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혼례 결혼예배 / 예식 설교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3:4-13   행복한 가정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서론

1. 먼저 이렇게 혼인 예배를 들릴 수 있게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무엇보다도 귀한 가정 대사에 제가 주례를 맞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그간 이 결혼 예식이 있기 까지 여러 모양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특별히 양가의 부모님의 사랑의 수고에 감사와 찬앙을 드립니다.

2. 특별히 여기 신분00는 00 선생님과 00 여사님의 삼녀로써 어릴 때부터 정숙함으로 일등 신부감으로 잘 키워주셨습니다.  넘 예쁘고 축복이 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3. 또한 여기 신랑 000 군은 000 선생님과 000 여사님의 차남으로써 최고의 엄하면서 합리적인 사람으로 키위주시고 더구나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자라난 참신한 일등 신랑감입니다. 

 


4. 이런 가문과 가정에서 제가 더 할말이 없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는 비결 몇 말씀드리고져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잘 믿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오늘 성경 고린도전서에는  바울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다메셋이라는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 받고 자신이 기도가운데 개척한 고린도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곳에 담긴 메시지는 사랑이라는 제목이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두 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먼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두분은 그런 신앙을 고백한 그리스도인 입니다.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잘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몸된 교회를 잘 섬기는 것입니다. 요즘 결혼을 하고 2,3년지난면 몇 번의 고비가 있습니다. 그때 신앙 곧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은 해결책이 있습니다. 문제의 정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가정은 수숩이 어럽습니다.

더불어 위로 하나님을 믿는 것 처럼 서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깨지면 모든 것이 깨집니다. 저사람이 콩으로 메주를 쑷대도 나는 믿는다는 확신을 가질때 좀 늦어도 바쁜가보다 하지... 믿음이 없으면 별 생각을 다하는 것입니다. 두분은 이런 행복한 가정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립니다.

 


둘째는, 소망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사도 바울과 고린도 성도들에게 좀 힘들일이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희망 소망 을 가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두분이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좀 어려워도 내일의 희망있고 비젼을 있다는 것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자녀에 대한 소망 사업에 대한 비젼 헌신에 대한 포부를 가지시고 위를 바라보는 두분이 될 때 행복의 파랑새는 이집에 계속 머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은 하면 관계가 더 넓어 집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닙니다. 결혼 전에는 혼자의 관계가 이제는 두 셋 넷으로 복잡해 집니다.  특별히 양가의 부모님를 잘 섬기는 부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낳으신 수고 기르신 수고 아무것도 입지 않았을 때 수치를 가려주신 분이 부모님입니다. 양가의 부모님의 관계 어르신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 지는 것이 행복입니다.  부모하고 원수가 되고  부모님 않보는 사람 모든 것 다 가졌으나 행복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리고 친구 친척 동료 교우 이웃에게 진정한 장미의 향기가 풍기는 두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세번째로,  사랑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여기 사도바울이 세우신 고린도교회와 성도의 관계에서 최고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누구나 머물고싶고 함께 하고 싶으나 미움이 있는 곳에는 다 피라고 싶어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가 부부관계입니다. 그 속에 결혼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부모를 떠나는 독립선언입니다. 그런 뜻에는 의무가 있는가 하면 책임도 있습니다.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마음도 하나 몸도 하나 주머니도 하나 집도하나 침대도 하나입니다.

 그 하나됨을 이루어 가는 진한 에너지가 있는데  바로 사랑입니다.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함 같이하라입니다. 먼저 사랑하는 남편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와 허물을 덮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해 합니다. 또 신부는 사랑만 받는 관계가 아니라 복종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복종은 내 의견이 다르드리도 따르는 것입니다. 순종은 내 의견이 같을 때 따르는 것이라면 복종은 내 의견이 다르드라고 하나님이 세우신 남편이기에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말씀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입니다. 자기 생명까지 내어 주신 피의 사랑입니다. 아내를 위해서 목이라도 내어 놓는 아가폐적 사랑입니다. 이유가 어떠하든  논리적으로 맞던 틀리던 무조건 두분이 이런 복종과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행복합니다. 여자를 힘으로 지배하라고 하지 말고 사랑으로 하고.. 남자를 말로 이기려고 하지말고 순복으로 이기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되어서 행복이 뚝뚝 떨어지는 가정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사랑이니라  아멘

 


끝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르는데 저와 오신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주례를 맡아 달라고 찾아오는 젊이들에게 반드시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 약속을 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실이 분명하지를 묻습니다. 아니면 믿게 하고 예수를 않믿는다고하면 노합니다.  또 하나는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죽음이외엔 갈라서는 일이 없다고 약속한다고 하면 주례를 응답합니다.

 

  제와 여기 계신분들이 바로 지금까지 이 두사람 곁에서 여러모양으로 함께 하셨던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결혼했기에 끝이 아니라 더욱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책망해 주시기고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증인석에 앉아 계셨던 분들이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대 일조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신분의 가정에서 딸을 보낸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좋은 사위 아들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시고 신랑의 가정에서는 새 사람이 들어 왔으니 어떻게 하나 보자하고 감시 카메라 달라 놓치 말고 내 딸이라고 이제는 내 식구다 생각하시고 예쁘게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이 두 사람의  행복한 가정이루고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다같이 힘찬 응원에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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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결혼식 설교


 


  
예식 설교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3:4-13   행복한 가정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서론

1. 먼저 이렇게 혼인 예배를 들릴 수 있게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무엇보다도 귀한 가정 대사에 제가 주례를 맞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그간 이 결혼 예식이 있기 까지 여러 모양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특별히 양가의 부모님의 사랑의 수고에 감사와 찬앙을 드립니다.

2. 특별히 여기 신분00는 00 선생님과 00 여사님의 삼녀로써 어릴 때부터 정숙함으로 일등 신부감으로 잘 키워주셨습니다.  넘 예쁘고 축복이 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3. 또한 여기 신랑 000 군은 000 선생님과 000 여사님의 차남으로써 최고의 엄하면서 합리적인 사람으로 키위주시고 더구나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자라난 참신한 일등 신랑감입니다. 

 

4. 이런 가문과 가정에서 제가 더 할말이 없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는 비결 몇 말씀드리고져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잘 믿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오늘 성경 고린도전서에는  바울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다메셋이라는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 받고 자신이 기도가운데 개척한 고린도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곳에 담긴 메시지는 사랑이라는 제목이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두 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먼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두분은 그런 신앙을 고백한 그리스도인 입니다.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잘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몸된 교회를 잘 섬기는 것입니다. 요즘 결혼을 하고 2,3년지난면 몇 번의 고비가 있습니다. 그때 신앙 곧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은 해결책이 있습니다. 문제의 정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가정은 수숩이 어럽습니다.

더불어 위로 하나님을 믿는 것 처럼 서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깨지면 모든 것이 깨집니다. 저사람이 콩으로 메주를 쑷대도 나는 믿는다는 확신을 가질때 좀 늦어도 바쁜가보다 하지... 믿음이 없으면 별 생각을 다하는 것입니다. 두분은 이런 행복한 가정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립니다.

