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알아야할 기독장례식 관련 질문들

 

 

 


장례 때의 가장 많은 질문들

1. 임종시 곡을 합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별세했을 때 슬픔은 당연한 것입니다. 자연스런 감정이 북받쳐 우는 것은 괜찮습니다. 다만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계속 곡하는 것과 옛날 유교식 장례에서 ‘아이고 아이고!’하면서 곡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2. 상을 당했다고 알리는 등을 다는 것과 촛불 켜는 것, 향을 사용해도 됩니까?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상가임을 알리고 등을 다는 것은 문상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말하듯 귀신을 불러오는 것은 아닙니다. 촛불은 어두음을 쫓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향을 피우는 것은 상가의 상징행위로 혹은 분위기나 냄새 제거의 목적으로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3. 위패를 모시거나 지방을 써서 붙여도 됩니까?
이것은 기독교인으로 거부합니다. 유교식 장례법으로 사당이 없는 가정에서 화선지에 ‘누구누구씨 신위’라고 위패를 써서 예식을 가졌었습니다. 지방을 써서 모시는 것도 돌아가신 혼령이 그 자리에 임재한다는 빙의의 신앙 표현입니다. 믿는 이들은 조상의 넋을 종이에 써서 붙여 모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모셔야 합니다. 추모식 때 중심의 상징이 필요한 경우 위패나 지방 대신 아무개 성도의 제 몇 주기 추모제라고 써서 붙이는 것은 괜찮습니다. 

4. 상례시 음식물을 상위에 진설해도 됩니까?
고인의 영정 앞에 음식을 차리는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인이 평소에 잘 드시던 음식을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하여 차려놓는 것을 말릴 필요는 없습니다. 죽은 자는 음식을 차려 놓아도 먹을 수 없습니다. 불필요하게 유가족들을 괴롭히는 일입니다.

5. 운명한 후 고인의 옷가지를 지붕으로 던지거나 사잣밥을 준비하는 것은?
귀신들이 황천까지 안내한다는 의식의 표현입니다. 믿는 이들의 영혼은 천사들에게 받들려 하늘에 올라가지 귀신이나 사자들이 안내하는 것이 아니기에 필요 없습니다.

6. 수의와 유가족들의 복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는 이들 가운데도 고급 수의를 고집하는 경우를 봅니다. 몇 백만원, 혹은 유명한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몇 천만원까지 한다니 할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수의를 미리 마련하면 장수한다는 속설도 믿을 필요 없습니다. 간소한 수의를 마련하는 것은 좋습니다. 꼭 삼베로 만든 수의가 아니어도 평소에 잘 입던 양복 등을 입혀도 됩니다. 유가족들의 경우 집안의 풍습대로 하되 삼체로 만든 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자는 흰색, 혹은 검은 색 치마 저고리를 입거나 깨끗한 검은 양장을 입어도 될 것이며, 남자는 검정색 양복에 삼베 상장을 팔에 끼는 것도 무방합니다.

7. 임종시 돌아가는 분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이건 조심해야 합니다. 금방 돌아가실 듯 보여도 나중에 가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환자 앞에서는 장례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강압적으로 고백을 받아내려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예수님 믿으세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평안하세요” 정도로 말씀드려도 다들 알아듣습니다. 운명시간이 가까워 오면 오히려 가족들보다 환자 분이 마음이 차분하답니다.

8. 비기독교인의 상가에 가서 음식을 먹는 것은 괜찮습니까?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사도의 조언처럼 믿음이 연약한 자를 실족케 할 경우를 위해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 종교적인 이유로 거리낌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두어 가지 이유에서 상가에서 음식을 잘 먹지 않습니다. 하나는 유가족을 생각해서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분주하고 슬퍼하는 가족들 앞에서 떠들며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고, 봉사하는 이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며, 또 다른 이유는 음식을 여러 사람들이 먹다보니 위생적으로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멀리 간 경우, 혹은 가족들과 대화가 필요한 경우에 간단하게 떡이나 차를 마시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9. 문상을 가서 어떤 말을 상주에게 해야 합니까?
정중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로 받으세요. 천국 가셨습니다. 힘내세요. 주안에서 큰 위로 있으시기 바랍니다.” 등으로 말씀드리면 됩니다. 저는 특히 큰 며느님이나 둘째 혹은 셋째나 고인을 모시고 살았던 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 동안 고생 많으셨노라고 혹은 “고인에게 제가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면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10. 문상객이 뜸할 때 상주는 휴식을 취해도 됩니까?
본래 예로는 어긋나겠지만 기계가 아닌 이상 상주도 쉬어야 합니다. 사람의 체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끼리 순번을 정해 쉬고, 혹시 조문하러 갔을 때 내가 아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조용히 물러 나와야 합니다. 어쩌다 쉬러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와서 불러내면 어찌 쉬겠습니까? 나중에 연락을 드려 그때 갔었는데 뵙지 못했노라고 하면 더욱 감사할 것입니다.

11. 문상 시에 기독교인이 영정 앞에 절을 해도 됩니까?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제사드릴 때와 문상 때는 다릅니다. 제사의 죽은 자를 위해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조상을 귀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가는 길에 예를 표하는 방법으로 절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아까 적은 음식문제처럼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절하기보다 고인을 추모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나아보입니다.

