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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예배설교 : 겸손한 자가 누리는 은혜

 

 


제목 : 겸손한 자가 누리는 은혜

말씀 : 눅4:25-27

1.신실한 믿음의 복

몇 년 전에 미국 MIT공대 경제학과 조나단 그루버 교수는 ‘종교시장구조와 종교참여 및 결과’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결론은 올바르고 열성적인 신앙생활은 영적으로 뿐 아니라 세상에 사는 동안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도 많은 유익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평강과 위로가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게 되며, 선과 의를 향하여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에 신앙심이 없거나 얕은 사람들보다 성공률이 훨씬 높아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예배출석률이 두 배가 되면 소득이 9.1%가 증가되고, 복지혜택은 16% 감소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혼인율은 높아지고, 이혼율은 낮아지며, 알콜, 흡연, 마약, 도박, 향락, 음란에 빠지는 경우는 무려 70%정도 감소하고, 범죄율은 35%이상 낮아지고, 행복지수는 30%이상 높아진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올바르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기쁨과 소망 속에 살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이 땅위에 사는 동안도 감사와 기쁨과 평안 속에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도 넉넉한 삶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너무 당연하지 않습니까?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릴 때에 주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영광의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나아가 주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기를 애씁니다. 주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가정생활도 성실하게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직장생활도 성실하게 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과 위로와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당연히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을 멀리 하고 싫어하게 됩니다. 거룩하고 아름답고 진실하고 성실하고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슨 마약이나 알콜이나 도박이나 향락이나 음란이나 거짓이나 폭력이나 도적이나 이런 범죄에 빠질 우려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들에 빠집니까? 마음에 평안과 위로와 기쁨과 만족이 없어서 그럽니다. 그런데 예수님 온전히 믿으면 마음에 평안과 위로와 기쁨과 만족이 있는데 그 딴 것들을 왜 거들떠 보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사람들의 가정이 어찌 평안하지 않겠으며 어찌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시1:1-3절에서는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운이며 축복입니다. 내 영혼이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가정이 잘되고 나라가 잘되는 비결입니다. 그러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그야말로 무한한 복이요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인생의 행복이 결코 돈과 명예와 권력과 세상 즐거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말씀묵상하고 기도하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 안에 있는 그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는 것은 물론 이 세상에서도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넉넉함을 누리며 가정이 평안하고 하는 일들이 잘되고 주께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사순절의 의미

여러분, 오늘 사순절 둘째주일을 보내고 있는데 사순절은 바로 그렇게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는 훈련을 하는 기간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6주간 중 주일을 뺀 40일간을 말하는데 한마디로 육체적인 것에 얽매어 있던 삶에서 돌이켜 좀 더 주님을 닮아가는 훈련을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이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함으로 주님의 생명의 은총을 더욱 풍성히 누리며 주의 역사를 이루어가기를 힘쓰는 기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순절을 영어로 Lent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고대 영어 Lang에서 유래된 말로 봄이라는 뜻입니다. 즉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땅속에 잠자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죽은 듯이 보이던 나무들이 잎새를 내며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 믿음도 더 이상 잠들어 있지 말고 활발하게 움직여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기간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잠들어 있으면 안됩니다. 마치 봄이오면 땅속에 있던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줄기와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활발하게 움직여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영적으로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들어 있지말고 영적인 기지개를 크게 켜고 열심히 말씀과 기도와 찬양생활해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이 생명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동시에 주님의 생명의 역사도 힘있게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 저도 은혜충만한 믿음생활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비단 새신자만 아니라 10년, 20년 다니신 분들도 이런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중직들도 있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경건의 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일본에 후쿠사이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친한 친구가 와서 수탉을 그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일주일 있다가 오라고 했습니다. 친구가 일주일 있다가 가니까 아직 그리지 못했다고 한달 있다가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달 있다가 갔는데 또 한달 있다가 오라고 하고, 또 한달 있다가 오라고 하고, 그러기를 무려 3년을 했습니다.