 

둘째는, 소망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사도 바울과 고린도 성도들에게 좀 힘들일이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희망 소망 을 가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두분이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좀 어려워도 내일의 희망있고 비젼을 있다는 것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자녀에 대한 소망 사업에 대한 비젼 헌신에 대한 포부를 가지시고 위를 바라보는 두분이 될 때 행복의 파랑새는 이집에 계속 머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은 하면 관계가 더 넓어 집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닙니다. 결혼 전에는 혼자의 관계가 이제는 두 셋 넷으로 복잡해 집니다.  특별히 양가의 부모님를 잘 섬기는 부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낳으신 수고 기르신 수고 아무것도 입지 않았을 때 수치를 가려주신 분이 부모님입니다. 양가의 부모님의 관계 어르신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 지는 것이 행복입니다.  부모하고 원수가 되고  부모님 않보는 사람 모든 것 다 가졌으나 행복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리고 친구 친척 동료 교우 이웃에게 진정한 장미의 향기가 풍기는 두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세번째로,  사랑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여기 사도바울이 세우신 고린도교회와 성도의 관계에서 최고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누구나 머물고싶고 함께 하고 싶으나 미움이 있는 곳에는 다 피라고 싶어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가 부부관계입니다. 그 속에 결혼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부모를 떠나는 독립선언입니다. 그런 뜻에는 의무가 있는가 하면 책임도 있습니다.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마음도 하나 몸도 하나 주머니도 하나 집도하나 침대도 하나입니다.

 그 하나됨을 이루어 가는 진한 에너지가 있는데  바로 사랑입니다.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함 같이하라입니다. 먼저 사랑하는 남편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와 허물을 덮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해 합니다. 또 신부는 사랑만 받는 관계가 아니라 복종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복종은 내 의견이 다르드리도 따르는 것입니다. 순종은 내 의견이 같을 때 따르는 것이라면 복종은 내 의견이 다르드라고 하나님이 세우신 남편이기에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말씀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입니다. 자기 생명까지 내어 주신 피의 사랑입니다. 아내를 위해서 목이라도 내어 놓는 아가폐적 사랑입니다. 이유가 어떠하든  논리적으로 맞던 틀리던 무조건 두분이 이런 복종과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행복합니다. 여자를 힘으로 지배하라고 하지 말고 사랑으로 하고.. 남자를 말로 이기려고 하지말고 순복으로 이기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되어서 행복이 뚝뚝 떨어지는 가정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사랑이니라  아멘

 

끝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르는데 저와 오신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주례를 맡아 달라고 찾아오는 젊이들에게 반드시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 약속을 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실이 분명하지를 묻습니다. 아니면 믿게 하고 예수를 않믿는다고하면 노합니다.  또 하나는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죽음이외엔 갈라서는 일이 없다고 약속한다고 하면 주례를 응답합니다.

 

  제와 여기 계신분들이 바로 지금까지 이 두사람 곁에서 여러모양으로 함께 하셨던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결혼했기에 끝이 아니라 더욱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책망해 주시기고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증인석에 앉아 계셨던 분들이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대 일조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신분의 가정에서 딸을 보낸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좋은 사위 아들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시고 신랑의 가정에서는 새 사람이 들어 왔으니 어떻게 하나 보자하고 감시 카메라 달라 놓치 말고 내 딸이라고 이제는 내 식구다 생각하시고 예쁘게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이 두 사람의  행복한 가정이루고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다같이 힘찬 응원에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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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설교  / 추수감사절 설교 / 큰 은혜 속에 살아가는 인생

 

 

 

 

제목 : 축복받은 사람들

말씀 : 시65:1-5

1.먼저 감사부터 합시다.

(닉부이치치, 오토다케히로타다, 이지선 사진 보여주기)