12. 상주와는 어떻게 예를 표해야 하나요? 절을 합니까? 일어서서 인사합니까?
입식인 경우, 가정에서 장례를 치를 때 절을 합니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도 무방합니다. 저는 절하기보다 허리를 굽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조문객이 적은 가정은 문제가 아니지만 수천 명, 혹은 수백 명이 찾아오는데 절을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 상주들이 힘들어 견딜 수 없습니다. 상주가 엎드리면 나도 엎드리고 그렇지 않은 경우 서서 절을 해도 무례가 아닙니다.

13. 입관 때 반함을 하거나 고인의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잘라 넣어도 됩니까?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배격합니다.

14. 추모예배는 장자의 집에서만 드리나요?
옛날 농경사회에서 제사를 드릴 때 장자가 무언가 있어야 제삿밥이라도 먹는다 생각해서 장자에게 유산을 물려주어 제사도 장자가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법이 바뀌어 딸들도 유산을 상속하게 됩니다. 추모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고인을 추모하고, 가족끼리 화목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둘째나 셋째, 혹은 따님의 가정에서 추모예배를 드려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15. 화장을 해도 됩니까?
아직도 몇몇 교회에서는 매장만을 고집하고 가르칩니다만 현재 우리나라 국토는 좁은데 매장만 고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못되어 육신은 먼지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먼저 화장의 풍습을 권장해야 합니다. 화장 후 유골을 부수어 강가에 뿌리거나 산기슭에 뿌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자여보호에 맞지 않고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보다는 평소에 잘 가는 기도원이나 교회 앞마당에 뿌리는 것이 의미 있고, 요즘엔 납골당이 잘 되어 있어서 화장을 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습니다.

16. 이장을 할 경우 몇 년째에 합니까?
보통 20년이 지난 후 합니다. 그래야 완전히 육탈되어 백골만 남아 이장하기 좋습니다. 만약 부득한 경우에 이장할 때는 마음이 약한 이나 여성들은 피하고, 대표가 산 일 하는 사람들과 협력하여 이장하는 것이 좋습니다.

17. 매장 시 지방에 따라 시신만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괜찮을까요?
지방에 따라 매장할 때 관에서 유해를 꺼내 따로 매장하는 탈골 방법도 있습니다. 그것은 지방의 풍습에 따르면 되고, 그 때문에 논란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 대신 간소하게 목관을 사서 써야 경제적입니다.

18. 고인이 사용하던 성경을 관에 넣어도 됩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 이장할 때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시신 손가락 유골이 성경책을 파고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히려 성경 등은 후손이 잘 보존하면서 신앙 유산으로 남기면 좋습니다. 믿음으로 천국 가는 것이며, 천국에서 하나님을 직접 만나 예배하므로 성경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19. 묘 앞에 세우는 비석에는 무슨 말을 적어 넣을까요?
아무개 성도, 아무개 집사, 권사, 장로 등으로 쓰되 비석은 간단하고 검소하게 합니다. 가정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세우면 됩니다. 크다고 자랑할 일도 부러워할 것도 아니고 적다고 부끄럽게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비석에 아들 이름만 새기거나 아들, 딸, 사위, 후손의 이름을 새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인이 살아 생전의 가족들의 이름은 손자들까지 놓으면 나중에 아이들과 고인과의 연결고리가 되므로 좋습니다. 고인의 이름 생년월일, 간단한 성구들을 넣으실 수 있으면 그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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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기도자세 - 기도의 응답과 감사의 기젹

 

 

 
 
기도 응답에는 ‘그래’와 ‘안 돼’ 그리고 ‘기다려’ (Yes/No/Wait)라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기도 응답이 Yes(그래)로 나오면 우리는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그러나 응답이 No(안 돼)로 나오면 실망합니다.

Wait(기다려)의 경우는 No(안 돼)와 분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기다리라는’ 이 기도 제목에 대해 하나님이 No(안 돼)를 하신 것으로 판단을 내려야 할지 잘 모릅니다.

잘못된 기도는 있으나 응답이 없는 기도는 없습니다.

바른 기도는 이미 그 기도 속에 응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가 구하는 바를 거절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 동안 친근하게 지냈던 나사로가 병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는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에게 SOS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나사로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만약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되어 이런 상황에 던져졌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 기도의 응답이 지연될 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기도의 열쇠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열쇠만 가지고 있다면 조금 더디더라도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소위 고통이나 불행을 겪으면 제일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왜, 어찌해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묻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질병과 죽음이 온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주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나사로 인생의 현실에 질병과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인생의 도상에서 질병과 죽음을 만나거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만은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질병이나 죽음의 이유를 납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지속된다면 다릅니다.

우리가 극복하지 못하거나 인내하지 못할 상황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이 사랑하시는 복음의 사도가 되었음에도 수많은 고난과 싸워야 했습니다.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생명의 위험과 더불어 동족인 유대인들의 참소와 살해 위협을 당했습니다.

수 차례 감옥에서 여러 시련을 당했습니다.

바울이 이 모든 고난을 견디고 이겨낸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로마서 8장 35절 이하의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바로 하나님 사랑의 확신이었습니다.

고통의 현실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더라도 이것만은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다면 마침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다음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어떤 섭리입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고통이 마침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룰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고통이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1장 4절의 말씀 선포가 아니었습니까?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나사로가 결국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다움도 생각해야 합니다.

나사로가 죽음에서 일어나 부활한 사실 말입니다.

그것은 치유보다 더 좋은, 죽음을 이긴 놀라운 승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죽음이 인생의 결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선포하셨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지연될 때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 응답이 지연되더라도 믿어야 합니다.

