교회는 즉시 상가와 장례절차를 결정하고 최후의 행사에 대하여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상을 당한 식구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고와 행정상 법적 절차를 밟는 일에 협력하도록 한다. 우선 의사의 사망진단서를 받아야 한다. 사망진단서를 가지고 동사무소에 가면 매장 허가서를 뗄 수 있다. 다 준비되어 있으면 매장허가서를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예배 후에 장례 일정을 논의하는 것이 좋다. 이때 교회법을 따르도록 다짐을 받아야 하고 시신 앞에서 배례나 곡을 하지 않아야 하며, 조객들은 묵도로 예의를 갖추도록 미리 알려두면 좋다.

 

2) 입관예배설교
입관예배는 고인의 시신을 씻은 후 옷을 입혀서 관에 모시고 드린다. 관에 뚜껑을 덮고 결관하여 관보를 씌우고 드리기도 하고, 관에 뚜껑을 덮지 않고 옆에 두고 드리기도 한다. 입관은 원칙적으로 임종 후 24시간이 지난 후에 한다.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다시 소생할까 해서 24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 앓던 분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별세 후 24시간이 경과되지 않았더라도 유족들의 요구에 따라 서두를 수도 있고 잠시 연장할 수도 있다.

묵도를 마치면 찬송을 부르고 성경봉독을 하고 설교를 하고 기도로 끝낸다. 입관예배를 마치고 나면 발인예배 시간과 장소를 자세히 알리고 폐회한다. 예배 후에 몇 가지 확인할 사항이 있다. 유족이 상을 당해 보지 않았거나 전혀 장지에 관한 일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준비물과 과정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 상주는 입관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상복을 입어야 한다.
* 매장허가서를 받아 놓았는지 확인을 한다.
* 영구차는 준비되었는지 확인을 한다.
* 장지까지 따라갈 교인의 인원을 참고로 알려준다.
* 장지에 갈 음식 장만을 확인한다.

 

3) 발인(출관)예배
불신자들은 발인식을 영결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합당치 않다. 그 말의 의미가 영원히 보지 못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이별이 없음을 생각할 때, 영결식이란 말 대신에 장례식 혹은 발인식, 출관식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발인예배의 집례자는 축도를 마치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구차를 떠나보내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예배 후 모든 조객들을 좌우로 질서 있게 세우고 집례자가 사진 든 사람의 왼쪽에 서서 팔을 잡고 앞으로 출발한다. 그 뒤에 꽃이 따라고, 상주가 따르고, 유족들이 따르고, 조객들이 따라 나와 영구차에까지 오면 사진은 집례한 목사님이 탈 선두차 앞에 실어 놓는다. 운구한 다음에 집례자는 영구차의 관을 넣는 쪽에 서고 그 옆에 상주와 유족들을 쭉 서게 하고 장지에 함께 갈 조객들은 먼저 차에 타도록 하고 산에 가지 못할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킨다. 집례자는 인사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아야 한다. 인사가 끝나면 상주들을 지시하여 차에 태운다.

집례자가 상주들이 탄 차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고 내려와서 선두차에 타고 출발하면 그 뒤에 영구차와 조객들의 차가 따르게 된다.

 

4) 하관예배
영구차가 산에 도착하면 발인식의 행렬과 같은 요령으로 묘지까지 운구한다. 이때 성가대가 있으면 찬송가 543장을 부르는 것이 좋다. 하관예배를 드릴 때에도 집례자는 관머리쪽에 서서 지휘를 하며 관을 내리게 한다. 관이 안장된 다음에 관보, 명정, 횡대를 다 덮고 다시 세 번째 횡대를 열어서 두 번째 횡대 위에 놓고 나서 상주는 집례자의 오른쪽에 서고 조객들은 집례자의 왼쪽에 서게 한다.

찬송은 291장같이 천국을 사모하는 것을 부르고 설교도 부활에 대한 것이 좋다. 특히 하관예배는 흙으로 된 몸을 흙으로 돌려보내고 산 사람끼리 돌아와야 하는 슬픔의 절정을 이루기 때문에 새로운 결심과 부활의 소망을 주는 말씀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모든 슬픔은 흙속에 묻어 버리고 다시 무덤을 찾아올 때는 기쁜 소식들을 가지고 올 수 있도록 축복기도를 하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축도를 하고 하관예배가 마쳐지면 복토(覆土)를 한다. 집례자는 복토 순서를 말해야 한다. “복토 순서는 집례자, 상배자(미망인), 유족, 친척, 교역자, 장로님, 친구의 순서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제일 먼저 집례자가 복토를 한다. 복토를 하는 동안 성도들로 하여금 찬송을 부르도록 하는 것이 좋다. 복토가 끝나면 집례자는 폐회선언을 한다.