드디어 그림을 부탁한 친구가 인내의 한계에 달하여 “오늘은 그냥 돌아갈 수 없네. 지금 당장 수탉 그림을 주든지 싫으면 아예 그만두든지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후쿠사이는 그때서야 그를 데리고 그의 작업실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를 따라 작업실에 들어간 친구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작업실에 수백장의 수탉그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많은 수탉그림이 있는데 왜 3년 동안 그림을 안 준거냐?” 후쿠사이가 말했습니다. “여보게 친구! 나는 자네에게 가장 좋은 그림을 주고 싶었다네.” 하면서 자신이 보기에는 이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한 장의 수탉그림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좋은 그림은 그냥 그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노래도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훈련하지 않고 어떻게 좋은 군인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열심히 연습하지 않고 훌륭한 선수가 되겠습니까? 어떻게 열심히 연주하지 않고 좋은 연주자가 되겠습니까? 어떻게 육체를 꼼짝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육신이 건강하기를 바라겠습니까? 어떻게 열심히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고 찬양하지 않으며 은혜충만한 신앙인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지 않으면서 훌륭한 신앙인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내 생각, 내 고집, 내 경험, 내 편한대로 하면서 신앙이 성장하겠습니까?

여러분, 딤전4:7,8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여러분, 신앙도 훈련해야 합니다. 훈련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쉬운 것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어도 해야하고 어려워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훈련은 주님 앞에 서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성숙하고 성화된 모습을 가질 때 하나님 안에 있는 그 무한한 생명의 열매를 마음껏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사순절 기간에 좀 더 영적 훈련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경건의 훈련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들, 쉬고 싶은 것들, 안일한 것들, 물질적인 유익들, 내 경험적인 것들 다 내려놓고 자신을 주님 앞에 세우는 일입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 주님께 영광돌리고 말씀듣고 찬양하는 일이 더 소중한 일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말씀으로 영의 양식을 삼고, 기도로 주님과 함께 호흡하고,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경건의 훈련입니다. 이걸 잘못하면 세상에서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습니다. 자신의 모든 이성과 생각과 즐거움과 평안함과 경험을 다 내려놓는 신앙의 고백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백이 없이는 다른 것도 쓸데 없는 짓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드릴 때 내 영이 더욱 밝아지고, 생명력이 넘치고, 은혜가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충만해지고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과 은혜로써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며 주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며 생명의 열매를 맺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복된 삶이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인 풍성한 은혜를 누리려면 또한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를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흡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런 모습으로 은혜받은 두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돈 지방의 사렙다라는 곳에 사는 가난한 과부이고, 또 하나는 아람의 군대장관으로써 나병환자였던 나아만 장군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인 나사렛 사람들에게 이 두 사람을 소개하면서 당시에 이스라엘에도 많은 가난한 과부와 나병환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제쳐 놓고 이 두사람에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고향인 나사렛에 오셨을 때 고향사람들이 그 알량한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오셨을 때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면서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장군 이야기를 하면서 너희들이 그 알량한 지식과 경험을 버리고 겸손하게 엎드려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 이 두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들은 둘 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개처럼 여기는 이방인이었고, 게다가 하나는 당시 사람들로부터 멸시받고 무시당하던 과부였으며, 또 하나는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생겼다고 생각하는 나병환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때에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제쳐두고 이 두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외적인 조건들은 아무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그럴듯해도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해도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히 주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은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더럽게 여기고 무시하고 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엎드려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놀라운 은혜로 채워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렙다 과부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만큼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까? 한마디로 그녀는 자신의 모든 생각, 환경, 논리, 경험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열왕기상17장에 나오는 데 하루는 엘리야 선지자가 사렙다 과부를 찾아가 물과 떡을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가 어떤 상황이냐 하면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자기 가족도 먹을 것이 없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사렙다 과부는 엘리야에게 말합니다. 왕상17:12절입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지금 한끼 식량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이 한끼 식량으로 아들과 함께 밥을 해 먹고 죽기만을 기다려야 할 형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야 선지자가 뭐라고 합니까? 왕상17:13절입니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아니 선지자가 좀 체면이 있어야지, 그래 한끼 먹을 양식밖에 없다는 데 그걸 가지고 먼저 자기를 위하여 밥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아니 그래, 그렇게 딱하냐? 