닉 부이치치는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보이스 목사님과 더쉬카 사모님의 사랑과 헌신과 기도로 그는 정상인의 다니는 학교를 다니며 대학까지 나왔습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훈련하여 컴퓨터는 물론 수영, 줄넘기, 골프, 농구를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드럼까지 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19살때부터 학교와 기업, 교회 등 수많은 단체에서 강연을 하였고, 세계 여러 나라의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입니다. 어떠한 상황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절 보십시오. 저는 이와같이 팔다리가 없지만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오토다케 히로타다입니다. 이 사람도 태어날때부터 팔다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정상적인 아이들과 함께 교육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으로, 잡지사 기자로, 방송사 캐스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사진은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자매입니다. 그녀는 이화여자대학교 4학년 때에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승용차로 귀가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 55퍼센트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살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7개월간의 입원, 11차례의 수술,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치료. 이후에도 지금까지 매년 몇차례의 끔찍스러운 고통의 수술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난 시간에 간증을 통해서 보았듯이 과거의 그 예쁜 얼굴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으니 돌아가야 할 이유가 뭐냐고, 지금 더 행복하다고, 지금 더 할 일이 많다고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과거의 그 예쁜 얼굴은 잃었지만 오히려 더 주님을 믿는 믿음가운데 든든히 서게 되었고, 주님이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와 용기를 줄 수 있는 귀한 것을 얻었기에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행복은 돈에 있지도 않고, 권력에 있지도 않습니다. 지식에 있지도 않습니다. 인기에도 있지 않습니다. 얼짱 몸짱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데 있는 것입니다. 많든 적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주께서 주신 내 인생의 목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과 기쁨과 존귀를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5:20절에서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달라고 하기 전에, 없는 것에 잃은 것에 좌절하고 낙담하기 전에 이미 주신 것에, 가지고 있는 것에, 누리고 있는 은혜에 먼저 감사부터 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없는 거, 모자라 거, 약한 것, 부족한 것 생각하며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절망하지 말고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고, 거기에 믿음이 있고, 거기에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먼저 감사부터 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자꾸 달라고 졸라대기 전에, 없다고 불평하기 전에, 많이 가진 자를 부러워하기 전에,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만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꼭 그런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하나님의 뜰에 거하게 됨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감사와 은혜를 알고 누릴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바로 다윗인데 먼저 다윗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된 복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4절에서 고백합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말 그대로 주님께 택함을 받고 주님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감사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많습니다.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이 감사요 은혜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요, 먹고 입고 마시고 숨쉬고 자고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자유를 누리고 평화를 누리고 어느 것 하나 감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도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 어느것도 온전히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큰 은혜요, 감사인 것은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의 정원에서 주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사랑과 은혜와 평강의 주님이신 주님의 자녀가 되어 그 능력과 은혜와 사랑의 주이신 주님의 정원에서 살면서 주님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세상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큰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솔직히 안 그렇습니까? 어떤 집에 산들 이런 은혜를 누리겠습니까? 제아무리 대궐 같은 집에다 축구장 골프장 수영장을 갖추고 온갖 아름다운 나무와 꽃을 가꾸어 놓은 정원속에 산다한들 주님의 정원에 사는 것만 하겠습니까? 그야말로 새발의 피도 안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한 너댓살 까지는 그런대로 부유한 가정이었지만 이후로 아버님의 실수로 가세가 완전히 기울어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초가삼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웃에는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고래등같은 같은 기와집 안채에다가 사랑채도 여러칸이었습니다. 초등학교때 가끔 그 집 마당을 지나면서 열려 있는 대문으로 그 집 안뜰을 몰래 들여다보곤 하였습니다. 안채는 어린나이라서 그런지 무슨 궁궐처럼 보였습니다. 마당에는 나무로 잘 가꿔져 있었고 여러 가지 꽃도 예쁘게 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이 마치 천국처럼 보였습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저런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저런 집 뜰안에서 놀면 얼마나 좋을까, 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면서 늘 부러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의 정원에서 살고 있습니까? 주님의 정원입니다. 그까짓 고래등같은 기와집 정원이 넓으면 얼마나 넓겠습니까? 좋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정원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우리의 정원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우리집입니다. 우리집 뜨락입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영광과 기쁨과 은혜와 존귀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완성되겠지만 그러나 지금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뜰안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은총을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위로와 소망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물론 때로는 환난과 핍박도 있습니다. 어려움이 올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주님은 결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그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주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더욱 주님을 바라보게 만드십니다. 더욱 주님과 동행케하십니다. 더욱 주님 앞에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승리하여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차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이렇게 주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의 뜰에 거하며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가운데 마음껏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기억하시고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것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까짓 세상의 것들 부러워하지도 말고 그것 때문에 낙심하거나 좌절하질랑 더더구나 말고 나는 하나님의 정원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기억하며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평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7,8절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평강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땅 끝에 거하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오직 주님만이 인생에게 닥쳐오는 모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두려움과 공포와 어둠속에서 우리를 지키시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안에 있는 자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거워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얼마나 많은 전쟁과 도전과 위협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끊임없이 블레셋이나 암몬이나 에돔사람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왕이 되기 전에는 얼마나 사울에게 괴롭힘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는 자식이 반란을 일으켜서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되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믿었습니다. 주의 역사하심을 믿었습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참고 견디며 주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결국 모든 대적자들을 물리쳐 주시고 위대한 성왕이 되게하히고 평강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평화가 어디 있습니까? 안식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다른데서 오지 않습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하나님에게서 주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영원하고 완전한 평화는 오직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과 평강과 은혜의 창조자이시고 수여자이시고 주관자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도 그 주님을 믿고 주님과 동행하는 자에게는 놀라운 평강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실제로 여러분, 우리는 외견적으로도 얼마나 놀라운 번영과 평안과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대한민국이 이 만큼 부요하고 태평성대를 누릴때가 언제 있었습니까? 이 땅위에 교회가 세워지고 찬양소리와 기도 소리가 울려퍼지고 성도들이 새벽마다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가정을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이 함께 하셨을 때 우리는 이만한 번영과 자유와 평화와 질서와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안에서는 분명 평안이 있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 분명 은혜가 있습니다. 여러분, 주의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주의 평안을 누리기 위하여 평강의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평강의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면서 주님안에 있는 그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결실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평화의 축복에 이어 결실의 축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9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보세요. 땅을 권고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권고하셨다는 돌아보셨다는 것입니다. 살펴서 필요한 것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을 돌아보사 물이 필요할 때 물을 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뜨거운 태양이 필요할 때 태양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단비를 내려서 단단해졌던 땅을 부드럽게 하여 싹을 내게 하셨다는 것이죠. 싹을 내게 하실 뿐 아니라 그 싹에 복을 주셔서 그 싹이 잘 자라도록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푸른 초장이 형성되어 그 초장에는 양떼가 덮여있고, 밭에는 곡식이 넉넉하게 덮여 있어서 온 무리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오늘 이땅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물론 힘든 일이 있고, 때때로 우리를 실망시키는 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예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땅은 축복받은 땅이예요. 은혜의 땅입니다.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들이예요.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값없이 받은 사람들이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도 여러분의 가정과 산업에 결실의 축복이 있는 것은 주께서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를 권고하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친히 돌아보시어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절기를 따라 적절한 태양빛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니 가장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갈 이 축복의 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도 농사의 현장에서, 사업장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열심히 수고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수고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감사요, 축복이요, 커다란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할 수 있는 터전과 조건과 환경과 건강과 지혜를 주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제반 조건들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열심히 수고한대로 먹을 수 있도록 인도하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저 감사할 것 뿐입니다. 영광 돌릴 것 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감사하고 영광 돌리고 기뻐해야 할일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특혜를 받았습니다.

지금 여기서도 우리는 마음껏 주와 동행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마음껏 찬양하며 예배드리며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복된 삶의 터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복받은 사람들이지 얼마나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물론 힘들때도 있습니다.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받은 바 은혜가 더 큽니다. 제아무리 어려워도 받은 은혜가 몇 백배 천배 만배 더 큽니다. 그러므로 먼저 감사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있음에 감사하고, 주님의 뜰안에 거하게 하심에 감사하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감사하고, 이 풍요로움에 감사하고, 이 자유와 평화와 질서가 있음에 감사하고,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고, 이웃이 있음에 감사하고, 살아숨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할때에 혹시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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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예배설교::완전한 승리의 부활

 