 

5) 위로예배
산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상주들을 다 모아 놓고 위로예배를 드림으로써 모든 장례절차는 끝나게 된다. 위로예배는 상주들이 가장 허전해 하는 때이므로 더욱 정성으로 인도해야 한다. 이때 교역자는 다른 급한 심방이 있어도 내색하지 말아야 하며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 끝마쳐야 한다. 이때 상주에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좋다.

장례 때의 가장 많은 질문들

1. 임종시 곡을 합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별세했을 때 슬픔은 당연한 것입니다. 자연스런 감정이 북받쳐 우는 것은 괜찮습니다. 다만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계속 곡하는 것과 옛날 유교식 장례에서 ‘아이고 아이고!’하면서 곡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2. 상을 당했다고 알리는 등을 다는 것과 촛불 켜는 것, 향을 사용해도 됩니까?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상가임을 알리고 등을 다는 것은 문상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말하듯 귀신을 불러오는 것은 아닙니다. 촛불은 어두음을 쫓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향을 피우는 것은 상가의 상징행위로 혹은 분위기나 냄새 제거의 목적으로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3. 위패를 모시거나 지방을 써서 붙여도 됩니까?
이것은 기독교인으로 거부합니다. 유교식 장례법으로 사당이 없는 가정에서 화선지에 ‘누구누구씨 신위’라고 위패를 써서 예식을 가졌었습니다. 지방을 써서 모시는 것도 돌아가신 혼령이 그 자리에 임재한다는 빙의의 신앙 표현입니다. 믿는 이들은 조상의 넋을 종이에 써서 붙여 모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모셔야 합니다. 추모식 때 중심의 상징이 필요한 경우 위패나 지방 대신 아무개 성도의 제 몇 주기 추모제라고 써서 붙이는 것은 괜찮습니다. 

4. 상례시 음식물을 상위에 진설해도 됩니까?
고인의 영정 앞에 음식을 차리는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인이 평소에 잘 드시던 음식을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하여 차려놓는 것을 말릴 필요는 없습니다. 죽은 자는 음식을 차려 놓아도 먹을 수 없습니다. 불필요하게 유가족들을 괴롭히는 일입니다.

5. 운명한 후 고인의 옷가지를 지붕으로 던지거나 사잣밥을 준비하는 것은?
귀신들이 황천까지 안내한다는 의식의 표현입니다. 믿는 이들의 영혼은 천사들에게 받들려 하늘에 올라가지 귀신이나 사자들이 안내하는 것이 아니기에 필요 없습니다.

6. 수의와 유가족들의 복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는 이들 가운데도 고급 수의를 고집하는 경우를 봅니다. 몇 백만원, 혹은 유명한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몇 천만원까지 한다니 할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수의를 미리 마련하면 장수한다는 속설도 믿을 필요 없습니다. 간소한 수의를 마련하는 것은 좋습니다. 꼭 삼베로 만든 수의가 아니어도 평소에 잘 입던 양복 등을 입혀도 됩니다. 유가족들의 경우 집안의 풍습대로 하되 삼체로 만든 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자는 흰색, 혹은 검은 색 치마 저고리를 입거나 깨끗한 검은 양장을 입어도 될 것이며, 남자는 검정색 양복에 삼베 상장을 팔에 끼는 것도 무방합니다.

7. 임종시 돌아가는 분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이건 조심해야 합니다. 금방 돌아가실 듯 보여도 나중에 가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환자 앞에서는 장례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강압적으로 고백을 받아내려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예수님 믿으세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평안하세요” 정도로 말씀드려도 다들 알아듣습니다. 운명시간이 가까워 오면 오히려 가족들보다 환자 분이 마음이 차분하답니다.