더 좋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숨겨져 있음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아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내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은 다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습니다.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더 좋은 방법으로 역사하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다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궁극적으로 선하신 섭리를 믿을 수 있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기도 열쇠밖에 없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으로 모두가 슬퍼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만에 그 가정에 도착하신 예수님도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시기만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섭리, 즉 부활의 섭리를 아셨기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 확신에 근거합니다.

요한복음 11장 42절에서 우리는 확신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러므로 삶이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기도 응답이 지연되고 있어도 만일 하나님의 선한 섭리와 사랑, 그리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야말로 이런 감사의 기적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도란 감사의 기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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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알아야할  금식기도의 자세  

 

 

 

 금식기도  
 
금식기도는 예수님께서 친히 하셨고(마4:2), 가르치셨으며(마6:16-18, 막2:18-20), 초대교회 제자들도 하였습니다.(행9:8-9, 13:2-3, 14:21-23)

금식기도는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할때  신앙 성장에 큰 유익을 줍니다. 자신의 문제 해결이나 육신적인 응답을 받기 위해 금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과 같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금식은 영적 성장을 가져오지 못하며 도리어 초보에 머무르게 할 뿐입니다.

그러면 왜 금식을 해야 합니까? 금식기도에 임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시키실때에 금식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금식 중 힘들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확신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 금식하는 영적 목표들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하십시오.(빌3:13-14)

3. 자신과 남을 위한 금식기도가 되도록 하십시오.(빌2:4)

3.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십시오(마6:16-18, 렘14:12)

5.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슥7:5-7)

6. 애통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시69:10)

7. 겸허한 태도로 해야 합니다.(시35:13)

8. 금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으며 해야 합니다.(사58:1-12) 사랑의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다음의 말들을 명심하십시오.
"올바른 금식은 인간의 육체적 본능에 의해 생기는 것과 성령을 거스리는 두 개의 커다란 문제를 해결시켜 준다."

"올바른 금식은 자기의 뜻을 고집하는 영혼과 자기의 욕망을 고집하는 육제를 성령께 복종시킨다."

"금식을 통하여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다."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기도하라"

"힘을 다하여 계속하라, 시름하고, 싸우고, 기도하라. 그래서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짓누르고 승리의 날을 받으라."(찰스 웨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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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주일낮예배후 직분자 모임(회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배 후에 우리가 모여 이 회의를 모이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택하여 아버지의 자녀가 되게 하셨음을 감사하며 이렇게 직분을 주셔서 모여 의논하는 시간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직책을 성실히 이행치 못하고 충성을 다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옵소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서 열매가 생기기를 기다리고 계시오니 우리 모두 열매 맺는 일군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우리의 의논하는 일들이 하나님께 영광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서로 좋은 생각을 하게 하시고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의견을 말하게 하시고, 타인의 의견을 서로 존중하게 하옵소서.

 

모든 결정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의 부흥과 발전에 도움이 되게 하옵소서. 여기서 결정된 일들을 책임있게 수행하고, 협력하여 성취되게 하옵소서. 

 

책임진 회장 이하 모든 임원들에게 건강과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이 모임을 잘 이끌어 가게 하옵소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으니 착하고 진실한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기쁘신 뜻대로 진행되기를 바라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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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인물들의 기도  

 

 

 

   
약속/  주님은 나에게 좋은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당신의 말씀은 나의 소망을 보장해 주십니다.

 


주님은 내가 살 동안 나의 방패와 분복이십니다.    

 


죤  뉴톤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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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신뢰 / 오, 주여 우리들이 스스로 설 수있고 당신은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생각을 버리게 하소서

 


존 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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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기도 / 사랑하는 주님, 나를 누구에게나 공손하고 친절한 어린이로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주님은

 


어떻게 자신을 알 수 있었는지 가르쳐 주시겠어요?

 


무명어린이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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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그릇/ 주여, 보소서 여기 채워져야 할 빈 그릇이 있나이다. 나의 주여, 그 그릇을 채우소서. 내가 믿음 안에서

 


약하오니 나를 강하게 하소서. 사랑에도 냉냉하오니 나를 온화하게 하시고 뜨겁게 하소서 그러면 나의 사랑이 나의

 


이웃에게로 전해질 것이나이다. 내가 강하고 굳센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하옵나이다. 내가 당신을 의심하고 당신을 신뢰

 


할 수 없을 바로 그때 그러하옵나이다. 오 주여. 도우소서. 나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고 당신을 신뢰하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들 중에 귀한 것을 내가 간직하여 왔나이다. 나는 가난 하옵나이다. 부요하신 주께서

 


오셔서 이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나는 죄인이오며 당신은 완전하옵나이다. 나와 함께 하소서. 이곳은

 


죄가 넘치오나 당신 안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이러므로 내가 당신과 함께 거할 것이 옵니다.

 


나는 주께 받을 수 있사오나 주께 드리지는 못하나이다.

 


루터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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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멀고 무기력하기에 /  주여, 나는 눈 멀고 무기력하며 어리석고 무지하나이다. 나를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시며

 


행하게 가르쳐 주옵소서. 나를 이끌어 주시길 원하나이다.

 


마틴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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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사함을 위한 기도 / 오 주여,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의 태만함과 우리의 과실에 대한 죄 우리의 젊었을 때의 죄와

 


성숙했을 때의 죄,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몸이 지은 죄 우리의 비밀스러운 죄와 드러난 죄. 우리의 무지와 뜻밖의 일로

 


인한 죄를 사하소서. 더욱 교묘하고 뻔뻔한 우리의 죄는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였사오며 다른 사람들도 기쁘게 하여

 


왔사옵니다. 그 죄들을 우리는 알고 기억하고 있사오며 잊어버리고도 있었사옵니다.