제목 : 완전한 승리의 부활

말씀 : 요11:21-27

1.유일한 생명의 예수 그리스도

할렐루야! 오늘 예수께서 세상의 모든 어둠, 부정적인 것, 약한 것, 죽음, 마귀사탄, 지옥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온갖 멸시 천대 능멸 조롱 뺨맞음을 당하시고 그 모질고 잔인한 채찍질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당하신 것은 결코 힘이 없어서도 아니요, 지혜가 없어서도 아니요, 능력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오직 그것은 완전한 승리를 위한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와 무지와 어리석음과 약함과 추함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래서 죄와 무지 가운데 살다가 영원한 고통에 처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이기에 이 더럽과 악하고 추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능력과 권세가 충만하시고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따위 어둠과 무덤과 사탄과 죽음의 권세 아래 계속 머무실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주만물의 주권자가 되시는 그 권세와 능력으로 죄와 어둠과 사망과 사탄과 지옥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시오 생명의 주권자이시오 그 안에만 온전한 승리가 있음을 만천하에 명백히 드러내시고 그를 믿고 따르는 자마다 영원한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 이 귀한 날, 복된 날, 승리의 날을 맞이하여 정말 온전히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알고 이 온전한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이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이러한 인류의 유일한 생명의 이시며 능력이신 주님을 늘 심령 속에 모셔 들이고 살아감으로 정말 여러분의 삶이 언제나 부활의 능력과 은혜와 감사와 축복이 넘쳐나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이 인류의 가장 큰 원수인 사망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과 지옥의 권세를 이기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다른 그 어떤 것도,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종교도 철학도 과학도 무기도 문명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생명을 조금 연장하고 조금 더 건강하게 도울 수는 있겠지만 결코 죄의 문제 해결할 수 없고 생명의 살릴 수는 더더구나 없습니다. 오직 유일한 생명의 창조자이시며 주권자이시며 완전한 능력과 지혜자이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 자신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도 죽음을 향하여 명령하셨고, 죽음은 예수님의 명령에 복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눅7장에 보면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장사를 지내러 가는데 예수께서 가까이 가셔서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청년이 즉시 살아나 관 뚜껑을 벗기고 나왔습니다. 또한 막5장에 보면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 죽었을 때 예수께서 찾아가셔서 ‘달리다굼’ 즉 ‘소녀야, 일어나거라.’고 말씀하시자 죽었던 소녀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또 요11장에 보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과 같이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무덤에 장사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향하여서도 또 명령하셨습니다. 요11:43,44절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여러분, 우리가 이걸 뭐라고 어떻게 말해야 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인간적으로 말이 됩니까? 만약 사람이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 그런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계시고 그래서 그런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죽음에게 명령하셨고, 그러자 죽음이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물러가고 생명이 역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 당신 자신께서 우리의 죄과를 대신하시고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을 당하셨다가 오늘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다시한번 당신 자신이 생명의 주가 되심을 만천하에 공포하시고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25,26절에서는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별거 아닙니다. 제아무리 대단한 권력, 명예, 돈, 과학, 지식 이런 것들 진짜 별거 아닙니다. 인류의 유일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진짜 능력, 진짜 소망, 기쁨, 승리는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승리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절을 보내며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심령 속에 더욱 온전히 모셔 들이기 바랍니다.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하여 그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이 주시는 생명과 기쁨과 능력과 승리가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부활은 영원한 승리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세상의 승리와는 전적으로 다른 승리입니다. 세상의 사람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명이 그 어떤 것이라해도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를 줄 수도 없고 또 그나마 조금 준다고 해도 얼마 안 있으면 다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완전하고 영원한 승리자이십니다. 주님의 부활이 바로 그러한 완전하고 영원한 승리의 상징이요 표본이요 증거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모든 어둠과 무지와 슬픔과 절망과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신 완전한 승리인 것입니다. 인류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보기 좋게 정복하셨고, 그 영원한 승리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도 그 부활에 동참하여 영원한 승리를 누리며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을 병이 걸립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급히 예수님을 모셔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주님께서는 곧바로 오시지 않고 뒤늦게 오셨는데 그것은 이미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서였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끝장난 상황이었습니다. 더 이상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금방 죽었다해도 아무 방법이 없을텐데 하물며 죽어서 나흘이 지나 시체가 부패하기 시작했으니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이제는 정말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희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실로 엄청난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앞에서 보았던 25,26절을 다시 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걱정하지 말아라. 슬퍼하지 말아라. 왜 두려워 하느냐, 왜 절망하고 있느냐?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죽지 않는다. 나를 믿으라. 그러면 나사로도 살 것이고, 너희들도 살 것이다. 그리고 부활의 생명으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서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명령하셨고, 그러자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나던 나사로에게 생기가 돌아와 어정어정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죽어도 산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눈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부활이 있기에 죽음은 더 이상 마지막 원수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도 아니고, 절망도 끝장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완전한 영광의 나라에서의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영광의 부활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영으로 주님과 함께 천국의 은총을 누리다가 주님이 재림 하실 때 우리의 몸도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완성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고전15:55~57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여러분, 이 부활의 새아침에 다시금 부활의 주님을 새롭게 모셔들이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완전한 영원한 부활이 있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주님과 동행함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넘치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아직도 세상은 죄와 무지속에 있고 우리의 부활은 그 부활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세상에 살면서 마음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렵고 힘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곧 지나갑니다. 이 세상도 지나가고 고통도 지나고, 병도 지나가고, 부귀영화도 지나가고 걱정염려 다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 때문에 너무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있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히 부활의 주님께서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명력이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부활의 능력과 은혜가 넘쳐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부활은 현재적 승리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부활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영광의 나라에 대한 보장이요, 소망일 뿐 아니라 오늘 여기서도 얼마든지 승리자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오늘 나사로의 가정도 보세요. 나사로의 가정은 말 그대로 초상집이었습니다. 그 가정은 슬픔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절망에 삼킨바 되었습니다.

오늘 21절부터 24절까지 주님과 마르다의 대화 내용을 보십시오. 그 대화에 보면 마르다가 주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마르다가 말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 것이다.’ 그러자 마르다가 대답합니다. ‘마지막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아나이다.’

보십시오. 분명히 주님이 계셨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과 설령 죽었어도 지금이라도 주님이 무엇이든지 하시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것이라고 말을 해놓고는 막상 주님께서 네 오라비가 살 것이라고 하자 마지막 날에 부활 때에는 그렇게 되겠지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론 마지막 날은 살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벌써 부패가 되어 냄새가 나는데요. 물론 나중에는 부활하겠지만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나중에 부활하여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때는 완전한 기쁨을 누리게 되겠지만 지금은 슬프고 어둡고 않습니까?’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 유명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는 어째서 머언먼 피안의 세계만을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 말은 머언먼 미래의 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포함한 모든 날들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안에 있는 자는 비록 죽어도 살 것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죽어도 산다는 말씀은 그래도 이해가 되는데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은 조금 어렵지 않습니까? 물론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은 불로장생이라도 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죽기는 죽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기도 하고 동시에 지금 여기서도 부활의 주님의 능력으로 죽음이나 절망이나 아픔이나 고통을 이기고 근심 걱정 염려 원망 불평 낙심 절망 세상 환경 상황 뭐 이런 것들에게 사로잡혀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살지 아니하고 생명의 기쁨과 자유와 평화와 은혜와 소망과 감사가 넘쳐나는 그야말로 생명력이 넘치는 진짜 산 사람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현재적 천국도 누리고 영원한 천국도 누리니까 죽어도 산자요 살아도 산자니까 나를 믿는 자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 온전히 모셔들이고 사는 사람은 사나 죽으나 살아있는 삶을 삽니다. 은혜와 기쁨과 감격과 능력가운데 삽니다. 죄와 사망과 어둠과 슬픔과 고통과 미움과 시기와 욕망이나 환경이나 상황에 지는 삶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그것을 정복하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17:21에서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못한다고해서 실제적으로 임할 천국이 장소적으로 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히 장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완성된 천국이 오기 전까지는 천국이 돈 많은 데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나 지식에 있는 게 아닙니다. 천국은 주님을 모신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래요? 지금 여기서 우리가 걱정할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죽으면 천국가고 힘들면 주님 앞에 맡기고 기쁘면 주님께 감사드리고 어려우면 주님 앞에 아뢰고 어차피 죽을 인생이 이제 죄사함은 받았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티켓은 확실히 따 놓았겠다 뭐 근심걱정염려 할 일이 무엇이 있습니다.

여러분, 요14:1~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거처를 마련해 놓았으니 나를 믿고 이 세상 사는 동안도 걱정 근심 염려하지 말고 사명감당하며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얼마든지 가능함으로 너희가 나를 믿는다면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죄와 어둠과 추함과 약함과 절망과 죽음의 권세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그 모든 어둠의 세력들을 무덤에 묻어버리고 무덤을 박차고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나오셔서 우리의 마지막 원수 죽음을 물리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완전한 승리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부활의 주님을 모셔 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 승리의 주님, 은혜의 주님을 모시고 그 주님을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의 주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힘주시고 은혜주시고 능력 주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모든 죄와 마귀사탄의 권세를 이기게 하십니다. 상황과 환경도 이기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이 시간 다시 한번 부활의 주님을 온전히 모셔 들이고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주님이 늘 여러분과 함께 하심으로 부활의 주님의 능력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 세상의 모든 약한 것과 부정적인 것들과 상황과 환경과 세상의 왜곡된 가치관과 유혹과 도전들을 이기고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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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복음 - 가장 위대한 메시지

 

 

