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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 기독교 영성 재조명하기 
 

 


은사주의, 신비주의, 방언기도에 대해 내가 부정적인 입장이 아니다. 성경에 이미 언급된 방언의 존재 자체를 마치 부정하는 신학자나 목회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물론 대부분은 이해할 수 없는 랄랄라...식으로 도리어 옆에 기도하는 사람을 어지럽게 만드는 영적 훼방이나 끼치는 기도지만 다른 나라의 말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말하는 기도마저 부정하고 싶지 않다. 신사도운동이라고 해서 열리는 예언집회와 치유집회와 은사주의 운동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십자가 복음이 없다면 거의 하나님의 나라에 도움이 안 되는 무당푸닥거리와 비슷한 일이라고 보면 된다. 장삿속이 가득한 삯꾼들이 은사를 주장하여 자신의 체험을 간증하고, 성경의 권위보다 자신의 체험을 더 믿고, 하나님의 내게 말하였다거나 지금 성령이 당신에게 그러한 말을 하고 계신다고 약을 팔게 된다. 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고 싶지 않다.  은사를 강조하고, 체험을 강조하고, 강하게 자신의 신비한 체험을 이야기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단 호기심을 갖고 열린 태도를 취한다. 물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부인을 한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뭐든 잘 된다는 말만 하는 자들을 보면 경계하지만 그러한 목회자들이 십자가 복음에 대해서 알아가고 배워가고 있다고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옆에서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민중신학, 해방신학을 하는 자들을 시대의 필요에 의해 나타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신대 출신 목사님과 철학대학원 시절에 바르트 책으로 스터디를 하며 친하게 지냈다. 대부분 운동권 출신으로 감방에 갔다왔다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목회의 길을 가는 목사님과 신학박사인 교수가 멤버였다. 역사적으로 군부독재시절 조찬기도회를 하는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을 향한 그들의 분노와 정권의 꼭두각시가 되어 아무런 말도 못한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실망하여 불의에 저항하고, 복음이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을 향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 부류다. 토요일 결혼식 주례를 서고 나오는 목회자 앞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젊은이들이 맞아서 끌려가는 것을 보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된 사람들. 김재준이나 안병무나 이러한 분들을 통해 우리나라 기독교는 잃어버린 사회참여에 대해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곧 자유시장주의를 마치 최고의 사회체제로 규정하고 그 속에서 기복주의를 통해 자신들만의 성공만 추구하고 가난한 자들을 차별하는 자들을 지지할 수 없다는 민중신학의 행동을 이해하지만 동반자로 같이 따라 갈 수는 없다. 예수님이 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였다. 사회구조를 바꾸기 전에 우리는 솔선수범하여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기 위해 보냄받은 자리에서 한 알 밀알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십자가의 길로 순교자의 각오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배신당할 줄 알아도 그러한 길로 가는 것일 뿐이다. 심각한 독재사회에서는 본회퍼처럼 살면 된다. 그의 신학보다는 그의 실천적 기독교 윤리가 필요하고 그것이 실종되면 말뿐인 기독교가 된다. 

 

그리고 지나친 율법주의, 현대판 바리새인들이 언제든지 교리로 무장해서 자신들의 틀에 신앙을 가두고 교리를 사수하여 교회를 지킨다고 교리논쟁으로 이단심사와 마녀사냥을 하고 다니는 그러한 꼴볼견을 보고 싶지 않다. 이들의 신앙은 머리만 큰 관념적인 신앙이 되어 비판은 격력하게 하지만 아무런 실천과 대안은 없고, 기도 후 행함은 아무리 기다려도 없고, 상대방만 무시하는 비난과 방관만 하는 관찰자일 뿐이다. 교회에서 자신들만 제대로 된 신학적 지식을 독점하여 뭔가 다르다는 구별의식을 가진 목회자들은 사두개인이고, 그러한 신학적 지식에 능통한 일반 장로들은 바리새인이고, 그러한 목회자들을 양성한 신학교수들은 율법학자라고 보면 된다. 모든 것을 다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 행하던 일을 그대로 행하는 자들의 상당수가 교회 내에서 그러하다고 보면 된다. 이들이 교단신학을 사수하고, 전통을 지키고, 개혁주의 신학을 지키며 칼빈 선생의 말을 예수님말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더이상 개혁에 대한 의지를 거부하고 보수주의자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율법주의적인 입장에 반대하셨다. 예수님의 복음 앞에서 지금의 교회는 엄청난 진입장벽을 가진 가진 자들의 사교모임일 뿐이다. 예수님이 만나신 창녀와 세리와 문둥병자와 장애자와 귀신들린 자가 교회에 오면 그들은 기겁하고 쫓아낼 것이다. 주님은 당신이 먼저 그들과 같이 하셨고, 먹고 마시고, 그들을 고치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줄곧 이야기 하셨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 기독교인의 영성은 율법주의, 기복주의, 성공주의로 물든 부자들의 기독교에 반대한 십자가 신학을 부르짖은 루터나 키에르케고르의 신학, 로이드 존스나 부흥과 개혁사의 책이 필요하다.  지나친 정치참여로 복음의 본질적 사명인 영혼 구원을 잊어버리고 사회구조를 바꾸려고 한 민중신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가 찾는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님을 알고, 우리 심령에 먼저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고자 하는 순전한 복음주의로 먼저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실천력이 없고 윤리가 없으면 머리만 큰 영지주의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와 신비와 방언 등에 대해서 지나치게 강조하여 오늘날 사도행전을 다시 써야 한다고 하며 예언집회와 금이빨 집회 등 성령의 능력을 기적과 체험 위주로 국한 시키는 신사도 운동같은 입장에 대해서도 분명히 경계를 해야 한다. 내 주변에도 스웨덴보리의 책을 읽는 목사님이 있다. 잠시 손기철 장로의 책과 동영상을 읽고 보다가 버렸다.