 


그 죄들을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기려고 하였사오며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을 성나게 만든 죄들입니다.

 


오 주여, 그 죄들을 용서하소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은 당신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죄들을 용서하소서.

 


웨슬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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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영원하신 대제사장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를 믿음과 진리와 사랑 가운데

 


세워 주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분들과 더불어 성도의 분복을 누리게 하소서, 모든 성도들과 군왕과 통치자들

 


과 그리고 우리를 핍박하는 이들과 십자가를 대적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나이다.그리고 생명의 열매가 풍성하고 그리스

 


도 예수 안에서 온전케 되기 원하며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나이다. 아멘

 


폴리캅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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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의 기도 / 오 주여, 내가 가는 길에 당신이 함께 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무명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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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을 통해 영생을 / 주여! 저를 하여금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싸움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심이 있는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어둠이 있은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다 주는 아들이 되게 하소서. 하늘에 계시는 주여! 저로하여금 당신의 뜻을 알게 하소서. 위로받기 전에 남을

 


위로하고, 이해받기 전에 남을 이해하는 아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남에게 줌으로써 받을 수 있고 남을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을 수 있음을 주여,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죽음을 통해서 영생을 얻게 됨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아멘

 


프란시스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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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복음화의기도 /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이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소서

 


김준곤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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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소녀의 기도 / 오 크신 주님이여. 내 마음 속에 촛불을 밝히사 그 안에 있는 것을 보게 하시고 당신이 거하실

 


곳의 쓰레기를 치우게 하소서.

 


작가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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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튼 어부의 기도 / 참 좋으신 사랑의 하나님. 당신의 은총의 바다는 너무나 넓고 나의 배는 너무나 작나이다.

 


무명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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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뜻에 순종함/ 오 주여, 당신은 나를 위한 최고의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이다. 당신이 만족할 수 있도록 무엇이든

 


이루어지게 하소서. 당신의 뜻이 무엇이며 어느 정도이고 또 언제 해야 하는지 나에게 가르쳐 주소서.

 


아켐피스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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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에 대하여/ 오 주여, 아는 것이 곧 값진 지식이요, 사랑하는 것이 곧 값진 사랑이요, 칭찬하는 것이 곧 당신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요.존중하는 것이 곧 당신 보시기에 가장 고귀한 것이요, 미워하는 것이 곧 당신을 거역하는

 


것임을 시인하게 하소서. 내가 보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시며 매가 듣는 것으로 정죄하게 않게 하소서. 오직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서 바르게 판단하시고 무엇보다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신을 기쁘게 하는 것을

 


찾고  또 행하게 하소서.

 


아캠피스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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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영광의 왕 예수 그리스도시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몰약을 선하게 사용하게 하시고 우리는 진실한 마음의

 


향기를 그에게 드리드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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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기독결혼식   ♥ 크리스천 결혼 예배 ♥  


 

 


기억에 남는 주례를 위한 아이디어 10가지

 

1.혼인서약문을 신랑 신부가 직접 작성하도록 해보십시오.

대부분의 기혼자들은 혼인서약의 내용을 잊고 살게 마련입니다. 고작 “아멘”이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도의 대답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이미 정해진 혼인서약문을 주례자가 낭독하고

서약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는 그저 대답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신랑과 신부가 스스로 혼인서약문을 작성하고 주례자가 미리 그 문구를 수정해주는 방법을 사용해보십시오.

서약의 내용을 만드는 일 자체가 신랑 신부에게 소중한 공부가 될 것이고 서약의 내용에 본인들 스스로의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을 것입니다.
물론 주례를 맡은 목회자가 그 내용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세밀하게 조언을 해주어야만 내용이 충실한 서약문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가능하면 결혼식장에서 이 서약문에 신랑과 신부가 직접 서명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2.주례설교 원고를 신랑 신부에게 나눠주십시오.

일생에 한번 뿐인 결혼식을 위해 단 위에 서 있는 신랑과 신부는 대체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진땀만 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하객들 앞에서 잔뜩 긴장한 탓도 있겠지만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압박감에서 오는 부담감도 클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례자가 아무리 좋은 권면을 한들 그 내용이 머리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를 바라는 건 분명 지나친 기대일 것입니다.
차라리 신랑 신부가 신혼여행지에서 안정감을 되찾고 결혼에 관한 생각을 되짚어 보며 다시 한번 읽어볼 수 있도록 원고를 선물해 보십시오.

실제로 이렇게 하는 목사님들이 몇 분 계십니다.
어떤 목사님은 또 결혼주례가 담긴 비디오 테잎을 신랑 신부에게 선물하기도 합니다.

시간 날 때마다 부부가 함께 틀어보며 결혼의 의미를 되새겨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영락교회의 한 장로님은 45년전에 받은 주례설교를 녹음해 해마다 결혼기념일맞아 듣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노력이 단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신랑 신부의 결혼생활을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3.신랑 신부에게 제대로 된 결혼준비를 시키십시오.