8. 비기독교인의 상가에 가서 음식을 먹는 것은 괜찮습니까?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사도의 조언처럼 믿음이 연약한 자를 실족케 할 경우를 위해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 종교적인 이유로 거리낌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두어 가지 이유에서 상가에서 음식을 잘 먹지 않습니다. 하나는 유가족을 생각해서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분주하고 슬퍼하는 가족들 앞에서 떠들며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고, 봉사하는 이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며, 또 다른 이유는 음식을 여러 사람들이 먹다보니 위생적으로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멀리 간 경우, 혹은 가족들과 대화가 필요한 경우에 간단하게 떡이나 차를 마시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9. 문상을 가서 어떤 말을 상주에게 해야 합니까?
정중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로 받으세요. 천국 가셨습니다. 힘내세요. 주안에서 큰 위로 있으시기 바랍니다.” 등으로 말씀드리면 됩니다. 저는 특히 큰 며느님이나 둘째 혹은 셋째나 고인을 모시고 살았던 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 동안 고생 많으셨노라고 혹은 “고인에게 제가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면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10. 문상객이 뜸할 때 상주는 휴식을 취해도 됩니까?
본래 예로는 어긋나겠지만 기계가 아닌 이상 상주도 쉬어야 합니다. 사람의 체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끼리 순번을 정해 쉬고, 혹시 조문하러 갔을 때 내가 아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조용히 물러 나와야 합니다. 어쩌다 쉬러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와서 불러내면 어찌 쉬겠습니까? 나중에 연락을 드려 그때 갔었는데 뵙지 못했노라고 하면 더욱 감사할 것입니다.

11. 문상 시에 기독교인이 영정 앞에 절을 해도 됩니까?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제사드릴 때와 문상 때는 다릅니다. 제사의 죽은 자를 위해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조상을 귀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가는 길에 예를 표하는 방법으로 절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아까 적은 음식문제처럼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절하기보다 고인을 추모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나아보입니다.

12. 상주와는 어떻게 예를 표해야 하나요? 절을 합니까? 일어서서 인사합니까?
입식인 경우, 가정에서 장례를 치를 때 절을 합니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도 무방합니다. 저는 절하기보다 허리를 굽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조문객이 적은 가정은 문제가 아니지만 수천 명, 혹은 수백 명이 찾아오는데 절을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 상주들이 힘들어 견딜 수 없습니다. 상주가 엎드리면 나도 엎드리고 그렇지 않은 경우 서서 절을 해도 무례가 아닙니다.

13. 입관 때 반함을 하거나 고인의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잘라 넣어도 됩니까?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배격합니다.

14. 추모예배는 장자의 집에서만 드리나요?
옛날 농경사회에서 제사를 드릴 때 장자가 무언가 있어야 제삿밥이라도 먹는다 생각해서 장자에게 유산을 물려주어 제사도 장자가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법이 바뀌어 딸들도 유산을 상속하게 됩니다. 추모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고인을 추모하고, 가족끼리 화목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둘째나 셋째, 혹은 따님의 가정에서 추모예배를 드려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15. 화장을 해도 됩니까?
아직도 몇몇 교회에서는 매장만을 고집하고 가르칩니다만 현재 우리나라 국토는 좁은데 매장만 고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못되어 육신은 먼지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먼저 화장의 풍습을 권장해야 합니다. 화장 후 유골을 부수어 강가에 뿌리거나 산기슭에 뿌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자여보호에 맞지 않고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보다는 평소에 잘 가는 기도원이나 교회 앞마당에 뿌리는 것이 의미 있고, 요즘엔 납골당이 잘 되어 있어서 화장을 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습니다.

16. 이장을 할 경우 몇 년째에 합니까?
보통 20년이 지난 후 합니다. 그래야 완전히 육탈되어 백골만 남아 이장하기 좋습니다. 만약 부득한 경우에 이장할 때는 마음이 약한 이나 여성들은 피하고, 대표가 산 일 하는 사람들과 협력하여 이장하는 것이 좋습니다.

17. 매장 시 지방에 따라 시신만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괜찮을까요?
지방에 따라 매장할 때 관에서 유해를 꺼내 따로 매장하는 탈골 방법도 있습니다. 그것은 지방의 풍습에 따르면 되고, 그 때문에 논란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 대신 간소하게 목관을 사서 써야 경제적입니다.