 
복음의 영광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일하고 계시고, 이미 행하신 일을 선언한다는 데 있다. 바로 그것이 모든 사도들에 의해 전파된 복음이다. 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전하였으며 선언하였으며 발표하였다. 또한 그들이 '좋은 기별'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도록 사람들을 초청하였다. 그들은 먼저 삶과 인생을 위한 계획을 개요적으로 말하는 일부터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하나의 프로그램을 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을 전하였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가 하늘에서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고 흠 없고 죄 없는 하나님께 대해 철저한 순종의 삶을 사심으로써 그의 고유한 신성을 나타내고 드러내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이적을 행하심으로써도 그와 같은 신성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그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단순히 그의 목숨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나라 백성들에 의하여 버림받은 결과였다. 그것은 더욱 깊고, 더욱 영원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무덤에서 일어나셨고 자신을 어떤 선택된 증인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다. 그 다음 그는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는 하늘에서 성령의 선물을 초대교회로 향하여 보내셨던 것이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새 생명과 새 능력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의 삶은 완전하게 변하였다. 그들은 이제 생명다운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메시지이다. 복음의 전체적인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셨는가에 주어져 있다.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방식이었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고 그것을 복종하기만 하면 되었다. 실로 여기서 자랑할 만한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이나 어떤 변명하는 식의 겸연쩍은 얼굴 붉힘 없이 아덴에서 스토익(Stoics) 학파들과 에비구레온(Epicureans) 학파들을 대면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 메시지는 세상의 가장 높고 위대한 철학자들을 어린 아이의 장난거리나 어린 아이들의 소꼽장난에 지나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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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설교] 성령 세례를 받으라

 

 

제목 : 성령 세례를 받읍시다.

말씀 : 행1:4,5

1.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고 얻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재물도 얻고 싶고, 건강도 얻고 싶습니다. 기왕이면 권세도 얻고 싶습니다. 기왕이면 예쁜 부인이나 백마 탄 왕자같은 남편도 얻고 싶습니다. 평안도 자유도 즐거움도 기쁨도 사랑도 존중도 받고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좋은 것을 누리며 사랑과 축복과 기쁨 속에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입니다. 또 그렇게 뭔가 좋은 것들을 누리고 싶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게 됨으로 좀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동기가 됨으로 이러한 것들에 대한 건전한 추구는 도리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얻고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말로 이러한 것들보다 더 우선해서 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도 우리 인생에게 보템과 유익과 기쁨이 되지만 그보다 더욱 보템과 유익과 은혜와 기쁨을 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우리는 인생의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인으로서의 인간 영혼은 죄와 무지속에 있어서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축복의 길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 인간 영혼이 하나님의 고귀한 형상으로서 누릴 수 있는 그 엄청난 축복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영,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심령속에 들어오셔서 우리 심령속의 굳어지고 무지한 것들을 깨트려 버리고, 죄된 것들을 씻어 버려야 비로소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알게 되면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게 되고 예수님 믿고 정말로 그 안에 있는 그 놀라운 생명 은혜 기쁨 자유 평안을 마음껏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세상에서 천만금을 얻을 것보다도, 천하제일의 권세를 얻은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무엇을 기다리라? 아버지께서 약속한 것. 그게 뭡니까? 성령입니다. 요14:1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바로 이 약속하신 성령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성령을 받아야 너희들이 나를 바르게 알고 사명을 힘있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약속하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진 심령이 깨끗해져서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리고, 천국이 보이게 됩니다. 그래야 자신을 알고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알게 됩니다.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을 믿게 되고 그래서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생명과 기쁨과 평강과 위로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나 위협이나 유혹도 넉넉히 이기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던 제자들, 심지어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며 부인했던 베드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를 못했던 제자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한곳에 모여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던 제자들도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다가 성령 충만함을 받은 다음에는 완전히 180도 달라겼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고 하늘나라가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참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워서 걸어 잠갔던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뛰어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 그러나 부활하셨다. 이 분이 그리스도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힘차게 외쳤습니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게 옳으냐 너희들 말 듣는 게 옳으냐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하루에 삼천명 오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세워졌고, 계속해서 성령의 능력을 받은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헌신을 통하여 또 다른 교회가 세워지고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 까지 이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요20:22절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지식을 얻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그보다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 받아야 죄사함 받습니다. 그래야 심령이 깨끗해 집니다. 그래야 눈이 밝아집니다. 천국이 밝게 보입니다. 선과 악을 바르게 분별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똑똑하게 들립니다. 지혜와 능력과 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상황과 환경을 이깁니다. 죄와 유혹을 이깁니다. 능력있게 생명있게 담대하게 천성을 향하여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의 은혜가 풍성한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생명의 영이요, 진리의 영이요, 지혜의 영이요, 능력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생명과 진리와 능력이 충만한 복된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됩니까?

2.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려면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가 뭡니까?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엡1:23절이지요.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이 곧 예수 그리스도 곧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은혜,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지혜, 예수님의 능력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지상교회는 온전치 못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교회 안에 만이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가 있습니다. 주님의 삶과 주님의 가르침과 주님의 뜻을 가르쳐 주는 곳은 오직 교회 뿐입니다. 그러니 이런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가까이해야 성령 충만 받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앞에서 보았던 4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 산입니다.(창22:2) 다윗이 장막을 치고 언약궤를 모셔두었던 곳입니다.(대상15:1)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곳입니다.(대하3: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인류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곳입니다. 즉 예루살렘은 인류구원의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거룩한 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있는 곳, 말씀이 있는 곳,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가 있는 곳,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 머물며 더욱 말씀 위에 서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까지는 너희 연약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제자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예루살렘은 어디 입니까? 교회밖에 더 있겠습니까. 주님의 피값으로 세우신 곳,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예배와 기도와 말씀과 찬양과 전도와 섬김과 봉사가 있는 곳입니다. 이런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봉사와 섬김 등으로 주님과 교제하고 성도와 교제할 때 성령을 받지 못한 자는 성령을 받게 되고, 이미 받은 자는 더욱 충만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충만하게 받은 사람은 생명의 은총이 있고 기쁨이 있고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며 주의 사역 힘있게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몸된 교회,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섬김이 있는 교회, 그래서 이 땅에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유일한 기관인 교회를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곳을 가까이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보다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섬기고 교제하는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말씀과 사랑과 은혜와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교제할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 정말로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강과 위로와 소망이 넘쳐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언제 참 제자가 되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대로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나서부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까? 기도에 힘쓸 때였습니다.