하다못해 차를 운전을 하는데도 면허증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런 마당에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인 결혼을 하는데는 1시간도 안되는 결혼식을 치르는 것으로 얼버무리고 마는 것이 고작입니다.
제대로 된 결혼준비란 단순히 혼수품을 저렴하게 마련하거나 신혼여행을 의미있게 보내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생활을 통해 부부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행여나 부부싸움을 하게 되면 어떤 요령이 있는지, 가사분담든 어떻게 하고, 가정경제는 누가 어떻게 담당할건지,

자녀에 대한 계획은 어떠한지, 부부간의 신앙성장을 위해서는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등등.
숱한 실제적인 문제들을 서로 솔직하게 대화하고 해결할 수 있는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혼수감입니다.
주례에 앞서 신랑과 신부를 만나 이러한 실제적인 가르침을 들려주십시오.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를 비롯한 전문연구기관에서

실시하는 결혼예비학교에 참가하도록 권유해 보십시오.
결혼예비학교를 거친 커플과 그렇지 않은 커플 사이엔 삶의 질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4.실제적인 가르침을 주십시오.

한 목사님은 주례설교에서 다음과 같은 권면을 하곤 합니다.
“남편되는 신랑에게 권면합니다
- 결혼기념일과 아내의 생일을 잊지 마십시오.
- 나무를 가꾸는 정원사의 심정으로 아내를 대하십시오.
- 모든 일을 아내와 의논하고 결정하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 진정한 행복은 사랑의 대화입니다. 많은 대화를 나누십시오.
- 마음에 상처를 주는 농담이나 가족의 이야기를 삼가십시오.
- 남편의 매력은 너그러움입니다. 한 걸음 양보하십시오.
- 가정의 경제를 아내에게 일임하여 보람을 갖고 살림에 임하도록 하십시오.

또 아내되는 신부에게 권면합니다.
- 아름다움과 재치와 근면성이 있는 현숙한 아내가 될 것을 꿈꾸십시오.
-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여 식탁을 친교와 화목의 장으로 가꾸십시오.
- 웃으며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결코 혼자 중얼거리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 남편에게 혼자만 지낼 수 있는 정신적인 휴식시간을 주십시오.
- 중요한 일은 꼭 남편의 결정을 따르십시오.
- 남편의 수입에 맞추어 규모있는 살림을 꾸리십시오.
- 가정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축복이 머물도록 하십시오.“
왜 그렇게 사소한 일까지 시시콜콜하게 잔소리를 하느냐는 분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젊은이들이 결혼주레에서 바라는 것은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실제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5.신랑 신부의 기억에 남는 결혼예식을 고안하십시오.

주례설교 중간에 신랑 신부가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의 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을 마련해 보십시오.

미리 신랑 신부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오도록 주문하면 됩니다.

편지를 낭독한 후엔 새가정을 이루는 신혼부부와 이들을 떠나보내는 부모님들을 위해 주례자가 기도해 주십시오.

 당사자들은 물론 생각없이 들린 하객들까지도 감동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 특별한 선물도 생각해 보십시오. 한 목사님은 주례를 설 때마다 신랑 신부에게 커다란 양초를 하나씩 선물한다고 합니다.

부부가 오붓하게 마주앉아 대화할 때마다 그 양초를 키도록 하고 양초가 다 달았을 즈음엔 다시 한번 주례자를 찾아와

그동안 지내온 시간들에 대해 들려달라는 것입니다. 점차 사라져가는 부부간의 대화를 회복하고 부부간의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신랑 신부가 부부 십계명을 스스로 만들어 서로에게 약속하도록 하고

그 내용을 결혼예식 순서지나 청첩장에 소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6.주례자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십시오.

한 목사님은 딱딱한 권면보다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얽힌 경험담들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것으로 주례를 대신하곤 합니다.
결혼생활에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나 감동적인 순간도 이야기 하지만 그것보다는 가장 위험하고 위태로웠던 경험을 들려주는데

주안점을 두는 겁니다. 심지어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생각하고 홀로 눈물을 곱씹던 아픔들까지 고스란히 들려주는 겁니다.
과거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쏟아놓는 모습을 보면 사회적으로 덕망도 있고 성공한 목회자로서 존경을 받아온

그 목사님이 정말 그러한 아픔을 겪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러한 주례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흡인력으로 결혼예식에 참가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 영혼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습니다. 또 부디 결혼에 대한 환상이나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서약한 결혼을

경솔하게 여기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권면하는 힘도 갖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도덕률보다는 차라리 솔직한 경험담이 감동적이게 마련입니다.


7.참석자들을 고려하십시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 두 사람만이 아닙니다. 신랑 신부의 부모님을 비롯해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주체입니다. 그

런 점에서 주례자는 결혼식 하객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만 기억에 남는 주례사를 남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객들 가운데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불교 신자이지만 어쩔 수 없이 평소의 친분 때문에 교회에서의

결혼식에 참가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불신자를 전도하기 위해 한번 총동원주일 행사를 마련하려면 숱한 노력과 비용이 소모되지만

결혼식에는 제 발로 찾아온 전도대상자들이 수두룩하게 마련입니다.
같은 메시지를 전할 때도 보다 보편적인 언어와 표현법을 사용하십시오.

일평생에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 차근차근 기독교의 사랑에 관해 설명한다면

신랑 신부뿐만 아니라 하객들 모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례를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8.과감하게 특별한 순서를 도입해 보십시오.

미국에서는 결혼식에서 당사자들만이 서약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까지 서약을 하는 이색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부모서약’이라는 것입니다.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오늘 자녀들을 결혼시키는 우리 부부 두 사람은 늘 사랑과 기도로 신랑 신부를 후원하고 서로를 섬기는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자녀들에게 가정생활의 참된 모범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을 하나님과 여러 친지들 앞에서 서약합니다.