18. 고인이 사용하던 성경을 관에 넣어도 됩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 이장할 때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시신 손가락 유골이 성경책을 파고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히려 성경 등은 후손이 잘 보존하면서 신앙 유산으로 남기면 좋습니다. 믿음으로 천국 가는 것이며, 천국에서 하나님을 직접 만나 예배하므로 성경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19. 묘 앞에 세우는 비석에는 무슨 말을 적어 넣을까요?
아무개 성도, 아무개 집사, 권사, 장로 등으로 쓰되 비석은 간단하고 검소하게 합니다. 가정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세우면 됩니다. 크다고 자랑할 일도 부러워할 것도 아니고 적다고 부끄럽게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비석에 아들 이름만 새기거나 아들, 딸, 사위, 후손의 이름을 새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인이 살아 생전의 가족들의 이름은 손자들까지 놓으면 나중에 아이들과 고인과의 연결고리가 되므로 좋습니다. 고인의 이름 생년월일, 간단한 성구들을 넣으실 수 있으면 그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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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예배에 대해]  추모예배는 우상숭배입니다

 

 


추모예배에 대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함과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글을 올립니 다. 기독인들은 아무생각없이 추도식을 드리고 있습 니다. 부모가 훌륭한 삶을 사셨기에 그분의 발자 취를 본받기위해서, 친목의 시간을 가지고, 고향을 찾 아 사셨던 산천도 둘러보는것에는 충분히 공감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뜻을 잘못인식하고 있는것 같아 자료를 준비하여 글을 올렸습니다.

추도예배, 추모예배, 차례 등 일종의 제례(祭禮) 행위들이 한국교회가 전통문화와 어울려 무비판적으로 드려지고 있습니다. 성경말씀그대로 지켜며 살아야 하는데 어떤 뚜 렷한 예배규정없이 기독교 예배정신을 흐려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렇다 할 성경적인 가르침을 내놓지 않고 관행대로 , 기성교회가 해왔던 대로 비성경적인 우상숭배 행위를 하고 있음에 고민하며 주님보 시기에 죄악을 행하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고 있 습니다.

 

첫째: 추도나 추모는 어원적(語原的) 의미에서 비성경적입니다.

① 제사(祭祀): 신(神)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차려놓고 의식을 베푸는 것. ② 추도(追悼): 죽은 사람을 생각하여 슬퍼하는 것. ③ 추모(追慕): 죽은 사람을 사모하는것. ④ 차례(茶禮): 음력 매달 초하루 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에 지내는 제사.

한결같이 죽은 사람과 그의 혼령을 대상으로 애 도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도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예(禮)를 갖추라는 말이 없으며, 또한 죽은 것에 대한 숭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 예배학적 의미에서 볼 때 비성경적입니다. 십계명에는 예배의 대상이 오직 야훼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명시합니다.(제1계명) 또한 예배의 방법(제2계명), 예배의 정신(제3계 명)에서 어떤 우상적인 것도 금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못하게 하십 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사는 물론이고 추도, 추모, 차례 예배 등은 모두가 죽은 자를 대상으로 한 예배이 므로 십계명을 위반하는 죄인 것입니다. 구약의 예배( 엎드림, 경배, 따름, 섬김)라는 술어는 확실히 삼위일체 하나님 외에 어떤 다른 신이나 사람에 게 적용될 수 없는 말입니다.

 

셋째: 성경은 죽은 자를 위해 이교도처럼 슬퍼함 을 금합니다. (레19:28)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야훼니라. " (신14: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야훼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네째: 성경은 죽은 자에 대한 예물헌납도 금합니 다. (신26:14)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 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 님 야훼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 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다섯째: 성경은 죽은 자에게 제사함을 바알브올 을 숭배하는 죄라고 단언합니다. (시편106:28)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여섯째: 성경은 우상과 관계되는 모든 종교행위 를 저주하고 심판하실 것을 단언합니다. (출22:18)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지니라" ‘야 훼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는 멸할지 니라’ (신18:11,12)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 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야훼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야훼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 아내시느니라.

(레20:2, 27)"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 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 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 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살아계신 하나님에게만 드려야 하는 예배라는 거룩한 술어를 추도예배, 추모예배, 혹은 차례예 배라는 기이한 명목 아래 미화시켜 이미 죽은 자를 사모 하고 명복을 빌고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만의 절대 주권영역이라는 진리 앞 에 명백히 죄악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발인예배, 장례예배는 한번에 한하여 드려야 하 며 지속적으로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추모예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매년 한번씩 자식 의 도리라며 기념일을 만들어 수십년간 추모예 배를 드린다는것은 부모가 우상이 될수 있다는 것과 신앙생활의 모본을 보여주시다가 천국에 가셔서 하나님께 영원한 경배를 드리고 있는 부모님 또 한 절기처럼 자신을 기념하며 지키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명분으로도 예배의 대상을 하나님 외에 죽은자와 바꿀 수 없으며, 또한 순교자나 성자에 대한 추도 추모예배 역시 비성경적, 반기독교 윤리행위임 을 기억하고 이에 대한 깊이있는 신학자들과 주 의종들의 기도와 고민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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