행1:14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분부를 따라 예수님을 따르는 다른 많은 분들과 더불어 마가의 다락방에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을 때 드디어 오순절 날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후 제자들은 능력있는 제자들이 되어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즉 기도할때에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았고,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받은 이후 능력있는 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 막9:29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어느 날 예수님은 산에 기도하러 가시고 제자들만 남았는데 어떤 아버지가 귀신 들린 소년을 데리고 와서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하였지만 못고쳐 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오셔서 귀신아 나가가 한마디 하니까 귀신이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우리는 왜 못쫓았습니까, 그러니까 기도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너희 믿음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이런 모든 잡류들, 더러운 것들, 추한 것들, 유혹들, 마귀의 장난들 다 물리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성도들과 신령한 교제를 나눌 때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히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이 대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깨어 기도하며 주님과 온전한 교제를 이룰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모든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을 물리쳐 버리고 더욱 큰 감사과 기쁨과 은혜와 능력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겸손히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또한 말씀을 듣고 받기 위함입니다. 그럴 때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행10:44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 말씀은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사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온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까지 불러 모아놓고 베드로를 모셔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밖으로 나가 발 앞에 절하고 모셔 들이고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자 그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오자 그 발아래 엎드려서 절했습니다. 가족은 물론 친척, 친구들까지 모아놓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만큼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엎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때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과 가치관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기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말씀, 은혜의 말씀, 능력의 말씀 앞에 조용히 무릅꿇고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곳에 은혜가 있습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다윗은 얼마나 말씀을 사모했는지 말씀이 송이꿀보다도 더 달다고 하였습니다.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저와 여러분은 더욱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 말씀의 은혜로 내 심령이 밝아지고 희망과 은혜가 넘치고 능력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성령의 지배 속에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할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래야 믿음을 갖게 되고 나아가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운데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뿐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온전히 성령의 지배속에서 살면서 능력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진정한 능력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세상에서는 돈이 힘이고 권력이 힘이고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만 그게 진짜 힘이 아닙니다. 진짜 힘은 죄를 이기는 힘입니다. 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힘입니다. 상황과 환경과 유혹과 핍박과 죽음을 이기는 힘입니다.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성령의 충만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며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죽음도 마귀사탄의 권세도 모두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돈과 명예와 권세가 있어도 결국 지는 자가 됩니다. 심지어 아무리 고상하게 종교생활해도, 교회가 아무리 웅장해도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하면 힘이 없습니다. 환난풍파 몰아치면 무너집니다. 세상의 유혹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래서 엡5:18절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 취하지 말라. 술의 지배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혼란스럽게 만들고 분별력을 희미하게 만듭니다. 영적 도덕적 윤리적 감각을 무디게 만듭니다. 술 뿐아니라 세상의 것들이 다 그렇습니다. 향락과 오락은 말할 것도 없고 물질과 명예와 지식과 권세와 이런 것들도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에 취하면 마침내 감각이 무디어지고 영혼이 황폐해지고 그러다 마침내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에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성령은 살리는 영이니까. 지혜의 영이니까, 생명의 영이니까, 사랑의 영이니까, 은혜의 영이니까, 화평과 위로와 소망과 자비의 영이니까, 이런 영으로 충만해야 비로소 올바른 분별력이 생기고 기쁨과 은혜와 사랑과 능력이 충만해 지니까, 그러므로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세상의 다른 것으로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정말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물밀 듯 쏟아져 내려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완전한 생명의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지식이나 그까짓 술이나 향락이나 오락이나 이런 것들이 주는 기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이 기쁨은 영원한 기쁨입니다.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이기는 기쁨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추한 것들과 죄와 유혹과 핍박을 이기는 고상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기쁨입니다. 그러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되는 퍼펙트한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을 구하기에 앞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위하여 교회를 가까이 하고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정말 한분도 빠짐없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세상의 모든 죄와 추한 것들과 환난과 환경과 상황과 조건을 이기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감사와 평강과 위로 소망이 충만한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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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설교 ( 대강절 )그 날을 바라보며


 

 


말씀:이사야 35:1-10

제목:그날을 바라보며

영국의 극작가 사무엘 베켓은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으로 1969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두 사람이 황량한 길가에서 <고도>라고 하는 미지의 인물이 나타나 그들을 구원해줄 것을 막연히 기다리면서 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삶의 모습들을 그리고 있는 책입니다.

그들은 고도가 나타나면 그들을 구원하여 무언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 줄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무작정 고도를 기다리면서 서로 다투기도 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이 떠들어대기도 하고, 혹은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불러보기도 하는 등의 별 의미도 가치도 없는 행동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때로는 절규하기도 하고, 때로는 희희낙낙하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희망을 갖기도 하면서 그저 무한정 고도를 기다리는 것으로 이 책의 이야기는 아주 허무하게 종결을 짓고 있습니다.

무슨 결론도 없고 마치 쓰다가 만 책처럼 그렇게 끝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책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오늘날 방황하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아주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는 참된 인생의 목표나 기다림도 없이 그저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는, 그것이 마치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길인 것처럼, 그것이 마치 인생의 목적인양 생각하며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모습을 고발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인생의 진정한 목표와 소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궁극적으로 가야할 영원한 고향을 망각한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먹고 마시고 소유하고 즐기면서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는 것이 마치 인생의 의미요, 인생의 가치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모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기쁨도 될 수 없고, 참된 만족과 가치를 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없고, 기다려야할 대상도 될 수 없습니다. 도리어 허무와 좌절과 고독만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영원한 절망과 고통만을 안겨 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과 만족과 은혜를 주실 분은 누구십니까? 정녕 우리가 기다려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정녕 우리 인류가 소망을 걸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할것도 없이 성육신하셔서 이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온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기쁨이며 소망이며 기다려야 할 유일한 분이십니다.

 

1.갈림길에 서 있는 인생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오늘 말씀에서는 두 개의 세상을 대비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광야와 같은 세상입니다. 식물도 동물도 제대로 살 수 없는, 설령 산다고 해도 온갖 고초속에 살아가야 할 그런 험하고 거친 세상입니다. 소경과 귀머거리와 저는 자들이 있을 수 밖에 없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상입니다. 우리를 넘어뜨리고 상처를 주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그런 사나운 세상이요, 소망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것과 정 반대의 세상입니다. 그야말로 낙원과 같은 세상입니다. 광야와 사막 위에 샘물이 솟아나서 백합화가 무성하게 피어나고, 온갖 종류의 풀과 꽃들이 만발한 샤론평원처럼 아름다움과 향기가 넘치는 그러한 세상입니다. 저는 자는 일어나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소경의 눈이 열려서 누구하나 소외당하거나 고통 당하는 사람이 없이 함께 은혜와 기쁨을 누리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명 기억해야 합니다. 이 두 개의 상이한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이러한 두 개의 상이한 세상이 다만 우리의 상상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갓 이상향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된 세상이며, 우리를 위해서 예비된 그런 세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누리고 있든 누리고 있지 못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지금도 이 두 개의 세상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두 개의 세상중 어느 한쪽에 속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속에서 험하고 절망적이고 영원한 고통의 삶을 살아 갈것이냐 아니면 낙원과 같은 세상속에서 영원한 영광과 은혜의 삶을 누릴 것이냐 우리는 이 두가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누가 광야의 삶을 원하겠습니까? 누가 영원한 고통과 절망의 삶을 원하겠습니까? 누가 낙원의 삶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누가 영원한 행복과 은혜의 삶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하면 이 광야의 삶에서 해방되어, 이 절망과 무의미의 삶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기쁨과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그저 적당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가운데 거기에 진정한 행복과 은혜의 삶이 있겠습니까?