또 한번 떠나보낸 자녀들을 우리의 뜻대로 먼 거리에서 조정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자녀들이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도록 힘써 기도하는 후견인이 될 것을 다짐합니다”
또 자녀 가운데 한 사람이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편지를 낭독하고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이에 대한 답례로

몇가지 권면을 들려주는 편지를 낭독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울러 하객들이 신랑 신부에게 들려주고 싶은 축복의 말들을 써넣을 수 있는 사인 보드(sign board)를 마련해 두었다가

신혼부부에게 선물할 수도 있습니다.


9.신랑 신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십시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가운데는 신랑 신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찾아온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부모님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나 이웃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더구나 신랑측 하객들은 신부에 대해 아는 부분이

거의 없을 것이고 신부측 하객들도 신랑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랑 신부에 대해 아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결혼식장의 분위기는 반대로 산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희미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주례자는 신랑 신부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결혼 당사자들의 출생이나

어린 시절에 얽힌 에피소드, 신랑 신부의 버릇이나 특징 등을 소개해보십시오. 또 신랑 신부의 경력이나 앞으로의 소망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하객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신랑 신부의 장점과 단점,

취미나 공통점, 별명이나 신앙생활 경력 등을 들려주셔도 됩니다.
이를 통해 목회자가 예비 부부에게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드러낼 수도 있고 보다 친밀한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결혼식을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선 결혼식 전에 신랑과 신부를 만나 부담없이 대화를 나눠보아야만 합니다.


10.결혼주례의 ‘아프터 서비스’를 시도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주례가 결혼식장에서 단 한번의 행사로 끝나 버립니다.

그러나 보다 의미있는 주례는 결혼식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신랑과 신부를 돌보는 것으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신랑 신부를 만나 보십시오. 그동안 귀로 듣고 속으로 예상했던 것과 신혼부부들이 실제 결혼생활에서

겪는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경우엔 예상하지 못한 갈등요소를 발견할 수도 있고 배우자에게서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고 충격에 휩싸인 커플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잠시라도 함께 생활해 본 신혼부부들을 다시 한번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새롭게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가능하면 집으로 직접 초청해 선배의 입장에서 신혼부부들에게 필요한 실제적인 가르침을 들려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결혼주례의 ‘아프터 서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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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우리의 약점과 강점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세속적인 문화는 이력서를 잘 작성하고,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잘 관리하고, 인맥을 이용하는 등 우리의 강점을 잘 살리고 약점을 감추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의 약점을 바라보는 관점은 이와 매우 다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이같은 약함을 공개하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우리가 무능하다는 느낌만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이같은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 

최근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는 3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연약함을 그리스도께 맡기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를 때, 그분은 우리의 약함을 포함해 모든 것을 십자가 발 밑에 내려놓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고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깨진 모습과 부족한 모습 또한 원하신다.

사실, 우리가 약함을 그리스도께 내려놓지 않는다면, 이는 극복할 수 없는 약함으로만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를 먼저 하나님께 내려놓지 않으면하나님께서 이를 바꾸실 수 없을 뿐 아니라 바꾸지 않으실 것이다.

2. 연약함을 받아들이라

우리의 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스도께 이를 맡기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는 우리가 먼저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께 맡겨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순서가 어떻게 되었든지 확실히 알아야 할 점은 우리가 약함을 받아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경우, 우리의 약점을 개선하기 위한 길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길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천성적으로 부끄러움으 많이 타서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인물도 자신감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면서 성령을 의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3. 당신이 약한 분야에서 강한 인물과 협력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 중 하나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실패하는 영역에서 타고난 전문성을 발휘하는 자들을 붙여주시는 것이다. 그는 사업적 파트너일 수도 있고, 친구나 직장 동료 또는 교회 멘토나 심지어 매우자일 수도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께서는 관계를 쌓아나가면서 우리의 약한 부분을 강하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이들을 보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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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헌금에 관한 이야기 - 피 섞인 헌신

 

 

 

 

 피 섞인 헌신

 

원주에서 차로 두어 시간 벗어난 시골에서 첫 목회를 할 때였다. 볼일이 있어 택시를 타고 원주 시장에 갔다. 시장을 둘러보던 중 한구석에서 물건값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사람들이 있어 시선을 돌렸다. 자세히 보니 우리 교회에 다니는 원귀숙 집사님이 가게 주인과 나물값을 두고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산에 가서 뜯은 나물을 상인에게 넘기려고 하는데 서로 가격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200원을 더 달라고 조르는 집사님과 못 주겠다고 우기는 상인이 서로 밀릴 태세가 아니었다. 집사님이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주인과 실랑이하는 것을 보고 달려가 내 돈을 주면서 끝내려고 하는데 마음속에서 강한 음성이 들렸다.