그럼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좀 보태주마, 나는 괜찮으니 너희들이나 해 먹어라. 그래야지 밥한끼 해먹고 죽어야 할 형편이라는데 그걸 달라고 하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럼 정말 이 선지자의 행동이 염치없는 행동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그들을 곤경에 빠트리려는 게 아니라 네 모든 상황과 환경과 가치와 생각을 내려놓고 일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사렙다 여인은 그 말씀을 믿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왕상17:15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보세요. 지금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딱 한끼 식사할만한 떡과 기름입니다. 그게 전 재산입니다. 그걸 먹고 죽기만을 기다려야 할 형편입니다. 3년6개월 비가 안왔기 때문에 어디서 꿔 올데도 없습니다. 꿔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굶주린 자식새끼에게 먹여할 그 한끼 식사를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바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식이 굶어 죽었습니까? 왕상17:15절부터 16절까지 다시 보겠습니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놀랍게도 한끼 식량밖에 안되던 가루와 기름이 한끼가 아니라 열끼 백끼 천끼를 먹을 수 있는 양식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만약 이 여인이 에이, 선지자님도 참 너무하십니다. 한끼 밥해 먹고 죽으려고 한다는데 그걸 달라고 하시니 세상에 염치도 없으시지 그런 말씀이 어딨습니까 하면서 그냥 자식 새끼 먹이는데 썼더라면 그들은 그 한끼 밥을 먹고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모든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드렸을 때 어찌된 영문인지 통에 가루와 병에 기름이 먹으면 또 채워지고, 먹으면 또 채워지고 하여 그 극심한 가뭄가운데서 그들은 염려없이 지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람의 군대장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엘리사 선지자가 이웃나라의 국방부 장관이 왔는데 감히 나와 보지도 않고 종을 보내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하니까 노발대발합니다. 건방진 놈, 감히 대 아람의 국방장관이 왔는데 나와보지도 않고 고작 종을 보내어 한다는 말이 뭐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고.... 그까짓 요단강에 가서 씻느니 차라리 우리나라에 있는 더 큰 강에 가서 씻겠다고 하면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종이 ‘아니 왜 이러십니까? 선지자가 더 어려운 일을 시켜도 해야 하는데 그까짓 요단강에 가서 씻는 일이 뭐가 어렵다고 이러십니까?’라고 하니까 나아만이 요단강으로 들어가서 씻지 않습니까?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씻어도 아무일어나지 않았지만 끝까지 시키는 대로 일곱 번 씻었을 때 나병이 깨끗이 낫지 않았습니까? 어떻게보면 인간적으로보면 황당한 일이었는데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하니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렙다과부와 나아만 장군의 공통점입니다. 인간의 논리, 경험, 이성 그거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고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경건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속에서 그냥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옳습니다. 하나님이 맞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나보다 백배 천배 억배 크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냥 겸손히 하나님을 편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이고 이것이 경건이고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순절에 우리는 이런 훈련을 하는 기간입니다. 겸손히 엎드리는 훈련입니다. 겸손히 기도하는 훈련입니다.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그 알량한 내 생각과 가치관과 의지와 경험과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능력이 임하고,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놀라운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사랑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이 넘쳐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과 능력으로 주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거룩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진실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사람앞에 인정받고 존중받고 사랑받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이 평안하고 형통하고 교회가 든든히 서가며 주의 영광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 사순절을 보내며 아니 주님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자신을 부인하며 주님 앞에 엎드려 예배드리고 말씀듣고 기도하는 등의 기본적인 경건의 훈련을 더욱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때에 진정 주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와 위로와 평강을 충만하게 덥입어 주님의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며, 주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도)

이제는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과 죄됨을 인정하고 더욱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때에 영적,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주님의 은총을 넉넉하게 누리며 주의 영광 크게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우리 모든 사랑하는 성도들과 저들의 가정과 저들이 영위하는 모든 일들 가운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인도 교통 역사 충만케 하시는 은사가 이제로 영원까지 함께 하시옵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기도)

영화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직 영광과 존귀만을 받으셔야 합당하신 주님께서 온갖 멸시천대 침뱉음 모진 채찍질과 심지어 십자가의 그 끔찍한 죽음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셨사오니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돌리나이다.

그러하오나 주님, 우리는 아직도 진정으로 겸손하지 엎드리지 못함으로 주의 은총 온전히 누리지 못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나이다. 주여, 저희들과 부족함과 연약함을 아시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시여, 특별히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가 더욱 모이기를 힘쓰며 주님 앞에 엎드려 말씀 듣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영적 훈련을 잘 받아서 주의 은혜 충만하게 덧입어 주님의 은총 온전히 누리며 주님의 거룩한 역사에도 감사와 기쁨으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함과 한계와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때에 우리들 자신 안에 주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과 소망이 가득하며 가정과 직장과 나라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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