거기에 대한 해답은 오늘 본문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2.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

먼저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구원해 주실 그때에만 진정한 은혜와 행복의 삶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바벨론 포로와 같은 세상속에서 좌절과 두려움과 참된 평강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에게 주님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오셔서 어둠의 세력들을 물리쳐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좌절하고 고통스럽고 근심걱정하게 하는 모든 사단의 세력을 물리쳐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소경의 눈이 열리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저는 자는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하는 모든 것이 물러가고 우리는 진정한 은혜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는 우주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외에는 다른 어느 누구도 해결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의 근원인 죄와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시기 위하여, 그리하여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안에 있는 자에게 진정한 생명과 평강과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잊지 말고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이 대강절넷째주일을 보내면서, 성탄절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이제 성찬식과 세례식에 참여하면서 먼저 이천년전에 이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끊임없이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어리석고 미련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은혜를 주시려고 기쁨을 주시려고 변함없이 찾아오시는 주님께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찾아오셨을 때 비로소 구원의 길이 열리고, 은혜의 길이 열리고, 낙원으로 향하는 통로가 열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더욱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주님을 영접해야 할 인간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사실과 더불어 우리가 진정한 은혜와 기쁨과 영광의 삶을 살기 위하여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주신 은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더불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우리는 어떻게 영접하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다리를 만들어 주셨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 다리를 건너가지 않으면 그 다리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진수성찬을 차려놓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먹지 않으면 아무리 풍성한 진수성찬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다. 8절 말씀입니다.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광야와 같은 세상에 대로를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길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그 영광의 나라에서, 그 낙원과 같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길을 누가 갈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 길을 통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구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깨끗지 못한자는 지나가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만이 그 길을 통과할 수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덧입어서 죄사함의 은총을 입은 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그래서 죄로부터 해방되어 깨끗하게 되어 질때에 우리는 그 거룩한 길을 건너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대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가 영원한 영광과 기쁨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행동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단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을 믿음으로 그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고 구속함을 받을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분을 진실로 영접하고 믿고 따르기만 한다면 그 거룩한 길이, 그 영광의 나라가 우리의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얼마나 감격스런 일입니까?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무지로 말미암아, 어둠으로 말미암아, 완고함과 강퍅함과 고집스러움과 교만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모르는채 광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주님을 믿고 죄 사함의 은총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영광과 기쁨의 나라를 맛보며 또한 그 나라를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이 어찌 감사하지 않으수 있으며, 이 어찌 영광돌리지 않을 수 있으며, 이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천년전에 이땅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자유와 평화와 기쁨과 생명을 주셨습니다.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향한 통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의 심령속에 가정속에 교회속에 끊임없이 찾아오셔서 기쁨과 은혜와 생명을 주시고 계십니다.

물론 아직은 영광의 나라가 완성된 것이 아니기에 힘이 들때도 있을 것입니다. 고통의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조차도 영광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게 영원한 기쁨과 안식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아무도 우리를 괴롭게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은혜만이 안식만이 영원한 영광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대강절 넷째주일을 보내면서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이 광야에 같은 세상에서, 죄와 사단의 권세에서 건지시어 참된 생명과 기쁨과 은혜가운데 살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주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두고 그 나라를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영광의 나라를 오늘 여기서 맛보며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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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장례식 예배] 추모예배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주셔서 슬픔과 역경과 병환 가운데서도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심을 감사하나이다.

오늘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고 ( ) 성도님께서 하나님의 품으로 불려 가신 그날을 맞이하여

추모하는 예배로 모였나이다.

고인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드리며,

이날까지 고인의 유족과 고인이 사랑하셨던 많은 분들을 믿음 안에서 붙들어 주시고, 이끌어 주신 것을 감사드리나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여기에 모인 가족들 모두에게 하늘의 은총을 베풀어 주사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게 하옵소서.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심을 믿음으로 확인하고, 새 소망으로 넘치게 하시며,

절망과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는 눈을 들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땅 위의 헛된 것들을 보고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 삶의 모범을 보이시던 고인을 추모하며, 그의 신앙심과 믿음을 본받게 하시옵소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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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예배기도] 대강절 기도 문

 

 

자비하신 하나님!
어두운 이 땅에 주님이 친히 오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지극한 사랑이 온 땅에 알려지는 이 날이 되게 하시옵소서.

용서의 하나님!
저희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죄악을 고백합니다.
여러 가지 죄악을 끊어버리기 위하여 힘쓰고 애쓰며 살려 했었지만,
저희들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다시금 주님 앞에 범죄한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시간 고백하는 심령의 죄악들을 용서해 주시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의 손길로 저희를 붙들어 주시사 연약함이 강건함으로 바꾸어지게 하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진정 저희들이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시옵소서.
주님이 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는지 그 의미와 본질도 모른 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선물만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성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성탄절을 준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또한, 동방의 박사들이 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였듯이 저희들도 형식만으로가 아닌 귀중한 예물을
준비하여 주님의 오심을 맞이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주님의 오심을 단순히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주의 오심을 증거하고 말씀을 확신있게
전파하는 성탄절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얼마 남지 않은 이 해를 건성으로 마무리짓지 않게 하시고,
저희 자신을 진지하게 돌이켜보며 희망찬
새해를 준비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목사님과 예배를 돕는 손길들에게도 주님의 은총을 더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탁하오며, 저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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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설교] 사순절 주일 예배설교 

 

 

제목 : 유혹 앞에서

성경 : 마4:1-11

1.유혹 앞에 서 있는 인생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정말 주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영성을 유지하며 살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주변에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다양화되고, 문화가 급속히 발달하고, 물질이 풍성해짐으로써 질적, 양적으로 더 높고 더 많고 더 다양한 욕구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 중에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고, 아는 게 병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는 말도 흔히 합니다. 맞습니다. 차라리 안 보고 모르면 갖고 싶지도 않고, 먹고 싶지도 않을 텐데 자꾸만 맛있는 음식과 화려한 옷, 좋은 집들이 보이고, 번쩍번쩍 빛나는 차들이 돌아다닙니다. 더 크고 더 좋은 냉장고 텔레비전 휴대폰 카메라 컴퓨터 등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눈이 높아지고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걸 소유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좋은 옷,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가전제품도 사기 때문입니다. 물론 더 나은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닙니다. 아니 좋은 것에 대한 욕망은 그것을 소유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도전하게 만들어 인간의 삶에 발전을 가져오는 동력원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류는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번영을 이룬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풍요롭고 넉넉하고 마음 껏 자유를 누리는 세상이 되었는데 오늘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외형적으로 풍성해진만큼 그렇게 우리의 삶이 전체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워지고, 만족과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되었습니까? 사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엊그제 뉴스에 보니 살인 강도 강간 등의 흉악범죄는 해마다 증가일로에 있다고 합니다. 묻지마 폭력이 증가하고 결혼도 잘 하지 않으려하고 결혼을 해도 아이도 잘 낳지 않으려고 하고 이혼율도 세계최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또 사회적 갈등은 왜 그렇게 많습니까? 툭하면 싸우고 헤어지고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머리에 띠 두르고 결사반대, 결사 항전을 외치며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일들이 많은지...

옛날에는 어렵고 힘들어도 잘만 살았는데 요새는 왜 그렇게 갈등이 많고 참 이상하지 않나요? 이만큼 풍요롭고 넉넉하게 되었으면 마음도 좀 더 넉넉하고 서로 받아주고 이해하며 갈등없이 살 만도 한데 말입니다.