“이 나물은 주일 내내 산을 돌아다니며 고생해서 뜯은 것이다. 또 버스값을 아끼려고 시내까지 걸어와 주인과 어렵게 흥정을 하며 팔아 돈을 마련했다. 이처럼 피 같은 돈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렸는데 이 헌금으로 쉽게 택시를 타고 다니는 목회자가 그까짓 200원 가지고 싸우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돌아오면서 다시는 성도들의 손으로 드린 피 섞인 헌신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김상현 목사(인천 부광교회)

 

 푼돈에 뭉치 마음

 

생활보호 대상자로 폐지를 주워 팔아 생활하는 할머니 집을 심방한 적이 있습니다. 가난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 한 켠의, 움막을 겨우 면한 집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웅크린 자세로 들어가 무릎을 맞대고 함께 심방 예배를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깨끗하게 펴진 낡은 만 원권 지폐 두 장을 수줍어 하며 내미셨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목사님인데, 책 사 보세요"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몇 번을 사양하면서, 주일에 감사 헌금으로 드리시라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지못해 받아 와서 그 할머니 이름으로 감사 헌금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헌금입니다. 두 렙돈을 드린 과부와 같은 그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집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교회에 다니며 대접을 받으려면 매월 10~15만 원 정도는 헌금으로 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가 참 안타까웠습니다. 언제부터 헌금의 정신은 사라지고 헌금의 액수만을 따지게 된 것일까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돈 이전에 마음입니다. 뭉칫돈일지라도 쥐꼬리 같은 마음으로 드릴 수 있고,

푼돈일지라도 뭉치 마음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뭉칫돈에 쥐꼬리 마음이 아니라 푼돈에 뭉치 마음입니다. 마음을 드릴 수만 있다면 처지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큰 헌금, 큰 헌신을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딱! 붙어살자」/ 홍정근

 

* 금언: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이다. - 마르틴 루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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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안에서 살아가는 방법 (How to live in the Spirit)


 

 

 

1. 삼위일체 하나님께 집중한다.

   세상에 많은 주제들이 있고 마음을 끌고 유혹하는 것들이 많을지라도 다 다루지도 말고 마음이 끌리지도 말려면 먼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제 일이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한다.

 

2.  말씀과 기도를 하루에 아침에 한 시간 이상 한다.

  말씀은 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령의 임재가 있도록 하는 것을 목 표로 한다. 하나님앞에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성경연구와 간구의 시간은 따로 연장하여 갖도록 한다.

 

3.  말씀충만은 성령충만이다.
말씀을 묵상하고 늘 말씀에 순종하는 의로운 삶을 살아간다. 의로운 삶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인데 이 삶이 성령충만을 유지하고 다시 받는 최적의 조건이다.

고넬료의 성령받은 사건을 생각할 것. 예수님을 전할 때에 의인이었던 고넬료는 설교를 듣는 중에 성령을 받는다.

 

4. 날마다 말씀을 양식으로 먹으라.

먹지 않고 지내는 날이 없도록 하라.

 

5.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회개하고 이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으며 우리는  정결하여지고 그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선물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의 대가이다. 선물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6. 언제나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성령의 역사속으로 들어간다.

성령의 다스리심안으로 들어간다. 나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고 열매맺게 된다.

 

이때에 성령의 주시는 방언을 하게 되는데 계속 방언을 한다.

이는 중보기도로서 마땅히 제사장이 해야하는 기도인 것이다.

사무엘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하였다. 이는 제사장으로서는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는 죄가 되는 것이다.

6.1 몸이 아픈 곳에, 무거운 곳에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치유안에 거하라. 우리는 몸과 영과 혼이 다 거룩하게 보존되어야 한다.


7. 타인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라.

기도할 때에 타인이 생각나거든 그를 위하여 충분히 기도한다. 마음속에 되었다 할 때까지 기도한다.

 

8. 죄의 종이 되어서는 안된다.

죄의 종이 되면 즉시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나를 헌신한다. 재헌신하는 것이다. 이는 죄를 지으면서 나를 죄의 종으로 내가 주었기 때문이다.

 

9. 평안과 기쁨을 확인하라.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내가 임하여 있다는 증거이다.

 

평안은 어떤 상태에서든지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이며 기쁨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를 행함으로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 증거이다. 이때에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잘 될 것이다.

 

 

10. 시대를 분별하라.

유혹케 하는 것과 귀신의 가르침이 횡행하는 시대이다. 교회의 부정적 운명론에 빠지지 말라. 그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고 잘못된 것이다.

 

10.1  이제는 전도를 하는 시대가 아닌 닫힌 문의 시대라고 하는 자들도 있다. 개척교회가 너무 어렵기만 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 아는 것이다. 환란 때에 교회가 고통을 당한다고만 주장하는 이들은 너무 부정적이다. 교회는 승리한다. 성령충만한 사람을 하나님은 보호하시고 승리하게 하신다.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10.2  교회의 통합을 말하면서 혼합주의 정책을 쓰는 것은 사단의 전술이다. 1년 전인가 2005년 세계일보에 “내 것 고집버려야 종교갈등 치유“라는 기사의 글이 실렸는데 어떤 신부가 종교혼합정책을 쓰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성당에 봉축 연등을 내걸고 108배 행사를 갖는 등 대거 고산성당 정 홍규 (51세) 신부의 종교간 벽 허물기 노력이 보도된적이 있다. 그는 대구 지하철 참사희생자를 위하여 장승굿을 치르기 위하여 승려와도 만났다고 하는 신부이다.  이것은 귀신들린 행위밖에는 안된다.

 

성경은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상숭배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십계명에 나온다. “그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안에서나 하는 이야기지 그런 구태의연한 소리 하지 마쇼“라고 세상은 말한다. 그렇다. 세상은 우상숭배라고 하지 않고 타종교라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임이 분명하지 않는가? 당신이 거듭난 기독교인이라면 이러한 구분은 당연히 되어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엄청 잘못 가는 것이다.