 

그리고 쓰레기류도 많다.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과 같은 책은 진짜 기복주의, 성공주의가 기독교 흉내를 내는 유사종교다. 하이퍼 칼뱅주의자들의 책도 문제다. 그러한 책을 대장간에서 자주 보는데 물론 거시적 한국교회의 설교 비판은 적절하지만 실제로 그 저자가 목회하는 교회 내에서 같이 생활해보니 여전히 그러한 복음의 진리를 알고 지적장난 속에서 남을 비판하는 일에 온통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또다른 영지주의자들이 되어 자신들은 영적 진리인 그노시스를 알고 있는 구별된 자로서 사람을 판단하지 아직도 부족한 형제를 돌볼 줄도 모르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줄 모르는 자들이 태반을 이루었다. 그리고 십일조를 내지 말라고 하면 그 소리에 위로받고자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 교회로 와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이상한 흐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러한 복음을 말하는 목회자들이 뒤로 돈의 유혹에 넘어가서 전국을 돌면서 모임을 이끌어 받은 교회에 내라고 부탁한 헌금을 사례비로 챙기고 교회에 일절 말하지 않고 당당하게 수입으로 여기는 것을 것을 보았다.

 

자연적교회성장을 운동한 NCD나 거기서 나온 두 날개 교회를 경험하였는데 나는 반대한다. 그들이 얼마나 영업적인 마인드인지 교회 컨설팅을 잘 하고, 건강한 교회로 세워주고, 전도부흥하는 교회로 세워주겠다고 다양한 교육을 하지만 결국 말씀이 일하지 않게 되었고, 프로그램으로 일하게 되었고, 돈을 많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전형적인 다양한 심리검사와 기질에 따른 사역자 세우기 등은 심리학적이고, 경영자적인 마인드까지 받아서 음향과 조명으로 감동을 연출하고, 음악과 각종 연주로 감정을 만들고, 마케팅으로 홍보를 하고, 상담심리학으로 그들을 마음을 해부하고 진단하는 다양한 성공노하우를 갖고 '목적이 이끄는 교회' 같이 상당히 부흥한 예를 들고 나오지만 결국 말씀을 약화시키고 나니 남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교회였고, 부흥이었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뿐이었다.  또 뭐든 귀신을 갖다 붙이고, 사단의 역사라고 하면서 이 지역에 귀신이 많아서 선포해야 한다고 말하고, 병에 걸려도 귀신이고, 보이지 않는 귀신이 자기 눈에 보인다고 말하며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고 다니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의 신학실종은 위험하다. 이미 천국을 갔다와서 보고나서 말하는 자들의 책은 내가 볼 때 쓰레기다.


과유불급이다. 뭐든 지나치면 항상 이단화되거나 비정상적인 흐름 속에서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제한할 수 없이 큰 분이다. 그의 생각은 크고, 그의 방법은 많다.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 앞에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조금만 미혹된다면 우리는 극단적인 주장에 빠져서 율법주의자들이 되거나, 그들을 비판하는 개혁주의 맹신자가 되거나, 혹은 신사도운동같은 은사주의, 신비주의에 빠지거나, 귀신론에 빠지거나, 사회적 불의를 보고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에 빠지거나 하게 된다. 그들은 극단을 갔기에 잘못된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항상 지금 살아 계시고, 우리에게 성경의 말씀을 통해 진리로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지금 내게 주어진 길을 그분과 동행하면 된다. 어떤 주의도 -ism도 반대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의 진리 안에서, 기도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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