그게 다 왜 그렇습니까? 소유나 과학이나 지식이나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은 올바르고 가치있게 사용하여 인간의 행복을 위한 보조도구로 활용해야 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도리어 사람을 수단으로 삼으려고 하니까 자꾸만 사회가 삐그덕거리고 시끄러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세상의 왜곡된 가치관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가장 큰 유혹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까먹게 만드는 가장 큰 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바르고 예민한 영성으로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배격할 것은 배격하며 우리 자신을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5:15,16절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런 어그러지고 왜곡된 가치관이 만연된 세상속에서 주님 앞에 엎드려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올바른 영성을 가지고 모든 왜곡된 가치관과 유혹을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예수님의 시험-사탄에 대한 승리의 선포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까? 감히 마귀 주제에 하나님의 아들을 시험하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물론 예수님이 그 시험을 허락하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마귀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의 선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마귀의 시험에서 실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죄가 들어왔고, 죄가 들어옴으로 인간에게는 고통과 사망이 왔습니다. 결국 인간의 고통은 사단의 시험에 짐으로써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모든 고통과 사망권세를 물리치려면 사탄의 유혹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망권세를 비롯한 모든 어둠의 권세가 쫓겨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시기 위하여 일부러 마귀의 시험을 허락하셨고, 보기 좋게 물리치심으로써 승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해 오는 마귀사탄의 도전을 우리가 어떻게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한마디로 주님이 마귀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는 분이므로 그 안에서 사탄 권세를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물리치심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분별력을 가지고 사탄의 흉계를 깨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이 왜곡되고 유혹많은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을 알게 됩니다. 그게 뭐냐?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고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래요? 누가 우리 스스로 사단의 권세를 이기겠습니까? 누가 스스로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죄의 유혹을 이기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도 스스로는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권세와 싸워 이기지 않는 한 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고도로 과학이 발달하고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풍성해 진다해도 사단의 세력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물질도 생명도 과학도 지식도 진정으로 올바르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것들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것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고 싸우고 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처럼 문명이 발달하고 풍성한데도 오히려 더 불평과 불만과 갈등과 걱정근심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살아가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은혜임을 압니다. 함께 나누어야 함을 압니다. 서로 존중함을 압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압니다. 위로부터 평안과 기쁨과 자유와 은혜가 쏟아져 내려옵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려분, 진정으로 행복을 원하신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 온전히 안기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다른 잣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잣대로 삼아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어둠과 죄와 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물질적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그렇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물질적인 시험이었습니다. 마귀는 40일 동안이나 금식하여 주리신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여기 있는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먹어보라는 유혹을 합니다. 그러면 배도 불러서 좋고, 동시에 너의 권능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 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한마디로 비록 떡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앞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비록 배가 고파 떡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하나 그러나 너 따위의 말은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주려서 고통스러운 것은 사실이나 그래서 떡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육적인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요구도 중요하지만 과연 어떤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냐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설령 내가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너 같은 악의 존재의 말을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물질은 분명히 필요하고 요긴한 것이지만 그러나 절대로 그것이 하나님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물질인 육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에 물질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고, 물질이 우리의 욕구 중 많은 부분을 충족시켜 주지만 그러나 우리는 결코 물질을 하나님과의 사람의 관계보다 우선순위에 두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은 이게 뒤바뀌어져 있습니다. 물질지상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물질이 사람보다 위에 있고 심지어는 하나님보다도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물질 때문에 싸우고, 때리고 심지어 죽이기도 합니다. 물질 때문에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물질의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질 때문에 이웃과 친구와 가족 간의 관계가 파괴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은총도 사람과 사람사이에 누려야 할 사랑과 기쁨과 은혜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을 자신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바르게 사용하면 바로 거기에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나도 너도 하나님도 행복한 파라다이스가 건설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성도 여러분께서는 결코 물질을 앞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질에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삶의 우선순위에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질 때문에 자신의 양심을 팔아먹고, 물질 때문에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물질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참다운 인간의 가치를 앞세우고, 이웃과의 관계를 앞세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앞세우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더욱 온전히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명예적 유혹을 물리치신 예수님

1차 유혹에서 실패한 마귀는 겁 없이 다시 도전합니다.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를 붙들어 다치지 않게 하실 것이고, 그러면 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웅대접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였느니라.’(마4:7)하시며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을 뛰어 내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정말 그것이 사람들에게 생명의 은총을 가져다 주는 일이라면 뛰어 내릴 수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예수님께 있어서 그까짓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뛰어 내릴 때가 아닌 것입니다. 마귀의 말을 듣고 뛰어내리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이 때에 뛰어내리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참람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설령 뛰어 내려도 끄떡없어서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을 수 있다할지라도 나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조심해야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죽음의 장소라도 가야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위한 것이라면 불속에라도 들어가야 합니다. 엉뚱한 일에 용감해서는 안됩니다. 잘못된 일에 용감해서는 안됩니다. 쓸데없는 영웅심리로 혹은 뭔가 좀 특별한 방법으로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인기를 얻으려는 어리석은 행위는 삼가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무언가 인정받기 위하여, 나타내기 위하여, 명예를 얻기 위하여, 두각을 나타내기 위하여 주님의 일을 하거나 무슨 직분을 얻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야말로 갓난아기와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도 인정하시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예를 얻으려는, 인기를 얻으려는, 뭔가 튀는 행동을 통해서 인정을 받으려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왜곡된 방법을 시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정석대로 성실하게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그 방법도 올바르게 되고 결국은 결과도 나타나게 됩니다. 설령 결과가 더디 나타나거나 혹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다해도 언젠가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진실하게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금 더디 이루는 한이 있어도, 아니 세상에서 비록 명예를 얻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그저 진리 안에서 성실하게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주는 그 어떤 명예나 영광보다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인정과 상급과 영광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영적 유혹을 물리치신 예수님

첫 번째 두 번째 시험이 실패로 끝나자 마지막으로 사단은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영적으로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높은 산으로 가서 예수님에게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자신에게 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천하만국을 모두 너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4:10)하시며 호통을 치며 마귀의 교활한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교활한 종교적 시험이었습니다. 자신에게 경배하기만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눈한번 질끈 감고 절을 하면 세상만국을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탄이 그럴만한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까짓 게 무슨 그런 권세가 있습니까? 그저 예수님이 지금 40일동안이나 전혀 아무것도 안 잡수시고 약해져 있으니까 어떻게하든 이 약해진 틈을 노려 예수님을 넘어트리려고 술책을 쓰고 있는 것 뿐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사탄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나에게 절하라. 나가 누굽니까? 사탄입니다. 사탄이 뭡니까? 죄의 세력입니다. 죽음의 권세입니다. 지옥의 권세입니다. 오늘날 그런 게 뭘로 나타납니까? 때로는 돈으로 나타납니다. 권세로 나타납니다. 과학지상주의, 물질지상주의, 개인이기주의로 나탑니다. 물론 돈이나 과학이나 이성이나 이런 것들 자체가 사탄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사탄의 하수인 역할을 할 때는 사탄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사람들을 돈에게 무릎을 꿇게 합니다. 권력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향락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개인이기주의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편의주의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그러면 너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속삭입니다. 마치 그 옛날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했던 수작과 똑 같은 것입니다. 따 먹어라. 따 먹어라. 그러면 하나님 같이 될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그 소리에 속으면 안됩니다. 분별해야 합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향락이나 세상의 가치관 앞에 무릎을 꿇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할 대상은 오직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뿐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뿐입니다. 세상의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이나 명예나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날 이렇게 교묘하고 다양하게 다가오는 마귀의 흉계를 간파하고 절대로 거기에 현혹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기도하는 일과 말씀 묵상하는 일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신을 부인하며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영적 시험을 이기고 온전히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마음껏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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