게다가 이 신부는 굿까지 하자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상숭배뒤에 사단과 귀신의 세력이 주장하고 있음을 안다. 그런데 굿을 하자고 찾아다니는 것은 끌려다니는 것이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는 못하고 오히려 이미 첩자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은 내 것을 가지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외쳐야 하며 그것으로 세상에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말씀의 정확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러면 목숨을 걸어도 되지만 말씀의 정확한 해석이 없다면 목숨을 걸라고 해도 걸 확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개신교 안에서도 이러한 구분이 없고 유야 무야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속고 있는 것이다. 최근 2005년 8월 옥 한흠 목사님이 승려를 만났다고 한다.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성경해석이 부족하여 잘못 말한 것이 있다고 하자.(휴거의 시기에 대하여도 말한 바가 있다가 취소함.) 그러나 성경을 가르치고 올바르게 가르친다는 소문이 난 옥한흠 목사님이 대화를 하기 위하여 승려를 초빙하였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가 구원을 얻지 못하였다면  옥 목사님은 당연히 구원의 문제부터 짚고 나가야 한다. 사회의 정화나 이런 문제를 같이 논의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혼합주의는 배타주의의 반대말이 아니라 정결한 삶의 반대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성령충만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신 신앙과 헌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신앙의 어떤 노력이나 방식으로 취득하지 않는다.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고 올바로 할 때에 나를 헌신할 때에 종으로 드릴 때에 목숨을 바칠 때에 성령충만을 주신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성령충만을 주신다.

 

11.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라.

오늘날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주제들이 있다. 배울 것, 볼 것, 구경할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 집중하여 그분과의 교제를 가장 중요시하고 실제적으로 교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맛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단순하고 맹목적이라고 사람들이 말할지 몰라도 최소한 맹목적인 것은 아니다. 눈감은 장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한 것은 좋은 것이다. 성령 안에서만 거하라. 그것이 답이다.

 

말씀대로 믿어라. 사단은 이제 세부적으로 이래 저래 말씀을 안 믿고 부정하고 의심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정확히 해석하고 그대로 믿어야 한다.

 

12. 교회와 사역자는 신앙안에서도 잘못된 것들은 다 구별하고 정결함을 유지해야 한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부흥을 말씀하시는데 해골조차 살리신다.  이때에 하나님은 에스겔 44장에서 제사장들을 다시 세워주시고 교육하시는데 그중에 부과된 것이 다음이다.

 

에스겔

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1) 거룩과 속된 것을 구별하라.  : 거룩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속된 것은 피조물의 세계이다.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며 그분을 거룩히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되는 대로 가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면 전부라는 생각을 떠나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기는 것을 가르치고 훈련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위임명령에 포함된 것이다.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교회가 그렇게 하지 않으니 세상이 갈 길을 몰라 죄악속에서 헤미이는 것이다.

 

2)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부정하게 사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부정은 정결하지 않은 곧 더러운 것이다. 예수님의 피로 씻고나서 그는 정결하게 되어 성령의 임하심을 체험하고 그렇게 하여 그는 성령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모든 부정한 생각을 버리고, 부정한 영(귀신)을 쫓아내고 부정한 영상들을 버리고 부정한 행위와 습관들을 버리고 의롭고 정결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13. 거짓이 없고 흠이 없는 삶을 유지하라.

계시록 14장의 144000의 기준이다. 거짓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도 되는데 또한 진리가 아닌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진리만을 말하는 것이다.  카톨릭은 기독교가 아니고 우상숭배의 하나이다. 이것이 참이라면 이 말을 해야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 안에서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진리를 듣게 된다.

다 같이 한 사회, 행복한 나라를 위하여 사는데....... 라는 것이 기독교의 목표가 아니다. 기독교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싸우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회개할 사람들이 회개하라는 것이다.

 

 

14. 나의 약점을 보강하고 약점 때문에 넘어지지 않게 하라.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 자기가 죄를 짓지 귀신이 원인이 아니다. 귀신과 사단은 유혹을 하지만 사실상 죄를 짓는 존재는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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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인과 돈>

 

 

 

 

브라질에서 어떤 아이가 엄마에게 “엄마, 도나 줄리타네 집에 날 팔아 주세요. 그 집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아요.”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세계를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주는 것이다.

 

잠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 주신다. 부자가 죄인은 아니다. 성경은 부자이기 때문이라고 죄인이라 하지 않으셨다. 욥은 갑부이면서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솔로몬도 하나님의 은혜로 세계 최고의 갑부였다.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하늘 문을 여시고 쌓을 곳이 없도록 채워 주시겠다는 약속도 하셨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자신의 돈을 사용해서 예수님의 장례식 비용으로 썼다. 고넬료도 부자로서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말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우리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 부자라고 죄인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후하게 드리고, 남들의 유익을 위해 후하게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쓰는 돈은 천국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의 돈은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고, 나머지 돈은 천국 화폐로 바꾸어 두어야 한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남들을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은 이 세상의 화폐를 천국 화폐로 바꾸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남들을 섬기기 위해서 쓰는 돈은 다 천국 은행에 저축되는 것이다. 우리는 축복의 창고로 살지 말고, 축복의 통로로 살아야 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에 먹고 살 것이 있으면 자족해야 한다. 탐욕을 가지고 자꾸 더 가지려고 함으로써 많은 근심으로 자신을 찌르는 파멸의 길로 가지 않기 위해서도 자족해야 한다.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로서 겸손하게 하나님께 희망을 두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도 후하게 드릴 수 있고,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도 후하게 베풀 수 있어야 한다. 자족(contentment)과 자선(charity)이 돈을 행복의 통화로 만드는 비결이다.

 

 딤전 6: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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